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262
01265 1265화
출근한 태수는 브레드 김에게 밤사이 있었던 일을 인수인계 받았다.
매일 아침 이루어지는 가장 중요한 일과이기도 했다.
진지하게 태블릿 PC를 보며 여러 얘기를 나눈 후였다.
브레드 김이 꺼먼 안색으로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후우. 이제 뒷일을 부탁한다고.”
“몸은 괜찮으십니까?”
“피곤한 거 말고는 문제없는데. 왜?”
브레드 김이 묻자 태수가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요즘 거의 매일 야간 근무 하시잖습니까.”
“매일은 아니지. 3일에 한 번씩은 쉬잖아.”
“그러지 말고 다음 달은 주간으로 내려오시죠. 근무는 좀 바꾸면 되니까요.”
태수가 권했지만 브레드 김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말했잖아. 조만간 한 번 NGO에 다녀와야 해. 소속이 그쪽이라서 아예 안 갈 순 없으니까.”
“한 달 정도 일정이라고 하셨나요?”
“그렇지. 별로 하는 거 없어. 연수 좀 받고, 수술 몇 건 하고 돌아올 거니까.”
“그럼 더욱 컨디션 관리하셔야죠.”
“가면 논다니까. 내 걱정 말고 낮 시간이나 잘 책임져 달라고. 그리고 나 혼자 야간 근무 하는 것도 아니잖아. 아마 내가 제일 많이 잘 거야. 하하. 간다고.”
브레드 김은 이런 대화가 어색했는지 슬쩍 의국을 나갔다.
뒤를 따르던 이선정 간호사는 이미 파김치가 된 모습이다.
아무리 간간이 쉰다고 해도 여자의 체력으로는 무리한 스케줄이었다.
태수는 그런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걱정을 지우지 못했다.
“무리하는 거 같은데.”
특히 태수와 박성민의 예약 진료가 점점 늘어나면서 브레드 김이 야간에 자주 근무를 서야 했다.
아무리 건강체질이라도 계속된 밤샘에 컨디션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화이트엔젤팀의 특성상 전문의가 퇴근한 후인 야간에 좀 더 활약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전문의가 있긴 했지만 책임자 역할을 수행할 의사는 상대적으로 너무 적었다.
그점에서는 브레드 김이 적임자이긴 했다.
그래도 미안함은 있기에 태수가 작게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선배님이랑 얘기를 해 봐야겠는데.”
혼자 편하자고 만든 팀이 아니기에 태수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때 김혁권이 말했다.
“갑시다. 우리는 오전에 예약된 진료하러 가야지.”
“그럼요. 약속은 지켜야죠.”
태수는 곧 걱정을 털어 내고 김혁권과 함께 진료실로 향했다.
한바탕 소나기처럼 환자들이 지나갔다.
태수가 지친 얼굴로 진료실에 앉아 있자 김혁권이 차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오늘 진료는 끝입니다.”
“안 그래도 체력적 한계가 찾아오고 있었는데, 진짜 다행이네요.”
“진료 보는데 이렇게 진 빼는 닥터도 드물 거야.”
“한 분도 소홀히 할 순 없는 거니까요.”
태수가 애써 미소를 짓자 김혁권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건 동감인데, 기계 검사 폭을 넓혀서 조금은 여유를 만들라고요.”
“증상들이 제 눈에 보이는데 그게 쉽나요.”
“자랑이십니다.”
김혁권이 살짝 비꼬았지만 태수는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자 김혁권의 표정이 바로 돌변했다.
“누구지? 올 사람 없는데.”
“들어오면 알겠죠. 들어오세요!”
태수가 조금 크게 말하자 진료실 문이 열렸다.
들어온 상대를 확인한 순간 태수는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팀장님!”
“하하. 오랜만이야.”
어색하게 웃으며 들어오는 상대는 미국에 수술과 연수차 갔던 하석준 팀장이었다.
태수는 얼른 책상을 돌아 그에게 다가갔다.
하석준 팀장이 가볍게 손을 내밀자 태수가 양손으로 맞잡으며 반겼다.
“아니, 언제 오신 겁니까? 연락도 뜸하시더니요.”
“한국에 도착한 지 한 2시간 됐나?”
“인천에서 바로 여기로 오신 겁니까? 피곤하지 않으세요?”
태수가 놀라 묻자 하석준 팀장이 미소를 지었다.
“공항 밖으로 딱 나오는 순간에 가장 먼저 성호종합병원의 늠름한 모습이 생각나서 말이야. 그나저나 내가 진료 방해하는 거 아닌가?”
“방금 오전 진료 끝났습니다. 절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차 한잔 마시면서 피로 좀 풀고 가야겠는데, 어떤가?”
