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713
01716 1716화
정유선의 어머니 얼굴에도 신경섬유종이 자라고 있었다.
그녀는 증세가 심하지 않아 이목구비가 선명했다. 그 대신 얼굴에 10원짜리만 한 커다란 뾰루지가 울긋불긋하게 번져 있었다.
태수의 시선을 느꼈는지 정유선의 어머니가 슬픔을 억누르며 억지로 입을 열었다.
“저 때문이에요. 저 때문에…….”
“유전적인 요인이 분명 있을 겁니다. 하지만 어머니와 비교해 보면 유선이는 후천적으로 환경적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래도요. 저에게 이런 몹쓸 병이 없었으면 유선이는, 유선이는…….”
정유선의 어머니는 옆으로 돌아서서 눈물을 훔쳤다.
그때 정유선이 손을 뻗어 어머니의 등을 가볍게 다독였다.
“엄마, 난 괜찮다니까. 엄마 딸이니까 엄마 닮았지.”
“유선아!”
정유선의 어머니가 빠르게 돌아 자세를 낮춰 정유선을 품에 안았다.
정유선은 그런 엄마의 등을 계속 어루만졌다.
“엄마가 왜 울어. 울지 마. 진짜 난 괜찮아.”
“흑흑.”
“울보 엄마야. 나보다 더 많이 울어.”
정유선은 그렇게 엄마를 위로했다.
그런 두 사람 옆으로 다가온 정유선의 아버지가 크게 팔을 벌려 안았다.
“미안하다. 내가, 내가 부족해서 미안하다.”
그는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부덕하다고 자책하고 있었다.
정유선은 그런 아버지도 끌어안았다.
어느새 손을 놓은 태수는 뒤로 물러나 그 모습을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태수의 옆에 박종석 병원장이 다가왔다.
“내가 왜 최 팀장을 속이면서까지 여기에 데려왔는지 알겠나?”
“…….”
“유선이는 처음부터 저랬어. 나도 놀라울 정도로 말이야.”
“흠.”
태수가 짧게 숨을 내쉬자 박종석 병원장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나도 이렇게 부탁하는 현실이 미안하지만, 저렇게 세상을 밝게 보는 아이가 비관적으로 변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야.”
“…….”
“염치없이 밀어붙여서 미안하지만, 최 팀장이 가진 인정을 아니까 이렇게 억지로 자리를 만든 거야. 너무 뭐라 하지 말게.”
박종석 병원장은 거기까지 말하고 더 이상은 입을 열지 않았다.
병원으로 돌아온 태수의 표정이 어두웠다.
시간을 오래 끌 일이 아니라고 판단한 태수는 우선 하석준 팀장부터 찾아갔다.
하석준 팀장은 다행히 진료실에 자리하고 있었다. 오전에 수술이 있었는지 조금 피곤한 얼굴에 수술복 차림이었다.
그런 그는 태수의 어두운 얼굴을 보고 걱정부터 보였다.
“갑자기 보자고 찾아온 사람 기분이 왜 이렇게 가라앉아 있어?”
“우선 이거부터…….”
테수가 말끝을 흐리며 정유선의 서류를 건네줬다.
태수의 말투가 이상했는지 하석준 팀장이 의아한 얼굴로 내용물을 꺼냈다.
그리고 정유선의 사진을 본 순간 안색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음, 신경섬유종인 거 같은데.”
“맞습니다. 그게…….”
태수는 박종석 병원장과 정유선의 관계에 대해 들은 대로 빠짐없이 이야기했다. 거기에 조금 전에 만나고 온 사실까지도 말했다.
그렇게 모든 얘기가 끝난 후였다.
하석준 팀장은 그때까지도 정유선의 사진을 보고 있었다.
한참 사진을 보던 하석준 팀장이 입만 열어 질문했다.
“그렇게 밝은 아이라고?”
“네.”
“그런데 돈이 없어서 몇 년간 방치해야 했다니.”
“늦은 게 아닌가 싶다가도 더 늦기 전에 수술할 여건이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태수의 말을 들은 하석준 팀장이 사진을 내려놓았다. 동시에 태수를 진중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수술, 할 수 있나?”
“여건이 갖춰졌을 뿐입니다.”
“흠.”
“더 정확한 건 시간을 두고 정밀 검사를 해 봐야 알 거 같습니다. 그리고 저보다는 다른 의사들 의견이 중요하고요.”
