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730
01733 1733화
사실 이런 얘기가 듣기 좋지만은 않았다.
태수에게는 오히려 부담이 될 말들이었다.
일단 화제부터 돌리고 싶었다.
계속 이런 대화가 오가면 이 즐거운 자리가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친구였던 사이라서 할 수 있는 말이겠지만, 태수는 그래서 더 이런 대화를 피하고 싶었다.
그렇게 한 잔 쭉 들이켠 태수가 하천을 바라보다 나지막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까 여기서 참 많이 놀았는데.”
“그랬지. 처음 물장구를 친 데도 여기고, 어른들 눈 피해서 몰래 처음 술을 마신 곳도 여기고.”
송준호는 자연스럽게 태수의 말에 장단을 맞췄다. 태수가 부담을 느껴 이 즐거운 시간이 깨지는 게 싫은 모양이었다.
그건 이동훈도 마찬가진지 슬쩍 한마디를 거들었다.
“우리 처음 술 마셨을 때가…… 고등학교 때였나?”
“왜 마셨더라?”
“그러니까……. 아! 그렇지. 태수가…….”
이동훈이 뭔가 말을 하려 하자 태수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야야, 우리 오랜만에 가재 잡을까? 여기 아직 가재 있지?”
태수의 격한 반응에 송준호가 이동훈에게 물었다.
“쟤 왜 저래?”
“너 진짜 기억 안 나?”
“언제 적 일인데. 감질나게 하지 말고 빨리 말해 봐. 저 녀석이랑 우리 첫 술이랑 뭔 상관이 있는데?”
“태수가 처음으로 고…….”
이동훈이 거기까지 말한 순간 태수가 버럭 소리쳤다.
“야, 이 청춘들아! 저기 가재가 기다리고 있잖아. 얼른 잡아 달라고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니까.”
“난 궁금하다니까.”
“계속 궁금해하라고. 이동훈, 너 말하면 죽는다.”
태수가 주먹까지 쥐며 협박했지만 이동훈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남은 말을 이어 갔다.
“태수가 처음 고백했다가 차인 날이잖아.”
“뭐? 아! 그랬지. 푸하하!”
송준호가 배를 부여잡고 자지러지자 태수가 이동훈에게 짜증을 냈다.
“야, 이 새끼야!”
“맞잖아.”
“그게……. 잊어. 이젠 잊으라고, 새끼야.”
“좋은 추억인데 뭘 잊어. 안 그러냐, 준호야?”
이동훈이 불렀지만 송준호는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얼마나 웃긴지 돌 위에 누운 그는 호흡곤란까지 왔다.
“크하하! 윽, 으하하!”
“송준호, 너 계속 웃을래?”
“큭큭.”
“그만 웃으라고. 야, 이동훈, 넌 뭐 좋은 얘기라고 그걸 또 꺼내?”
태수가 울컥해 소리쳤지만 이동훈은 빙긋 미소를 지었다.
“틀린 말도 아니고.”
“저걸 진짜. 아오, 열불 터져.”
“오늘 날씨도 좋은데 네 말대로 가재나 잡으시든가.”
“…….”
태수는 대꾸하지 않고 하천으로 걸어갔다.
그 뒷모습에 이동훈이 아차 한 얼굴로 소심하게 변했다.
“쟤 화났나?”
“큭큭.”
“야, 이 새끼야.”
찰싹!
이동훈의 매운 손길에도 송준호는 계속 웃고 있었다.
“아이고, 죽겠다.”
“그만 웃으라고. 쟤 화났다니까.”
“신경 꺼. 태수가 이런 걸로 화낼 놈이냐? 찬물 좀 뒤집어쓰면 툴툴거리면서 오겠지. 아이고, 오랜만에 눈물 나게 웃었다.”
송준호는 진짜 눈물이 흘렀는지 눈가를 훔치며 다시 앉았다.
그때였다.
촤악!
송준호와 이동훈의 얼굴에 차가운 물방울이 튀었다.
“아, 차가워!”
“뭐야?”
두 사람이 동시에 바라보자 무릎까지 축축하게 젖은 태수가 양손을 펼친 채 진하게 웃고 있었다.
“천벌이다, 이놈들아.”
“어쭈구리! 도전이냐?”
“20년 전 일을 끄집어내는 놈이 더 나쁘지. 그런데 가재 많더라.”
“가재가 또 술안주로 아주 고소하고 좋지.”
송준호가 말을 보태자 이동훈은 어느새 일어나 바지를 걷었다.
“오랜만에 한번 잡아 봐?”
“빨리 와, 이 아저씨들아.”
태수가 놀리며 하천으로 향하자 이동훈이 미소 띤 얼굴로 뒤따랐다.
태수와 이동훈은 하천에 발을 담갔다.
처음 하천에 들어온 이동훈은 질색한 얼굴로 낮게 소리쳤다.
“으아, 차가워!”
