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610
01613 1613화
정민수에게서 낚아챈 청진기를 바로 귀에 꽂은 태수는 한송이의 옷 위로 청진판을 댔다.
툭, 툭.
심장 소리가 이상했다.
꽉 막힌 느낌이 귀로 듣는 태수의 가슴까지도 갑갑하게 했다.
이 소리?
익숙했다.
응급 중에서도 초응급 상황인 심낭압전이었다.
심근과 심낭 사이의 공간에 혈액이 고여 심장의 움직임을 급격히 저하시키는 증상을 심낭압전이라고 한다.
방치하면 사망률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는 무서운 증세이기도 했다.
파악과 동시에 태수의 머릿속이 파르륵 돌아갔다.
째?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아무리 급해도 이렇게 개방된 곳에서 심장을 노출시킬 순 없었다.
그리고 수술하려고 주춤거리는 사이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확률이 높았다.
심장을 압박하는 피만 뽑아낼 수 있으면 된다.
생각하는 사이 뒤에서 김혁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헉헉! 도착했어요. 발전기 가동하고 있고, ECG도 곧 작동할 겁니다. 그런데 왜 그러고 있어요?”
“심낭압전입니다.”
“지랄!”
김혁권이 악을 쓰며 짜증을 토해 냈다.
그 또한 심낭압전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었다.
그사이에도 태수는 머리를 굴렸다.
“피만 뽑아내면……. 그렇지!”
“왜, 뭐?”
“주사기 바늘!”
“20초만!”
부스럭. 우당탕.
김혁권은 아예 가방을 거꾸로 들고 내용물을 털어 내는지 소리가 요란했다.
태수는 그를 힐끔거릴 틈도 없이 한송이에게 집중했다.
주사기 바늘이 준비되는 짧은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은 걸 파악해야 했다.
태수는 빠르게 한송이의 머리부터 아래쪽으로 훑었다.
단체복 가슴에 붙어 있는 선명한 이름이 시선을 끌었다. 문제는 이 단체복 때문에 정확하게 아이가 어떤 상황인지 몰랐다.
주삿바늘을 꽂으려고 해도 시야가 제한되었다.
태수는 거침없이 양손으로 단체복을 찢듯이 벌렸다.
투두둑!
단추가 뜯어지며 한송이의 속살이 보였다.
그 속을 봄과 동시에 태수의 표정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졌다.
중독의 여파로 상체가 전부 퍼랬다.
퍼렇단 표현으로도 부족했다.
곳곳이 검붉게 변했고, 실핏줄도 보였다.
그걸 살펴보던 태수의 눈빛이 급격히 흔들렸다.
“너무하네.”
사비.
중독되어 카르힘의 품에 안겨 도착한 그때 그 모습과 너무도 흡사했다.
태수의 입술이 자신도 모르게 파르르 떨려 왔다.
그 해맑던 얼굴, 자신에게 보여 줬던 밝은 미소.
가슴 한쪽에 깊이 묻어 둔 그 얼굴이 한송이란 아이의 얼굴에 오버랩 됐다.
꽈악.
태수는 입술을 질끈 물었다.
그때 결심했다.
그때 다짐했다.
두 번은 없다.
두 번 보낼 순 없었다.
태수에겐 이 순간 한송이가 사비와 같았다.
너무 꽉 깨물었는지 비릿한 피 맛이 느껴졌다.
차라리 좋았다.
그 맛에 정신이 또렷해졌다.
해야 할 일은 하나.
살린다.
그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태수가 결심을 굳힌 사이 김혁권도 한송이의 상태를 봤는지 흔들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
“김 간호사님, 주사기 바늘.”
“……맞죠?”
“김 간호사님!”
태수가 낮고 강하게 윽박지르자 주사기 바늘이 쥐어진 김혁권의 손이 가늘게 떨린 채 다가왔다.
탁.
태수는 그걸 낚아채며 한마디 덧붙였다.
“두 번은 없습니다.”
“어…… 없어야죠.”
“절대로.”
태수는 그렇게 말을 마친 후 청진판을 다시 한송이의 가슴에 댔다.
툭툭.
여전히 억눌린 심장의 박동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도 방금 전 청진판을 댔을 때보다 더 약해진 소리였다.
태수는 그 소리에 집중하고 또 집중했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주사기 바늘을 세워 청진판 옆에 위치시켰다.
최대한 빨리 응급처치를 해야 한다.
심장은 눈에 보이지 않았고, 그 속을 비춰 줄 장비는 아무것도 없었다.
눈을 감고 코끼리를 만지는 격이었다.
그 어느 것도 지금 태수에게 도움을 줄 수 없었다.
의지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소리와 손끝 감각뿐이었다.
그래도 좋았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불가능은 없다.
아니, 있다고 해도 최소한 지금만큼은 없어야 한다.
