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11
00112 112화
태수가 화제를 돌려 묻자 김혁권도 그에 맞춰 대답했다.
“파키스탄 군이 밖에서 진치고 있습니다. 쉽게 물러날 기미는 안 보이던데요.”
“PKO에서는 연락이 없었고요?”
“동이 트면 바로 출발한다고 했으니까 몇 시간 후면 도착할 겁니다.”
“일단 그들이 와야 좀 더 안정이 되겠네요.”
태수의 말에 김혁권은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PKO가 모습을 드러낸다면 이곳이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로 변할 일은 아예 없었다.
태수가 잠시 기절한 사이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군인들도, 마을 사람들도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그때 김혁권이 아차 싶은 얼굴로 말했다.
“인도군이 조금 있으면 도착할 겁니다.”
“인도군이요?”
“제가 새벽에 전화했습니다.”
“전화번호를 아십니까?”
태수가 의아한 얼굴로 묻자 김혁권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인도 국방부로 전화했는데요.”
“음.”
순간 태수의 얼굴이 심각하게 변하자 김혁권이 눈을 끔뻑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십니까?”
“두 세력이 여기서 부딪치면 마을 사람들에게 피해가 간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습니까?”
“부딪치진 않을 겁니다.”
“어떻게 장담하십니까.”
“다친 군인들 데려가라고 했으니까요. 파키스탄 군도 진치고 있다고 알려줬으니까 알아서 하겠죠.”
김혁권의 다소 방관자적인 말투에 태수는 더욱 표정이 굳어졌다.
“자칫 잘못하면 여기가 전쟁터가 된다니까요.”
“그럼 어떻게 합니까? 기껏 치료해준 인도 군인들을 파키스탄 군에게 넘겨주실 겁니까? 그들이 어떻게 될지 알면서요?”
“…….”
태수가 침묵하자 김혁권이 목소리를 높였다.
“거 봐요. 이럴 때는 차라리 정공법이 낫습니다. 아마 마을 한복판에서 대놓고 총질은 못 할겁니다.”
“장담하십니까?”
“……아마도 못 하지 않을까요?”
김혁권의 목소리가 순간 소심하게 변했다.
태수는 쓴 얼굴로 변했다.
“제가 나가죠.”
“네?”
“누군가는 얼굴을 보여야 할 거 같습니다. 혁권씨는 환자들 계속 돌봐주십시오.”
“같이 가는 게 낫지 않습니까?”
찔끔한 김혁권이 물었지만 태수는 고개를 저었다.
“어제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총질부터 하면 사람새끼도 아니죠. 그보다 PKO 클라크 대령에게 전화해서 이쪽 상황을 알려주시고 전쟁을 억제할만한 걸 보내달라고 하십시오.”
“언제까지요?”
“30분 이내로 눈에 보이게 해달라고 해주세요. 아니면 마을하고 병원이 쑥대밭 난다고 협박도 하시고요.”
태수는 그 말을 끝으로 몸을 움직여 병원을 나섰다.
이런 상황이라 태수가 중재자 역할을 해야 했다.
의사로써 전쟁에 개입하고 싶은 만큼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다만 자신이 고친 환자들이 무사히 회복되었으면 좋겠고, 또 하나는 더 이상 마을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다.
곧장 현관을 나선 태수는 이내 병원 정문에 도착했다.
파키스탄 장교가 한결 부드러운 표정으로 태수에게 인사부터 했다.
“수술이 잘 됐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어젯밤에 무례했던 점은 사과드립니다.”
“서로 입장이 다르니까요.”
“그런데 이른 아침부터 제 얼굴 보러 나오신 거 같진 않은데요.”
“마중해야할 손님이 있어서요.”
태수의 말에 파키스탄 장교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PKO군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파키스탄 장교의 예상이 벗어나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부르릉.
마을 입구에서부터 지프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태수가 그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파키스탄 장교도 뒤돌아 같은 곳을 바라봤다.
멀리서부터 점점 다가오는 지프를 본 순간 파키스탄 장교 표정이 서서히 굳어져갔다.
지프 보닛에 선명하게 새겨진 인도군 마크 때문이었다.
“사격준…….”
“잠시만요.”
태수가 제지하자 파키스탄 장교가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충분한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으면 뒷일은 감당하지 못하실 겁니다.”
“지프를 잘 보세요.”
태수가 덤덤하게 말하자 파키스탄 장교가 다시 시선을 돌려 지프를 바라봤다.
