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40
00141 141화
게다가 외과에서는 그 모든 수술 도구를 어느 정도 다룰 줄 안다.
외과란 신체의 겉으로 나타나는 모든 증상을 째고, 꿰매고, 잘라낼 모든 지식이 어우러진 의과였다.
그런 외과에서 정확하게 모르는 건 내과적인 치료뿐이다.
닥터 제임스와 태수가 어깨에 상한 조직들을 떼어내던 중이었다.
마취를 담당하며 전신 관리를 해 주고 있던 닥터 이작손의 목소리가 빠르게 들려왔다.
“제임스 박사님. 심전도가 불안합니다.”
“저체온증 환자잖아. 그 정도는 감내해야지.”
“아니, 박사님. 그게.”
닥터 이작손이 이야기를 끝마치기 전이었다.
삐익! 삑!
심전도 모니터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V-fib(심실세동)!”
닥터 이작손이 빠르게 외쳤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고 있다는 뜻이다.
심실에서 제대로 혈액이 뿜어지지 않는 현상이기도 한데, 지속되면 심장이 멈출 수도 있다. 다급한 상황임에 틀림없지만 닥터 제임스는 차분한 목소리로 태수에게 말했다.
“잠시 수술 중지.”
“제세동기 준비합니까?”
태수가 묻자 닥터 제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리고 닥터 이작손, 우선 에피네프린(Epinephrine, 심근력 강화 및 혈관수축 의 작용하는 약)부터 추가하고, 현재 체온은?”
닥터 제임스의 차분한 목소리 때문일까?
혼잡스러운 상황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평소와 같은 움직임들이 계속 됐다.
닥터 이작손이 닥터 제임스에게 바로 보고 했다.
“에피네프린 주사했습니다. 그리고 체온은 33.8도까지 올라갔습니다.”
“산소포화도는?”
“94퍼센트입니다. 97퍼센트까지 올라갔다가 심실세동으로 급격히 줄어들었습니다.”
“일단 산소투여량부터 올리고, 닥터 최.”
닥터 제임스가 부르자 태수는 제세동기를 양 손에 들고 모습을 보였다.
“150줄로 먼저 차치 했습니다. 그리고 방 온도 최대한 올렸습니다.”
“좋아. 그렇게 침착하게, 하지만 신속하게. 잊지 마.”
닥터 제임스는 태수를 향해 만족한 미소를 보였다.
순간 태수는 조금 놀랐다.
평소에 닥터 제임스는 미소가 많았지만 수술실에서는 누구보다 냉정했다.
그런 그가 미소를 보일 정도로 태수의 행동이 마음에 들었다는 뜻이다.
태수는 놀라움을 얼른 지웠다.
인정을 받은 건 물론 기분 좋다.
날아갈 듯했다.
특히나 NGO에 소속되어 전 세계 써전들에게 존경받고 있는 의사가 그 상대였기에 정말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태수는 그러지 못했다.
아직 수술 중이다.
게다가 심실세동으로 환자의 상태가 불완전했다.
지금은 우선 환자부터 원래대로 돌려놓아야 했다.
제세동기를 건네받은 닥터 제임스가 바로 환자 가슴에 대며 낮게 소리쳤다.
“샷!”
풀썩!
환자가 수술대를 격하게 튕겨져 올라왔다가 내려갔다.
하지만 심전도 모니터를 주시하는 닥터 이작손의 얼굴은 그리 밝지 않았다.
“아직입니다. 아트로핀(심박수를 빠르게 하는 약) 투여합니다.”
“한 번 더 150줄 차지 합니다.”
닥터 이작손에 이어 태수가 빠르게 할 일을 이어가자 닥터 제임스는 외려 조치할 때까지 시간이 남았다.
태수는 단지 제세동기만 충전하는 게 아니라, 환자의 하체를 두툼한 이불로 덮고 수액도 더욱 데웠다.
그 와중에 세균 침투를 염려해 수술용 장갑을 바꿔 끼우는 모습도 보였다.
그런 태수를 바라보는 닥터 제임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닥터 이작손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아트로핀 투여했습니다.”
“차지 됐습니다.”
태수가 이어서 다가와 제세동기를 내밀자 닥터 제임스는 바로 움직였다.
“샷!”
풀썩!
“아직!”
“200줄로 다시.”
“충전 완료!”
“샷!”
그렇게 두 번 더 시도했을까?
삑, 삑.
규칙적인 기계음과 함께 닥터 이작손의 안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우. 돌아왔습니다.”
“수고했어. 아, 그리고 비타민 B1과 포도당을 좀 추가해.”
“알겠습니다.
닥터 이작손이 한결 긴장이 풀린 목소리로 대답하고 움직였다.
그 사이 닥터 제임스와 태수는 다시 어깨 환부에 모여들었다.
태수가 후크로 다시 환부를 벌리는 사이였다.
닥터 제임스가 태수에게 물었다.
