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t get Caught by Your Husband! RAW novel - Chapter (129)
남편에게 들키지 마세요! 외전 8화. 새로운 초상화(129/130)
#외전 8화. 새로운 초상화
2024.06.09.
“이가 생겼다고요?”
에스칼리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조심스레 한 손을 들어 필레우스의 입을 벌렸다.
아이가 이잉 소리와 함께 입을 벌리자, 정말 아래쪽에 아주 조그마한 이가 나 있는 것이 보였다.
“귀여워……! 토끼 같잖아요!”
“그렇지?”
에스칼리온이 어쩐지 뿌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이가 난 것도 아니면서……?
벨라도나는 마치 자신에게 이가 두 개는 더 난 것처럼 대답하는 에스칼리온을 살짝 올려다보았다가 그에게 펠레우스를 받아 들었다.
어느새 묵직해진 아이가 짧은 다리를 움직이며 즐거운 소리를 내었다.
“아, 따뜻해!”
아이를 받아 드니, 좋은 냄새가 나는 따끈하고 말랑한 난로를 끌어안는 느낌이 들었다.
벨라도나는 펠레우스를 꼬옥 끌어안으며 부드러운 머리카락에 얼굴을 비볐다.
“펠레우스는 내 아내를 닮지 않아 다행이야. 어린 녀석이 벌써부터 뜨끈뜨끈하잖아.”
에스칼리온이 그런 벨라도나와 펠레우스를 한꺼번에 안아 주며 말했다. 벨라도나는 한층 더 따뜻해지는 것을 느끼며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이잉……!”
펠레우스가 불편한지 투정 섞인 울음소리를 내었다. 그 소리를 들은 에스칼리온이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거 하나는 널 닮았네. 좋고 싫고가 뚜렷한 거.”
“제가 그래요?”
“그래, 마음에 들지 않으면 표정부터 딱딱하게 굳어 버리잖아.”
내가 그랬나?
벨라도나가 두 눈을 깜빡이자, 에스칼리온이 그런 그녀의 볼을 손가락으로 콕 찌르며 말했다.
“나는 훨씬 좋아. 예전처럼 무슨 일이 있어도 방긋방긋 웃기만 하는 인형이 아니니까.”
그런가…….
벨라도나는 어느덧 어렴풋해진 아스타냐에서의 생활을 떠올렸다.
예전에는 떠올리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는데, 이제는 아주 오래된 꿈을 꾸는 것처럼 흐릿하고 옅어진 기억이었다.
“날이 조금 더 따뜻해지면…….”
벨라도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펠레우스와 함께 아스타냐에 한번 가 보고 싶어요.”
에스칼리온이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마 위로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넘겨 주었다.
“꼭 가지 않아도 되잖아. 무리하지는 마.”
“무리하는 거 아니에요. 새로운 교황이 교황청을 잘 이끌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티모시와 티나를 만나 보고 싶기도 해요. 아마 공부하느라 많이 힘들 텐데…….”
“그럼 그 늙은 마법사도 궁금하겠군.”
“맞아요! 파비온은 아마 지금쯤 아스타냐를 떠나 다른 곳에 있을 것 같기는 하지만, 미리 약속을 잡는다면 적당한 곳에서 만날 수 있겠죠.”
벨라도나가 펠레우스를 안은 손에 힘을 주며 몸을 일으켰다.
“펠레우스에게 많은 것을 보여 주고, 많은 이들을 만나게 해 주고 싶어요.”
“같은 생각이야.”
에스칼리온이 함께 몸을 일으켜 펠레우스의 통통한 볼을 쓸어내렸다. 펠레우스가 두 눈을 꼭 감으며 간지러운 듯 고개를 도리도리 움직였다.
그런 아이를 보며 장난스럽게 입꼬리를 올리고 있던 에스칼리온이 무언가 떠오른 듯 내뱉었다.
“아, 오후에 잠깐 시간 되나? 성으로 누구를 좀 불렀거든.”
“누구를요?”
