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77
혈천제가 기수를 정성껏 애무하는 것은 오로지 채양보음술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적어도 그녀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기수를 만나기 이전까지는 상상도 못했던 일들을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었다.
남자의 몸 구석구석, 특히 배설기관 일대를 모조리 혀로 섭렵하면서도 생글생글 웃으며 기수와 눈을 맞춰주는 일은 두 제자의 시범이 없었다면 상상도 못했을 일이었다.
기녀 출신 두 교관의 역할이 지대하다고 할 수 있었다.
기수도 받고만 있지는 않았다.
자신의 굳건한 힘으로 혈천제에게 천국을 보여주었다.
중간에 두 제자를 먼저 내보내기 위한 쇼 타임을 하는 중에도 기수는 계속 혈천제와 시선을 맞추었다.
그리고 마침내 단 둘만 남게 되자 그 어느 때보다 황홀하고 만족스러운 섹스가 이루어졌다. 이제까지 그녀와 한 섹스 중 최고였다.
태을음양대법도 그에 맞추어 최상의 효율을 드러냈다.
기수는 단전으로 순환하는 진기의 순도에 놀랐다.
아메리칸 커피를 마시다가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의외의 상황은 흡수되는 양이 전처럼 많지 않았다.
기수는 뭔가 잘못된 게 아닌가 하고 걱정했다.
그러나 곧 어떻게 된 일인지 깨달았다.
‘아! 그녀와 나 사이의 내공 차이가 거의 비슷할 정도로 좁혀졌구나!’
시도한 횟수에 비하면 놀라운 성과가 아닐 수 없었다.
기수는 혈천제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오늘만큼은 마녀가 아니라 천사구나. 후후…’
그래서 마음을 듬뿍 담아 키스를 해주었다.
단전을 가득 채우고 자신의 숙소로 돌아온 기수는 곧바로 운기조식에 들어가 흡수한 내공을 완전한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밀도와 순도가 모둔 높은 내공이 진원지기를 살찌우는 게 느껴졌다.
새벽 동이 틀 무렵이 되어 기수는 눈을 떴다.
내공 증진의 기쁨으로 가슴이 두근거려서 계속 운기조식을 이어가기 전에 잠시 마음을 안정시킬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때 그는 거처 주변에 자리 잡은 살기를 감지했다.
‘뭐지? 도룡문 경내에서 누가 살기를….?’
이상한 일이었다.
도룡문 좌우호법의 거처인데 누가 감히 살기를 품는단 말인가?
‘혹시, 철우 그놈이?’
기수는 가부좌를 풀고 일어섰다.
정말 그놈이라면 가만히 놔둘 수 없었다.
내공 증진 이후 증진된 청각으로 안쪽의 기척을 들어 보니 엽청문은 잠이 들었고, 만묘는 뒤척이고 있었다.
동생의 억울한 죽음, 범인으로 짐작되는 사람을 찾았음에도 불구하고 무공이 부족해서, 또 양 문파의 입장을 고려해서 손을 쓰지 못했으니 잠이 올 리가 없었다.
기수는 그녀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살기의 근원지를 찾아낼 생각이었다.
그가 문밖으로 나서자 어둠 속에서 누군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놈이 나왔다!”
“어서 잡아라!”
상대는 십여 명에 이르렀다.
기수는 그들이 노리는 게 엽청문 부부가 아니라 바로 자기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호법 정도 되면 함부로 해칠 수 없으니까 만만한 나를 노리는 건가?’
철우를 곤란하게 만든 게 자기니까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둠속에서 파공음이 들려왔다.
‘이놈들이 암기를?’
기수는 적이 자기를 거칠게 다룬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목숨만 붙어 있으면 될 뿐 상처가 나거나 부상당하는 건 상관없다는 식인 것이다.
기수는 민첩하게 장포 소매를 휘둘러 암기를 쳐내고 경공술을 펼쳐 장소를 이동했다. 만묘 부부를 깨우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놈이 도망친다!”
“놓치지 말아라!”
기수는 몸을 날리면서 그들 사이에서 익숙한 목소리를 들었다.
영마와 철우가 모두 있었다.
‘아주 작정을 하고 왔구나.’
기수는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고수가 두 명이나 따라온다고 생각하니까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혈천제, 소혼랑, 광혼랑과 뒹구느라 제대로 무공을 펼치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그래서 경공도 약간은 스텝이 엉겼다.
어색함은 곧 사라졌지만, 기수는 다른 생각을 했다.
‘굳이 내 실력을 전부 드러낼 필요는 없겠지.’
기수는 딱 잡히지 않을 만큼만 속도를 내어 암벽을 거슬러 올라갔다.
“절대 놓쳐선 안 된다!”
뒤에서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고, 동시에 암기도 날아왔다.
기수는 민첩하게 암기를 피하며 계속 선풍비를 3성 정도만 시전했다.
추격전이 계속되자 내공이 딸리는 놈들은 처진다는 사실을 뒤돌아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계곡을 완전히 벗어날 정도가 되자 동쪽 하늘이 훤하게 밝아왔고, 그때까지 기수를 따라온 사람은 단 두 명.
