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22
00123 123화
태수의 손기술이 많이 좋아졌다지만 두 사람을 동시에 수술하는 건 무리다.
게다가 무작정 피를 뽑아낸다고 될 일도 아니다.
환부와 진행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수술실로 향해야 했다.
무작정 수술을 진행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누구도 모르기에 신중한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태수는 침착하려 했다.
아니, 침착해지려고 노력했다.
그때 태수의 시선이 무의식적으로 사비에게로 향했다. 파리하다 못해 검게 죽어간 피부 색깔이 점점 진해져가는 느낌이다.
중독현상이 극에 달했을 때 나타나는 신체증상이기도 했다.
“빌어먹을.”
태수 입에서 절로 욕설이 새어나왔다.
하필이면?
태수 얼굴도 점점 잿빛으로 변해갔다.
반면 나씨르의 상태는 나무줄기로 묶인 다리 외에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두 아이를 번갈아 바라보던 태수는 생각했다.
그동안 환자를 위해 열심히 의료행위를 했다.
남이 아파도 마치 내가 아픈 것과 같은 마음으로 성심성의껏 치료했다.
그 시간을 후회하진 않는다.
하지만 의사라면 감정보다 이성이 앞서야 할 순간이 있다.
환자와 거리를 두는 것도 그 이성적인 자제력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군인들을 치료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여야 했다.
사비.
언제나 해맑게 웃는 얼굴이 귀여운 아이였다.
가끔 손잡고 마을을 산책하기도 했고, 그때마다 전에 가르쳐준 동요를 소리 높여 부르던 밝은 아이다.
그에 비해 나씨르는 낯은 익지만 대화를 나눠보지 않은 사이였다.
태수의 마음이 사비에게 향하는 게 당연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판단했을 때 사비의 상태는 이미 치료를 받을 시간이 지났다.
파르르.
태수의 손끝이 떨렸다.
하지만 눈을 질끈 감았다.
어떤 경우라도 치료의 순서는 살 확률이 높은 사람을 우선해야 했다.
태수는 천천히 나씨르에게로 몸을 돌렸다.
몸이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태수는 억지로 사비를 등진 채 섰다.
마음이 아프다.
아니, 아렸다.
하지만 태수는 억지로 입을 열어 송현미 간호사에게 말했다.
“나씨르부터 치료합니다.”
“선생님. 사비의 상태가 더 안 좋은 거 아닌가요?”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우선입니다.”
대답하는 태수의 얼굴에 한 치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정도, 연민도 모두 지운 얼굴이다.
의사로서 스스로에게 잔인해야 하기에 태수는 더더욱 어떤 표정도 지을 수 없었다.
태수의 마음을 아는지 송현미 간호사는 더 묻지 않고 말했다.
“환자 수술실로 옮기고,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혁권 씨랑 같이 하세요. 5분 내에 들어가죠.”
“네. 혁권 씨!”
송현미 간호사가 병실이 무너져라 크게 소리치자 김혁권이 빠르게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인지 송현미 간호사가 먼저 이야기하자 김혁권은 재빨리 병상부터 옮기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순식간에 사라진 후였다.
탁.
태수는 일부러 문을 닫고 아예 잠가버렸다.
그리고 난 후 태수는 천천히 누워있는 사비에게 다가갔다.
아직 눈을 뜨지 않고 있다.
이대로 눈을 뜨지 못할지도 몰랐다.
“…….”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침착한 손길로 얇은 이불을 다시 정리해 주고, IV를 확인했다.
마지막으로 송현미 간호사가 두고 간 의료카트에서 모든 혈청을 찾아 IV에 추가했다.
할 수 있는 게 지금은 이거뿐이다.
한 번 더 사비를 내려다본 태수는 표정 없이 방을 나갔다.
수술실을 향해 걸어가는 태수 앞에 카르힘이 불쑥 나타났다.
“닥터, 왜 나씨르만. 우리 사비는요?”
“…….”
“닥터!”
카르힘의 목소리에 찢어지는 아픔이 느껴졌다.
허나 태수는 할 말이 없었다.
아니,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지금은 그런 카르힘을 지나쳐 수술실로 향하는 길 뿐이었다.
태수가 수술실에 들어서자 두 사람 모두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바로 수술 가운을 걸친 태수가 장갑을 끼우며 말했다.
“최대한 빨리 끝냅시다.”
“네.”
대답하는 두 사람의 목소리도 딱딱한 건 매한가지였다.
태수는 바로 나무줄기로 묶인 나씨르 앞에 도착했다.
