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86
소문은 사실이었다.
고원달은 보표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그의 형 고원정이 몇 달 전에 보표를 한 명 구했는데, 아무도 그의 정체에 대해 모르고 있다가 이번에 철산문을 칠 때 철산문 문주를 제압하면서 진면목이 드러났다.
귀면살 팽무진.
광서, 귀주, 사천, 운남 일대에서 위명이 쟁쟁하던 고수였다.
철산문 문주를 잡고 지도를 빼앗는 공을 형에게 빼앗긴 것은 바로 팽무진의 존재 때문이라는 게 고원달의 결론이었다.
자기도 실력 있는 진짜 고수를 심복으로 둘 필요가 있었다.
여러모로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속을 알 수 없는 형에게 그런 고수가 있는 게 불안하기도 했다. 혹시라도 자기를 암살할지도 모른다는 노파심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자기도 진짜 실력 있는 고수를 곁에 두리라 결심했다.
하지만 고수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우선 약선문 소속 무사들 중에서 찾아보려는 것이었다.
급한대로 바로 곁에서 보호해줄 방패막이를 하나 마련해 놓으면 진짜 고수 구할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대놓고 비무대회를 열 일은 아니라서 각 단의 단주를 불러 최고의 실력자를 한 명씩 추천하라고 했다. 혹시 솜씨 좋은 수하를 감춰두고 안 내놓을 수도 있기 때문에 뽑힌 자를 추천한 단주에겐 후한 상금을 주겠다고 했다.
백호단 단주 왕총은 곧바로 기수를 불렀다.
그가 알기로 백호단 내에서 입문 테스트 중에 한 순간이나마 자기를 당황하게 만들었던 상대는 양일이 유일했다.
“이봐, 양일. 너 공자님의 보표가 될 생각 없나?”
“글쎄요…. 18조 동료들과 친해져서….”
“안 하겠다는 건 아니군. 좋아. 오늘 저녁 먹고 나와 함께 가지. 미리 마음의 준비와 운기조식을 해 둬. 아! 참. 발목은 어때?”
“다 나았습니다.”
일은 순조롭게 풀렸다.
기수는 4공자 고원달의 거처로 들어가면서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진짜 잘 꾸며놨네. 사방에 돈으로 처발랐구만.’
똑바로 갈 수 있는 길도 일부러 구불구불하게 만들고 연못을 파고 정자를 세워서 정말 보기가 좋았다. 같은 약선문의 담 안에 살면서도 이런 장소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두고 봐라. 보물만 찾으면 여기보다 10배 큰 정원을 훨씬 더 멋지게 꾸밀 거다. 연못엔 배까지 띄워야지.’
사실, 생각해보면 10억 주고 산 아파트도 콘크리트 덩어리 아닌가.
그것도 벌집처럼 이웃과 똑같이 생긴 셀 하나에 들어가 사는 것이다.
출근시간에 맞춰 화장실에 앉아 똥을 누면, 자기 머리 위 똑같은 지점에 똥 누는 사람들이 층층이 쌓여 있는 구조였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사람이 진짜 사람답게 살려면 이런 정원 하나쯤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마당에 들어서자 다른 3개 단의 단주와 추천 무사가 보였다.
기수는 세 명의 상대를 둘러본 후 고민이 빠졌다.
‘어떻게 해야 티 안 내고 조금만 이길 수 있을까?’
잠시 기다리자 고원달이 나타났다.
“하하하…! 이렇게 와줘서 고맙소. 어떤 방식으로 겨뤄야 부상자 없이 무공의 우열을 확인할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이렇게 하는 게 좋겠소.”
그러더니 굵직한 나무 몽둥이 두 개를 양손에 하나씩 쥐었다.
“나의 공격을 반격 없이 피하기만 하는 거요.”
그런 식이라면 상호간에 죽거나 다칠 일은 없을 것이었다.
고원달이 몽둥이로 바닥에 동그란 원을 그리며 말을 이었다.
“이 밖으로 나가면 탈락이오.”
참가한 무사들의 표정이 굳었다.
고원달의 무공은 결코 낮지 않았다. 적어도 산동 일대에선 고수 소리를 듣는 그였다.
그런데 반격 없이 그 원 안에서 몽둥이를 피하라니. 끔찍한 조건이었다.
“자 청룡단부터 시작합시다!”
청룡단의 무사는 벌레 씹은 표정으로 원 안에 들어섰다.
자기를 추천한 단주를 봐서 못 하겠다고 할 수는 없는 상황. 어떻게든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고원달은 인정사정이 없었다. 자기 형의 보표인 팽무진보다 나은 실력자 뽑는 게 목적이기 때문에 사정 봐줄 계제가 아니었다.
청룡문 무사는 시작하자마자 어깨와 팔뚝에 연달아 몽둥이로 얻어맞고 원 밖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고원달이 실망스런 어조로 말했다.
“다음! 백호문.”