영마와 철우뿐이었다.
기수는 그들에게 포기할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걸음을 멈추었다.
“흐흐흐…..! 드디어 포기했구나.”
“보기보다 멍청하지는 않구나.”
영마와 철우는 기수의 좌우로 벌려 섰다.
그리고 각각 무기를 뽑아들었는데, 영마의 칼은 반달 모양으로 휘어진 예도였고 철우는 끝이 세 갈래로 갈라진 삼첨도를 들고 있었다.
무기를 제대로 갖추고 온 걸 보면 뭔가 사전 계획을 한 게 분명했다.
기수는 느긋한 어조로 물었다.
“너희들. 왜 나를 따라오는 거냐?”
“흐흐흐….. 천제님이 찾으신다.”
“암천제가?”
“무엄하다! 네놈 따위가 함부로 입에 올릴 분이 아니시다!”
기수는 같잖았다.
“씨발 암천제를 암천제라고 하는데 뭐 어쩌라고? 내가 무슨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이라도 되는 줄 아냐? 듣기 싫으면 이름을 가르쳐 주던가.”
영마와 철우는 서로 얼굴을 쳐다봤다.
기수의 얘기 중 알아듣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확실한 것은 평제자치고는 상당히 삐딱하고 건방지게 나온다는 점이었다.
영마가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너…… 죽고 싶냐?”
살기가 뚝뚝 흘러 넘치는 표정과 분위기였다.
기수는 피식 웃었다.
“씨발넘. 존나 후까시 잡고 있네. 그런다고 내가 쫄 거 같으냐?”
지금 자신이 서 있는 이곳은 도룡문의 계곡에서 완전히 동떨어진 장소.
여기엔 혈천제도 암천제도 없었다.
그들의 눈치 볼 일이 없으니 영마와 철우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저자세를 취할 이유도 없었다.
영마와 철우는 기수의 그런 태도에 격분했다.
“일단 네놈을 제압해서 손가락과 발가락을 모두 한 번에 하나씩 잘라주마.”
“그 뒤엔 귀를 자르고 코도 베어주마. 그래도 계속 시건방지게 나올 수 있는지 어디 한 번 보자.”
“지랄 쌈 싸먹고 앉았네.”
기수는 내공을 끌어 올렸다.
그동안 하체만 사용하며 살았는데 이제 제대로 힘을 쓸 기회가 생긴 것이다.
영마가 철우에게 말했다.
“천제님에게 끌고 가려면 명줄은 남겨둬야 해. 잊지 말라고.”
“걱정 마. 죽지 않을 만큼만 할 테니까.”
철우가 기수를 미워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확인 차 말한 것이다.
기수는 문득 궁금증을 느꼈다.
“어이, 이봐! 암천제가 왜 나를 만나려는 거지?”
“흐흐흐…….네놈이 혈천제의 처소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확인하시려는 거다.”
“아! 그, 그렇구나.”
혈천제와의 밀회가 부끄러울 것은 없었다.
그러나 암천제가 알게 되었을 때 혹시라도 그녀에게 피해가 갈까 걱정이 되었다.
영마가 물었다.
“매일밤 거기서 무슨 짓을 하는 것이냐?”
젊은 남녀가 밀실에서 무슨 일을 하느냐는 것보다 바보 같은 질문이 또 어디 있을까. 그러나 영마와 철우는 천하의 혈천제가 설마 기수 같은 평제자와 그럴 거라고는 상상도 못하는 듯 했다.
기수는 혈천제의 입장을 고려해서 대충 둘러댔다.
“천제님에게 수학과 천문학을 가르쳐드렸다.”
얘기해놓고 보니까 머릿속에서 생각할 때보다 더 터무니없게 들렸다.
철우가 코웃음을 쳤다.
“흥! 계속 헛소리구나. 일단 다리부터 잘라줄까?”
기수는 계속 웃음이 나왔다.
“너희들. 나한테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냐? 여기까지 오면서 내 경공술을 봤으면서도 눈치를 못 챘어?”
그러자 철우가 삼첨도를 빙글빙글 돌리며 간격을 좁혀왔다.
“미친 놈. 네놈은 도룡문의 간부 축에도 끼지 못하는 일반 제자 아니냐. 그런 까마득한 서열로 감히 마령인 우리와 맞서겠다고?”
기수의 미소가 더 짙어졌다.
“빙신아. 서열이 뭐가 중요하냐? 그럼 피파랭킹 높은 일본이 우리보다 축구 더 잘하게?”
기수는 오른손으로 권총 모양을 만들어 다가오는 철우의 얼굴을 겨냥했다.
“또 그 짓을….!”
철우는 칼을 치켜들어 기수의 손목을 자르려고 했다.
바로 그 순간, 기수의 손가락에거 퓩! 하는 파공음과 함께 지풍이 발출되었다.
잔백지가 시전된 것이다.
“으윽…..!”
철우는 깜짝 놀라 칼을 휘둘러 막았다.
그러자 그의 칼날이 찡~ 소리를 내며 한참 동안 진동했다.
