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435
01438 1438화
그 짧은 시간 태수는 환자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빠르게 확인했다.
여기저기 찜질팩 끝부분이 보였다.
그 순간 아차 했다.
“젠장. 혁권 씨, 찜질팩부터 빼요!”
“이걸 지금 왜 빼?”
“설명할 시간 없습니다. 조 선생님도 도와주세요.”
“알겠…… 습니다.”
태수의 다급한 목소리에 김혁권과 조강묵이 의아한 얼굴로 손을 놀렸다.
모두에게 할 일을 정해 준 태수는 다시 CPR을 시작했다. AED가 충전될 때까지는 숫자와 상관없이 멈출 수가 없었다.
그사이 송민규가 다가왔다.
격정을 삼켰는지 표정이 잔뜩 굳어져 있었다.
“호흡에 온기를 더했고, 포도당도 가열 중입니다.”
“……훅훅…….”
태수가 CPR을 이어 가며 송민규를 싸늘하게 노려봤다.
송민규는 자신의 잘못을 알고 있었다.
그가 태수의 눈빛을 마주하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정말, 이젠 흥분하지 않겠습니다.”
“…….”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겁니다.”
송민규의 사과가 이어지던 중이었다.
삐빅!
AED에서 충전이 완료됐단 소리가 울렸다.
그 순간 태수가 그쪽을 눈짓하며 낮게 말했다.
“빨리 가서 눌러.”
“선배님, CPR을 제가 하겠습니다.”
“이 자식이 그래도.”
“…….”
송민규가 찔끔한 얼굴로 얼른 AED로 향했다.
버튼에 손을 올린 송민규가 태수에게 빠르게 말했다.
“샷!”
태수가 타이밍 좋게 손을 떼자 송민규는 버튼을 눌렀다.
털썩.
AED가 주는 충격에 환자 몸이 크게 들썩였다.
하지만 아직 반응은 없었다.
태수는 어느새 다시 CPR을 시작하며 말했다.
“훅훅. 송 선생.”
“네, 선배님.”
“AED 충전될 시간에 손발이라도 주물러.”
“……알겠습니다.”
송민규가 부목을 대지 않은 멀쩡한 팔을 바로 정성껏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때 태수가 CPR을 이어 가며 한마디 덧붙였다.
“이래서 아는 사람은…… 열둘, 열셋…… 수술하지 말라는 거다.”
“네.”
“절대 끼어들 생각 말고 시키는 거나 똑바로 해.”
“…….”
태수가 강하게 말했지만 송민규는 어떤 의견도 내지 못했다.
스스로 강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들이 엄청난 오산이었단 걸 송민규는 이제야 진심으로 깨달은 표정이었다.
태수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질책은 나중에 해도 절대 늦지 않는다.
태수가 CPR에 집중하는 사이 김혁권이 다가와 말했다.
“찜질팩 모두 걷었어요.”
“하나는 복부에 올려 주세요.”
“빼라더니 또 올리래.”
김혁권은 투덜거렸지만 어느새 찜질팩을 복부에 올렸다.
태수는 지금 그 이유를 설명할 순 없었다.
그보다 CPR과 AED에만 의존하기엔 흉부의 체온이 너무 내려갔다.
추워서 멈춘 심장이기에 어떻게든 온도를 올려야 했다.
그렇다고 이 상황을 두고 장시간 상의를 하거나 고민할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50퍼센트의 확률.
아니, 이젠 현저히 떨어져 몇 퍼센트나 될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손끝에서 한 사람의 운명이 결정되는 순간이다.
태수의 표정은 점점 굳어져 갔다.
언제나 이런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태수는 스승들을 떠올렸다.
보고 싶었다.
태수도 사람이다.
막중한 책임이 어깨를 짓누를 땐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었다.
옆에 김혁권과 송민규가 있었지만 이런 순간엔 의지할 상대로는 부족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태수는 스승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속으로 물었다.
각기 다른 스타일과 처치 방법을 만들어 낸 위대한 스승들이다.
그들이라면 여러 가지 해결책을 알려 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똑같이 말할 게 분명했다.
-최선을 다해라.
그 말엔 동감하지만 이 상황에서는 오히려 뜬구름 잡는 느낌이었다.
그때였다.
삐빅!
AED에서 울리는 신호에 태수가 얼른 정신을 차리고 손을 뗐다.
송민규가 기다렸단 듯이 낮게 소리쳤다.
“샷!”
털썩.
또 한 번 환자의 몸이 들썩거렸지만 역시 ECG에 반응은 없었다.
태수는 지체 없이 다시 CPR을 하기 위해 환자의 흉부에 손을 댔다.
여전히 차가웠다.
아주 약간이나마 온기가 느껴지는 건 여태껏 자신이 손을 계속 대고 있어서였다.