“왜 비타민 B1 하고 포도당을 추가하라고 했는지 아나?”
“알코올성 저체온증 때문입니다.”
“오호. 좀 더 자세하게.”
닥터 제임스가 관심을 보이자 태수는 추측을 이야기했다.
“이 환자는 아마도 에베레스트 어딘가에서 구조를 받았을 겁니다. 그전에 발을 헛디뎠던지 눈사태에 쓸렸을 수도 있고요.”
“그래서?”
“일어나 보니 추웠을 겁니다. 가방에는 독한 위스키 같은 게 있었을 거고요. 체온을 올리기 위해서 마셨을 거라고 예상됩니다.”
태수의 말이 끝나자 닥터 제임스 표정에 놀라움이 스쳤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도착했을 때 어깨가 골절된 점, 또 속옷까지 흠뻑 젖어 있었고, 아주 옅은 술 냄새가 났습니다.”
“내가 수술복을 입는 시간에 그거까지 관찰했나?”
“환자를 가장 냉정하게 보라는 말씀이 계속 머릿속에서 지워지지가 않아서요.”
빙긋 미소 짓는 태수의 모습에 닥터 제임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네. 우선 수술부터 이어가지.”
“또 문제없을까요?”
“자네가 보기에는 어때?”
“체온이 올라가고 있으니까 무사할 거라 믿고 싶습니다.”
태수는 확신하지 않았다.
수술 중에는 그 어떤 사고가 일어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대답에 닥터 제임스는 또 한 번 미소를 지었다.
바로 사라진 미소였지만 눈빛은 좀 더 묵직하게 내려앉기 시작했다.
태수도 얼핏 봤지만 그 의미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었다.
길고 긴 수술이 끝나고 나니 늦은 밤이었다.
다행히 환자는 그 후로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어깨에 핀을 박고 봉합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뿐, 전체적인 수술 진행은 매끄럽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태수는 집중치료실로 옮긴 환자 상태를 한 번 더 확인하고는 휴게실로 돌아왔다.
휴게실에 비치된 캠핑의자에서 가볍게 한숨 돌리며 태수는 계속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때 닥터 제임스가 안으로 들어오며 태수에게 물었다.
“손은 왜?”
“환자가 처음 들어왔을 때 말입니다. 너무 차가웠습니다.”
“저체온증 치고도 위중하긴 했지.”
닥터 제임스도 그 점은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태수는 수술 내내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그런데 히말라야 산맥에서 조난을 당했는데 어떻게 구조가 된 겁니까?”
“사고 지점은 베이스캠프에서 2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라고 하더군. 거리를 두고 같이 이동하던 일행이 먼저 찾아냈고,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파견된 의료진이 1차로 처치하고 헬기를 부른 거지. 하지만 환자와 같이 움직였다는 다른 사람은 찾지 못했다더군.”
닥터 제임스의 기다란 이야기가 머릿속에 훤히 그려질 정도였다.
앞뒤 사정이 이해가 된 태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쪽도 난리라던데, 지진이라는 게 참.”
닥터 제임스는 말꼬리를 흐리며 위스키를 꺼내 입으로 가져 갔다.
마음이 좋지 않을 때마다 한 모금씩 마시는 술이다.
어떤 환자가 올지 모르는 일이었기에 절대 한 모금 이상은 마시지 않는다. 또 술을 마시면 집도도 하지 않았다.
집도를 하지 않는 대신 닥터 토프락의 수술에 어시스던트로 참여한다.
태수는 그 점에 있어서 조금은 자신에게 맡겨 줬으면 했지만, 아직 미숙하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닥터 제임스는 자신이 어시스던트를 하더라도 수술만큼은 안정된 의사에게 부탁했다.
그게 닥터 제임스의 철칙이기도 했다.
시간이 지난 새벽녘.
커다란 텐트 속에 마련 된 자신의 방에 태수가 누워 있었다.
방 안은 정말 깔끔할 정도로 아무것도 없었다.
침대 하나, 스텐드 옷걸이 하나.
짐은 태수가 카슈미르에서부터 가지고 온 옷 가방.
그게 전부였다.
더 있어 봐야 짐밖에 되지 않기에 태수는 이런 간소함이 좋았다.
한편으로는 실물도 났다.
‘욕조라도 하나 있었으면.’
따뜻한 물에 몸을 푹 담그고 나면 개운할 거 같았다.
그나마 터키 의료 텐트 뒤쪽에 마련된 샤워실이 있어 씻을 걱정은 없지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리며 피식거릴 때였다.
텐트 밖에서 익숙한 닥터 제임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있나?”
“네.”
“좀 실례하지.”
닥터 제임스가 안으로 들어오자 태수가 얼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서양 의사들은 예절이나 예의를 따지지 않지만 뿌리 깊은 한국인이라서 그런지 태수는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텐트 안으로 들어온 닥터 제임스의 손에 반쯤 남은 위스키 병이 들려 있었다.
아까 닥터 제임스가 한 모금만 마셨던 바로 그 위스키였다.