단주 왕총이 기수를 쳐다봤다. 자신 없으면 여기서 그만 둬도 된다는 표정과 눈빛이었다. 자기라고 해도 저 원 안에서 버텨낼 자신은 없었다. 공연히 기수에게 몽둥이세례를 받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기수는 원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마주 선 고원달은 약선문에 들어온 이후 가장 가까이에서 보게 되는 셈인데, 나이도 자기 또래고 키와 체격도 비슷했다. 하지만 눈매가 날카롭고 입술이 얄쌍해서 야비하기도 하고, 잔인해 보이기도 하는 인상이었다.
그는 아무 자세도 취하지 않는 기수에게 다짜고짜 몽둥이를 휘둘렀다.
원 안에 들어온 순간 이미 테스트는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었다.
기수의 두 발이 원의 가장자리를 따라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상체는 더킹과 위빙을 반복했다.
구경하던 단주와 무사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기수가 고원달의 공격을 모두 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느린 인파이터를 상대로 링 위를 빙빙 도는 빠른 풋워크의 아웃복서 같은 움직임이었다. 차이점이라면 이쪽에선 잽도 뻗지 못하는데 상대는 양손에 몽둥이를 든 일방적으로 불리한 싸움이라는 점이었다.
기수는 고원달 같은 놈에게 한 대도 맞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실력을 전부 드러낼 수도 없었다.
그는 몽둥이보다 고원달의 표정을 더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 그의 얼굴에 분노의 기색이 보이자 실수로 스텝이 엉켜 원 밖으로 나가고 말았다.
“아! 이런…. 실패했네.”
그리고는 아쉬울 것 없는 걸음으로 백호단주 옆에 가서 섰다.
탈락하긴 했지만 실력은 충분히 보였고, 한 대도 맞지 않았으니 괜찮은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이제 주작단, 현무단의 무사가 자기보다 오래 버티지만 않으면 되었다.
고원달은 기수를 위아래로 훑어본 후 말했다.
“좋아. 너로 결정했다. 나머지는 가도 좋다.”
그리고는 약속대로 금화가 들어 있는 비단 주머니를 왕총에게 던져주었다.
주작단과 현무단 무사들은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청룡단 무사는 자기만 얻어맞은 게 억울해서 분노의 한숨을 내쉬었다.
기수가 기다리는 동안 고원달은 왕총과 대화를 나누었다.
기수에 대해 기초지식을 알아두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왕총을 보낸 고원달은 기수를 객청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하하하….! 우리 약선문 안에 이런 고수가 있을 줄은 몰랐군.”
“과찬이십니다.”
원래 부잣집 도련님 비위 맞춰주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당분간은 그와 가까이 지내야 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수준은 지키기로 했다.
“후후… 겸손할 필요 없어. 난 예의바른 사람이 아니라 고수가 필요한 거니까.”
기수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그거라면 제대로 고르신 겁니다.”
“하하하!…. 내가 필요한 게 바로 그 자신감이야.”
고원달은 시녀를 불러 술상을 준비시켰다.
잠시 후 무사 숙소 식당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메뉴들이 차례로 상 위에 올라왔고, 술도 최고급으로 따라졌다.
“건배!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기수는 연거푸 세 잔을 받아 마셨다.
고원달이 친근한 어조로 물었다.
“말해보게. 양일. 어디서 그런 무공을 익혔나?”
“예? 무슨 말씀이신지…”
“후후…. 이제 자넨 내 사람이야. 우리 사이는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돼. 속이는 건 절대로 용납 못 해. 그것만 지켜준다면 내 최고의 대우를 약속하지.”
너에서 자네로 바뀐 호칭도 그렇고, 잘 대해줘서 자신의 진정한 심복으로 만들려는 의도가 엿보였다.
기수는 같잖다는 기분이 들었지만, 어쨌거나 겉으로는 고원달이 자신을 믿게 만들어야 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신뢰를 요구하는 상황인 것이었다.
“저보다야 공자님의 무공이 훨씬 뛰어나시지요.”
“하하! 그렇긴 하지만, 자네가 발목 부상 중만 아니었다면 그렇게 쉽게 원 밖으로 밀려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네. 대파산 상춘관은 처음 들어보는데, 어떻게 그런 무공을 익혔지?”
왕총을 통해 기초 조사가 끝난 상태였다.
기수는 사실대로 얘기했다.
“우리 상춘관이 비록 강호에 전혀 알려진 바 없지만, 대대로 내려오는 단약의 처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부님이 만드신 그 약을 제가 먹었습니다.”
“호오! 소림사의 대환단 같은 건가?”
“뭐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왜 사부가 아닌 자네에게 먹게 했나?”
“사부님은 대사형에게 살해당하셨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중간에 복잡한 사정들이 좀 있었습니다. 저는 영약을 먹고 무공을 연마하여 결국 대사형을 죽여 복수에 성공하고 대파산을 떠나 강호를 떠돌게 된 것입니다.”
“그랬군.”
고원달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더 자세히 묻지는 않았다.
기수의 개인사에는 사실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지금 고강한 무공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말해보게. 자네는 뭘 좋아하나?”
기수는 이 질문이 몹시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뭔가 단순하고 다루기 쉬운 놈이라는 인상을 줄 필요가 있었다.
“제가 강호에 나온 이유는 부자가 되고 싶어서입니다.”
