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553
01556 1556화
수술이 끝났단 소식이 알려지자 기다렸단 듯 김아름과 레지던트들이 들어왔다.
그러나 수술실의 처절한 모습에 김아름은 자신도 모르게 손으로 입을 가려야 했다.
“…….”
“일단 모시고 가.”
정민수의 차분한 말에 김아름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고개만 끄덕였다.
김아름이 눈치 빠르게 얼른 표정부터 원래대로 바꿨다. 상황 판단을 빠르게 한 그녀는 레지던트들에게 말했다.
“일단 환자부터 옮겨. 최대한 조심히.”
“걱정마십시오.”
젊고 건강한 남자 레지던트들이 재빨리 움직였다.
그 광경을 지켜본 김아름도 직접 황경자에게 다가가 도왔다.
스트레쳐카로 옮겨진 황경자는 김아름과 레지던트들의 손에 중환자실로 향했다.
드르륵.
스트레쳐카 소리가 멀어진 후였다.
그제야 수술이 끝났단 걸 모두가 실감했다.
“후우.”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숨을 길게 내쉬었다.
태수와 정민수도 수술대를 잡은 채 지친 심신을 힘겹게 달랬다.
정말 오랜만에 모든 걸 쏟아 부은 수술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힐끔 시선이 마주친 두 사람은 아무 생각 없이 웃었다.
“크, 큭큭.”
“웃지 마. 흐흐.”
“지는.”
두 사람이 투덕거리며 웃자 박성민이 그 사이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왜 이 두 분에게만 행복한 기류가 흐르는 것이야? 조금 전까지 불안하고 초조하고, 이 수술의 결과에 대해 암울해하시던 분들이.”
“수술이 끝났으니까요.”
“그러니까 수술이 끝난 후에 불안해하셨잖아. 두 분 다.”
“그냥 저놈 보니까 웃음이 나네요.”
태수의 말에 정민수도 한마디 거들었다.
“지 혼자 강한 척 다 하는 놈을 보니까 웃음이 났습니다.”
“뭐 이런 그지 깽깽이 같은 자식들이 다 있어?”
“모르겠습니다. 마음이 엄청 복잡해서 뭐라고 딱 설명이 안 됩니다.”
정민수는 말 그대로 복잡한 미소를 지었다.
수술이 끝난 지금 어머니가 살아 있다는 것에 기쁨을 느꼈지만, 반대로 순탄하지 않을 회복 과정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복잡함이 가득한 미소를 바라보던 박성민이 뚱한 얼굴로 물었다.
“그래서 결론이 뭐야?”
“좋다고요.”
“도대체 뭐야, 이놈은.”
“앞으로가 걱정되지만, 지금은 좋습니다. 다시 엄마를 볼 거 같으니깐요.”
정민수의 진심을 들으니 박성민은 마땅히 할 말이 없었다.
그때 태수가 모두에게 말했다.
“슬슬 나가시죠. 뒷일은 김 선생이 전담한다고 했으니까 조금이라도 쉬어야겠습니다.”
“그래. 나가긴 해야지.”
“가시죠. 선배, 수고하셨습니다.”
“나는 뭐 별로 한 것도 없는 거 같은데.”
박성민이 태수를 따라 움직이며 중얼거리는 사이였다.
턱.
어느새 다가온 김혁권이 박성민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투덜거렸다.
“그러게 말이야. 그렇게 놀고 있을 거면 왜 들어왔어?”
“이 아저씨가. 이제 좀 살 만하지?”
“죽겠어. 진짜 죽을 거 같아요.”
김혁권의 앓는 소리가 진심인지 박성민의 어깨에 두른 팔이 후들거리고 있었다.
절레절레.
박성민이 고개를 저으며 못 말리겠단 표정을 지을 때였다.
옆에 송현미 간호사가 다가오더니 박성민의 반대쪽 어깨에 김혁권과 똑같이 팔을 올렸다.
“잠깐만 어깨 좀 빌릴게요.”
“엥? 송 간호사님, 이게 지금 뭐 하시는 건가요?”
“잠깐만요. 요기 앞까지만.”
“아니, 이 부부가 왜 쌍으로 엉겨 붙어? 둘이 끌어안아. 왜 나한테 이래?”
박성민은 울상이 되었지만 매정하게 털어 내진 않았다.
그때였다.
턱.
양손이 어깨를 짓누르는 느낌에 박성민이 식겁하며 돌아봤다.
“이건 또……. 이 간호사?”
“저도 무임승차 좀 할게요.”
“이 사람들이 진짜. 내가 무슨 팔걸이야? 축축 늘어져서 왜 다 나한테 이러냐고!”
“그냥 좀 가요.”
“가긴 어딜 가요? 아, 무거워! 적당히 좀 기댑시다.”
툴툴거리며 끙끙대면서도 박성민은 세 사람을 끌고 밖으로 향했다.