아직 나무줄기를 풀 때는 아니었다. 태수는 방금 상처를 내서 중독여부를 확인한 곳을 다시 벌렸다.
검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썩션.”
태수의 말에 송현미 간호사는 바로 수술 도구를 내밀었다.
지금 태수가 할 수 있는 건 썩은 피를 모두 뽑아내고 새로운 피로 대처하는 일 뿐이다.
태수에게는 독에 대처하는 전문적인 의학 정보가 없었다.
그건 카프레네의 기억도 마찬가지다.
대신 인턴 기간 때 순환기내과에서 근무하며 따로 공부한 지식이 전부다.
그 기억을 토대로 태수는 할 수 있는 조치부터 최선을 다해 진행했다.
태수는 수술을 진행하는 동안 김혁권을 내보냈다.
혹시나 격해진 사비의 보호자들이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만들어낼지도 모른 탓이다.
지금까지 진행된 수술 시간은 대략 10분.
그 사이 나씨르의 다리에 고인 썩은 피는 대부분 걷어낼 수 있었다.
그제야 태수는 나무줄기를 벗겨냈다.
새로 유입된 피가 돌기 시작하며 검붉은 색이 점점 빨갛게 변해갔다.
발끝까지 푸르렀던 피부색이 조금씩 붉은색으로 바뀌어가는 것도 그와 동시였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태수는 그제야 풀은 나무줄기를 손에든 조금은 의아한 얼굴로 바라봤다.
스스로 묶었다고 하기에는 너무 강하게 죄여 있었다.
어떻게 이게 묶여 있었을까.
아니, 그 동안 태수가 마을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응급처치 방법에 대해서 설명해 줬었다.
그 설명에 나무줄기를 이용한 응급처치 요령도 설명했다.
그때 설명한대로 조치가 되어 있었다.
그 응급조치로 인해 나씨르는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사비는 그러지 못했을까.
태수의 얼굴에 깊은 어둠이 자리 잡았다.
나씨르를 다른 병실로 옮기도록 지시한 태수는 사비의 병실로 향했다.
김혁권이 빠르게 복도를 내달리는 모습이 보였다.
김혁권이 먼저 발견했는지 태수에게 소리쳤다.
“깨어났어요!”
“네?”
“사비가 깨어났다고요! 빨리 오세요!”
거칠게 손짓하는 모습.
태수는 마치 이끌리듯이 사비의 병실을 향해 뛰었다.
벌컥!
박차듯 문을 열고 들어가자 사비의 병상 맡에 사비 가족들이 우르르 몰려 있었다.
그런데 항상 웃고 있던 사비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으으으.”
옅은 신음소리가 계속 울려 퍼졌다.
눈에는 흐르고 또 흐르는 눈물로 베개가 젖어가고 있다.
고통을 느낀다는 건?
희망이 있다는 증거기도 했다.
태수는 빠르게 다가갔다.
보호자들이 얼른 비키자 태수는 사비를 내려다봤다.
“사비.”
태수가 부르자 고통에 흐느끼던 사비가 멈칫했다.
그리고 눈물 가득한 눈을 떠 태수를 바라보며 끊어지듯 목소리를 냈다.
“닥…… 터.”
너무도 작은 목소리라 태수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할 정도였다.
태수는 그 사이 옆에 다가온 김혁권에게 통역을 요청했다.
“지금 어디가 어떻게 아프냐고 물어보세요.”
“온몸이 다 아프답니다. 말도 제대로 못해서 저도 간신히 알아들을 정도였어요.”
김혁권에게 말을 전해들은 태수의 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갔다.
온몸이 아프다는 건 전신에 독이 퍼졌다는 걸 의미하는 말이다.
그나마 깨어난 건 과다하게 주사된 혈청이 독 기운을 조금 밀어낸 모양이었다.
태수는 그 생각에 빠르게 고개를 병실 문 쪽으로 향했다.
그와 동시였다.
끼익.
문이 열리더니 들어오던 송현미 간호사와 시선이 마주쳤다.
멈칫한 송현미 간호사가 눈치껏 말했다.
“일단 하라는 대로 하고 오는 길이에요.”
“그보다 Serum 얼마나 있죠?”
“……없어요.”
머뭇거린 송현미 간호사의 대답을 듣는 순간 태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지금 PKO에 헬기로 요청한다고 해도 한 시간. 아니, 더 걸릴 확률이 높다.
헬기 조종사가 일어나 준비하는 시간도 필요한 탓이다.
조급했다.
혈청에 반응을 보인다면 희미한 희망을 가질 수 있기에 더더욱 마음이 바빴다.