“어제 시가지를 돌아다니다가 젊은 화가를 만났어. 정작 나는 기억하지 못했는데, 상대방 쪽에서 나를 보고 놀라 경기를 일으키더군.”
젊은 화가라면…….
“설마 저희 초상화를 그려 주었던 그 사람요?”
집무실에 걸려 있는 두 사람의 초상화를 떠올린 벨라도나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자, 에스칼리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림을 그려 줄 당시에는 내가 영주인 줄 몰랐을 테니, 놀라는 반응도 이해는 갔어. 그런데 너무 심하게 놀란 느낌이긴 해…….”
그가 이마 사이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누군들 당신을 보면 그렇게 놀라지 않을까요? 벨라도나는 화가의 심경을 백번 이해하며 입을 열었다.
“그날 저희 초상화를 그려 주느라 얼굴을 오랫동안 관찰한 탓에 기억이 났나 보네요. 오늘은 새 초상화를 위해 성으로 부르신 거예요?”
“그래. 이제 펠레우스도 어엿하게 앉아 있을 수 있게 되었으니, 필요하다고 생각했어.”
펠레우스가……?
벨라도나는 고개를 내려 펠레우스를 내려다보았다.
아이는 몸집에 비해 큰 머리를 가누기 어려운 것인지, 아직은 때때로 기우뚱하고 있었다.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어엿하게 앉아 있을 수 있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에스칼리온은 대체 아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
“아무튼, 조금 더 자고 있어. 이따 응접실에서 보자고.”
에스칼리온이 그녀의 등 뒤로 흘러내린 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벨라도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았어요. 준비할게요.”
* * *
“영주님! 마님! 안녕하십니까!”
응접실로 들어서자마자, 젊은 화가가 얼굴을 보일 새도 없이 허리를 최대한으로 수그려 큰 목소리로 외쳤다. 벨라도나는 웃으며 그에게 화답했다.
“또 만나게 되어 반가워요. 오늘 초상화를 그려 주신다고요.”
“네, 네, 그렇습니다! 지난번에는 알아뵙지 못하고 크나큰 실례를 저질렀습니다. 하여 이번에는 특별히 무료로…….”
“됐고, 제대로 그리기나 해.”
에스칼리온이 귀찮은 듯 미간을 찌푸리며 벨라도나의 허리를 끌어당겼다.
펠레우스를 안고 있는 벨라도나는 그의 손에 이끌려 이젤 앞의 부드러운 의자로 향했다.
흘낏 바라보니, 젊은 화가가 차마 대답하지 못한 채 마른침을 꿀꺽 삼키는 것이 보였다.
“제대로 보수를 쳐 줄 테니 그런 생각 말고 최선을 다해 달란 소리예요.”
“아,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벨라도나의 부연 설명에, 화가가 다시 한번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이젤 앞으로 가 자리를 잡았다.
“이, 일단 편한 자세를 취해 주시고…….”
“내 허벅지에 앉을래?”
먼저 의자에 자리 잡고 앉은 에스칼리온이 장난스레 제 허벅지를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벨라도나는 재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왜? 사이 좋아 보이고 좋잖아.”
그가 또다시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물었다.
저거, 저거……! 또 나를 놀리려고!
“전혀 그래 보이지 않아요. 오히려 정숙하지 못하고 이상해 보인다고요.”
“지난번 초상화와 비슷한 느낌으로 그리고 싶었는데.”
“그럼 에스칼리온 위에 펠레우스를 두면 되겠네요!”
벨라도나가 에스칼리온의 허벅지에 펠레우스를 앉혀 두며 말했다.
귀엽게 머리를 넘기고 깜찍한 나비넥타이까지 맨 펠레우스가 두 눈을 깜빡이며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잠시 영문 모를 표정으로 큰 눈망울을 깜빡이고 있던 아이의 얼굴이 점차 찌푸려졌다.
“이이잉……!”
곧, 에스칼리온의 딱딱한 허벅지가 불편한지 펠레우스가 벨라도나를 향해 손을 뻗어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으이잉!”
