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627
01630 1630화
“존스홉킨스에서 누가 또 와?”
“몰라.”
“아는 사람인가?”
“그것도 모르지.”
태수의 대답에 정민수가 핀잔을 늘어놓았다.
“넌 어떻게 아는 게 없냐?”
“넌 있냐?”
“……들어가 보면 알겠지.”
멋쩍어하는 정민수의 모습에 태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내 두 사람은 커다란 문을 통과해 세미나장으로 들어갔다.
그 안은 상상 외로 크고 웅장했다.
단상이 멀리 보이고, 그 주변은 6명 정도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가득했다.
많은 사람들이 끼리끼리 모여 간단한 다과와 음료를 즐기고 있었다.
상당히 안면들을 익혔는지 다들 미소가 가득했다.
그런 반면, 태수와 정민수는 이런 자리가 처음이라 낯설어했다.
“와우. 거의 연회장 수준인데?”
“세미나가 원래 이런 건가?”
“나야 모르지. 선배가 오셨으면 난리 나셨겠는데?”
“돌아가면 자랑이나 해야겠다. 사진 좀 찍어 놓을까?”
정민수는 말과 달리 휴대폰을 꺼내진 않았다.
웃자고 한 소리였지, 이런 규모나 화려함에 위축될 성격은 아니었다.
그건 태수도 마찬가지였다.
세미나 참가는 처음이라 어색할 뿐이지, 놀라진 않았다.
태수와 정민수는 일단 사람들을 따라 이동했다.
딱히 배가 고프지는 않아 양손 가볍게 내부를 살피며 주변을 둘러봤다.
대부분 백인과 흑인이었고, 황인은 드문드문 보였다.
하지만 그중에 아는 얼굴이 없어 어디로 갈까 고민하던 중이었다.
태수와 정민수가 전혀 낯설어 하지 않고 여기저기 돌아다니자 몇몇 의사들이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쳐다보기도 했다.
그때 키가 크고 듬직한 체격의 백인 의사가 환한 미소로 다가와 대뜸 물었다.
“중국? 일본?”
“한국에서 왔습니다.”
태수가 대답하자 질문한 백인 의사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오, 실례했다면 미안합니다.”
“오해하실 수도 있죠.”
“이해해 주신다니 감사합니다. 한국도 의학이 발전 중이라더니, 이런 세미나 참석률도 높아지는 모양입니다.”
처음부터 말뜻이 신경에 거슬렸다.
그걸 직감한 정민수의 시선은 바로 태수에게 향했다.
외국에서 이런 소리를 그냥 웃으며 넘어갈 성격이 아닌 탓이다.
정민수의 예상밖으로 태수는 너무도 밝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나였다.
“이제 발전 중인 나라라서 그런지 줄기세포 연구라든지, 난치암 수술 성공 같은 엉뚱한 일을 저지르곤 합니다.”
“아, 하하.”
“많은 관심을 보여 주시는 만큼 더 발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좋은 시간 되세요.”
“감사합니다.”
태수는 끝까지 방긋 미소를 지었다.
반면, 상대는 어색한 미소로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다시 둘이 된 순간 정민수가 남들 몰래 태수에게 엄지를 내보였다.
“하여간 뒤끝은.”
“지가 뭔데 한국을 평가해.”
“정답. 그런데 저 자식 표정 안 좋던데.”
“그러든가 말든가.”
태수는 끝까지 태연자약했다.
그런 태수를 향해 정민수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렇게 지구가 좁다고 날뛰던 시절도 있었는데, 결국 너도 국내용이네.”
“그럼 됐지.”
“말은 그래도 좀 성질나지 않아?”
“전혀.”
태수는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걸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아예 관심이 없었다.
차라리 이렇게 조용히 세미나만 참가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태수를 놀린 정민수 또한 그 마음은 똑같았다.
그때 자그마한 체구의 백인 의사가 다가왔다.
접근하는 느낌에 그쪽으로 시선을 돌린 태수와 정민수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태수가 존스홉킨스 첫 방문 당시 안내를 맡았던 닥터 에드워드였다.
그 당시 레지던트였던 그도 이젠 전문의가 된 모양이다.
닥터 에드워드가 두 사람에게 차례로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제가 조금 늦었습니다.”
“지켜보셨던 건 아니고요?”
태수가 찡긋거리며 묻자 닥터 에드워드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두 분을 발견하고 다가오려던 중에 닥터 마이트가 접근해서 좀 지켜봤습니다.”
“닥터 마이트라. 이름은 성격만큼 까칠하지 않네요.”
“저도 이름만 알 뿐이지 친하진 않습니다. 그보다 불쾌하셨다면 제가 가서 말하겠습니다.”