억지로 냉정해지려 한 이성까지 무너지려 할 정도였다.
그때였다.
“우욱.”
“사비!”
사비 보호자들의 경악에 가득한 외침에 태수가 빠르게 아래를 내려다 봤다. 사비가 고개를 돌린 채 Hematemesis(토혈)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피는 빨간색이 아니라 검은색에 가까웠다.
“으으윽.”
토혈한 사비는 입안에 남은 피가 끓어오를 정도로 괴로워했다.
그제야 태수는 직감했다.
시간이 없다.
아니, 백약이 무효한 순간이다.
꽈악.
태수의 주먹이 으스러지게 쥐어졌다.
의사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서 있는 자신이다.
헌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런 무력함이 어깨를 짓눌렀다.
해 줄 수 있는 거라면 딱 한 가지 밖에 없었다.
태수는 억지로 입을 열어 송현미 간호사에게 오더를 내렸다.
“Morphine(모르핀).”
“선생님.”
“최대한 많이.”
태수는 그 오더를 마지막으로 입을 다물었다.
송현미 간호사도 어떤 의미인지 알아챘는지 침울한 얼굴로 서둘러 몸을 움직였다.
병실에는 괴로워하는 사비와 보호자들, 그리고 태수와 김혁권이 남았다.
태수는 김혁권에게 부탁했다.
“보호자들에게 잠깐 나가 있어 달라고 하십시오.”
“닥터.”
“지금은 그게 맞는 거 같습니다. 그리고 곧 따라 나가서 상황을 설명하겠다고 하세요.”
태수의 목소리가 전에 없을 정도로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입술 끝이 떨려왔다.
그걸 본 김혁권은 이내 보호자들을 설득했다.
몇 마디 높아진 언성이 오가고 카르힘이 태수의 가운을 거칠게 붙들었다.
카르힘이 목이 찢어져라 외치자 김혁권이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나지막이 통역했다.
“살려달랍니다. 어떤 대가라도 치를 테니까, 평생 갚을 테니까 제발 살려달랍니다.”
“형은 동생에게 언제나 듬직한 모습만 보여줘야 한다고 하십시오. 안 그러면 사비가 너무 불안해한다고도 전해 주시고요.”
태수의 말을 김혁권이 통역했다.
동시에 카르힘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다행히 뜻을 알아들었는지 가운을 꽉 붙든 손을 스르륵 풀었다.
김혁권은 움직이지 않는 사비의 부모님과 카르힘을 억지로 이끌어 병실을 나갔다.
그 사이 태수는 사비의 머리맡으로 향했다.
아까 가져다 놓은 의료카트에서 과산화수소와 거즈를 들고 사비가 토해 놓은 피를 정성스럽게 닦았다.
그때 사비가 태수에게 뭐라고 말했다.
하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다.
갑갑했다.
말이라도 통했으면.
이럴 때는 언어가 통하지 않다는 게 마음을 미어지게 했다.
태수의 갑갑함이 더해질 때였다.
“사비가 너무 아프다고 합니다.”
어느새 들어온 김혁권이 태수에게 통역해 줬다. 그리고 같이 들어온 송현미 간호사가 태수에게 말없이 모르핀을 내밀었다.
태수는 모르핀을 받아들고 IV에 추가하며 사비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아프지 않을 거야.”
태수가 말하지 않아도 김혁권이 알아서 통역해 줬다.
모르핀의 약효가 빠르게 도는지 잔뜩 일그러진 사비의 얼굴이 서서히 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통이 완전히 사라졌는지 방긋 미소를 지으며 뭐라고 말했다.
김혁권이 그 말을 어렵사리 통역했다.
“닥터는 정말 신이 보내준 사람 같답니다. 이젠 하나도 안 아프데요.”
“…….”
그 말을 들은 태수는 어떤 대답도 해줄 수 없었다.
태수는 잠시 생각했다.
이젠 어떻게 해야 할까.
모르핀으로 통증은 억제시켰지만 그 외에는 어떤 방법이 없었다.
검붉은 토혈을 했다는 건 독이 폐와 위까지 모두 점령했다는 뜻과 같았다.
또 모르핀으로 억제시켜야 할 고통은 말초신경까지 독이 퍼졌다는 뜻이다.
머리 아래로는 독이 모두 퍼진 상황이다.
정말 방법이 없었다.
아직 뇌에 독이 침투하진 않았지만 그조차도 시간 문제다.
죽음.
태수의 머릿속에 거부할 수 없는 단어가 떠올랐다.
고개를 저어서라도 털어내고 싶다.
하지만 그런다고 달라질 문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