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750
01753 1753화
“이건 또 무슨 사건 사고야?”
“이번 건 대형 사고 같긴 한데.”
“기다려 봐. 내가 애들한테 물어보고 올게.”
정민수는 곧장 서영우, 김은영을 시작으로 생사고락을 함께한 기존 응급의료대 팀원들에게 묻고 다녔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 정민수의 표정은 황당함으로 가득했다.
“아무도 모른대. 다들 조금 전에 통보받았다나 봐.”
“이게 말이 돼?”
“선배가 하면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내 머릿속 구조가 더 궁금하긴 해.”
정민수의 말에 태수가 멈칫하더니 미간을 좁혔다.
“그건 그래. 선배가 하면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이야.”
“지금 우리 판단력이 흐려진 거지?”
“아마도.”
“결국 내일 목적지에 가 봐야 안다는 거네.”
“……별수 없지, 뭐. 내일 가서 직접 눈으로 보자고.”
궁금증은 해결되지 않았지만 박성민은 이미 이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평소 장난치며 쓸데없는 말도 많이 하지만, 한번 고집을 부리면 또 그런 쇠고집이 없었다.
결국 그냥 기다리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다음 날 오전.
태수는 윤사라와 주영수에게 인사하고 집을 나섰다.
타고 내려가던 엘리베이터가 중간에 멈춰 문이 열리더니 그 앞에 서 있는 김혁권이 눈에 들어왔다.
“안녕……. 어?”
태수는 김혁권이 아닌 그 옆에 있는 여자를 보고 놀랐다.
송현미 간호사였다.
태수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서 있는 사이 두 사람이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온 송현미 간호사가 태수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놀라요? 못 볼 사람 본 것도 아닌데.”
“여기서 뵐 줄은 몰랐습니다.”
“누가 들으면 한참 안 본 줄 알겠네요. 우리 그제도 봤거든요?”
“옳은 말씀입니다만. 어디 가십니까?”
태수의 물음에 송현미 간호사가 바로 대답했다.
“의료봉사요.”
“거길 따라가신다고요? 저희도 어딜 가는지 모르고 어떤 곳인지도 모르는데요.”
“카슈미르에서는 알고 다녔나요. 그냥 도착해 보니까 거기 사람이 있고, 또 환자가 있었지.”
송현미 간호사의 거침없는 말에 태수도 속수무책이었다.
“그건 또 그렇긴 합니다만, 홀몸이 아니신 게 문제죠.”
“이젠 안정권에 접어들었어요. 산부인과장님도 조금씩 운동하라고 하시던데요.”
“다행이네요. 정말 다행입니다.”
“혹시 제가 같이 가서 불편한 건 아니죠?”
송현미 간호사의 물음에 태수가 펄쩍 뛰었다.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그럼 됐어요. 오랜만인 데다 행동에 제한이 많겠지만 열심히 할게요.”
송현미 간호사가 푸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대화를 마친 태수는 슬쩍 김혁권에게 몸을 기울이며 속삭이듯이 물었다.
“진짜 갑자기 왜 가시는 겁니까?”
“나도 몰라요. 어제 퇴근하고 돌아오니까 이미 출발 준비가 다 되어 있더라고.”
“정말요?”
“닥터 박이 전화했다던데.”
그 소리에 태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왜 불안하죠?”
“나는 오죽하겠냐고. 현미는 다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어째 한마디를 안 합니다.”
“이상하네요.”
뭔가 수상하다고 느끼는 건 태수뿐만이 아니라 김혁권도 마찬가지였다.
태수의 놀라움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병원에 도착하자 의료진들 사이에 유병태와 도성민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 있었다.
태수가 다가오자 유병태가 얼른 다가와 물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데?”
“무슨 일이냐니? 얘기 듣고 온 거 아니야?”
“얘기는 무슨 얘기? 새벽에 갑자기 전화 와서 9시까지 병원에 안 나타나면 각오하라는 협박받고 왔는데.”
유병태의 말에 태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가? 설마 선배가?”
“그럼 누가 있겠냐?”
“그건 또 그러네. 니들까지 불렀을 줄은 몰랐는데.”
태수가 말하자 두 사람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서 어디 가는데?”
“나도 몰라.”
태수의 대답에 유병태가 눈에 쌍심지를 켰다.
“야, 이 치사한 놈아, 적어도 어딜 가는지는 알고 가야 할 거 아니야!”
“모른다고.”
“너도 몰라?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냐?”
유병태에 목에 핏대를 올리며 소리쳤으나 태수도 마땅히 설명할 말이 없었다.
“나도 당하는 입장이라고.”
