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
==============
닥터 최태수[퓨전]
==============
00001 1화
서울 연성 대학병원.
정오 무렵, 병원 복도에서 갑자기 남자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비켜요!”
다급한 외침.
이어서 스크레쳐카(stretcher cart, 이동식 침대)가 질주했다.
드르륵!
스크레쳐카를 사방에서 잡고 미친 듯 달리는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진들의 얼굴엔 다급함으로 가득했다.
누워있는 환자.
“그륵. 그륵.”
스크레쳐카 위의 환자의 목에서 이상한 소리와 함께 피가 흘러 내렸다.
입을 타고 흘러내리는 피가 점점 얼굴을 타고 흘러 시트까지 적실 정도로 번져갔다.
뒤쪽에서 뛰던 간호사가 소리쳤다.
“선생님. 블리딩!(bleeding, 출혈.)”
“더 빨리!”
타다닥!
환자가 피를 흘리는 상황인데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속도를 높였다.
살리기위해선 응급조치보단 수술실로 향하는 길이 최선이다. 단 일 초라도 더 빨리 도착하는 게 환자를 위한 일이었다.
더욱 달리는 속도를 높이던 중 뒤에서 뛰던 의사가 외쳤다.
“턴!”
말과 동시에 앞에서 뛰던 젊디 젊은 의사가 스크레쳐카 오른쪽 앞부분을 자신쪽으로 당겼다.
원심력으로 인해 스크레쳐카가 오른쪽으로 급격히 선회했다.
또다시 펼쳐진 복도.
그리고 그 복도를 미친 듯이 달리는 질주가 이어졌다. 복도 위에 큼직한 간판이 스쳐 지나갔다.
오장육부(五臟六腑)를 치료하는 유일한 곳.
사람의 생사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병원의 꽃이다.
그런 이유 때문일까?
흉부외과 복도는 언제나처럼 복잡했다.
뒤에서 상태를 확인한 의사가 앞에서 뛰는 20대 후반의 의사에게 소리쳤다.
“최태수! 길 안 터?”
“죄송합니다!”
반사적으로 건네는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하얀 가운 위쪽 주머니에 파란색으로 수놓인 이름이 보였다.
-최태수.
올해 초 의사면허를 취득한 최태수.
키도 훤칠했고 짙은 눈썹과 강인한 눈빛이 패기로 철철 넘쳤다. 허나 계속 된 인턴 생활에 지쳤는지 파릇파릇한 얼굴이 피곤으로 진하게 물든 상태였다.
그래도 환자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걸 알기에 고래고래 소리부터 질렀다.
“응급입니다! 비켜주세요!”
태수의 외침에 복도를 거닐던 사람들 시선이 절로 스크레쳐카 쪽으로 향했다.
“어머머!”
“뭐해? 빨리 이리 나와!”
스크레쳐카 위의 환자 상태를 본 사람들이 식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모세의 기적과 같은 상황에 감탄보다 다급함이 우선이다.
태수는 달리는 와중 대략적인 위치부터 확인했다.
곧 수술실 입구다.
조금만 더 뛰면 된다.
그 생각이 마음의 긴장을 조금이라도 늦춘 걸까?
눈이 따끔따끔했다.
이마를 온통 뒤엎은 땀들이 어느새 흘러내려 눈에 들어간 모양이다.
그러나 눈을 닦을 시간은 없다.
환자는 초를 다투는 다급한 상황이다.
시트를 피로 가득 물들인 환자를 단 1초라도 빠르게 수술실로 인도해야 할 때다. 지금 스크레쳐카를 끌고 달리는 의료진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어느덧 수술실 입구에 다가서자 수술복을 입고 기다리던 간호사들이 부리나케 다가왔다.
동시에 뒤에서 따라오던 레지던트가 소리쳤다.
“최태수. 빠져!”
타닥!
태수는 갑자기 무리해 욱신거리는 다리의 아픔도 뒤로하고 반사적으로 스크레쳐카에서 떨어졌다.
동시에 수술복 입은 간호사가 바통을 이어받고 수술실 안으로 스크레쳐카를 밀고 들어갔다.
텅!
분만실 문이 닫힘과 동시에 태수가 병원 벽을 집고 거칠어진 숨부터 가라앉혔다.
“헉헉.”
쉽게 가라앉지 않는 호흡조절에 애를 먹었다.
턱.
어깨를 짚는 손길에 태수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같이 스크레쳐카를 끌고 왔던 레지던트 얼굴이 시야에 잡혔다.
가슴에 수놓인 그의 이름은 이필영.
레지던트 3년차로 통칭 바이스(vice, vice-chief.)라 불렸다.
날카로운 인상답게 냉정하단 평가가 많은 레지던트이기도 했다.
이필영이 먼저 태수에게 한 마디 했다.
“내가 속도 내라고 했지!”
“죄송합니다.”
“몇 초 지났어?”
병실부터 수술실로 인계할 때까지 소요된 시간을 묻는 질문이다.
태수는 반사적으로 손목시계를 들어 살핀 후 대답했다.