살짝 들어 보인 닥터 제임스가 제안했다.
“안 잤나?”
“잠이 좀 안 와서요.”
“그럼 한잔 어때?”
“환영입니다. 어서 들어오십시오.”
태수가 바로 침대 한쪽을 내어주자 닥터 제임스가 엉덩이만 걸쳤다.
잔은 필요 없다.
한 모금씩 나눠 마시면 그만이었다.
이런 일이 가끔 있었기에 대화를 시작하기보다 술을 먼저 나눠 마셨다.
몇 모금 마시던 중이다.
닥터 제임스가 천천히 운을 띠우기 시작했다.
“오늘 낮에 저체온증 환자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조금 전에 마취에서 깨어나서 잠깐 이야기 나눠봤는데, 끔찍했습니다.”
“어떤 점이?”
“수십 톤의 눈이 순식간에 자신을 삼켰다더군요. 도망도 못 갈 상황이니 꼼짝없이 죽는다고 생각했답니다.”
태수의 대답에 닥터 제임스가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그렇군.”
“저도 그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보니까 아찔하던데요.”
“그랬나?”
닥터 제임스가 묻자 태수는 바로 대답했다.
“네. 어떤 신이라도 찾았을 거 같습니다.”
“믿는 신이라도 있었나?”
“그건 아니지만요. 그보다 왜 그런 질문을 하시는 겁니까?”
“그냥 궁금해서라고 하면 좀 앞뒤가 안 맞겠지?”
닥터 제임스의 반문에 태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런 질문을 하시는 분이 아니시니까요. 그리고 아까도 비슷한 이야기를 나눴으니까요.”
“사실은 히말라야의 각 캠프와 연락을 했어. 조금 전까지.”
“그쪽은 어떻답니까?”
“그들도 투입된 지가 얼마 안 된 모양이야. 정신이 없다더군. 1차 처치 중이고 아침이 밝는 대로 헬기 편으로 환자를 보내온다고 하고 말이야.”
“그럼 이쪽도 다시 바빠지겠습니다.”
태수는 쓴 미소를 지었다.
동상환자는 케이스가 드물어 많이 경험해 보지 못했다.
또 하나 알아갈 병이 늘은 건 좋지만, 역시 누군가 지독한 아픔을 겪는 게 달갑진 않았다.
잠시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이어졌다.
한 모금씩 술을 나눠 마셨지만 그뿐이었다.
태수는 묘한 시선을 애써 감췄다.
닥터 제임스가 그저 이런 이야기나 하려고 이 늦은 시간에 술을 들고 찾아왔을 리가 없던 탓이다.
태수의 힐끔거리는 눈빛을 느꼈는지 닥터 제임스가 슬슬 운을 띠웠다.
“각 캠프야 환자를 이송한 수단이라도 있는데, 주민들은 아예 아무런 조치도 받지 못하는 거 같더군.”
“…….”
“그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음.”
태수가 쉽게 대답을 내지 못했다.
태수의 생각이 길어지자 닥터 제임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관광객들을 먼저 구조하고 치료할 모양이야. 막상 원주민들이 더욱 많은 데 말이야. 웃기지 않나?”
“그건 그렇습니다.”
“나야 다른 건 관심도 없으니까 복잡한 이야기는 그만하고. 직설적으로 묻지. 자네가 갈 생각이 있나?”
닥터 제임스의 물음에 태수는 덤덤한 시선으로 마주했다.
솔직히 예상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궁금한 건 있었다.
“이유를 여쭤 봐도 됩니까?”
“낮에 저체온증 환자 수술할 때, 환자를 폭넓은 시선으로 객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걸 느꼈으니까.”
“그러셨습니까.”
태수는 한 번 더 듣는 칭찬에 입꼬리가 들썩였다.
하지만 웃을 상황은 아니었기에 다시 침착한 얼굴로 변했다.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닥터 제임스가 그 다음 이야기를 꺼냈다.
“마을로 자네를 안내해 줄 가이드도, 또 이동 수단이라고는 튼튼한 다리밖에 없어. 게다가 이쪽 상황도 여의치 않아서 혼자 가야 할 거야.”
“…….”
“누구도 자네가 한 일을 몰라줄지도 모르고, 아마 관심을 보이지 않을지도 몰라. 가서 무슨 일이 생길지도 장담할 수도 없는 상태고 말이야.”
“그렇군요.”
태수가 차분하게 대답하자 닥터 제임스가 말했다.
“솔직한 이야기로는 내가 가고 싶어. 젊은 자네를 그런 위험지역으로 내모는 게 아직도 내키지 않아. 하지만 몸이 영 말을 들어야 말이지.”
“…….”
“나이가 나이니만큼 산을 오르는 게 쉽지가 않아.”
“그럼요. 슬슬 손주들 재롱 보며 쉬실 나이신데요.”
태수가 슬쩍 농담을 건네자 닥터 제임스도 피식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