“하여간 이 양반 성질머리…….”
유병태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딱!
격한 소리와 함께 유병태의 머리가 갑자기 앞으로 숙여졌다.
뒤통수를 문지르며 고개를 번쩍 든 유병태가 뒤돌아보며 소리쳤다.
“어떤 새…… 님이…….”
“나다. 아주 틈만 나면 내 험담이지?”
박성민이 뚱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자 유병태가 억울한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갑자기 전화해서 막무가내로 오라고 하신 분이 누군데요.”
“아, 이 투덜이. 아침부터 투덜투덜.”
“선배님.”
“시끄럽고, 다들 왔냐? 하나, 둘…….”
박성민은 모인 의료진들을 일일이 지목하며 숫자를 셌다.
그래 봐야 그리 많은 인원은 아니었다.
김혁권과 송현미 간호사, 정민수와 이선정 간호사, 김은영, 송민규, 홍진만, 그리고 태수와 두 친구가 전부였다.
뻔히 다 모인 걸 알면서도 박성민은 마지막 한 명까지 숫자를 셌다.
“……좋아. 다 왔네.”
“그런데 우리 어디 가는 겁니까?”
“잔말 말고 타.”
박성민은 끝까지 말하지 않고 준비된 미니버스로 향했다.
뒤따르는 모두의 표정이 의아하게 변했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어쩔 수가 없었다. 목적지가 어디든 일단 가야 했다.
미니버스는 곧 병원 정문을 나섰다.
부웅.
도로를 달리던 중 차량 내 스피커에서 갑자기 클래식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동 진료 할 장소로 향하는 지금 이 순간과는 절대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다들 의아한 얼굴로 서로를 둘러봤다.
“이 분위기에 클래식은 뭐야?”
“누가 틀었어? 얼른 꺼.”
크고 작은 불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때 맨 앞에 앉은 박성민이 슬쩍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예술을 모르는 중생들 같으니라고. 이 음악으로 말할 것 같으면…….”
“선배.”
“오, 태수, 니가 지금 내 말을 끊었냐? 이동 진료 하기 전에 이동 장례부터 해 줄까?”
“평소에 가요가 최고라고 하셨잖아요.”
태수가 꿋꿋하게 대답하자 박성민이 멈칫했다.
눈을 빠르게 굴리던 박성민이 헛기침을 하고는 말했다.
“흠흠! 이젠 좀 고상해지자는 의미에서 준비한 건데.”
“그래도 이건 아닌 거 같습니다.”
“아니기는. 그냥 들어.”
“그럼 졸린데요.”
“자 버리면 되겠네. 난 음악 바꿀 생각 없으니까 싫어도 소용없다고.”
박성민은 그렇게 말하고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 박성민의 모습에 정민수가 슬쩍 태수에게 물었다.
“오늘따라 땡깡이 더 심한데?”
“내 말이.”
“예림 씨랑 싸우셨나?”
“그러면 이런 분위기겠냐? 살얼음판이겠지.”
태수의 말에 정민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런데…….”
드르렁.
“갑자기 뭔 소리야?”
코고는 소리가 들리자 정민수가 얼른 주변을 둘러봤다.
태수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누구도 잠들지 않고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럼?
이 코고는 소리가 누구에게서 들려오는 건지 직감한 모두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반응도 잠시, 다들 의자에 기대 눈을 감았다.
이동 진료 장소에 도착하면 바빠질 게 뻔했기에 일단 한숨 자는 게 이익이었다.
클래식은 역시 대단했다.
푹 자고 온 의료진들을 소리 없이 잠들게 했다.
고롱.
드르렁!
미니버스 속은 코고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얼마나 잤는지도 모른다.
잠에서 깼다는 생각이 들자 가장 먼저 미니버스의 진동이 느껴졌다.
‘도대체 어디야?’
부스스 실눈을 뜬 태수가 창문 밖을 힐끔거렸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풍경에 태수는 눈을 크게 떴다.
“어? 야야야.”
탁탁.
태수가 거칠게 때리자 옆에서 잠든 정민수가 몸을 비틀었다.
“흐음, 때리지 마.”
“일어나 봐, 인마.”
“왜에.”
아직 잠이 덜 깬 정민수가 어울리지도 않는 투정을 부렸다.
그러나 밖의 풍경에 놀란 태수는 멈추지 않았다.
“여기…… 초곡리야.”
“뭐?”
정민수가 번쩍 눈을 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눈을 감으면 선하게 그려지는 한적한 마을 풍경이 고스란히 펼쳐졌다.
버스 정류장, 슈퍼, 이기남 이장의 집 등등.
