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170
01173 1173화
태수의 눈빛 속에서 그런 낌새를 느꼈는지 석정현 이사장이 이어서 말했다.
“최 팀장이 스타 의사 되려고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는 건 나도 알아. 그러니까 내가 알아서 챙겨 주는 거 아닌가.”
“그래도요.”
“이게 최 팀장과 가족들에게만 좋은 일인 거 같나? 세상사 모든 게 돌고 돌아. 카센터만 해도 거기서 필요한 재료를 구입하면 또 그 기업에게 도움이 되는 거고, 거기서 일하는 근로자도 회사 이윤이 생기는 만큼 월급을 챙겨 갈 수 있단 말이지.”
“…….”
옳은 소리에 태수가 침묵하자 석정현 이사장이 말을 이었다.
“그 돈은 또 다른 재화를 구매하게 되고, 그게 계속 반복되며 사회가 굴러가는 거야.”
“그건 참 맞는 말씀입니다만.”
“더 넓게 보면 이것도 병을 예방하는 일이란 걸 아직도 모르겠나?”
“이게 어떻게 병을 예방하는 겁니까?”
태수의 물음에 석정현 이사장은 시원하게 대답했다.
“우리가 쓰는 한 푼이 돌고 돌아 누군가의 월급이 되면, 그 사람은 그 돈으로 밥도 먹고 옷도 사 입을 거 아닌가.”
“그렇죠.”
“그럼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해서 얻는 병을 거기서 이미 예방하고 있는 거잖아.”
“…….”
너무도 방대한 스케일의 이야기에 태수는 할 말이 없었다.
석정현 이사장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최 팀장도 문제야. 월급 그렇게 많이 받는 사람이 써야 될 거 아니냐고. 맨날 병원에만 붙어 있지 말고.”
“나갈 시간이 없는데요.”
“건수를 만들어야지. 술로 스트레스도 풀고 취미생활도 갖고. 내 말에 틀린 게 있나?”
“아니요. 다 맞는 말씀 같습니다.”
“그래. 그러면 됐지. 이제 더 할 말 없지?”
석정현 이사장의 물음에 태수가 고개를 끄덕이려다 멈칫하며 중얼거렸다.
“아, 또 넘어갈 뻔했네.”
“또 뭐가 있는데.”
“이사장님 말씀을 들어 보니 제가 좁게 생각한 거 같습니다. 그런데 카센터로 의사들 차는 꼭 안 보내셔도 됩니다.”
“그건 무슨 소리야? 난 우리 회사 차밖에 안 보냈는데.”
석정현 이사장의 말에 태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 보내셨다고요?”
“내가 의사들한테 왜 그런 걸 강요하나. 우리 회사에 굴러다니는 차만 해도 몇 댄데.”
“그건 그러네요.”
“애먼 데 끼워 넣지 말고.”
“그 부분은 제가 착각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태수가 사과하자 석정현 이사장이 조금 뚱한 얼굴로 바라봤다.
“그래서, 더 할 말 있나?”
“아니요. 제가 괜히 심기 불편하게 해 드린 거 같습니다.”
“절대 최 팀장과 가족들만 생각해서 한 일이 아니니까 앞으로도 왈가왈부하는 일이 없도록 해.”
“명심하겠습니다.”
태수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석정현 이사장의 표정이 점차 부드러워졌다.
“그래. 그렇다면 내 더 할 말이 없지. 그리고 최 팀장에게 한 번은 먼저 얘기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은 건 내 불찰이니까 이해하고.”
“항상 감사할 뿐입니다.”
“됐어. 맨날 감사 인사 듣는 것도 피곤하니까 얼른 가서 일 봐.”
석정현 이사장이 축객령을 내리자 태수도 고개 숙여 인사하고 집무실을 나왔다.
외과 병동으로 돌아가던 태수가 곰곰이 생각하다 자그맣게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가 못 당하실만 하네.”
석정현 이사장이 작정하고 이야기하면 절대로 당해 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버지가 유통 책임자를 맡게 된 이유도 이젠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곱씹어 생각해 봐도 석정현 이사장의 말이 옳았다.
부모님과 누나의 삶이 풍족해진다는 건 태수를 더욱 안정되게 하는 일이었다.
스스로가 안정되면 당연히 그 열정을 환자에게 쏟을 터였다.
경영자로서 석정현 이사장의 배포와 마인드를 아무래도 태수는 절대 쫓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태수가 진료실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저 멀리 박성민과 김혁권이 차례로 흉부외과 병실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그러고 보니 요즘 두 사람이 부쩍 자주 어울리는 것 같았다.
원래 친한 사이였지만, 서로 오랫동안 친근하기 힘든 사이란 걸 감안하면 이례적일 정도였다.
‘잘 지내면 좋은 거지.’