철우는 안색이 창백해졌다. 영마 역시 마찬가지였다.
암기를 던진 것도 아니고, 지풍만으로 그런 충격을 가한다는 것은 웬만한 고수는 흉내도 내지 못하는 수법이었다.
기수가 실력을 숨긴 고수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그들은 즉시 눈빛을 교환하고 협공을 시작했다.
두 자루 칼이 날카로운 파공음을 울리며 기수의 요혈을 베어왔지만 기수는 여유가 있었다.
“마령의 실력이 고작 이 정도인가? 후후….”
그는 자신의 무공이 예전보다 훨씬 고강해졌음을 확인했다.
혈천제와의 음양대법이 확실한 효과를 보인 것이다.
기수는 영마와 철우를 상대로 분광권을 테스트했고, 두 사람은 자기들 실력으로는 결코 기수를 이기지 못할 거란 사실을 깨달았다.
영마와 철우는 눈빛을 교환했다. 도망치자는 뜻이었다.
두 사람이 갈라서서 도망치면 적어도 한 명은 살아 돌아가서 암천제에게 지금의 상황을 보고할 수 있었다.
마음을 정한 그들은 잽싸게 움직였다.
그들이 갈라서서 달리자 기수는 곧바로 의도를 알아차렸다.
더 이상 여유를 부릴 수 없다고 생각한 기수는 진기를 바짝 끌어올려 양손으로 동시에 잔백지를 시전하여 두 사람의 종아리를 공격했다.
“끄아악….!”
“으윽…..!”
피가 튀면서 영마와 철우는 고꾸라졌다.
손가락 굵기의 구멍이 두 다리에 대여섯개씩 뻥! 뻥! 뚫리고 나니까 도망은 커녕 서있기조차 불가능했다.
“으윽…. 주, 죽어랏!”
영마는 쓰러지는 도중에도 몸을 휘전시켜 들고 있던 칼을 던졌다.
육중한 파공음과 함께 반월도가 날아왔지만 기수는 그것을 간단히 공중에서 받았다.
“땡큐!”
한 마디 감사 인사를 한 후 기수는 영마의 칼로 그의 머리를 찍어버렸다.
“크악….!”
즉사였다. 기수는 튀는 피를 보면서 본능적인 위축감을 느꼈다.
아무래도 현대에 오래 살았기 때문에 살인에 대한 죄의식을 완전히 없애기는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곧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주먹이 법인 세상에 왔으니까 이곳에 맞춰 사는 게 당연했다.
그가 홱 고개를 돌리자 철우가 떨고 있었다.
예상과 달리 기수가 도망치는 것조차 불가능한 고수라는 사실에 공포를 느낀 것이다.
“자! 이제 너와 나만 남았군.”
“이, 이봐. 나를 죽이고도 네가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응.”
“우, 우리… 말로 하자. 꼭 피를 볼 필요는 없잖아.”
철우는 삼첨도를 멀찍이 던져버렸다.
더 이상 싸울 의사가 없음을 표현한 것이다.
싸운다고 해봤자 상대가 되지도 않았다.
기수는 그의 그런 행동에 코웃음을 쳤다.
“만하를 죽일 때 이런 일이 있을 줄은 몰랐지?”
“호, 혹시 그녀와 연인 사이였나?”
“아니.”
“그럼 친척이었나?”
“아니. 얼굴도, 이름도 모르던 사이였어.”
“그, 그런데 왜 나를 괴롭히나? 아무 상관도 없는 사이인데.”
“하하! 말은 바로 하자고. 나를 쫓아오면서까지 괴롭힌 건 너희 쪽이야. 내 입장에선 아주 고마운 일이지. 만묘를 위해 원수를 갚아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네놈이 제발로 나를 따라왔으니까.”
“제발 나를 살려주게.”
“만묘가 얘기하는 걸 듣기로는 만하의 두개골에 골절상이 있었다고 하던데, 어떻게 죽인 거지? 머리를 가격한 후 실족사로 위장했나?”
“그, 그런 셈이지.”
철우는 혹시라도 호감을 사면 살아남을 가능성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라 숨김없이 모두 대답해주었다.
“무엇으로 때렸나?”
“주, 주먹으로……”
“좋아! 그대로 해주지.”
“뭐, 뭐라고?”
기수는 달려들어 철우의 머리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철우는 본능적으로 솓을 뻗어 막으려 했지만 부상당한 몸으로 기수의 분광권을 막기는 쉽지 않았다.
기수는 점혈을 하거나 다른 요혈을 찔러 훨씬 쉽게 죽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머리만, 그것도 급소를 피해 때려서 철우에게 지속적인 고통을 안겨주었다.
처참한 만하의 시체가 생각나서 자기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퍽! 소리와 함께 수박 깨지는 소리가 나자 철우의 비명도 멈추었다.
결국 두개골이 부서진 것이다.
기수는 그의 시신을 번쩍 들고 가서 계곡 아래로 던져버렸다.
자기가 권력 좀 있다고, 힘 좀 세다고 다른 사람 머리를 깨고 실족사로 위장하는 놈은 똑같이 대접해줄 필요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