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t get Caught by Your Husband! RAW novel - Chapter (128)
남편에게 들키지 마세요! 외전 7화. 아이와의 만남(128/130)
#외전 7화. 아이와의 만남
2024.06.09.
에스칼리온은 신경을 곤두세운 채 복도를 서성거렸다.
자꾸만 불안한 생각이 들어 이성을 다잡을 수 없었다.
더 이상 참지 못해 신경질적으로 복도의 카펫을 발로 찬 그가 짜증 섞인 시선으로 볼프를 노려보았다.
“대체 왜 이렇게 안 나오는 거지? 벨라가 고통스러워하잖아.”
“원래 초산은 오래 걸리는 법입니다.”
볼프가 짐짓 태연하게 대답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그도 마음속으로는 초조함을 견딜 수 없었다.
남들보다 마르고 작은 체구를 지닌 마님이 이 힘든 과정을 버틸 수 있을지 불안하여 걱정이 끊이지 않았다.
방문 너머에서 다시 한번 나지막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에스칼리온은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앓는 소리를 냈다.
“미치겠군…….”
힘들어하는 아내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그를 가장 힘들게 했다.
“조금만 더요!”
안쪽에서, 조산사가 외치는 소리와 벨라도나의 비명이 들려왔다.
에스칼리온은 차라리 귀를 틀어막고 싶다고 생각하며 불안한 숨을 내쉬었다.
“거의 다 됐어요! 그렇지! 조금만 더! 조금만 더어!”
“으아앙……!”
마침내, 조산사의 고함과 함께 아이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이의 울음소리를 확인한 에스칼리온은 곧바로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 침대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는 거침없이 커튼을 열어젖혔다.
“벨라!”
조산사가 능숙하고 빠른 손길로 아이를 받아 씻겨 부드럽고 따뜻한 천에 감싸 벨라도나에게 건네주고 있었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벨라도나가 힘없이 아이를 받아 들었다.
그녀는 벅찬 눈길로 아이를 바라보다가, 자신에게 다가온 에스칼리온을 올려다보며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에스칼리온…….”
에스칼리온은 아이는 제대로 보지도 않은 채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힘든 과정이었던 것인지, 잔뜩 흐트러진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많이 지친 상태였지만, 아이를 바라보는 푸른색 시선에는 따스함이 가득 차 있었다.
그 순간, 어쩐지 안쪽에서부터 뜨거운 것이 울컥 솟아 목 끝에서 찰랑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곧 목구멍을 타고 올라와 코끝을 거치더니 눈시울까지 뜨겁게 만들었다.
생전 처음 느껴 보는 감정에, 에스칼리온은 그 모든 것을 티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입을 열었다.
“벨라…….”
낯선 감정을 뚫고 억지로 내뱉은 목소리 끝이 형편없이 갈라졌다.
그는 미세하게 떨리는 숨을 내쉬며 벨라도나의 작은 손 위를 자신의 손으로 덮었다.
“귀엽죠?”
벨라도나가 품 안의 아이를 보여 주며 물었다.
아이는 여전히 시끄럽게 울고 있었고, 작은 두 주먹을 쥐고 발버둥 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그의 눈에는 그다지 귀엽게 보이지 않았다.
생각보다 붉은 데다가 두 눈을 꼭 감고 형편없이 구겨져 아직은 누구를 닮은 것인지도 알 수 없는 얼굴이 낯설기만 했다.
에스칼리온은 아이를 향했던 시선을 돌려 다시 벨라도나를 바라보았다.
“그냥 네가 귀여워.”
“응? 저 완전 엉망인데요?”
“내 눈엔 귀여워.”
내뱉고 나자, 자꾸만 안쪽을 데우던 감정이 점점 퍼져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의아한 얼굴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벨라도나의 인영이 조금씩 흐릿해졌다가, 얼른 두 눈을 깜빡이니 제 상태로 돌아왔다.
“에스칼리온……. 울어요?”
벨라도나가 조심스레 물었다.
운다고? 내가?
아니라고 고개를 저음과 동시에, 바닥으로 무언가 후드득 떨어졌다.
에스칼리온은 멍한 눈으로 바닥을 적셔 동그란 무늬를 만들어 낸 액체를 내려다보았다.
“뭐야, 진짜 우는 거예요? 에스칼리온 우는 모습 처음 봐!”
그녀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에스칼리온은 계속해서 고개를 저으며 한 손을 들어 제 얼굴을 벅벅 닦아 냈다. 거친 손길에 축축한 것이 묻어나왔다.
“아, 왜 이러지. 볼썽사납군.”
“제 눈엔 귀여운데요?”
“놀리지 말고.”
에스칼리온이 윗옷을 잡아당겨 눈가를 문질렀다.
뒤늦게 다리에서 힘이 풀린 그가 벨라도나의 침대에 걸터앉으려 했지만, 뒤쪽에서 기다리고 있던 조산사가 기회를 놓칠세라 얼른 그를 잡아당겼다.
“영주님! 이제 나오세요! 마님께선 회복을 취하셔야 합니다.”
“어?”
에스칼리온은 순식간에 뒤로 밀려나며 벨라도나와 또다시 멀어지고 말았다.
그는 축축이 젖은 금안을 깜빡이며 의원과 조산사가 아내의 주위를 바삐 돌아다니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잠시만 도련님을 안고 계세요!”
“어?”
조산사가 그 와중에 벨라도나에게서 받아 온 아이를 에스칼리온에게 건네주었다.
얼떨결에 아이를 안아 든 에스칼리온은 어찌할 줄 모르며 두 눈을 깜빡였다.