“83초 지났습니다.”
“내가 70초내에 끊어야 된다고 했지. 니가 지체한 13초 사이에 애써 진정시킨 블리딩이 다시 튀어나왔다는 거 몰라!”
“죄송합니다.”
태수가 사과했지만 이필영의 얼굴은 펴지지 않았다.
“오프(off. 의사들이 쉬는 날.) 나간다고 들떴어?”
“아닙니다.”
“저 환자 죽으면 니 책임이야.”
으르렁거리는 이필영 뒤로 장난기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야야, 대충해라. 오프 나가는 애 잠도 못 자게.”
그 말에 돌아보니 수술복을 입고 다가오는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치프(chief 과에서의 레지던트 중 우두머리.) 박성민.
말을 재미있게 구사하는 듯 하다가 갑자기 정신 못차리게 쏘아대는 촌설살인의 대가로 더욱 유명했다.
박성민 치프의 말에 이필영이 살짝 인상을 구겼다.
“치프. 그래도요.”
“인턴이 뭘 알아? 가끔 너 인턴 때 까먹는 거 같다?”
“그래도 이렇게 빠지진 않았습니다.”
이필영이 끝까지 울화를 터뜨렸으나 박성민 치프는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로 슬쩍 웃어 넘겼다.
“원래 인간은 시간이 흘러갈수록 편안함에 적응해서 나태해지기 마련이야.”
“철학은 나중에 듣고, 빨리 들어가 보셔야 되는 거 아닙니까?”
이필영의 말에 박성민 치프 얼굴이 순간 다급함으로 변했다.
“아, 젠장. 괜히 사람 붙잡고 야단이야. 너 이따가 보자. 그리고 태수, 너 빨리 사라져라. 난 이만.”
타다닥!
급한 수술이라는 걸 상기시킨 박성민 치프가 헐레벌떡 수술실 안으로 들어갔다.
태수도 이제야 한 시름 놓는가 싶을 때였다.
아직 이필영의 갈굼은 끝나지 않았다.
“최 선생.”
“네.”
“저 환자 병명이 뭐야?”
난처하게 하기 위해 일부러 묻는 질문이다.
태수도 알지만 대답이 우선이었다.
“gastric perforation(위 천공)입니다. active bleeding(액티브블리딩, 두드러진 출혈.)으로 보아 급성으로 진행된 거 같습니다.”
“같습니다? 누가 너보고 판단하라고 했나?”
“…….”
태수의 침묵에도 이필영은 꾸지람을 멈추지 않았다.
“아무것도 판단하지 마. 특히나 인턴 따위가.”
“네.”
“됐으니까 빨리 사라지기나 해.”
끝까지 으르렁거린 이필영이 돌아섰다.
허나 태수는 그에 대해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인턴.
그 신분이 가진 서글픔 때문이다.
분명 인턴도 의사다.
분명히 면허증을 취득한 공식적인 의사지만 종합병원이란 시스템에서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없다.
아니, 못하게 한다.
그 책임을 온전히 병원에서 져야 한다는 이유 탓이다.
머릿속에 들어 있는 수많은 의학지식도 지금 상태에서는 그저 잊고 지내야했다.
이 죽은 지식을 살리기 위해서는 아직은 많은 시간이 걸려야 했다.
태수도 그 사실은 알고 있다.
이필영이 지금 자신을 핍박한 건 단지 예상 도착시간보다 13초 늦었다는 이유 때문이다.
심한 bleeding(블리딩, 출혈)을 강제로 억누르고 수술실로 향한 시간이다.
불과 13초.
그럼에도 질책은 온전히 태수의 몫이다.
태수도 안다.
1초를 다투는 환자에게 13초란 억겁처럼 긴 시간일수도 있다. 태수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지만 그 대가가 날카로운 추궁이다.
씁쓸함을 입가에 흘린 태수가 몸을 돌렸다.
긴장된 시간이 지나서 그런 걸까?
태수의 몸이 가볍게 휘청거렸다.
“체력하고는.”
내뱉는 목소리에 푸념이 가득했다.
오늘 오프를 위해 4일 동안 밤낮없이 뛰어다닌 결과다. 그래도 흉부외과 인턴 생활을 하며 체력이 떨어진 건 부정할 수 없었다.
조금씩이라도 운동을 해야 할 거 같았다.
오프 직전까지 한바탕 전쟁을 치룬 태수는 당직실에서 말끔하게 씻고 옷까지 갈아입고야 병원 현관을 나섰다.
어느 정도 걸어간 후 태수는 뒤돌아 병원 건물을 바라봤다.
-연성 대학병원.
연성 대학교는 서울 탑클래스에 속하는 명문대였다.
대학교 명성만큼이나 대학병원의 의료수준도 높았다.
지방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면허를 취득한 태수가 이곳에서 인턴생활 한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라면 행운이다.
물론 낭만 가득한 대학생활을 깨끗이 포기한 채 죽어라 의학을 판 대가이기도 했다.
“건물은 죽이네.”
국내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거대한 규모에 미소부터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