“괜찮습니다. 이미 끝난 일인데요.”
태수가 마음 넓게 대답했지만 닥터 에드워드의 표정은 그렇게 좋지 않았다.
“그래도 스미스 박사님이 직접 초대하신 분인데요. 아마 닥터 마이트도 그 말을 들으면 정중하게 사과할 겁니다.”
“모르니까 실수입니다.”
“그거야…….”
“대신 알고도 그랬다면 상황이 달라졌겠죠.”
태수는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나 닥터 에드워드는 뒷머리가 쭈뼛 서는 느낌을 받았다.
“닥터 최의 그런 말씀은 언제 들어도 살벌합니다.”
“이놈의 성격은 해가 갈수록 더러워지네요. 그보다 첫 세미나 참석인데 저희 모습이 부족하진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부족하다니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이렇게 된 거 제가 소개를 좀 할까요?”
닥터 에드워드는 상당히 저자세를 취했다.
스미스에게 뭔가 언질을 들은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태수와 정민수의 실력을 알기에 존중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닥터 에드워드와 짧게 대화하는 사이 여기저기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그들 대부분이 존스홉킨스에서 온 의사가 동양의 낯선 의사들과 웃으며 대화하는 모습에 호기심을 느끼고 있었다.
태수와 정민수가 침묵하자 닥터 에드워드가 좀 더 강하게 말했다.
“제가 아는 분들이 좀 됩니다. 이번에는 오해 없게 충분히 설명도 하겠습니다.”
“별 관심없습니다.”
“그래도……”
그의 재촉이 이어지던 중이었다.
세미나장 입구 쪽에서 여러 소리들이 들려왔다.
“그들이 왔다는데?”
“여기에 그들이 빠질 순 없지.”
“그럼. 응급의학 하면 NGO 아니겠냐고.”
술렁거리는 대화를 엿들은 태수와 정민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의사들의 의사라고 불릴 정도로 NGO 의사는 어디서나 존중받아 마땅했다.
그런 그들이 응급의학과 관련된 세미나장에 들어섰단 건 당연히 이슈였다.
NGO와 인연이 깊은 태수와 정민수도 누가 왔는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웅성거리는 쪽을 바라봤다.
곧 의사들이 좌우로 갈라지고 그 가운데로 몇몇 의사들이 걸어왔다.
맨 앞에 선 의사를 본 태수와 정민수의 눈이 크게 떠졌다.
다름 아닌 브레드 김이었다.
태수는 브레드 김의 당당한 얼굴을 본 순간 첫 만남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스스로를 수많은 NGO 의사들 중 한 명이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태수를 통해 경외하던 제임스를 만나게 되었다며 항상 고마워했다.
그런 그가 각고의 노력으로 이젠 NGO를 대표하는 인솔자가 되어 다른 의사들을 이끌고 있었다.
NGO가 아닌 의사들은 브레드 김을 존경의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정말 가슴 뭉클한 순간이었다.
태수가 과거를 떠올리며 감동하던 중이었다.
옆에 있던 정민수가 번쩍 손을 들며 소리쳤다.
“헤이. 브레드.”
그 소리에 NGO 의사들을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던 시선들이 날카롭게 변했다.
“뭐 하는 의사들이지?”
“저들은 존경심이란 게 없나?”
“예의도 없는 사람들을 보내다니.”
그런 힐난의 목소리도 곳곳에서 들려왔다.
그러나 정작 브레드 김은 태수와 정민수를 본 순간 당당한 표정이 환한 미소로 돌변했다.
“닥터 최, 닥터 정.”
브레드 김은 뒤에 있는 NGO 의사들을 내버리고 잰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도착과 동시에 세 사람은 주변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함께 포옹했다.
두 사람을 끌어안은 브레드 김이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한국어로 물어 왔다.
“어떻게 된 거야? 두 사람이 어떻게 여기 있어?”
“가족 여행으로 프라하에 오게 됐는데, 스미스가 알고 초청장을 보내 주셨습니다.”
“오, 스미스 박사님에게 존경한다고 꼭 전해 줘.”
“기회가 되면요. 그런데 브레드는 어떻게 여기 있는 겁니까?”
“그건…….”
브레드 김이 짤막하게 세미나에 참석하게 된 경위에 대해서 말했다.
그사이 이산가족이라도 상봉한 듯한 그들의 모습에 다른 의사들의 표정이 황당하게 변했다.
“도대체 뭐지?”
“닥터 브레드가 아는 의사들인 거야?”
“그저 아는 정도가 아닌 거 같은데.”
“누굴까? 도대체 누군데 닥터 브레드가 저렇게까지 좋아하는 걸까?”