지프 위에 나부끼는 하얀 깃발.
싸울 의사가 없다는 표시였다.
파키스탄 장교 표정이 묘하게 변할 때 태수가 입을 열었다.
“제가 불렀습니다. 환자 데려가야 하니까요.”
“음.”
“저쪽에서도 제 입장을 이해해 준 거 같네요.”
태수는 김혁권이 한 일을 자신이 덮어썼지만 그게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누가 불렀는지 보다 앞으로 어떻게 이야기를 진행해야할지가 더욱 관건이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 사이 인도군 지프가 가까이 접근했다.
철컥.
파키스탄 군들이 반사적으로 총을 들어 지프를 겨냥했다.
그때였다.
“일단 사격 금지. 상황을 지켜본 후에 사격 유무를 결정한다.”
파키스탄 장교의 말에 군인들은 머뭇거리며 총구를 내렸다.
인도군에서 먼저 발포를 한다면 꼼짝없이 당할 수도 있기에 상관의 명령이라도 주춤거려지는 모양이었다.
그런 반면 태수는 파키스탄 장교의 행동에 옅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내 인도군 지프가 가까이 다가와 섰다.
파키스탄 군인들과 대략 100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였다.
잠깐 동안 그렇게 묘한 대치를 한 후였다.
서로 총성이 오가지 않을 거란 걸 확인한 후에야 인도군이 지프에서 내려섰다.
총을 어깨에 걸어 전쟁 의사가 없다는 걸 한 번 더 확인시켜주며 서서히 다가왔다.
한 발 앞서 다가오는 중년으로 보인 군인 표정이 복잡했다.
뒤따라 걸어오는 사병들은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
물론 그건 파키스탄 군인들도 같은 상황이었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 마주할 일이 없었기에 그만큼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말 그대로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인도군 장교는 파키스탄 군을 경계하며 태수 앞에 다가섰다.
그의 입에서 유창한 영어가 흘러나왔다.
“혹시 전화주신 분입니까?”
“맞습니다. 그런데 무장하지 말고 오라고 했을 텐데요.”
“최소한의 안전을 위한 겁니다.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는 믿을 수 있지만, 그 외에는 믿지 못하니까요.”
힐끔거리며 파키스탄 장교를 돌려 말했다.
그러자 파키스탄 장교도 비슷하게 이야기 했다.
“닥터가 아니었으면 절대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거라고 꼭 전해주십시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 강한 스파크가 튀었다.
태수는 그런 두 사람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그만하시죠.”
“…….”
두 나라의 장교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의식적으로 서로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태수는 충분히 만족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말씀드리지만 전 전쟁에는 관심 없고 정치에는 더더욱 관심이 없습니다.”
“…….”
“그저 환자들 데려가란 겁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셨습니까?”
태수가 일부러 대답을 요구했다.
두 나라의 장교들은 멈칫했지만 이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은 듣지 못했지만 그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간 태수가 이어서 말했다.
“그럼 신병인도는 인도군부터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희는 어젯밤부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만.”
파키스탄 장교가 불만을 표했지만 태수는 끄덕도 하지 않았다.
“제 선입선출의 기준은 환자입니다. 인도군 환자가 먼저 왔으니 먼저 보내드리는 게 맞습니다.”
“음.”
파키스탄 장교의 얼굴이 불쾌함으로 물들어갔다.
그때 태수의 시선 저 멀리 자그마한 점 같은 게 보이기 시작했다.
슬쩍 손목시계를 확인해 봤다.
태수가 정문에 도착하고 대략 35분 쯤 흘렀다.
클라크 대령의 빠른 일처리 능력이라면 충분히 요구한 게 도착할 시간이기도 했다.
태수는 그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고민하는 파키스탄 장교에게 말했다.
“그리고 한 가지는 제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뭡니까?”
“마을을 벗어날 때까지 서로 안전을 위협하는 일이 생긴다면 매우 곤란해질 겁니다.”
“환자를 내주지 않겠다는 말씀은 아니겠죠?”
불쾌해하는 파키스탄 장교였지만 태수는 개의치 않고 먼 하늘을 가리켰다.
“제가 아니라 저쪽에서 곤란하게 해드릴 겁니다.”
태수의 말에 두 나라의 장교가 바로 뒤돌아 먼 하늘을 바라봤다.
그때 하늘 저 멀리 점 같은 무언가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새 가까워져 확인을 한 두 나라 장교 표정이 굳어졌다.
