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59
00160 160화
오죽하면 시선조차 한 곳에 고정시키지 못하고 계속 주변을 둘러보며 불안해하는 모습이었다.
허나 태수와 정민수는 덤덤한 시선으로 자세를 낮춘 김혁권을 내려다봤다.
“여기는 안전하답니다.”
“군인들 말이죠? 그럼 그걸 내가 어떻게 믿어? 지휘관들은 뭐 총알이 빗겨 가나?”
“소총 사정거리 밖이랍니다.”
태수의 말에 김혁권이 슬쩍 파키스탄군 진영 쪽으로 시선을 돌려봤다.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래도 김혁권은 일어나지 않았다.
“난 오래 살고 싶습니다. 요즘 돈도 많이 모아놨는데 이렇게 뒤지면 억울해서 안 돼.”
“편하신대로 하시고요.”
태수의 말이 끝난 후였다.
군용 텐트 쪽에서 군인 한 명이 다가오고 있었다.
소총이 아니라 권총만 허리에 착용한 모습이 지휘관급 군인으로 보였다.
다가온 그가 먼저 태수를 아는 척했다.
“닥터 최.”
그제야 태수는 그가 누군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2년 전 이잠바크에서 처음 만났던 바로 그 인도군 장교였다. 수염이 텁수룩해 금방 알아보지 못 했을 뿐 자세히 보니 기억이 났다.
“오랜만입니다.”
“죄송합니다. 이런 전쟁터까지 모시게 되어서요.”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여기만큼은 안 올 거라 예상했는데요.”
“상황이…….”
장교의 목소리가 잦아들자 태수가 물었다.
“상황은 오면서 들었고요. 저 안까지 그냥 맨몸으로 들어가라고 하시는 건 아니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럼 파키스탄군에서도 이번 일을 알고 있다는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만…….”
앞뒤가 맞지 않는 지휘관의 대답에 태수 눈초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러면 절 부르신 이유가 뭡니까?”
“일단 이거부터.”
지휘관이 내미는 망원경을 받아든 태수가 의아하게 바라봤다. 지휘관은 예상했다는 듯이 부상자들이 쓰러진 방향을 가리켰다.
태수가 망원경을 통해 그쪽을 주시했다.
곧 태수의 두 눈에 부상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온몸을 웅크린 채 괴로워하는 모습. 팔다리에 총을 맞았는지 이를 악물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순간 태수는 저절로 움직이려던 다리를 제어하는데 모진 애를 써야 했다.
마음은 당장에라도 가고 싶다.
하지만 정민수에게 말한 것과 같이 이대로 저 속으로 들어간다면 개죽음이 따로 없었다.
아무리 환자가 우선이라도 이건 경우가 달랐다.
태수가 망원경을 내리며 지휘관에게 말했다.
“저쪽에서 총을 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면 지금이라도 출발하겠습니다.”
“음…….”
장교가 깊은 생각에 잠긴 얼굴로 변했다.
인도군이야 이미 이야기가 되었으니 지시만 내리면 총을 쏘지 않을 게 확실하다. 하지만 파키스탄군에게 소리쳐 이야기해 봐야 돌아오는 건 냉소뿐이다.
그 상황을 어떻게 순탄하게 풀어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다.
시간이 조금씩 흘러가자 오히려 태수가 한마디 했다.
“이쪽에서 사격을 중지한다고 하고, 의료진을 투입하겠다고 하면 되잖습니까.”
“서로 무전할 만큼 좋은 사이가 아니라서요.”
“병사들에게 소리라도 지르라고 하세요.”
태수의 말을 들은 지휘관 표정이 대번에 밝아졌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그는 말을 마침과 동시에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반면 태수는 다시 망원경을 들어 부상자들의 상태를 한 번 더 확인했다.
부상을 입고 방치된 지 시간이 좀 지났는지 상황이 좋진 않았다.
하지만 태수도 선뜻 나선다는 게 그리 내키진 않았다.
가장 걱정되는 건 당연히 목숨이다.
물론 괴로워하는 환자를 위해 어떤 난관도 헤쳐나갈 자신이 있다. 하지만 그게 개죽음이 되는 건 곤란했다.
인도군이 총을 쏘지 않는다고 해도 파키스탄군도 같은 생각일지는 장담할 수 없다.
“#$%@#$%!”
인도군의 함성 소리가 전장을 뒤덮었다.
서당개 삼 년이면 논어를 왼다고 태수가 그 짝이다. 자세히 들어 보면 ‘의사가 간다, 혹은 부상자를 치료하자.’ 이런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동시에 외치는 소리였기에 고함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파키스탄군이 알아들었을까?
대답이 곧 들려왔다.
탕! 탕! 탕!
총성으로.
결국 소리쳐 의사를 전하는 건 실패했다.
“거 봐! 내가 뭐라 그랬어!”