“이 정도야 시원하지. 어디 보자. 이 돌이 좋으려나.”
태수는 어렸을 때의 경험을 되살려 적당한 바위를 찾았다. 가재가 바위틈이나 하천변에 숨어 있어서였다.
어느새 물 온도에 적응된 이동훈도 태수와 같이 가재를 찾아 나섰다.
첨벙첨벙.
물소리 요란하게 돌아다녔지만 가재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아니, 보였지만 잡으려고 하면 어느새 줄행랑 쳐서 번번이 실패했다.
몇 번 시도한 태수와 이동훈이 물에 홀딱 젖은 서로를 바라보며 크게 웃었다.
“하하. 우리 실력 완전히 개판인데.”
“이러다가 한 마리도 못 잡는 거 아니야?”
“뭐 어때. 그런데 준호는 어디 갔냐?”
“화장실……. 아니네. 저기 오는데?”
“뭘 들고 오는 거야?”
태수가 의아하게 바라보자 이동훈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송준호가 양손으로 뭔가 끙끙거리며 들고 오고 있던 탓이었다.
점점 송준호가 가까이 다가오자 이동훈의 눈이 크게 떠졌다.
“저거 혹시 자동차 배터리 아니야?”
“뭐?”
태수가 깜짝 놀랄 때였다.
턱.
송준호가 배터리를 내려놓고 양극이 연결된 집게들을 각각 손에 들었다.
“자식들. 아직도 애냐? 머리를 써야지. 이거 한 번이면 끝이라고.”
그 소리에 태수와 이동훈이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
“야, 이 미친 새끼야!”
“그거 안 놔? 너 우리까지 구울 셈이야? 빨리 그거 치우라고!”
둘의 고함에도 송준호는 진하게 미소 지었다.
“빨리 나와. 이거 한 방이면 오늘 저녁 반찬이 푸짐하다니까.”
“꺼져, 이 새끼야. 빨리 갖다 놓으라고.”
“저 새끼 확 신고해 버릴까?”
태수는 계속 소리치고, 이동훈은 진지하게 고민까지 했다.
그때 송준호가 양극의 집게를 부딪쳤다. 스파크가 튀어야 정상인데 아무런 반응도 일어나지 않았다.
태수와 이동훈이 의아한 기분이 들 때 송준호가 진하게 미소 지었다.
“내가 설마 진짜를 가져왔을까.”
그 소리에 태수와 이동훈은 더욱 황당했다.
“우리 놀리려고 저 무거운 걸 여기까지 들고 온 거야?”
“아, 저 인간 안 될 자식.”
“니가 고생이 많다.”
“그래. 나도 내가 고생이 많다고 생각하는 중이야.”
이동훈이 미간을 좁히며 태수의 위로에 공감했다.
그때 바지를 걷은 송준호가 거칠게 하천으로 들어왔다.
첨벙첨벙.
“얘들아, 노올자!”
“시끄러워, 꺼져 새끼야!”
“안 놀아? 야, 놀자고.”
촤악, 촤악.
송준호가 발로 물을 차 흩뿌렸다.
날벼락을 맞은 태수와 이동훈의 눈빛이 장난 가득하게 돌변했다.
“저 새끼부터 죽이자.”
“가자!”
촤악, 촤악.
그때부터 가재 잡이를 빙자한 물놀이가 시작됐다.
손으로, 발로 서로에게 물을 뿌리는 태수와 친구들의 모습에서 어렸을 적 모습이 연상됐다.
20년 전, 태수가 첫사랑에게 고백했다가 차였을 때 처음 술을 마셨던 모습.
그보다 더 어린 시절, 동네 개구쟁이들이었던 그 모습.
그렇게 성인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천진난만하게 물놀이를 즐겼다.
한참 물놀이를 하던 태수가 정말 진실되게 미소 지었다.
순수한 그때를 추억할 수 있는 이 친구들이 너무도 좋았다.
자신의 걱정과 부담을 잊게 해 주는 이들이 고마웠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웃고 떠들며 지내고 싶었다.
그게 태수의 바람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던 중이었다.
촤악!
얼굴에 한 바가지 끼얹어진 물세례에 태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와 동시였다.
“푸하하!”
“하하!”
송준호와 이동훈이 물이 뚝뚝 떨어지는 손을 털며 크게 웃고 있었다.
합작품이 분명했다.
그걸 직감한 태수가 얼른 그들에게 소리쳤다.
“야, 이 새끼들아!”
“왜, 인마!”
“니들 오늘 죽었어!”
“어쭈, 해보자고!”
다시 시작된 물놀이였지만 태수와 친구들의 얼굴엔 해맑은 미소만이 가득했다.
다음 날, 아이들과 함께 서울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옆에 앉은 주영수의 시선이 느껴지자 운전하던 태수가 곁눈질하며 물었다.
“왜?”
“큭큭.”
“갑자기 왜 웃어?”