언제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릴진 몰라도 좌우간 당장은 좋은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 병실을 지나던 중이었다.
우연치 않게 병실 밖으로 흘러나온 대화 소리가 태수의 귀에 들어왔다.
“김 간호사, 이번에 차 엔진오일 바꿔야 한다면서요.”
“그렇죠. 때가 됐습니다.”
“내가 아는 데가 한 곳 있는데. 진짜 사장님 양심적이고, 가격도 눈 돌아갈 정도로 착한 데다 서비스까지 좋아. 이거 소문나면 안 되니까 나중에 얘기합시다.”
“그냥 얘기하세요. 뭐 그렇게 힘든 일이라고.”
뭔가 만담 같은 얘기에 태수가 멈춰 서서 잠시 들어 봤다.
그러자 곧 박성민의 목소리가 이어서 들렸다.
“저기 창동 쪽에 있는 카센터인데, 엔진오일하고 브레이크 패드 교체하는데, 대략…….”
“정말이요? 에이, 그건 좀 그렇다. 너무 저렴하잖아요.”
“진짜라니까요. 그뿐인 줄 알아요? 점화 코일하고 라이닝도 봐 달라고 했는데, 그건 어느 정도 더 써도 된다고 하고 에어컨 가스도 그냥 넣어 줬다니까.”
박성민이 목청을 높이자 간호사 한명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 보니까 다른 선생님들도 비슷한 말씀을 하시는 거 같던데요.”
“내가 한번 가 보라고 그랬지요. 내가 뭐, 그 카센터 사장이랑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좋은 거 좋다고 얘기해 주는 게 잘못은 아니잖아. 그거 전화번호가……”
박성민이 당당하게 말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병실 내 환자 모두 들으라고 하는 소리가 분명했다. 김혁권도 같이 장단을 맞추는 걸 보니 더더욱 확실했다.
그렇다면 의사들의 차가 카센터로 가는 건 저 두 사람이 벌인 일인 듯 싶었다.
이렇게 입소문을 내고 다니면 호기심에라도 찾아가 볼 터였다.
태수는 두 사람의 얘기에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황당하고 기가 막혔다.
그리고 정말, 진심으로 고마웠다.
그렇게 식구들에 대한 걱정을 뒤로 미루게 되자 이상하게도 하는 일에 의욕이 솟구쳤다.
석정현 이사장의 말이 옳았다.
어깨의 부담이 줄어드니 자기 일에 더욱 열정이 생겨났다.
그렇게 응급처치와 수술을 병행하던 어느 날이었다.
띠리릭.
울리는 휴대폰 액정을 확인한 태수의 표정이 환하게 변했다.
“정 선생이 어쩐 일이야?”
“자식이. 너는 온다던 놈이 어떻게 연락도 없고, 그렇게 무심하냐?”
투덜거리는 정민수의 목소리에 태수가 거드름을 피웠다.
“이 형님이 워낙 바쁘셔서 아주 죽을 맛이다.”
“어쭈시구리. 이젠 목소리까지 깔고. TV에 얼굴 날리더니, 내 주먹도 니 얼굴로 날아가겠다.”
“그럼 내가 또 피해 줘야지. 그보다 어쩐 일이야?”
태수의 물음에 정민수가 바로 대답했다.
“이번 주말에 올라간다고. 애들 데리고 같이.”
“우리 애들 방학했냐?”
“삼촌이란 녀석이 참 관심도 없고 감동도 없고. 몰라, 인마.”
“하하. 올라와. 아주 기대 가득하고 올라와도 돼.”
태수의 확신 어린 말에 정민수의 말투가 조금 부드러워졌다.
“나 진짜 기대 왕창하고 올라간다.”
“이 형만 믿어라. 아주 한번 죽어 보자.”
“그 말 들으니까 기운이 나네. 인마, 나도 바쁜데 일부러 시간 내서 올라가는 거야.”
“알지. 그럼 주말에 보자고.”
태수는 기분 좋게 대답하며 전화를 끊었다.
친한 친구, 게다가 조카들까지. 이번 주말은 정말 즐거운 시간이 될 것 같았다.
태수는 이 소식을 바로 김아름에게 얘기했다.
“김 선생, 주말에 민수 올라온다던데.”
“네, 저도 어제 연락받았어요.”
“하긴 그 녀석이 어떤 녀석인데. 주말에 뭐 하고 싶은 거 있어?”
“저도 오프예요?”
김아름이 묻자 태수가 바로 대답했다.
“당연한 거 아니야?”
“어머. 호호.”
“벌써 몇 년째 만나는데 아직도 그렇게 좋을까.”
“화이트엔젤팀 들어오고는 처음이잖아요.”
김아름의 볼멘 말에 태수가 머쓱한 얼굴로 변했다.