그 순간 태수는 멈칫했다.
자신의 손은 따뜻하다 못해 뜨거울 정도였다. 수술실이 더워 몸에 계속 열이 축적되어서 그럴 수 있었다.
차라리 심장을…….
태수는 생각을 끝까지 이어 가지 않고 김혁권에게 말했다.
“개흉 준비해 주세요!”
“갑자기 개흉이라니…….”
김혁권은 얼떨떨한 얼굴과 다르게 손을 빠르게 움직였다.
태수가 흉부외과와 외과를 동시에 다룰 줄 알기에 수술 도구도 그에 걸맞게 챙겨 왔다. 그래서 그런지 준비하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다.
평정심을 되찾은 송민규는 할 일이 뭔지 직감했는지 장갑을 바꿔 끼고 태수의 반대편에 섰다.
태수가 째려보자 송민규가 먼저 굳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진짜 침착하게 할 수 있습니다.”
“믿는다.”
태수가 대답한 사이 김혁권이 메스를 내밀었다.
“여기 메스! 닥터 송은 디버. 발포어가 없으니까 이걸로 알아서 당겨요. 반대쪽은 내가 당길게.”
말을 하는 김혁권의 손에도 또 다른 디버가 쥐어져 있었다.
두 사람이 수술 도구를 주고받는 사이, 태수는 빠르게 흉부에 메스를 댔다.
이번에는 거침이 없었다.
CPR을 하지 못하는 지금은 스피드가 가장 중요했다.
스윽.
가슴 가운데가 갈라졌지만 역시 출혈은 많이 나오지 않았다.
“걸어!”
턱!
송민규와 김혁권이 디버를 동시에 걸고 힘껏 당겼다.
“끄응!”
“흡!”
흉부의 살과 근육이 좌우로 밀리며 벌어지자 태수는 그 속을 확인했다.
심장은 갈비뼈에 보호를 받고 있다.
복합 골절로 인해 갈비뼈들이 금이 가거나 부러진 모습이 보였다.
그조차도 출혈이 있어야 하지만 저체온증이 심해 멈춰 있는 상태였다.
태수는 갈비뼈를 옆으로 밀고 들춰 공간을 만들었다. 그 속으로 멈춘 심장이 보이자 바로 손을 넣어 잡았다.
이건 차갑다고 표현해야 할 정도였다.
그렇다고 싸늘할 정도로 차가운 건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태수의 손이 뜨거워서 더욱 차갑게 느껴지고 있었다.
태수는 자신의 온기를 전달하듯 움켜쥔 손으로 심장을 빠르고 반복적으로 쥐었다.
“하나, 둘…….”
잠깐 CPR이 멈췄기에 태수는 조금 강하고 거칠게 심장을 자극했다. 그러나 바로 반응이 오진 않았다.
추가로 열을 더해 줄 게 필요한 상황이었다. 김혁권과 송민규는 디버를 당기느라 움직일 수가 없었다.
태수는 지체 없이 조강묵을 찾았다.
“조 선생님, 혹시 웜 셀라인(따뜻한 식염수) 있습니까?”
“그게…… 아니요.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늦습니다. 그럼……. 그렇지! 송 선생이 데워 놓은 포도당이라도 주세요.”
“잠시만요!”
조강묵이 포도당을 가져왔다.
때를 놓쳤는지 미지근한 게 아니라 뜨뜻한 정도였다.
거의 40도는 되는 것 같았다.
차라리 이 정도가 좋았다.
태수는 심장을 지속적으로 쥐며 조강묵에게 말했다.
“제 손등 위로 천천히 부으세요.”
“알겠습니다.”
쪼르륵.
조강묵은 태수의 손등을 타고 심장에 닿게 조절해서 따뜻한 포도당을 부었다.
그도 처음에는 상당히 당황했지만 지금은 많이 안정을 찾았다.
실력을 떠나 갯바위까지 거침없이 다가온 용기도 높게 봤다.
이런 상황에 도망치지 않아 고마웠지만, 주문해야 할 일이 많은 건 미안했다.
하지만 지금 손을 쓸 수 있는 건 그밖에 없었다.
태수는 속내를 감추고 다음 오더를 내렸다.
“AED도 부탁합니다.”
“얼마든지 말씀하세요. 그리고 말 좀 놓으세요. 언제까지 그러실 겁니까.”
조강묵은 태수의 존댓말이 불편하단 걸 이제야 얘기했다.
태수도 지금은 존대하며 격식 차리는 게 머리 아팠기에 말을 놓기로 생각을 굳혔다.
그때였다.
삐빅!
AED 소리에 태수가 조강묵에게 거침없이 오더를 내렸다.
“알았으니까 가서 버튼이나 눌러.”
