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559
01562 1562화
이미 흠뻑 젖어 얼굴에선 빗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태수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들었다.
차라리 바다를 헤엄쳐서…….
생각하던 태수의 눈빛이 번뜩거렸다.
방법이 있다.
그것도 안전하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말이다.
태수는 바로 조종사에게 조언을 구했다.
“바다에 떨어지는 건 괜찮죠?”
“여긴 암초 지역은 아니라서 괜찮을 겁니다.”
“그럼 내려가겠습니다.”
태수의 말에 정민수와 김혁권이 의아하게 바라봤다.
“여기서 저기까지 헤엄쳐서 가자고?”
“아무리 가까워도 최소한 100미터는 될 텐데, 캡틴이 무슨 수영 선수야?”
“방법은 좋은데 너무 무모하다고.”
두 사람의 반박에 태수가 고개를 저었다.
“방법이 있습니다.”
“무슨 방법?”
“바다에서 우리는 로프를 쥐고 있고, 헬기가 저희를 끌어 주면 됩니다.”
그 소리에 정민수와 김혁권이 동시에 머리를 굴렸다.
“그러니까 일단 우리는 내려가고…….”
“줄을 잡고 있으면 헬기가 선착장까지 끌어다 준다?”
둘이 쿵짝 맞춰 말하자 태수가 눈빛을 강하게 빛냈다.
“그겁니다. 헬기는 호버링할 필요도 없고, 난기류에 영향을 받아도 그저 날아가기만 하면 되니까 위험하지 않고요.”
“아…….”
“조종사님, 가능합니까?”
태수가 묻자 조종사의 걱정 가득한 목소리가 바로 들려왔다.
“전 가능합니다. 그런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최소한 밑에 지뢰는 없을 거 아닙니까.”
“지뢰요?”
“그런 게 있습니다. 된다고 하셨으니까 우리는 다시 준비하죠.”
카슈미르.
거기에는 지뢰가 있었다.
탁!
태수는 헬기의 슬라이드 문부터 다시 닫았다.
비바람에서 해방된 세 사람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배낭부터 풀었다.
레펠 장비는 그대로 두고 그 위에 구명조끼를 입었다. 그리고 배낭들은 서로서로 단단히 묶고 커다란 방수팩에 넣었다.
환자가 차량이 아닌 인력으로 이동될 때 비로부터 보호해 주는 장비였다. 산에서 주로 사용하기에 헬기에 비치되어 있었다.
그렇게 서둘러 준비를 마친 후 다시 문 앞에 섰다.
드르륵.
슬라이드 문을 다시 열자 여전히 거센 비바람이 몰아쳐 왔다.
철저하게 준비한 태수와 정민수, 김혁권은 이 거친 날씨를 그저 받아들였다. 지체할 시간이 없기에 태수가 조종사에게 말했다.
“언제 내려가면 됩니까?”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다른 방법 있습니까?”
“……아니요. 언제든 내려가셔도 됩니다. 바다에 도착하신 거 확인하면 바로 섬 쪽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조종사는 그사이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했는지 바로바로 대답했다.
태수는 그에게 정말 감사했다.
사실 이런 악천후에 비행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난기류까지 겹쳐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 텐데도 앓는 소리 한 번 하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도 무모한 일을 한다는데 적극적으로 도와주려 하고 있었다.
구급대원들의 위대함을 이제 와서 말해 무엇할까.
마음속 깊이 존중하고 존경해도 부족했다.
그리고 그들과 자신들에겐 큰 공통점이 있었다.
살려야 한다.
생명을 위해 최전선에서 죽음과 싸우려고 눈빛을 번뜩인 모습만은 똑같았다.
태수가 헬멧을 벗기 전 조종사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감사합니다.”
“저도요.”
“나중에 한번 찾아가겠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그럼 갑니다.”
말을 마친 태수와 정민수, 김혁권이 동시에 헬멧을 벗는 순간이었다.
“안전!”
구급대원의 경례 구호가 헬멧에서 크게 울렸다.
멈칫.
잠시 손이 멈춘 세 사람이었지만 다시 움직여 헬멧을 벗었다.
안전.
단순한 구호가 아니었다.
자신의 안녕을, 동료의 안녕을 기원하는 그들의 기도이자 염원이었다.
끝까지 걱정해 주는 그 한마디가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헬멧을 안전하게 뒤로 넘긴 후 태수가 정민수와 김혁권을 바라봤다.
투다다다!
프로펠러의 굉음에 대화는 불가능했다. 이럴 땐 수신호가 최고였다.
척.
태수가 먼저 방수천으로 동여맨 배낭들부터 줄에 묶어 던졌다.
동시에 발로 자신의 로프 끝을 바다로 내리고 엄지를 높이자 정민수와 김혁권도 똑같이 행동했다.