총소리와 동시에 바닥에 엎드려 벌벌 떠는 김혁권의 신경질적인 외침이 들려왔다.
태수도 이대로는 의도를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생각한 태수가 그 의견을 장교에게 전했다. 열심히 듣던 장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최전방에 있는 병사들에게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그리고 바로 장교가 멀어져 갔다.
태수의 의견은 곧 최전방에서 구조물에 엄폐 중인 무선통신병에게 무전기로 전달됐다.
무전통신병은 무전 내용을 황당한 얼굴로 소대장에게 보고했다.
“의사가 도착했다고 소리 지르랍니다.”
“어떤 개새끼가?”
“부대장님이요.”
“……진짜야?”
“몇 번이나 확인한 겁니다. 닥터 최가 부상자들을 고쳐준다고 소리치라는데요.”
“지랄하네.”
무선통신병의 말에 소대장의 표정이 뭐 씹어 먹은 듯이 변했다.
그래도 부대장의 지시란다.
거부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소대장은 주변에 흩어져 엄폐 중인 병사들에게 그 내용을 전파했다.
그리고 잠시 후.
“의사가 왔다!”
“닥터 최가 부상자들을 치료하러 왔다!”
최전방에 엄폐 중인 병사들의 고함소리가 적막한 전장을 울렸다.
한편 그 고함소리를 들은 파키스탄군의 최전방 장교의 얼굴이 얼떨떨하게 변했다.
“저 새끼들이 미쳤나.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지랄이야.”
하지만 그 소리를 가만히 들어 보던 그의 얼굴이 살짝 변했다.
닥터 최?
많이 들어본 이름이라 잠시 생각하곤 기억해 냈다.
카슈미르에서 전쟁 중인 파키스탄군에서도 소문이 자자한 의사였다.
자신이 처리할 일이 아니라고 판단한 최전방 장교가 빠르게 무선통신병에게 지시했다.
“본부에 보고해.”
잠시 후.
“전군 사격 중지! 전군 사격 중지!”
파키스탄군 전체에게 사격 중지 명령이 떨어졌다.
그 내용이 또 무선으로 전달되어 태수에게 들려왔다.
장교가 직접 이야기하자 태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참 복잡하네요.”
“어쩔 수 없습니다.”
“좌우간 이제 가도 된다는 거죠?”
“네.”
장교의 확신 어린 말에 태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절차는 복잡했지만 양쪽 진영에 허락을 받았으니 이젠 교전 지역 한가운데로 들어가야 할 상황이다.
그 시간 동안 방치된 환자들의 상태는 안 좋아지고 있었다.
그때 한 병사가 방탄 헬멧과 조끼를 내밀었다.
“입으십시오.”
“됐습니다.”
“위험합니다.”
“이거 입으면 더 위험합니다. 오인사격 얻어맞기 딱이죠.”
태수가 빙긋 웃으며 옆을 바라보니 정민수도 어느새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그도 하얀 가운 차림이다.
한 가지 다른 건 흰색 깃발을 들고 있다는 점이다.
싸울 의사가 없다는 걸 멀리서도 확인하기에 좋은 모습이다.
그런 정민수와 다르게 김혁권은 여전히 몸을 웅크린 상태였다.
태수도 억지로 가지 않겠다는 사람까지 데리고 갈 생각은 없었다. 끌고 가 봐야 시간만 지체될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던 탓이다.
태수는 정민수를 바라보며 물었다.
“갈까?”
“가자.”
정민수의 얼굴에도 어느새 각오가 떠올라 있었다.
태수와 정민수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빠르게 움직여 봐야 파키스탄군에게 오해만 받아 사격 목표가 될 확률이 컸다.
아무리 환자가 급해도 자신들에게도 하나뿐인 목숨이기에 신중을 기했다.
그리고 혹시 모를 일이기에 곳곳에 바위나 벙커 사이를 이동하며 노출을 최대한 피했다.
인도군 최전방 진영을 지나자 개활지가 펼쳐졌다.
병사들과의 거리는 대략 300여 미터.
그건 파키스탄 최전방과도 비슷하게 떨어진 거리였다.
태수는 한 번 더 신중을 기했다.
“민수야 깃발 높게 들어.”
태수가 말하자 정민수도 바로 막대기에 급조해 만든 백기를 높이 쳐들었다.
천천히 좌우로 흔들며 한 번 더 간다고 알린 후에야 태수와 정민수가 몸을 낮춰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개활지에 모습을 드러낸 직후였다.
탕!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그 소리에 인도군과 파키스탄군의 각 지휘관은 식겁했다.
“누구야? 어떤 새끼냐고!”
무전기를 통해 외치는 목소리에 분노가 가득했다.
파키스탄군 진영 가운데 만들어진 진지 중 한 곳에서 옅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가득한 병사의 총구였다.
총소리와 함께 굳어버렸던 같은 진지의 병사들이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야 이, 개새끼야!”