“아무래도 안 되겠어. 벨라 네가 펠레우스를 안고, 내가 너를 안는 걸로…….”
“엘리너스 제국 어느 성에 가 보아도 그런 구도의 초상화는 없어요.”
단호하게 내뱉은 벨라도나가 그에게서 펠레우스를 다시 데리고 왔다. 그녀는 에스칼리온의 곁에 자리를 잡고 이젤을 향해 몸을 돌렸다.
초상화를 빨리 그려 주는 사람이니 조금만 참으면 되겠지? 그녀는 무릎 위 펠레우스의 오동통한 팔을 부드럽게 쓸어내리기 시작했다.
그림이 끝날 때까지, 부디 소란을 피우며 울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자,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자리 잡은 부부를 확인한 화가가 붓을 들어 올리며 내뱉었다. 벨라도나는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에스칼리온의 투박하고 뜨거운 손이 그녀의 허리를 자기 쪽으로 확 끌어당겼다.
엇! 벨라도나는 흠칫 놀라 그에게 몸을 찰싹 붙이고 말았다.
“앉아 있기 지루하면 나한테 기대.”
“…….”
벨라도나는 말없이 두 눈을 깜빡였다.
지난번과 같은 대사에, 그때의 상황이 환히 그려지는 듯했다.
‘게다가…….’
벨라도나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여전히 단단한 몸을 지니고 있었고, 뜨거운 호흡과 특유의 남성적인 향기까지 이전과 같았다.
새삼스러운 감정에, 벨라도나는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끼며 펠레우스를 안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의 몸과 맞부딪혀 있는 어깨 쪽이 지나치게 뜨거워지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왜, 왜 이러지? 갑자기 더워지는 것 같은데……?
“벨라, 너한테 좋은 향기가 나.”
그때, 옆쪽에 앉아 있던 에스칼리온이 속삭이듯 내뱉었다. 갑작스럽게 귓가에 내려앉은 숨에, 벨라도나가 자신도 모르게 흠칫 놀라며 파르르 떨었다.
에스칼리온이 큭큭거리며 낮은 웃음소리를 내었다.
“얼른 끝났으면 좋겠군. 하고 싶은 게 생겨서.”
“…….”
“끝나자마자 침실로 가자.”
“……!”
벨라도나의 얼굴이 화르륵 붉게 달아올랐다. 페, 펠레우스가 듣고 있는데 못 하는 소리가 없잖아?
갑자기 복잡해진 머릿속에, 그녀는 어쩔 줄 몰라 하며 길고 긴 시간을 버텼다.
“완성되었습니다!”
“우와……!”
약 세 시간 뒤, 화가가 밝게 외치며 캔버스를 훌쩍 돌려 그들에게 보여 주었다.
완성된 그림을 확인한 벨라도나가 입을 작게 벌렸다.
지난번 둘의 초상화도 꽤 근사하게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저번보다 열과 성을 다한 것인지 훨씬 멋지고 아름다운 초상화가 완성되어 있었다.
여전히 자신감 넘치는 눈빛과 듬직한 체격의 에스칼리온, 그 옆의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자신, 그리고 그녀의 허벅지 위에서 두 눈을 동그랗게 뜬 귀여운 펠레우스의 모습까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젊은 화가는 더럽혀진 옷소매로 이마 위의 땀을 닦으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피사체가 훌륭해서, 저도 그리는 맛이 났습니다.”
“수고했어. 아내가 무척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네.”
에스칼리온이 그림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벨라도나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가 눈짓하자, 어느새 들어온 볼프가 화가에게 두툼한 주머니를 건네주었다.
화가는 두 눈을 크게 뜨고는 에스칼리온과 벨라도나를 향해 연신 고개를 숙였다.
“벨라, 그럼 가 볼까?”
열렬히 감사 인사를 건네는 화가에게 대충 손을 흔들어 준 에스칼리온이 그녀의 허리에 손을 얹으며 물었다.
그의 뜨겁고 끈적한 눈빛을 확인한 벨라도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그녀도 원하고 있던 바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