그런 생각과 동시에 태수의 집중력이 무섭게 상승했다.
“송 간호사님, 그쪽…….”
이현지를 응급처치하는 정민수의 소리가 점점 작아져 종래에는 들리지 않았다.
여기가 산인지 바다인지, 낮인지 밤인지도 잊었다.
태수의 눈앞엔 모든 세상이 사라졌다. 그저 퍼렇고 검붉게 물든 한송이의 가슴만이 존재했다.
툭, 툭.
심장 소리에 태수는 청진판을 좌우로 움직였다.
오른쪽?
왼쪽?
그걸로는 부족한지 위아래로 옮기기도 했다.
그리고 미묘하게 크고 작은 소리들을 통해 머릿속에 심장의 위치와 현 상황을 상상했다.
심장 중심에서 약간 오른쪽 아래.
위치는 파악이 되었지만 깊이는 소리만으로 가늠하긴 힘들었다.
“흐으, 으으.”
청진판에 희미한 신음소리가 울려 왔다.
시간이 없다.
태수는 더 지체하지 않고 길고 얇은 주삿바늘을 서서히 청진판 바로 옆에 밀어 넣기 시작했다.
귀로는 계속 심장의 소리를 들었다.
스슥, 슥.
바늘이 근육을 관통하는 미묘한 소리들까지도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럴수록 태수의 집중력은 더더욱 상승했다.
한 번에 성공해야 한다.
촉박한 시간만큼 초조함은 깊어졌다.
반면, 압박이 강해지면 강해진 만큼 태수의 손끝은 차갑고 냉정하게 바늘을 밀어 넣었다.
좀 더, 조금만…….
속으로 몇 번이나 스스로를 다그치던 중이었다.
툭.
뭔가 터지는 소리가 미미하게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무언가 쑥 빠지는 느낌, 그리고 태수의 한쪽 뺨에 미지근하고 끈적끈적한 느낌이 닿았다.
그 느낌에 집중력이 흐트러진 태수는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예종혁 대원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팀장님 볼에 피가!”
“……피?”
스윽.
볼을 훔쳐 피를 확인한 태수의 시선이 곧바로 주삿바늘 끝으로 향했다.
바늘구멍에서 피가 솟아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태수의 귀에 낯익은 소리가 들려왔다.
두근, 두근.
아직 청진판을 대고 있는 한송이의 심장 소리였다.
미미하던 박동이 상당히 강해졌다.
그 소리에 얼떨떨한 태수의 얼굴에 미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됐어.”
“캡틴, 그걸 뚫었어, 그걸 뚫었다고.”
“기쁨은 나중에. ECG는요?”
태수가 정신을 차리고 묻자 김혁권이 빠르게 대답했다.
“아직이야. 거기 뭐 합니까? 빨리 좀 부탁한다니까!”
“금방 됩니다!”
ECG를 가동시키기 위해 발전기와 씨름하는 구급대원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태수는 거기까지 신경 쓸 틈이 없었다. 가장 다급한 상황에서 벗어났을 뿐, 아직 어떤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
태수는 한송이와 연결된 IV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예 대원, 이 아이 혈액형 들으셨죠?”
“네, 선생님에게 확인했습니다.”
“바로 수혈팩부터 하나 달아 주세요.”
“호흡은요?”
엠부백을 쥐고 있는 예종혁 대원의 물음에 태수는 빠르게 대답했다.
“심장의 부담이 줄어서 호흡은 어느 정도 될 겁니다.”
“뗍니다.”
툭.
예종혁 대원은 거침없이 엠부백을 뗐다.
“흐으, 흐흐.”
한송이의 입에서 다행스럽게도 호흡 소리가 들려왔다.
거기까지 확인한 예종혁 대원은 부산하게 일어나 태수의 오더대로 수혈팩을 찾아 나섰다.
그때 태수가 김혁권에게 말했다.
“김 간호사님, 우선 모르핀, 그리고 칼륨, 마그네슘, 혈청, 항생제까지.”
“강심제하고 승압제는?”
“아직. ECG 연결 후에요.”
“오케이.”
부스럭.
김혁권은 돗자리에 늘어진 물품 중에서 빠르게 약을 찾기 시작했다.
그사이 태수는 한송이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주삿바늘 끝에서 아직 피가 솟고 있었다.
그만큼 쌓인 피의 양이 상당하단 증거였다.
태수는 다시 청진기를 귀에 꽂고 심장 소리를 들었다.
두근, 두근.
압박이 줄어든 심장 소리는 처음보다 확실히 크게 들려왔다. 하지만 정상적인 소리에는 턱도 없었다.
그때였다.
“으으으.”
압박에서 벗어나서 그런지 한송이의 신음이 좀 더 크게 들려왔다.
중독된 상황에서 이 정도 호흡이라면 의식이 있을 수도 있었다.