그는 자칫 흘러내릴 수 있는 아주 작고 따뜻한 빵을 소중히 든 것처럼 엉거주춤한 자세로 양팔을 움직였다.
어느덧 울음을 그친 아이가 제대로 눈도 뜨지 못한 채 작은 입과 손을 꼬물거리고 있었다.
“…….”
아, 또다.
낯선 감정이 또 한 번 찾아들었다.
멀뚱히 아이가 움직이는 것을 내려다보고 있던 에스칼리온은 또다시 눈가를 적시지 않으려 애쓰며 두 눈에 힘을 주었다.
섣불리 이 낯선 감정을 정의 내릴 수 없었다.
그것은 안도감일 수도 있었고, 감동일 수도 있었다. 감사함일 수도 있었고, 사랑일 수도 있었다.
에스칼리온은 천천히 숨을 내쉬며 아이를 안은 손에 힘을 주었다.
벨라도나를 똑 닮아 눈부신 은발이, 그리고 전체적으로 오밀조밀한 이목구비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조금 전과는 달리, 그것들이 모두 미치도록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귀엽네.”
그는 사람들이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방 안에 홀로 우두커니 서서, 한참을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 * *
“으아아아앙!”
아이의 울음소리가 온 성을 울렸다.
태어난 지 이제 막 여섯 달이 넘어가는 필레우스는 아빠를 닮아서인지 목소리도 아주 크고 자라는 속도로 남달랐다.
벨라도나는 시끄러운 울음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어났다.
“내가 다녀올게, 더 자고 있어.”
옆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에스칼리온이 벨라도나의 어깨를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말했다.
벨라도나는 두 눈을 뜨지도 못한 채 얼굴만 겨우 들어 올려 그를 올려다보았다.
내가 가고 싶지만……. 너무 피곤해.
“그래, 알았어. 더 자.”
에스칼리온은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도로 눕혀 주었다.
다시 베개를 베자 그가 침대에서 내려가 작은 통로로 이어진 아기 방으로 걸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자신보다 뜨거운 체온을 지닌 그가 사라지니 침대 위가 순식간에 식어 버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벨라도나는 아쉬움에 그의 자리로 손을 뻗었다.
‘몇 시인 거야…….’
창밖이 어두운 것이, 아직 새벽인 것 같았다.
우리 아들, 참 부지런하기도 해라……. 벨라도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자연스레, 남편을 빼다 박은 듯한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짙은 눈썹과 타오르는 듯한 금안, 제 맘에 들지 않으면 목청을 높여 울어 버리는 것부터 벌써 다른 아이들과는 차원이 다른 발육 속도까지.
아이에게서 찾을 수 있는 제 흔적은 오직 찰랑이는 은발 하나인 것 같아 억울할 때가 많은 요즘이었다.
그나마 아직은 많이 어린 탓에 외출을 한 적이 없어 꽤 하얀 편이지만, 걷고 뛰기 시작해 금세 햇볕에 타 짙은 피부색을 지니게 되면 더욱 에스칼리온을 빼닮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양옆에 에스칼리온과 필레우스를 데리고 다니면 든든하겠는걸.”
너무 무섭게만 자라지 않았으면 좋겠다…….
벨라도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에스칼리온의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아침이 되면 아이가 엄마를 찾을 것이었다. 그때까지의 짧은 휴식을, 최대한 열심히 즐겨야 했다.
“벨라!”
하지만 이제 막 다시 잠에 빠지려던 그때, 에스칼리온이 어쩐지 긴장된 목소리와 함께 침대로 돌아왔다.
“엉?”
벨라도나가 퍼뜩 놀라 고개를 들어 올렸다.
통로에, 필레우스를 안고 돌아온 에스칼리온이 두 눈을 끔뻑이며 서 있었다.
그에게 안겨 있는 필레우스 또한 그녀를 돌아보며 두 눈을 끔뻑였다.
뭐야, 저 모습은? 잠에서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머리카락이 부스스 한 것까지 똑 닮은 두 명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어쩐지 웃기면서 귀여웠다.
하지만 그 와중에 에스칼리온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작게 웃으려던 그녀는 그의 얼굴이 미묘하게 굳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천천히 몸을 들어 올렸다.
“왜 그래요? 필레우스 어디 아파요?”
에스칼리온이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프지 않은 거라면 일단 다행인데……. 대체 왜 저러는 거지? 뭘 봤길래 저렇게 놀란 표정인 거야?
“무슨 일 있어요?”
벨라도나가 다시 물었다. 그녀는 상체를 일으키며 제 옆자리를 살짝 두드렸다.
그제야, 에스칼리온이 천천히 걸음을 옮겨 그녀에게 다가왔다.
벨라도나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자신의 남편과 아이를 올려다보았다.
무슨 일이길래 이러는 거야……?
“그럼 왜…….”
“이가 생겼어.”
“네?”
다가온 에스칼리온이 영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뭐가 생겨?
“필레우스에게 이가 생겼다고. 직접 한번 봐봐.”
가만히 두 눈을 깜빡이자, 에스칼리온이 숨을 몰아쉬며 양팔을 뻗어 그녀의 앞에 필레우스를 들이밀었다.
벨라도나는 가까워진 엄마를 향해 짧은 팔을 버둥거리는 필레우스를 잠깐 바라보았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에스칼리온을 올려다보았다.
지금 그 말을 하려고 그렇게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는 거야?
“대단하지 않아? 벌써 이가 났다니까? 아래에 두 개.”
“아…….”
그의 짙은 금색 눈동자는 정말이지 세상에서 가장 신기하고 위대한 것을 발견한 것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