“저야 영광이죠. 잠시만요. 혁권…… 어디 가셨지?”
태수는 사라진 김혁권을 찾아 진료실을 두리번거렸다.
그때 진료실 밖으로 나가는 김혁권의 뒷모습이 얼핏 보였다.
하석준 팀장도 봤는지 자그맣게 감탄했다.
“혁권 씨는 여전하네.”
“인사 한마디는 하시고 가셔도 되는데.”
“서로 감정이 나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또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니니까. 그런 건 칼같이 경계를 긋는 분이잖아.”
“그렇긴 하죠. 좌우간 우선 앉으시죠. 소파 푹신합니다.”
태수가 넉살을 부리며 응접 소파로 안내하자 하석준 팀장이 미소를 지으며 움직였다.
잠시 후.
두 사람은 김혁권이 새로 준비해 준 차를 두고 마주 앉았다.
김혁권은 역시나 예상대로 형식적인 인사만 건네고 진료실을 나갔다.
악의가 있는 게 아니란 걸 알기에 하석준 팀장은 전혀 불쾌해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태수를 다시 만났단 걸 기뻐할 뿐이었다.
차를 마시는 간간이 미국에서의 일을 이야기했다.
경청하던 태수가 짧게 정리해서 되물었다.
“……그러니까 이제 손 떨림 같은 건 전혀 없다는 거죠?”
“바늘에 실 꿰는 게 특기가 됐다니까.”
“그거면 끝난 거죠.”
“물론이지.”
하석준 팀장이 환하게 웃자 태수도 미소 지었다.
“그럼 수술도 해 보셨습니까?”
“참관만. USMLE(미국 의사 면허증)도 없는 의사가 할 수 있는 건 연수하고 참관 외에는 없으니까.”
“준비하신다더니요.”
“떨어졌지. 그게 쉽나. 그런 걸 보면 최 팀장이나 정 선생, 박 선생이 정말 대단한 거야.”
하석준이 격찬하자 태수는 어색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저희는 솔직히 특별 케이스였잖습니까. 정규 코스로 시험을 준비하신 팀장님과 비교하면 안 되죠.”
“그게 더 대단한 거지. USMLE 시험 과정과 필적하는 수술을 성공시켰다는 거니까. 전문의도 마찬가지고.”
“이거 방역이 워낙 잘돼서 쥐구멍도 없고.”
낯이 뜨거운지 태수가 두리번거리며 안절부절못하자 하석준 팀장이 빙긋 미소를 지었다.
“좌우간 틈나는 대로 계속 준비해 보려고. 한때 외과 과장씩이나 지낸 전문의 체면이 있지않나.”
“…….”
“머릿속에 희미해지는 것들도 다시 공부하기 좋고, 또 내가 이건 해낸다는 목적도 생기니까 오히려 활기가 도는 것 같아.”
“그런 의미라면 계속 도전하셔야죠.”
태수가 수긍하자 하석준 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이지. 그뿐인가? 곧 일선에 복귀해 미국에서 배워 온 선진 기술들로 열심히 수술하고, 또 다른 의사들에게 알려 주기도 할 거야.”
“전과는 다르게 팀장님에게서 뭔가 힘이 느껴집니다.”
“일탈을 해 보니까 나에게 정말 소중한 게 무언지 알겠더라고.”
“다행입니다.”
하석준 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전화시켜 새로운 화제를 꺼냈다.
“음, 그보다 병원장님 포스가 장난이 아니던데 말이야.”
“만나셨습니까?”
“당연히 인사부터였지.”
당연하단 그 말에 태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야 물론 맞는 말씀입니다.”
“알려진 게 전혀 없다던데.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계속 신속대응센터에서 응급 환자 진료를 보신다고?”
“네. 덕분에 신속대응센터 의료진들이 요즘 죽상입니다.”
“그래서 그 녀석들은 거기 있는 거라니까.”
뜬금없는 그의 말에 태수가 의아하게 바라봤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기회가 온 거 아니냔 말이야. 병원장급이나 되는 노련한 의사에게 배울 기회. 그렇다면 먼저 달려들어야지.”
“대신 곡소리 날 겁니다.”
“그게 최 팀장과 거기 있는 녀석들의 차이야. 다들 병원장님을 꺼려한다면 나는 좋지. 내가 옆에 붙어서 배움을 독식하면 되니까.”
하석준 팀장이 호탕하게 말하자 태수는 약간의 걱정을 보였다.
“따로 불려 갔다가 오면 다들 사색이 되던데요.”
“공짜로 배우는 입장에서 쓴소리 한 번 안 듣고, 쪼인트 한 번 안 까이면 그게 이상한 거 아닌가?”