중요한 문제였기에 태수는 얼른 태양을 등지고 한송이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
“송이야, 한송이! 혹시 아저씨 말 들리니?”
“흐으으.”
“아프지? 그래, 너무 아플 거야. 아저씨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아픔일 거야. 그래도 조금만 노력해 줄래? 아주 조금만.”
태수는 최대한 침착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권했다. 그러나 괴로움이 가득한 한송이의 얼굴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지금은 1초가 아쉬운 순간이었다.
태수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인내심을 발휘할 수가 없었다.
“김 간호사님, 모르핀은요?”
“지금 투여했…… 어요!”
“활성탄 준비하고요.”
“바로 할게.”
그 소리와 동시에 태수는 한송이를 다시 불렀다.
“송이야, 날 봐 봐. 어서.”
“아흐윽.”
“그래, 아픈 게 좀 덜해서 소리가 잘 나올 거야. 그러니까 눈 좀 떠 봐. 아저씨 봐 봐.”
태수는 마음이 무척이나 급해도 절대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한송이가 갖는 아픔과 불안함은 태수로선 상상할 수 없었다. 그걸 알기에 아무리 다급해도 소리치지 않았다.
모르핀의 효과가 빠르게 도는지 구겨진 한송이의 얼굴이 조금씩 펴지기 시작했다.
“흐으, 여…… 여기…….”
“그렇지. 아저씨 보여?”
“여…… 여기…….”
같은 말만 반복했다.
태수는 반개한 한송이의 눈앞에 손가락을 댔다.
좌우로 조금씩 움직여 봤지만 한송이의 눈은 따라오지 못했다.
의식은 있되, 인지는 전혀 되지 않는 상황이다.
태수는 의식을 일깨우려는 노력을 멈췄다.
포기한 건 결코 아니다.
현재 상황에선 대화가 무의미했기 때문이다.
그 순간 태수의 옆에 바늘 없는 주사기가 도착했다. 시꺼먼 액체가 가득한 주사기였지만 태수는 바로 받아 들었다.
“김 간호사님, 머리 좀.”
“갑니다.”
김혁권은 얼른 한송이의 머리맡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두 손으로 한송이의 뒷목을 잡고 서서히 위로 들어 올렸다.
그 행동 자체가 너무도 조심스럽고 신중했다.
적당히 고개가 올라오자 태수는 한송이의 턱을 잡고 입을 벌렸다. 그리고 그 속에 바늘 없는 주사기를 밀어 넣었다.
새까만 액체가 한송이의 입을 물들이자 태수가 조심조심 말했다.
“그렇지. 천천히 삼켜. 아주 천천히. 잘하고 있어.”
“쿨럭쿨럭!”
“그래, 조금 쉬었다가. 자, 이제 다시. 조금씩, 조금씩.”
부드러운 목소리와 달리 표정은 신중하고 심각했다.
그렇게 주사기에 든 액체를 반쯤 억지로 삼키게 한 후에야 태수와 김혁권은 손을 뗐다.
그와 동시에 예종혁 대원이 ECG를 가져왔다.
태수가 헬리콥터에서 떼어 낸 ECG였다.
패드를 받아 든 태수가 빠르게 부착하기 시작했다.
그사이 예종혁 대원이 한송이의 볼을 타고 흐른 시꺼먼 액체를 바라보며 물었다.
“죄송한데 이건 무슨…….”
“활성탄입니다.”
“탄? 탄이라고 하면…….”
“…….”
이미 ECG로 시선을 돌린 태수는 당황하는 소리조차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김혁권이 태수를 대신해 대답했다.
“생각하시는 거 맞습니다. 석탄, 갈탄 하는 그 탄입니다. 쉽게 말해서 숯가루를 식염수에 개서 먹인 거라고요.”
“그걸 왜요?”
“숯의 역할 때문입니다. 숯의 정화 작용을 빌리는 거죠. 의약품으로 제조된 거니까 문제는 없고요.”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예종혁 대원이 그제야 이해가 된단 표정으로 변했다.
태수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ECG에 표시되는 각종 수치를 민감한 상태로 바라보고 있었다.
“맥박이 너무 안 좋습니다. 김 간호사님, 강심제부터.”
“준비해 놨어요. 그런데 혈압은 괜찮아요?”
“맥박에 비하면요. 그게 더 좋지 않은 거고요.”
태수의 말에 김혁권은 뒷머리가 쭈뼛 섰다.
“좋지 않단 게 무슨 뜻이에요?”
“독성 가득한 피가 계속 몸을 돌고 있단 말입니다.”
“헉! 아까 출혈이 있었다며.”
“저도 그게 이상합니다. 일단 패혈증부터 확인해 봐야겠습니다. 항생제부터 투여해 주세요.”
“기다려! 기다리라고!”
김혁권이 식겁한 얼굴로 서둘러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