태수가 의아한 목소리로 묻자 주영수가 웃음을 억누르며 말했다.
“어제 홀딱 젖어서 들어오신 게 떠올라서요.”
“그럴 수도 있지.”
“할머니가 무슨 일이냐며 걱정하시니까 할아버지가 ‘잘 논다.’라고 하시고. 하하.”
“호호.”
주영수가 크게 웃자 뒤에 앉은 주미성과 윤사라의 웃음소리도 들려왔다.
태수는 멋쩍음에 투덜거렸다.
“그만해라.”
“큭큭.”
“자식들이. 가끔 그렇게 놀 때도 있는 거지.”
태수는 괜히 아이들을 타박하며 서울로 향하는 길을 재촉했다. 하지만 화가 나진 않았는지 은은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어제 물장구치며 놀았던 일은 한동안 떠올릴 때마다 이렇게 웃음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들이 놀려도 상관없었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보낸 즐거운 시간이 태수를 더욱 미소 짓게 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태수는 응급의료대 상황실에서 박성민과 대화 중이었다.
“……그러니까 다음 주면 2차 응급의료대 팀원들이 퇴소한다는 겁니까?”
“그렇지. 시간 겁나게 빠르다니까. 어제 들어간 거 같은데 벌써 나오니 마니 하는 소리가 들리고 말이야.”
“훈련 성과는 어떻답니까?”
궁금해진 태수가 묻자 박성민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원래 레펠을 할 줄 아는 의료진들이 있어서 그런지 성취가 빠르다고 하더라고.”
“그건 좋은 소식이네요.”
태수의 말에 박성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물론 그렇지.”
“말씀하시는 뉘앙스가 조금 신경 쓰이네요.”
“다른 건 아니고, 간호사들 중 몇몇이 조금 눈에 띄나 봐. 성격이 불같단 소리도 들리고 말이야.”
“혹시 야전 출신 아니랍니까?”
“그런 거 같기도 하고.”
박성민도 제대로 들은 건 없는지 두루뭉술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태수는 자신의 예측이 옳다고 판단했다.
“그쪽 출신들이 원래 거칠잖습니까. 단체 생활에 문제만 없으면 좋을 거 같은데요.”
“그건 나쁘지 않나 봐. 성질냈던 건 조교가 설명을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했으니까.”
“화낼 만하죠. 레펠 잘못하면 생명이 위험한데.”
“인정. 좌우간 다들 개성이 넘치지만 문제 될 건 없단 게 훈련소 측 입장이야.”
박성민의 말을 간단하게 노트에 정리한 태수가 이어서 물었다.
“다른 건 문제없습니까?”
“없지. 출범한 지 벌써 몇 개월이 지났는데. 이젠 슬슬 안정권에 들어가는 모양이야.”
“다행이네요.”
“새로운 의료진과의 화합이 중요하겠지만.”
“다들 목적이 있어 모였으니까 별다른 문젠 없을 겁니다.”
태수가 말했지만 박성민은 심드렁하게 받아들였다.
“그건 두고 보자고. 그보다 넌 또 내려가냐?”
“이번 주까지는 내려가 있을 예정입니다. 2차 의료진들 퇴소하면 그땐 좀 올라와 있어야죠.”
“바쁘네.”
“다들 똑같죠. 그럼 이쯤에서 끝내는 걸로 하죠.”
탁.
태수는 노트를 덮었다.
박성민도 어느새 따라서 노트를 덮었다.
팀장 회의였지만 둘뿐이라 형식에 구애받지 않았다.
회의를 마친 태수는 상황실을 크게 둘러봤다.
저번 주에 정유선을 같이 수술한 정민수도 자리하고 있었고, 김은영과 송민규, 홍진만도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김혁권과 이선정 간호사는 침대에 누워 잠든 모습이었다.
그렇게 가장 편안한 자세로 각자 여유를 즐겼다.
그런 풀어진 모습 뒤에 숨어 있는 출동에 대한 긴장감을 태수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상황실은 여유로우면서도 팽팽한 상반된 느낌이 공존하고 있었다.
태수는 크게 둘러보다 홀로 있는 이기준을 발견했다.
‘저 녀석도 연구 대상이야.’
같이 출동해 보거나 출동 일지를 보면 현장에선 누구보다 열심히 응급 상황에 대처했다.
이기준을 싫어하는 정민수는 그런 모습조차 이익을 위한 가식이라고 험담했다.
하지만 태수는 그렇게만 생각하진 않았다.
공과 사가 분명한 의사였다.
야망을 위해서는 물불 가리지 않고, 이익과 손해를 분명히 구분해 낼 줄 알았다.
태수는 한 번도 이기준을 미워하지 않았다.
물론 그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려고 노력해 본 적도 없었다.
삶의 방식이 다르단 걸 인정하고 그렇게 대할 뿐이었다.
태수는 어느새 이기준의 옆으로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