준비 완료.
이젠 뛰어내리는 일만 남았다.
몸을 돌린 태수는 헬기 끝에 섰다.
휘이잉!
얼마나 바람이 강한지 빗방울이 정면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해수면까지의 거리는 대략 30미터 남짓이었다.
더 이상 내려가면 바람에 헬기가 전복될 위험이 있어 더는 내려가지 못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언뜻 보면 아찔한 높이였지만, 익숙한 높이이기도 했다.
이젠 정말 시간이 없었다.
“훅!”
태수는 숨을 한 번 크게 내뱉었다.
그게 끝이었다.
숨을 모두 내뱉은 순간 태수가 가느다란 줄 하나에 자신을 의지해 헬기에서 뛰어내렸다.
촤아악!
해수면까지 길게 이어진 로프를 타고 빠르게 강하했다.
곧 좌우에 있는 로프도 출렁거렸다.
그걸 인지한 순간 정민수와 김혁권도 똑같이 멋진 자세로 태수와 나란히 강하했다.
그 속도는 보통의 레펠보다 빨랐다.
전쟁터에서 배운 방식이다.
한가하게 내려갈 수 없어서 빨리 내려가는 방법밖에 몰랐다. 그리고 기다릴 환자를 위해서도 빠르게 강하해야 했다.
세 사람은 동시에 해수면에 도착했다.
첨벙!
해수면에 닿기 전에 속도를 급격히 줄였지만, 충격은 아파트 2층에서 뛰어내린 정도로 엄청났다.
“크윽!”
“아악!”
비명 소리가 절로 울려 퍼졌다.
헬기와 멀어져서 그런지 이젠 주변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구명조끼 때문에 물에 둥둥 떠 있을 수 있었다.
태수는 발끝부터 올라오는 아찔한 충격을 뒤로하고 얼른 방수포와 연결된 줄부터 잡았다.
끌어 올리려고 힘을 줬지만 만만치 않았다.
그때였다.
헬기가 이동하기 시작했는지 일자로 내려진 줄들이 기울기 시작했다.
태수는 배낭과 연결된 줄을 두 사람에게 건네며 말했다.
“선착장에 도착할 때까지 당겨요! 그때까지 풀어야 합니다.”
“끄응!”
“진짜 스펙터클하다.”
김혁권의 한마디에 정민수가 줄을 당기며 소리쳤다.
“당기기부터 해요!”
“하고 있다고. 이거 짧게 묶지, 왜 이렇게 길게 묶었어!”
“위에서 가늠하기가 힘들었다고요. 빨리 당겨서 풀지 않으면 헬기에 딸려 갑니다.”
태수의 경고는 장난이 아니었다.
두 사람도 알고 있었기에, 서서히 몸이 섬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자 다급하게 당겨 올리기 시작했다.
“영차!”
“하나, 둘!”
“영차!”
헬기에 끌려가며 세 사람이 구령까지 맞춰 당기던 중이었다. 정민수가 화들짝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태수야, 우리 여기서 어떻게 나가지?”
“환자랑 헬기로 나가야지.”
“이 날씨에?”
정민수의 말에 태수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쏴아악!
비바람이 쉬지 않고 몰아치고 있었다.
아주 작정한 듯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호버링이 안 돼서 이 고생을 하는 중인데, 이런 날씨가 이어지면 나가는 것도 문제였다.
태수는 순간 머릿속이 텅 비어 버렸다.
“……일단 환자부터.”
“그래. 일단 환자부터다.”
“올 때도 이 지랄을 하는데, 갈 때도 지랄하겠네. 어푸푸, 파도도 더럽게 높고!”
김혁권이 울컥해 소리쳤지만 태수와 정민수는 대답 대신 침묵했다.
헬기의 도움으로 세 사람은 겨우 선착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행히 타이밍 좋게 방수포부터 로프를 풀고, 각자 몸을 묶고 있는 로프도 풀었다.
헬기는 4개의 기다란 줄을 늘어뜨린 채 저 멀리 날아갔다.
그사이 태수와 두 사람은 방수포를 풀고서 배낭을 각각 들쳐 멘 후 곧장 등대로 향했다.
등대는 설치 규정이 있는지 바위산을 좀 올라야 했다.
앞선 태수가 바위산을 오르며 뒤에 오는 두 사람을 재촉했다.
“좀 더 빨리요.”
“헉헉. 도착하기 전에 드러눕겠습니다.”
“몸이 완전히 젖어서 움직이니 뭐 같네. 저 녀석은 체력도 좋아.”
“나도 미치겠다고.”
투덜거린 태수였지만 이를 악물고 바위산을 계속 올랐다.