태수의 말에 하석준 팀장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긴 하지. 우리가 팀장이래도 강요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니까.”
“내일 아침에 컨퍼런스나 의국 회의에 상정해서 모두의 의견을 들어 보는 게 좋을 거라 생각합니다.”
태수의 말에 하석준 팀장이 심드렁한 얼굴로 쳐다봤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나?”
“네?”
“기다려.”
그 소리와 동시에 하석준 팀장은 옆에 있는 전화기의 수화기를 잡아챘다.
“지금 당장 내가 불러 주는 해당 의과 최고 전문의를 소집해 줘요. 피부과, 신경외과…….”
하석준 팀장이 뭘 하려고 하는지 직감한 태수는 가슴이 꽉 메어 왔다.
잠시 후.
하석준 팀장의 진료실이 꽉 찼다.
이 안에 있는 의사들 모두 화이트엔젤의 각 의과에서 중책을 맡고 있는 인물들이었다.
신경외과 민태경, 정형외과 박인수, 피부과 성이현, 이비인후과 박창준.
한데 모인 그들은 정유선의 증상을 전달받았다. 그래서 그런지 분위기가 무겁고 표정들이 좋지 않았다.
다들 침묵하고 있자 하석준 팀장이 물었다.
“자신 없나?”
“이건 자신감의 문제가 아닙니다.”
민태경의 말에 하석준 팀장이 힐끔 쳐다봤다.
“그럼?”
“우선 데려와서 정밀 검사를 해 봐야죠. 그 결과를 보고 다시 이야기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음.”
하석준 팀장이 작게 신음성을 내뱉자 세심한 성격의 성이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도 민 선생 의견이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혜민병원에서 상당히 자세한 데이터를 보내 줬지만, 저희가 직접 확인하는 게 결정을 내리기에 좋을 거 같습니다.”
“그건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박창준도 동조하자 하석준 팀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런. 언제부터 화이트엔젤이 환자를 두고 뒤로 물러섰나?”
“할 수 있단 희망이 보이면 어떻게든 해냅니다. 하지만 상황도 모르고 무턱대고 할 수 있다고 달려들면 그것도 잘못입니다.”
“잘못? 어떤 잘못?”
“기대하는 환자와 보호자들의 실망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유선이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확실한 검사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번에는 냉정한 이비인후과 박창준이 의견을 냈다.
하석준 팀장도 그걸 부정하진 않지만, 한발 뒤로 빼는 의사들이 통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때 태수가 나섰다.
“저도 다른 선배님들과 같은 생각입니다.”
“최 팀장.”
“환자의 상황이 좋지 않을수록 저희들이 더 냉정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
“선배님들이 양해해 주신다면 내일이라도 유선이를 입원시켜서 정밀 검사를 시작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태수가 이어서 의견을 내자 민태경이 끼어들었다.
“왜 내일까지 기다리나?”
“네?”
“바로 전화해서 오라고 해. 우리에게는 그저 흘러가는 하루겠지만, 유선이는 그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몰라?”
“…….”
태수가 침묵하자 옆에 있던 박인수가 한마디 거들었다.
“할 검사가 너무 많아.”
“가능성은 이미 열어 뒀다고. 다만, 검사 결과가 나와야 그 이후 일이 진행되는 거잖아.”
박창준도 거들었다.
그리고 성이현이 태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는 화이트엔젤이다. 팀장님하고 최 팀장이 항상 하는 말이잖아. 우리는 도움이 필요한 절실한 환자를 두고 절대 도망치진 않아.”
“…….”
태수는 가슴이 뭉클했다.
이들이 검사부터 하자는 건 시간을 끌자는 게 아니라 조심하잔 뜻이었다.
정유선의 신경섬유종은 그만큼 심각했다.
그걸 모르는 의사들은 없었다.
그런데도 물러서기보다는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진행하자는 말이 너무도 고마웠다.
힐끔.
태수가 쳐다보자 하석준 팀장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의사들의 마음을 다시금 확인한 하석준 팀장이 뿌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최 팀장, 유선이 불러.”
“네.”
“유선이가 도착하면 각 의과에선 야간이라도 개의치 말고 공을 들여 검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알겠습니다!”
모두 씩씩하게 대답하자 하석준 팀장이 한마디 거들었다.