그 뒤를 태수와 정민수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따랐다.
곧 수술실에서 나온 태수와 정민수는 개수대에 도착했다.
모두 샤워하러 갔는지 개수대 근처엔 아무도 없었다.
두 사람은 수술 가운과 헤어 캡 등을 벗어 버려 수술복 차림이었다. 땀으로 샤워를 했는지 녹색 수술복이 온통 진녹색으로 변해 있었다.
솨악.
나란히 서서 손을 씻던 중이었다.
태수가 힐끔 정민수를 바라보다 뜬금없이 입을 열었다.
“보호자 왔어.”
“뭐?”
“앞에 봐.”
“뭔 소리…….”
정민수가 어이없단 목소리로 대답하다 고개를 들어 보고는 멈칫했다.
개수대 위에 설치된 거울이 자신을 비추고 있었다.
희미하게 미소를 띠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때 태수가 옆으로 바짝 다가와 거울에 똑같이 얼굴을 비추며 말했다.
“보호자분, 환자 수술은 무사히 끝났습니다.”
“…….”
“회복 과정이 순탄하진 않겠지만 생명엔 별 지장이 없을거로 사료됩니다. 그리고 그 수술을 집도하신 건 여기 계신 정민수 선생님입니다.”
태수는 정말 보호자를 마주한 듯 거울 속 정민수에게 말했다.
그 순간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던 정민수의 눈시울이 서서히 붉어졌다.
태수는 여전히 미소 가득한 얼굴로 이어서 말했다.
“수고했다.”
“고…… 고맙…….”
“자식.”
턱.
태수가 어깨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
그 순간 정민수가 돌아서서 태수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그제야 정신없던 수술의 여파에서 벗어났는지 어깨도 가늘게 떨려 왔다.
“태….수…야.”
“인마, 울 거면 확실하게 울어.”
“태수 이…… 새꺄.”
정민수는 태수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오열했다.
태수는 그런 정민수를 다독여 줬다.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
수술에 집중하기 위해서 얼마나 스스로를 다잡아야 했을까.
정민수는 그렇게 자신을 잊어 가며 수술했다.
태수는 정민수를 가슴으로 이해했다.
“자식. 고생했다.”
툭툭.
태수가 정민수를 다독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정민수는 지친 몸을 이끌고 중환자실로 향했다. 조금이라도 쉬게 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를 만류할 때가 아니었다.
그렇게 정민수와 헤어진 태수가 돌아서서 진료실로 향할 때였다. 서영우와 공우혁이 기다렸단 듯이 좌우로 다가왔다.
태수가 의아하게 바라보자 서영우가 먼저 물었다.
“다들 도대체 뭐야?”
“뭐가 말입니까?”
“지금 그렇게 얘기하면 엄청 어이없는 거 알아?”
서영우의 말에 공우혁이 격하게 동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최 팀장, 이거 그냥 대충 넘어갈 일이 아니라고.”
“…….”
“도대체 뭔데? 김 간호사나 송 간호사야 원래 수술에 적극적인 분들이니까 그럴 수 있어. 그런데 최 팀장하고 정 선생은 뭐냐고.”
“그러니까 뭐가요?”
태수가 의아하게 바라보자 공우혁이 갑갑한 얼굴로 따졌다.
“그게 말이 돼? 그 수술 방식은 뭐야? 또 그 봉합 속도는? 그리고 집도의와 어시스던트가 그렇게 자연스럽게 뒤바뀌는 게 말이 되냐고.”
“…….”
“도대체 카슈미르에서 무슨 일이 어떻게 있었는데 그러냐고.”
“최악에서 최선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아무도 없었습니다. 저희들 말고는요.”
“…….”
“이젠 웃으면서 말할 수 있지만, 그땐 그렇게 해야만 했습니다. 진짜 의사라고는 아무도 없었거든요.”
태수의 말에 서영우와 공우혁의 미간이 좁혀졌다.
“아무도?”
“네, 아무도요.”
“…….”
“수고하셨습니다. 우선 좀 쉬세요.”
태수는 인사를 하고 다시 진료실로 움직였다. 그러나 서영우와 공우혁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들과 멀어진 태수는 곧 자신의 진료실에 도착했다.
문을 열 기운도 없어 겨우 몸으로 밀어 열어젖힐 수 있었다.
그렇게 안으로 들어가자 황석찬이 상석에 앉아 바라보고 있었다. 태수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뭔지 모르게 복잡했다.
태수가 의아함을 보일 때, 황석찬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수고했다. 일단 앉아서 음료수라도 한 잔 마셔.”
“감사합니다. 그런데 안 들어가셨습니까?”
“들어가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니냐?”
“지켜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태수가 공손하게 인사하고 자리에 앉아 음료수 뚜껑을 열었다.
한 모금 크게 마시자 메말랐던 속이 확 풀리는 느낌에 온몸이 짜릿했다.