모두가 무관심했던 태수와 정민수가 이젠 핫이슈가 되어 버렸다.
다들 궁금해할 때였다.
짧게 대화를 마친 브레드 김이 돌아서서 손짓했다. 그 손짓에 놀란 얼굴로 대기하고 있던 NGO 의사들이 얼른 다가왔다.
“찾으셨습니까?”
“다들 인사해. 이쪽은 이잠바크의 영웅 닥터 최, 그리고 그와 언제나 함께하는 닥터 정이야.”
“이잠바크의 영웅이라면……. 혹시 타머까지 들어가 제임스 박사님을 수술하셨다던…….”
“맞아. 그가 바로 여기 있는 닥터 최야. 하지만 그의 단짝인 닥터 정을 잊으면 곤란하지.”
브레드 김은 정민수가 소외되지 않게 살뜰하게 챙겼다.
그 소리에 NGO 의사들의 시선이 태수와 정민수에게 집중되었다.
태수의 무용담은 NGO 의사들 사이에서 엄청나게 유명했다.
가장 유명한 사건은 역시나 타머에서 제임스를 수술한 일화였다.
그 외에도 태수의 활약은 너무도 많이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정민수에 대한 일화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을 향한 NGO 의사들의 눈빛이 대번에 존경으로 바뀌었다.
“꼭 만나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서 무한한 영광입니다.”
놀람을 넘어서 자신을 낮추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반면, 주변에 있던 다른 의사들의 눈빛은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저 의사가 제임스 박사님을 수술한 유일무일한 의사였어?”
“왜 아무도 몰라봤지?”
“모두가 그토록 궁금해하던 그가 드디어 나타나다니.”
다들 놀라운 시선으로 태수와 정민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태수와 정민수는 NGO 의사들의 인사를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장내가 술렁거리던 중이었다.
“무슨 일인데 세미나 시작 전부터 소란스러운 겁니까?”
세미나장 입구에서 구수한 영어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 소란의 중심이 된 태수와 정민수, 그리고 NGO 의사들 쪽으로 한 무리의 노인들이 다가왔다.
그들이 등장하자 브레드 김이 말했다.
“원로들 등장이네.”
“원로요?”
“주최 측에서 직접 초청한 세계 의학계 거목들이라고 할까. 각 나라에서 한 가락씩 하는 인물들이지.”
“그래요.”
브레드 김의 말에 태수는 NGO 의사들보다 호기심을 보였다.
그러던 중 태수의 시선이 한 노인에게서 멈췄다.
꼬장꼬장한 인상에 주름이 가득한 노인이었다.
낯이 익었다.
아니, 그런 표현이 어색할 만큼 친숙하게 느껴졌다.
기억이 날 듯 말 듯 한 그의 얼굴을 좀 더 자세히 보려 태수가 눈을 가늘게 뜬 순간이었다.
노인의 눈이 태수와 마주친 순간 먼저 크게 떠졌다.
“닥터 최?”
“혹시…….”
“이 괘씸한 놈을 여기서 만나나. 하하.”
노인은 거친 표현과 달리 크게 웃으며 다가왔다.
그의 얼굴이 훨씬 선명해지자 태수의 눈도 점점 크게 떠졌다.
“닥터 토프락?”
“얼굴 잊어먹은거야?”
“그럴리가요.”
“됐다, 이놈아. 어디 보자. 허, 녀석. 잘 먹고 잘 살았던 모양이야.”
태수의 얼굴을 양손으로 꽉 잡고 이리저리 돌려 보던 닥터 토프락이 거칠게 끌어안았다.
꽈악.
그런 격한 포옹을 본 주변의 의사들이 또 한 번 놀랐다.
이번에는 정민수와 브레드 김도 마찬가지였다.
브레드 김이 얼른 정민수에게 물었다.
“닥터 정, 닥터 최가 토프락 박사님을 어떻게 알아?”
“저분이 누구라고요?”
“토프락 박사님을 모르나? 터키에서 최고로 존경받는 원로 의사 중 한 분이라고.”
“그런 분을 태수가 어떻게 압니까?”
정민수의 볼멘 대답에 브레드 김이 피식 웃었다.
“내가 먼저 물었잖아.”
“그러게요.”
정민수는 얼떨떨한 표정이었고, 브레드 김은 오히려 갑갑한 표정이었다.
그럴 정도로 두 사람 사이에 접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건 다른 의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황당해할 때였다.
또각, 또각.
놀란 의사들 사이로 조신한 구두 소리가 들려왔다. 웅성거림을 뚫고 들려오는 구두 소리에 의사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돌아갔다.
그리고 유일하게 움직이는 사람을 본 순간 의사들의 눈빛이 몽롱하게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