비슷한 마을이라고 생각하기에는 기억 속 초곡리와 너무도 똑같았다.
정민수가 눈을 크게 뜨며 태수에게 물었다.
“우리가 여기를 왜 지나고 있는 건데?”
“나도 몰라.”
태수가 얼떨떨한 목소리로 중얼거릴 때였다. 어느새 의료진들이 모두 일어났는지 대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초곡리라니.”
“우리가 몇 시간을 잔 거야?”
“클래식이 진짜 엄청난 수면제네.”
다들 한마디씩 하는 사이 미니버스는 마을 회관에 도착했다.
끼익.
차가 멈추자 앞에 앉아 있던 박성민이 일어나 모두를 향해 서서 진하게 미소 지었다.
“응급의료대 첫 휴가지에 오신 여러분들, 환영합니다.”
미니버스에서 내린 태수와 의료진들은 아직도 얼떨떨했다.
“갑자기 초곡리에서 휴가라니.”
“이거 뭐에 홀린 것도 아니고.”
다들 투덜거리는 사이였다.
마을 회관 안에서 이기남 이장이 걸어 나와 모두에게 말했다.
“왔으면 어른한테 먼저 인사를 할 것이지. 하여간 요즘 젊은 녀석들은. 쯧쯧.”
그 소리에 다가간 태수가 고개를 숙이며 황당함부터 알렸다.
“선배가 이동 진료라고 속여서 몰랐습니다.”
“이동 진료 맞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갈 건 아니니까.”
“그거야 그렇긴 합니다만. 아차차! 안녕하셨습니까?”
“인사 참 빨리도 한다. 됐으니까 들어가서 밥이나 먹어.”
이기남 이장의 퉁명한 소리에 태수가 깜짝 놀랐다.
“그럼 안에……?”
“거 굼벵이를 삶아 먹었나. 왜 아직도 서 있나?”
“아니요. 들어갑니다. 가시죠.”
태수가 모두에게 말하자 다들 얼떨떨한 표정으로 뒤를 따랐다.
그중에 송현미 간호사만이 목적지를 알고 있었는지 빙긋 미소 짓고 있었다.
마을 회관에서 어른들에게 인사부터 하고 푸짐하게 식사를 대접받은 후였다.
상을 모두 치운 뒤 편히 쉬라며 어른들이 마을 회관을 나갔다.
의료진만 남은 지금 박성민이 일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앞으로 2박 3일 동안 우리는 초곡리에 머뭅니다. 일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지만, 눈치껏 어른들을 진료해 드리기 바랍니다.”
“선배,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여기 있고요. 그리고 여기 머무는 동안 베이스캠프는 이곳, 마을 회관입니다. 태수의 집이 저 위에 있지만 여기가 더 넓으니까 그렇게 하겠습니다.”
박성민의 말에 이선정 간호사가 번쩍 손을 들었다.
“팀장님.”
“네, 이 간호사님. 질문이라도?”
“꼭 여기서 자야 하나요?”
“그런다고 그럴 분들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말해도 안 들을 거 아니까 알아서 잘 곳을 찾으셔도 됩니다.”
박성민은 과장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자 이선정 간호사가 송현미 간호사에게 말했다.
“우리 동석이 아저씨네서 자요.”
“난 선희네서 잘 건데?”
“언니.”
“이미 얘기 다 해 놨어. 난 조카 보러 가야겠다. 나중에들 봐요.”
송현미 간호사는 자연스럽게 일어나 마을 회관을 나갔다.
그 뒤를 이어 이선정 간호사가 따라나섰다.
그런 간호사들을 보며 박성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처음부터 개인플레이야. 우리 팀은 절대 통제가 안 돼.”
“제일 안 되는 분이 여기 계시고요.”
“누구?”
박성민이 해맑은 눈빛으로 묻자 태수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아닙니다. 그냥 못 들은 걸로 해 주세요.”
“그러든가.”
“저도 그럼 인사 못 드린 분들에게 인사 좀 드리고 오겠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나도 이따가 찾아뵌다고 말씀드리고.”
“네. 그럼.”
태수가 일어나자 정민수도 나섰다.
“같이 가자.”
끄덕.
고개를 끄덕인 태수와 정민수는 함께 마을 회관을 나갔다.
초곡리와 특별한 인연이 없어 남은 의사들은 서로를 쳐다봤다.
“우리는 뭐 하지?”
“알아서 놀라는데 알아서 놀아야지.”
“에라, 모르겠다.”
벌러덩.
유병태는 그냥 누워 버렸다.
그 외에 다른 의사들은 잠시 힐끔거리더니 이내 각자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