“동감입니다.”
“그럴 배짱도 없다면 다들 제자리걸음만 할 거야. 환자를 진정으로 생각하는 것과 자기 발전은 다른 거라고.”
하석준 팀장은 다부진 눈빛으로 말했다.
태수는 그런 그가 대단하다고 생각되었다.
거의 쉰에 가까운 나이였다.
한때 외과장이었다든지, 현재 신속대응센터의 팀장이란 직위는 개의치 않았다.
언제나 자신을 낮추고 상대에게 배울 점을 먼저 생각했다.
고집이란 게 생길 법한 나이였기에 그게 더 쉽지 않을 터였다.
그런 생각을 하는 태수의 머릿속을 읽었는지 하석준 팀장이 말했다.
“넓은 세상을 보고 오니까 내가 얼마나 우물 속에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고 할까?”
“…….”
“그리고 진짜 무서운 건 말이야, 몸이 늙는 게 아니야. 정신이 늙어 가는 거지. 한번 아프고 나니 자아성찰도 하게 되고, 더 열심히 살아야겠단 열정도 생기더라고. 하하.”
하석준 팀장은 그런 자신의 행동과 말에 쑥스러워했다.
“제가 존경한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까?”
“음…… 자주 했지.”
“앞으로 더 자주 하겠습니다.”
“그거야 최 팀장 마음대로.”
하석준 팀장이 여유롭게 웃었다.
늦게 간다고 다를 건 없다.
위기를 극복하고 돌아온 하석준 팀장의 열정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게 분명했다.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다.
하석준 팀장이 복귀하고 일주일 가까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느닷없이 다가온 박성민이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 하 팀장님 요즘 소문 별로 안 좋던데.”
“소문이 안 좋다니요? 엄청 열심히 하시는데. 대형 응급수술도 몇 건이나 해내셨고요.”
“그게 문제가 아니라 병원장님하고 너무 친하게 지내시는 게 문제라고.”
“그게 왜 문제가 됩니까?”
태수가 이해하지 못하겠단 표정으로 바라보자 박성민이 갑갑한 표정으로 말했다.
“생각해 봐. 네 그 비상한 머리로, 수술실에서 응급 환자가 숨넘어가는 그 순간처럼 파르륵 머리를 굴려 보라고.”
“그 상황이 아니라서 안 되는데요.”
“확! 좌우간 우리 팀장은 내가 하는 말을 꼭 이리저리 꼬고 뒤집고 비틀어야 속이 시원하지?”
“그런 경향이 좀 있죠. 그래서 왜 문제가 되는데요?”
태수가 넉살을 부리고 이어서 묻자 박성민이 강하게 째려봤다.
“나에 대한 존경심만 없었어도 이걸 확!”
“선배님은 하느님과 동기 동창이시며…….”
“그거 그만해라. 약발 다 떨어졌으니까.”
“이제 안 통합니까?”
“오래 우려먹었지. 사골이었으면 뼈가 아마 삭아서 부스러졌을 거다. 좌우간 하 팀장님이 병원장님에게 한자리 얻으려고 달라붙는 거란 오해가 있단 말씀.”
박성민이 소문을 이야기하자 태수가 뚱한 얼굴로 물었다.
“선배님 생각은요?”
“나야 당연히 우리 하 팀장님이 또 다른 도약을 위해 오늘도 열심히, 겁나게 파이팅하고 배우고 있다고 생각하지.”
“덕분에 위기의식을 느낀 신속대응센터 의료진들도 더 분발한다면서요.”
태수가 뭐가 문제냔 식으로 묻자 박성민이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쪽과 우리는 그렇게 생각해도 그렇게 안 보는 꼬이고 꼬인 인간들은 어디에나 있는 법이라니까.”
“내버려 두세요. 진실은 언젠가 빛을 보는 법이니까요.”
“그거 나도 동감. 정작 소문의 주인공인 하 팀장님께서도 전혀 신경 쓰지 않으시는 거 같으니까 말이지.”
박성민의 말에 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면 됐죠.”
“그러게 말이야. 말하고 보니 별로 중요한 일도 아니네. 오늘 저녁은 어디서 먹나?”
“그게 더 중요한 문제 같네요.”
“아이들도 불러서 같이 먹자고.”
“그럼 진짜 제대로 고민해 볼까요?”
태수는 격하게 동감하며 고민을 이어 갔다.
같은 시각.
신속대응센터는 오늘도 변함없이 바쁜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중 하석준 팀장은 황석찬 병원장의 옆에 마치 그림자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오죽하면 황석찬 병원장이 살짝 짜증을 낼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