타타타타.
헬기 로터음.
하늘에서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건 바로 PKO소속 헬기였다.
수송용 헬기가 아니라 전투용 헬기인 아파치다.
지프로 아파치의 행동반경을 벗어난다는 건 있을 수 없다. 게다가 지금 보유한 무기로 아파치 헬기를 상대한다는 건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투다다다!
어느새 아파치 헬기가 이잠바크 마을 상공에 호버링했다.
뿐만 아니라 양옆에 달려 있는 기관총이 인도군과 파키스탄 군을 향해 정조준 했다.
그제야 두 나라의 장교 표정이 굳어졌다.
태수의 말이 결코 허풍이 아니라는 걸 확실하게 알게 된 탓이다.
눈빛을 마주하며 의사를 교환하던 장교들이 태수를 바라보고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죠.”
“잘 생각하셨습니다.”
태수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잠시 후 태수의 의도대로 인도군인들부터 인계됐다.
옆에서 파키스탄 장교가 아예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자신의 섣부른 행동으로 파키스탄 군에게 어떤 악영향을 끼치는지 알고 있던 탓이다.
태수는 개의치 않고 인도군 장교에게 다가갔다.
인도군 장교는 환한 얼굴로 태수에게 말했다.
“병사들이 건강한 거 같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제 소임을 다 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전쟁 중에 자기 신념을 지키는 건 쉽지 않습니다.”
인도군 장교는 내심 존경심까지 내비췄다.
아무런 대가도 없이 부상당한 병사들을 치료해줬을 뿐만 아니라 인도적으로 인계한 거까지도 모두 감동한 모양이었다.
태수는 그런 인도군 장교에게 자그마한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받으세요.”
“뭡니까?”
“필요한 의약품을 좀 넣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처치해야할지도 동봉했으니까 그대로만 하시면 크게 덧나진 않을 겁니다.”
마지막까지 신경써주는 태수에게 인도군 장교는 정말 감동한 얼굴로 변했다.
“이거 진짜.”
“인사도 바라지 않고, 보답도 바라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거 하나만 부탁드립니다.”
“말씀하십시오. 제가 아니면 상부에 도움을 구하더라도 최대한 들어드리겠습니다.”
인도군 장교가 호의를 보이자 태수도 이야기하기가 편했다.
“여긴 전쟁터가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원하는 건 저쪽에 있는 고지 아닙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카슈미르를 둘러싼 오랜 전쟁이 언제 끝날 진 모릅니다. 하지만 진정한 승리를 원한다면 여기 마을 사람들도 국민으로 생각하고 보호해 주십시오.”
“…….”
인도군 장교 표정이 착 가라앉았다.
뿐만 아니라 옆에서 안 듣는 척 하면서도 다 듣고 있는 파키스탄 군 장교 또한 마찬가지였다.
태수는 두 장교의 반응을 확인한 후 좀 더 따끔하게 말했다.
“그리고 당신들 또한 부상을 입을 수 있고, 치료를 받아야할 상황이 올 겁니다. 그때 이 병원이 없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언제든지 오십시오. 아무것도 묻지 않고 고쳐드리겠습니다. 대신 총은 놓고 오십시오. 그게 제가 두 분에게 드리고 싶은 말입니다.”
따끔한 충고를 하는 태수였지만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았다.
인도군 장교는 그런 태수를 잠시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단 상부에 닥터의 의사를 전하겠습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요. 아닙니다.”
인도군 장교는 말을 아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태수는 솔직히 관심 없었다.
지금 한 말만 지켜진다면 두 나라가 어떤 짓을 하든지는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태수는 단지 의사였다.
그 뿐이었다.
인도군이 물러난 후 태수는 바로 파키스탄 군인을 인계하지 않았다.
호버링 중인 아파치 헬기에서 신호가 오지 않은 탓이다.
태수의 의도를 안다면 아파치 헬기에서 분명 어떤 신호를 보내줄 거라 확신했다.
30분이나 지났을까?
아파치 헬기가 공중을 작게 한 바퀴 선회하고는 다시 호버링했다.
인도군이 멀어진 모양이었다.
그제야 태수는 병원을 향해 크게 손을 들었다.
대기하고 있던 김혁권과 마을 사람들이 환자를 들것에 실고 다가왔다.
“잠시만요.”
먼저 다가가 한 번 더 상태를 확인했다. 다리를 절단한 적이 처음이기에 더더욱 신경이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