“내일 아침까지 모든 결과가 나올 수 있게 하도록. 의국 회의에서 가부간의 결정을 낼 테니까.”
“네.”
“그럼 진행하자고.”
하석준 팀장이 말을 마치자 태수를 비롯한 모든 의사들이 날카롭게 눈빛을 빛냈다.
1시간 후.
태수는 건물 앞에서 정문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눈빛이 차분함 속에 번뜩이고 있었다.
그런 태수의 앞으로 놀랍게도 태수의 차가 다가왔다.
끼익.
차가 멈춰 서자 운전석에서 이성혁이 내려 빠르게 빙 돌아왔다.
“다녀왔습니다.”
“고생했다.”
“아닙니다. 잠시.”
양해를 구한 이성혁은 조수석과 뒷좌석 문을 열었다.
그 속에서 먼저 보이는 건 정유선의 어머니 이정숙이었다.
태수와 눈을 마주친 이정숙은 눈빛이 살짝 흔들리더니 고개를 옆으로 돌려 피했다.
여기까지 오긴 했지만 태수를 본 순간 미안함이 앞서는 모양이었다.
태수는 그녀가 느낄 부담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한 발 앞으로 다가갔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
“좋은 일입니다. 걱정보다 안도를 먼저 보여 주셔야지요.”
“고마…… 워요.”
“무슨 말씀을요. 내리시죠.”
태수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이정숙은 그런 태수의 손이 부담스러운 표정이었지만 힘겹게 잡고 내렸다.
그녀가 내리자 그 옆에 자리하고 있던 정유선이 보였다.
태수는 이어서 정유선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청력이 약해 제한된 공간이 아니면 잘 듣지 못해 일부러 크게 말했다.
“유선아, 내려야지?”
“…….”
“왜 그래?”
“…….”
정유선이 계속 입을 다물고 있었다.
듣지 못한 걸까?
그렇다고 생각하기에는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었다.
정유선도 이런 상황이 부담스러운 걸까?
태수는 더 보채지 않고 오히려 차 안으로 들어갔다. 정유선의 옆에 앉은 태수가 꼼지락거리는 손을 잡으며 물었다.
“혹시 병원이 무서워?”
“아…… 니요. 감사하고 또 감사해요.”
“그런데 왜 안 내려?”
“저만 좋은 거 아닌가 해서요. 다들 저 때문에 불편하실 수도 있잖아요.”
“…….”
순간 태수는 할 말을 잃었다.
아직 확실하진 않다고 해도 힘들고 괴로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였다.
누구라도 욕심부터 낼 터였다.
그건 태수도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정유선은 이 순간에도 타인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했다.
너무도 바보같이 느껴졌다.
바보 같을 정도로 착하고 또 순수한 마음이라 예뻐 보였다.
태수는 정유선의 손을 더욱 강하게 잡으며 말했다.
“선생님이 장담할게. 유선이가 어떤 아이인지 알면 다들 좋아할 거야.”
“…….”
“얼른 들어가서 검사도 받고 수술도 하고, 그래서 예뻐지자. 아, 그런데…….”
“왜요?”
정유선이 살짝 고개를 돌렸다.
비대해지고 무너진 얼굴에 정확한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힐끔 쳐다보고 있단 느낌을 받은 태수가 진하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유선이 마음만큼 얼굴을 예뻐지게 해 줄 자신은 없어서.”
“네? 후훗.”
“진짜야. 세상의 어떤 명의가 와도 마음을 아름답게 만들어 줄 수는 없어.”
“…….”
“여기까지 어렵게 결정 내리고 왔잖아. 이제 차에서만 내리면 돼. 할 수 있겠어?”
태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유선은 한동안 고개를 아래로 내린 채 말이 없었다. 그녀 나름대로 깊이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태수는 그 생각을 절대 방해하지 않았다.
13살은 어린 나이지만, 생각을 하고 또 결정을 내리기엔 충분한 나이였다.
그렇게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자 드디어 정유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씩씩하게 웃을게요.”
“그럼 나는 더 환하게 웃을 수 있게 도와줄게. 저기 들어간 순간 우린 함께 노력하는 거야. 알았지?”
“네.”
“좋아. 가자.”
태수가 쥐고 있던 손을 가볍게 잡아당겼다.
정유선의 팔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지만 태수의 손길을 거스르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