“그건 그러네. 그런 의미에서 좌우간 주말까지 하고 싶은 거 있으면 생각해 둬. 민수랑 의논해도 좋고.”
“알겠습니다!”
김아름이 맑은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가볍게 어깨춤을 추며 멀어져 갔다.
어느새 시간이 지나고 주말 아침이 되었다.
오전에 출근한 태수는 주말 사이 별문제 없도록 한 번 더 모든 걸 확인했다.
그러고 나자 어느덧 오후가 되었다.
태수의 시선은 계속 시계로 향했다.
진료는 이미 끝났지만 확인하는 시간이 길어져 아직까지 병원에 있었다.
이젠 더 확인할 것도 없었다.
오랜만에 퇴근에 대한 설렘을 느끼니 좋았다.
의국에 자리한 의사들 중 오늘 당직인 박성민이 입이 쭉 튀어나와 태수 옆에 거칠게 앉았다.
털썩.
“그래서 곧 퇴근이시라고?”
“네. 1시간 정도 후에 출발할 겁니다. 민수가 그때쯤 도착한다고 했으니까 현관문이라도 활짝 열어 줘야죠.”
“그래서 니네 둘만 오늘 아주 쓰러지게 마시겠다고?”
“애들도 오는데요. 쓰러지기 전까지는 못 마시고 죽기 전까지만 마실 겁니다.”
태수가 꼬박꼬박 말대답하자 박성민의 눈에서 불꽃이 튀겼다.
“봐라, 봐라. 이렇게 선배를 놀려 먹는 저 못된 주둥이를 보라고. 저 주둥이를 언제 한번 뭉개야 하는데.”
“오늘은 말고요. 술 마셔야 할 중요한 입이거든요.”
“에라이. 확 응급이나 터져 버려라!”
박성민의 심술 가득한 목소리에 태수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
“응급 터지면 선배님이 먼저 가셔야 하는데요.”
“생각해 보니까 그러네. 귀찮으니까 패스.”
박성민이 손을 휘휘 내저을 때였다.
띠리릭.
그의 휴대폰이 울리자 박성민이 바로 받아 들었다.
“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멋지고 고상하고 섹시한 화이트엔젤팀의 고문 박성민입니다. 네? 일단 내려갈게요.”
박성민의 표정이 바로 심각하게 돌변하자 태수가 물었다.
“진짜 응급입니까?”
“젠장. 이거 진짜 말이 씨가 됐네. 일단 내려간다. 잘 놀고, 정민수 이 새끼는 주말에도 일하는 선배한테 입 씻으면 죽는다고 전해 주고.”
박성민은 할 말 다 하면서도 몸은 이미 의국 밖으로 뛰고 있었다.
그러자 김혁권이 태수에게 다가왔다.
“하여간 저 양반은 입이 문제라니까.”
“그보다 별일 아니어야 할 텐데요.”
“별일이라도 레지던트들도 많이 내려가 있고, 당직 전문의들도 꽤 있으니까 문제없겠죠.”
“그래야죠.”
“그보다 우리는 저녁에 집으로 오라고?”
김혁권이 묻자 태수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녁 식사 같이 하시고, 오랜만에 거하게 술도 한잔하고요.”
“또 맥주나 마시자고 하는 건 아니겠죠?”
“오늘은 진짜 좀 마셔야죠. 오랜만에 만나는 건데.”
“그럽시다. 내일까지는 쉬는 날이니까 한번 푹 쉬어 보자고. 이틀 휴식이라니, 이게 얼마 만이야.”
김혁권이 앓는 소리를 했다.
사실 그동안 제대로 쉬어 본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는 팀이 안정을 찾지 못해 의사들도 힘들었지만 간호사들도 많이 고생했다.
그리고 한 번씩 터지는 응급 상황 때문에 항상 긴장하고 있어야 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번 주말만큼은 그런 모든 굴레에서 벗어나 개운하게 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두 사람의 얘기가 끝나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였다.
끼익.
의국 문이 열리고 은은하게 화장까지 한 사복 차림의 김아름이 들어왔다.
그녀의 등장에 시선이 일제히 집중됐다.
동성에서 처음 봤을 때도 상당히 예쁘다고 생각했었다. 그때보다 5년이란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이젠 성숙한 느낌까지 함께였다.
다른 전문의들도 김아름의 모습에 감탄했다.
“이야, 김 선생이 저렇게 예뻤어?”
“맨날 수술복에 가운 입은 모습만 봤으니 알 수가 있었냐고.”
“머리도 하나로 대충 묶고 다니더니, 오늘은 손 좀 본 모양이네. 확실히 여자는 머리 스타일이 반은 먹고 들어간다니까.”
의사들의 반응이 뜨겁자 김아름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