“이 새끼가 쏘지 말라는데 왜 쏴!”
“이런 쓰레기 새끼!”
퍽퍽!
양쪽에 있던 병사들은 총을 쏜 병사를 정말 무지막지하게 구타했다.
잠시 후 중 구타하던 두 병사 중 한 명이 얼른 정신을 차리고 소리쳤다.
“오발! 오발이라고 소리쳐!”
주변 다른 진지에 있던 병사들이 얼른 목소리를 높여 전파했다.
“오발! 오발!”
한편 태수는 그 자리에 꼼짝도 하지 못했다.
총알이 불과 3미터 정도 떨어진 땅에 처박힌 탓이다.
먼지가 솟구치는 것까지 직접 눈으로 봤으니 그 공포심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오발! 오발!
멀리서 들려오는 파키스탄군의 외침.
그리고 아예 파키스탄군들은 총구를 하늘로 올리는 것까지 얼핏 보였다.
실수라고 어필하는 모습이지만 태수의 두근거리는 심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시발놈들이. 오발에 맞아 죽으면 책임질 거야.”
태수가 버럭 소리쳤다.
옆에 있던 정민수도 크게 긴장한 표정이기에 태수가 어깨를 툭 쳤다.
“가자.”
“또 쏘면?”
“안 쏠 거야.”
그 말을 끝으로 태수가 천천히 걸었다. 정민수도 어쩔 수 없이 뒤를 따랐지만 꺼림칙한 얼굴이다.
또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총알의 공포에 전진은 더뎠다.
그러나 더 이상 총성이 들려오지 않자 조금씩 그 속도가 빨라졌다.
이윽고 태수와 정민수는 쓰러진 병사들 근처에 도착했다.
인원은 총 여섯 명.
아주 공평하게 인도군 세 명과 파키스탄군 세 명이다.
반경 10미터 내에 쓰러진 채 신음을 토하고 있었다.
“으으윽!”
그 모습을 본 태수의 분위기가 돌변했다.
지금까지는 전투에 휘말리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스러웠었다. 하지만 환자를 직면한 이 순간 태수는 주변 상황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태수뿐이 아니라 정민수도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태수와 여러 분쟁지역을 돌아다니며 정민수도 응급 환자만 보면 눈이 뒤집어지는 지경에 이른 탓이다.
성격까지 급해진 정민수가 먼저 소리쳐 물었다.
“어디부터?”
“넌 오른쪽, 난 왼쪽!”
“오케이!”
정민수는 대답과 동시에 빠르게 오른쪽에 있는 인도군 병사에게 달려갔다.
반면 태수는 반대편에 있는 파키스탄군 병사에게 다가갔다.
“끄으윽.”
신음을 토하는 병사 앞에 도착한 태수는 부상당한 위치부터 확인했다.
발목 지뢰를 밟았는지 오른쪽 발목 아래쪽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인데다 어깨에는 총상도 입었다.
그동안 흘린 피가 상당한지 안색이 너무도 창백했다.
바로 수술을 진행해야 할 만큼 심각했다.
하지만 여기는 전쟁터다.
아무리 환자 상태가 좋지 않더라도 수술을 할 수는 없는 장소다.
태수가 해 줄 수 있는 건 응급처치를 하고 파키스탄군 의무병에게 인계하는 것뿐이다.
그건 정민수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서로 돌보는 환자가 어떤 상태인지를 이야기할 상황이 아니었다.
태수는 바로 소독약과 지혈제 등을 준비했다.
우선 어깨의 총상부터 확인했다.
견갑골을 관통한 상처다.
총알이 없다면?
태수는 그동안 경험한 수많은 총상경험을 토대로 가장 효율적인 응급처치를 떠올렸다.
우선 마취를 해야 한다.
마취될 시간을 기다릴 만큼 한가한 입장은 아니었기에 더욱 효과가 좋은 방법으로 대처했다.
모르핀이다.
태수는 환부에서 가장 가까운 팔뚝에 모르핀을 주사했다.
팔 근육을 타고 급속히 번진 약기운에 병사의 고통은 조금씩 무뎌져 갔다.
통증에서 많이 벗어난 걸 확인한 태수는 거즈를 총상과 비슷한 크기로 뭉친 후 그대로 구멍에 쑤셔 넣었다.
“크윽!”
겨드랑이 부근이 후벼지는 느낌인지 병사는 자지러졌다.
통증 억제를 해서 이 정도였다.
태수는 표정하나 변하지 않은 채 절단된 발목으로 옮겨갔다.
뼈와 근육, 혈관과 힘줄까지도 상당히 안 좋은 상태다. 태수는 깊게 생각하지 않고 소독약을 들이부었다.
그리고 파우더형 지혈제를 충분히 뿌린 후 두툼한 붕대로 마무리했다.
그저 응급조치일 뿐이다.
태수가 할 일도 여기까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