바닷물을 머금은 옷이 무겁고 찝찝했지만 지금은 앓는 소리를 할 때가 아니었다.
물론 뒤따라오는 두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곧 바위산에 오르자 평평한 콘크리트 바닥이 펼쳐졌다.
그리고 등대도 웅장하게 서 있었다.
바닷가에서 흔히 보는 등대보다 컸고, 그 뒤에는 자그맣게 숙소도 있었다. 이곳에서 머무는 등대지기들을 위한 공간인 모양이다.
“헉헉.”
“후우! 다 온 건가?”
뒤에 두 사람이 도착한 소리에 생각에서 빠져나온 태수가 빠르게 말했다.
“혁권 씨는 저랑 등대로, 민수는 숙소로 가.”
“난 왜?”
“어디 계신지 모르잖아. 등대가 확률이 높은 거고.”
“그러네. 알았어. 일단 흩어지자고.”
정민수가 숙소로 향하자 태수와 김혁권은 등대로 빠르게 뛰어갔다.
끼익.
등대 문을 열고 들어간 태수는 소리부터 냈다.
“강재범 씨! 어디 계십니까!”
사실 소리칠 것도 없었다. 불과 5평도 되지 않는 공간에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철 계단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태수가 먼저 철 계단을 오르고, 김혁권이 뒤를 바짝 붙어 따라왔다.
그렇게 한 층을 올라가자 위로 한 층 더 올라갈 수 있도록 계단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러나 더 올라갈 필요는 없었다.
2층의 작은 공간에 책상 하나와 무전기, 작성 중이던 종이, 그리고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쓰러진 사람의 주변엔 피가 번져 있었다.
태수는 번개같이 가방부터 벗어 던지며 강재범에게 다가갔다. 태수와 비슷한 키에 체격도 비슷했지만 좀 더 마른 느낌이었다.
도착과 동시에 태수는 그의 이름부터 불렀다.
“강재범 씨! 강재범 씨! 저희 왔습니다. 들리세요?”
“으으으.”
가느다란 신음 소리만 들렸다.
태수는 급격히 몸을 뒤집지 않았다. 우선 엎드려 있는 그 상태를 유지한 채 살피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손가락으로 목의 경동맥을 짚는 거였다.
두근두근.
맥박이 잡혔지만 가늘게 느껴졌다.
이 정도 세기라면 의식이 흐릿한 게 이상하지 않았다.
‘하나…… 둘…….’
맥박 수를 속으로 세며 태수는 다른 곳을 살폈다.
왼쪽 어깨 부위의 옷이 심하게 찢어졌고, 보라색으로 변한 살이 보였다. 그 어깨에도 출혈이 있었다.
태수가 맥박을 세는 사이 김혁권이 반쯤 열린 배낭을 들고 다가왔다.
턱.
배낭을 내려놓자마자 안에 손을 쑥 집어넣더니 수액과 혈액을 꺼냈다. 혈액형은 출발하기 전에 김혁권이 조사해서 알맞게 챙겨 온 상태였다.
태수는 바로 IV를 건네받으며 추가로 부탁했다.
“강심제, 승압제만 우선.”
“바로 준비할게요.”
조금 전까지 투덜거리던 김혁권은 환자를 마주한 순간 진지하고 날렵하게 바뀌었다.
태수는 그런 김혁권을 신뢰하기에 오른팔에 IV부터 연결했다. 부족해진 혈액을 보충해 정신을 차리게 하는 게 우선이었다.
IV 연결은 순식간에 끝났다.
혈액과 수액이 몸으로 흘러들어 가는 걸 확인하는 사이 김혁권이 주사기들을 내밀었다.
“여기.”
“직접 하세요. 그리고 혈압하고 맥박도 체크해 주시고요.”
“캡틴은?”
“환자를 뒤집어야죠.”
태수가 말을 마친 순간이었다.
텅텅텅!
철 계단이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올라올 사람은 정민수밖에 없었기에 태수는 바로 소리쳤다.
“빨리 와!”
“가고 있잖아. 헉헉!”
거친 숨소리와 함께 정민수가 올라왔다.
환자를 본 순간 살짝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게 전부였다. 곧장 태수 옆으로 다가온 정민수가 물었다.
“헉헉. 이대로?”
“아니. 뒤집어야지.”
“오케이.”
대답과 동시에 정민수가 다리로 내려가고 태수는 머리 쪽으로 올라왔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위치를 잡은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본 순간 태수가 신호를 보냈다.
“하나, 둘, 셋. 천천히.”
“끙.”
태수와 정민수는 동시에 힘을 줘 환자의 몸을 서서히 뒤집었다. 두 사람 모두 이골이 난 일이라 강약을 조절하는 모습이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그렇게 엎드린 환자를 눕힌 순간 복부의 출혈이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