그때까지 차분하게 바라보던 황석찬이 태수에게 물었다.
“너희들, 그런 시간을 보냈었나?”
“네? 아, 그게…….”
태수가 얼버무리며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지만 황석찬은 보채지 않았다. 오히려 이해했단 표정으로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구나. 그래서 너희들이 그럴 수 있었어.”
“…….”
“좌우간 고생했다. 난 슬슬 일어나마.”
황석찬이 일어나자 태수도 덩달아 얼른 몸을 일으켰다.
툭툭.
황석찬은 가볍게 태수의 어깨를 다독이고는 지나쳐 진료실 문으로 향했다.
그의 모습이 사라지기 직전 나지막한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석정현이가 옳았어. 담을 수도, 담길 수도 없는 놈들이었어.”
뭔가 심오한 뜻이 느껴졌지만 태수는 쫓아가 물을 수가 없었다. 황석찬의 뒷모습이 다가오는 걸 거부하고 있었다.
너무 예상 밖의 모습이라 태수는 그저 지켜만 봤다.
탁.
진료실 문이 닫히자 다시 자리에 앉은 태수는 음료수를 재차 입으로 가져갈 뿐이다.
진료실에서 잠시 쉬고 있던 중이었다.
끼익.
문이 열리며 김혁권이 고개를 내밀었다.
“역시 여기 있었네.”
이내 문이 활짝 열리더니 송현미 간호사와 이선정 간호사가 같이 들어왔다. 샤워를 마쳤는지 깔끔한 모습이었다.
소파에 축 늘어져 있던 태수가 그들을 보며 투덜거렸다.
“이렇게 배신을 당하는 겁니까?”
“그러게 누가 게으름 피우고 있으랍니까?”
김혁권이 먼저 앉으며 말하자 송현미 간호사와 이선정 간호사도 뒤따라 소파에 자리했다.
오랜만에 네 사람이 편안하게 모여 앉았다.
테이블 위의 과자로 손을 뻗으며 송현미 간호사가 물었다.
“우린 이제 어떻게 하죠?”
“하루 정도는 대기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죠. 아직 깨어나지도 않으셨고요.”
“예정상 3시간 안에 깨어나야 합니다. 일단 의식이 돌아오면 좀 더 안심해도 되겠죠.”
태수의 말에 이선정 간호사가 조용히 물었다.
“그런데 깨어나실 때까지가 가장 불안한 거 아닌가요?”
“그럴 겁니다.”
“우리 여기 있어도 돼요?”
“중환자실에는 정 선생하고 김 선생이 있으니까요. 감당하지 못할 문제라면 전화할 거고요.”
태수는 의외로 느긋하게 말했다.
그러자 김혁권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걱정 안 됩니까?”
“다른 사람이었으면 걱정하겠죠. 그런데 환자 곁에 누가 있는지 아는데 걱정할 이유가 없잖습니까.”
“하긴 아들하고 예비 며느리가 있으니, 그것도 둘 다 전문의에다가.”
“지금은 누구도 정민수의 어머니를 데려갈 수 없을 겁니다. 저 위의 누구라도요.”
태수의 확신 어린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모두 편안하게 소파에 널브러졌다.
“에라, 이젠 모르겠다.”
“그러게요. 눈 좀 붙여야겠어요.”
“잡시다, 자요.”
그렇게 한마디씩 건넨 네 사람은 눈을 감았다.
3시간은 정말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갔다.
띠릭띠릭.
휴대폰 알람 소리가 울리자 잠든 네 사람의 귀가 동시에 꿈틀거렸다.
“엄마, 5분만 더.”
“흐음, 그것 좀 꺼 주세요.”
송현미 간호사와 이선정 간호사가 잠결에 칭얼거리는 소리도 들려왔다.
그러던 중 태수가 억지로 눈을 뜨고 알람을 껐다.
“흐음.”
도무지 정신이 차려지지 않았다.
사실 수술 시간에 비해 휴식 시간이 너무 짧았다.
태수는 양손으로 얼굴을 거칠게 비벼 간신히 정신부터 차렸다. 그러고는 부스스 일어나 진료실 밖으로 나갔다.
“같이 갑시다.”
그 소리와 함께 김혁권이 옆으로 다가왔다. 그 또한 아직 정신이 온전히 차려지지 않았는지 비몽사몽이었다.
태수가 그 모습을 보고 조용히 말했다.
“좀 더 주무시죠.”
“깨어난 거 확인하고 집에 가서 자렵니다.”
“그게 좋긴 하죠.”
“깨어나셨을까?”
김혁권의 물음에 태수가 어깨를 들썩거렸다.
“잘 모르겠습니다.”
“가 보면 알겠지. 그런데 중환자실이 왜 이렇게 멀어. 몸이 죽도록 얻어맞은 거 같네.”
“저도요.”
앓는 소리를 내는 모습들이 너무도 당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어가는 발걸음은 단 한순간도 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