“하하하…! 그게 전부인가?”
약간은 경멸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기수는 거기에 맞춰줬다.
“예. 부끄럽지만 솔직해지자고 말씀하셔서 제 속마음을 숨김없이 털어놓는 겁니다. 사실 돈만 있으면 세상에 뭐가 또 부럽겠습니까?”
물론 기수에겐 더 중요한 것들이 있었다.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야 했고, 천하의 미녀들을 널리 이롭게 해야 했다.
“하긴, 돈이 중요하긴 하지….”
고원달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원하는 게 돈이라면 얼마든지 기수를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일단 이걸 받게.”
그는 비단 주머니 하나를 내밀었다.
기수다 받아서 열어 보니 안에 은화가 가득했다.
“이렇게 큰 돈을 왜 아직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제게….?”
“이것은 우리가 서로를 알게 된 정표로 주는 것이고 매달 급여는 따로 주겠네.”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기수는 감격한 척 연기를 좀 해줬다. 고원달은 껄껄 웃었다.
기수는 속으로 생각했다.
‘자식. 좋댄다. 쪼잔하게 은화가 뭐냐? 이 정도는 내 비밀 창고에 널렸다.“
고원달이 말했다.
“사내대장부라면 돈 말고 또 좋아하는 게 있기 마련이지. 여자는 어떤가?”
기수는 갑자기 고원달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뭐, 오는 여자는 마다하지 않습니다.”
“하하! 좋아, 좋아. 그래야 진정한 사내라 할 수 있지.”
술자리는 오래지 않아 끝났고, 기수는 4공자의 방과 가까운 방을 배정받아 그곳에서 살게 되었다. 혼자 지낼 방이 6인 내무반보다 넓었다.
그리고 내무반에는 없는 게 또 있었다.
문이 열리고 갈아입을 옷을 가지고 들어온 시녀가 절을 한 후 말했다.
“저는 금련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양공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고개를 든 그녀는 20대 중후반.
고원달의 방에서 얼핏 본 시녀들에 비하면 약간 나이가 들었지만 상당한 미녀였다.
그리고 20대 중후반이면 한창 피어오르는 나이라고 볼 수 있었다.
기수는 그녀의 라인과 비율을 한눈에 파악한 후 물었다.
“나를 모신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지?”
“주인님께서 원하는 일, 시키시는 일은 다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살짝 눈웃음을 치는데 교태가 장난이 아니었다.
기수는 그때 갑자기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다. 탁지연이었다.
그녀의 큰 눈과 갸름한 턱선, 그리고 자기 품에 안겨 울던 그 아담한 체구 등이 생각났다. 왠지 모르게 그녀에 대한 인상이 강해서 헤어진지 얼마 안 된 혈천제의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을 정도였다.
사실, 휘발성 메모리는 기수에게 있어 편리한 면도 있었다.
항상 현재에 충실하게 해주지 않는가.
기수는 지금도 현재에 충실하기로 했다.
“내가 시키는 일을 다 한다면, 우선 치마를 좀 걷어 올려 보지?”
“예? 치마는 왜요?”
“다리를 좀 보려고.”
“아이…. 짓궂기도 하셔라.”
“시키는 거 다 한다며?”
금련은 머뭇거리다가 조금씩 치마를 올렸다.
“더… 더…. 아직 멀었어. 더… 확! 좀 올려봐.”
기수는 계속 손짓을 해서 종아리, 무릎을 지나 허벅지까지 드러나도록 했다.
특별히 긴 다리는 아니지만 미니스커트를 입어도 어울릴 곧고 탄력 있는 라인을 보유하고 있어서 아주 마음에 들었다.
“좋아. 이젠 가슴을 좀 볼까?”
“아이…. 불을 끄면 안 될까요? 부끄러워요.”
“불을 끄면 안 보이잖아? 괜히 튕기지 말고 어서 벗어.”
초면에 이런 식으로 진상 비슷하게 요구하는 것은 그녀가 오늘의 일을 고원달에게 전부 보고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돈을 받았을 때 과장되게 기쁜 척 한 것처럼 여자에 대해서도 ‘감사히 먹겠습니다!’ 하는 태도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완전한 자기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었다.
금련은 다리를 보여줄 때보다 훨씬 더 머뭇거렸다.
그러나 기수는 그녀의 눈빛에 드러나는 열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현재의 상황을 치욕이나 부끄러움이 아닌 흥분과 자극으로 받아들이는 게 분명했다.
“거 참 되게 꾸물거리네.”
기수는 일어나서 그녀 앞으로 다가갔다.
“아아….!”
금련은 아직 손도 안 댔는데 콧소리를 내며 뜨거운 숨을 토해냈다.
“너 꽤 오래 굶은 모양이다?”
금련은 대답 없이 양볼이 빨개져서 고개를 숙였다.
기수는 그녀의 옷을 풀고 먼저 왼쪽 어깨를 드러나게 했다.
그리고 이어서 오른쪽 어깨. 그러자 상의가 허리까지 흘려내리고 붉은 속옷만 남았다.
“하아….”
금련의 호흡은 점점 더 거칠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