“네! 다들 비키세요. 샷!”
조강묵의 목소리에 모두가 얼른 손을 떼고 수술대에서 비켜섰다.
털썩!
전기 충격에 환자의 몸이 크게 꿈틀거렸지만 아직 반응은 없었다.
“다시!”
태수가 소리치자 김혁권과 송민규는 다시 리트렉터를 흉부에 걸고 당겨 심장을 드러나게 했다.
태수도 바로 심장에 손을 넣어 직접적인 심장 압박을 이어 갔다.
한 번, 두 번…… 다섯 번.
아니, 그 이상.
같은 행동들이 수도 없이 반복됐다.
심정지가 일어난 그 시점부터 한 번도 쉬지 않았다.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그건 만고의 진리였다.
태수를 비롯한 모든 의료진들이 온 힘을 다해 움직이니 심장은 그에 반응하듯이 점점 따뜻해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열기가 번져 가는지 그 주변도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동안에도 직접적인 심장 압박과 AED 사용은 계속됐다.
하지만 아직 큰 반응이 없었다.
의료진들의 얼굴은 땀이 맺히다 못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정도로 수술실은 더웠지만 환자만은 추워했다.
여전히 상황이 좋지 않았다.
심정지가 일어나고 벌써 5분 넘게 지났다.
그러나 CPR을 지속적으로 했기에 골든타임은 큰 의미가 없었다.
단, 이젠 멈출 수가 없었다.
애초에 멈출 생각도 없었지만, 지금 멈춘다면 심장을 돌이킬 수 있는 일말의 희망마저 사라진다.
죽음의 100퍼센트냐, 아니면 삶의 100퍼센트냐.
수술실에 들어온 순간부터 태수와 의료진에게 맡겨진 선택이었다.
누구도 죽음을 택하지 않는다.
모두의 머릿속엔 삶이란 단어만이 존재했다.
겉으로 보기엔 정체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서 무한한 치열함이 이어졌다.
서서히 시간이 흘러갔다.
골든타임이 의미가 없더라도 한계 시간은 분명히 존재했다. 조금씩 시간이 지날수록 환자의 심장이 다시 뛸 확률은 줄어든다.
반복되는 상황 속에 태수의 눈빛이 점점 굳어져 가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큰 문제를 놓치고 있어서였다.
그건 AED로 전기 충격을 주고 있지만 그게 심장에 직접 전달될 순 없단 점이었다.
AED는 강한 전류로 전기 충격을 주지만, 대부분이 심장이 아닌 온몸으로 퍼져 버린다.
지금은 약한 전류라도 심장에 직접 충격을 줄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
하지만 AED에는 제세동기와 같이 직접 심장을 자극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다.
태수의 미간이 점점 좁혀졌다.
지금까지 큰 성과가 없는 CPR과 AED 충격에 의존할 게 아니라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했다.
태수가 CPR을 하며 빠르게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얼굴이 시뻘겋다 못해 검게 달아오른 김혁권이 물었다.
“끄응. 왜요? 뭐 찾아?”
“심장에 직접 제세동할 방법이요.”
“지금 하고……. AED로는 안 된다는 건데. 흡!”
김혁권은 힘이 빠지는지 리트렉터를 고쳐 쥐었다.
앞으로도 많은 응급수술이 남았는데 벌써부터 이러면 안 된다.
그건 송민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생각들로 두 사람은 무표정하게 변했다. 그러나 눈꺼풀이 가늘게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런 그들이 고생하는 건 알지만 태수는 그에 대해선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을 편하게 해 주기 위해서라도 AED를 대체할 걸 찾는 태수의 눈길이 더욱 빨라졌다.
작은 수술실.
열악한 의료기기.
그 외에 늘어진 수술 도구들.
그리고…… 없었다.
정말 특별한 게 없다 못해 단출한 수술실이었다.
태수는 눈을 부릅뜨고 혹시나 싶은 마음으로 또다시 살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역시 대체할 만한 게 보이지 않았다.
“아주 작은 충격만이라도 좋은데.”
지속적인 CPR과 따뜻한 포도당, 그리고 태수 손의 온기까지 더해져 심장 온도는 상당히 올라와 있었다.
이제 직접, 그리고 지속적으로 자극을 줄 수 있는 무언가만 찾으면 된다. 그러면 분명 심장은 다시 뛴다.
확신은 있지만 뭔가 잡히는 게 없어 태수는 더욱 초조해졌다.
심정지가 일어나고 벌써 15분 가까이 지났다.
앞으로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심장은 뛰는 법을 잊을지도 모른다.
그때 태수의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조강묵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물었다.
“아주 작은 충격도 됩니까?”
“뭐가 있어?”
“페이스메이커가 하나 있는데요.”
“페이스메이커?”
태수가 깜짝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