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8
00018 18화
나이트 근무조라 얼굴이 푸석푸석해진 간호사들이 인턴들을 맞았다.
“안녕하세요.”
“고생 많으십니다.”
“죽겠어요.”
간호사들이 절레절레 고개를 털었다.
태수와 다른 인턴들은 미소로 대답을 피하며 차트 먼저 살폈다.
정리가 안 된 차트가 대부분이다.
주요 체크 사항부터 살피는 사이 뒤에서 치프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야, 오늘은 우리 인턴들께서 먼저 나오셨네. 간밤에 평안들 하셨나?”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나야 무지하게 안녕했는데, 이 선생하고 정 선생은 아주 죽을 뻔했다던데.”
박성민 치프의 말에 정민수가 얼른 부정했다.
“아닙니다.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그렇지. 인턴은 더러워도 짜증나도 뭐 같아도 항상 미소를 잃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 그보다 응급실 통해서 야밤에 입원하신 분은 누구야?”
박성민 치프가 묻자 이번에는 레지던트 3년차 이필영이 나섰다.
“차트 보시면 최상복 43세고요…….”
박성민 치프와 이필영이 얘기하는 사이 다른 레지던트와 인턴들은 차트부터 나눴다.
그 사이 설명을 모두 들었는지 박성민 치프가 말했다.
“이 선생하고 정 선생이 그쪽 병동 맡고, 최 선생은 날 따라오고, 나머지는 남은 데 가고.”
“알겠습니다.”
“현재시각 6시 08분. 정확하게 50분까지 이 자리에 다시 모인다. 실시.”
“실시!”
힘차게 외친 레지던트들과 인턴들이 바로 몸을 움직였다.
태수는 박성민 치프와 함께 이동했다.
간호사들이 먼저 환자들을 깨웠는지 대부분 일어나 있었다.
그러나 어디서나 말 안 듣는 사람은 있었다.
6인실 병실 맨 끝에 홀로 다시 잠든 환자를 바라보더니 박성민 치프가 태수에게 말했다.
“뭐하냐, 주무시잖냐.”
“갑니다.”
태수는 대답과 동시에 바로 환자에게 다가갔다.
병실에 들어서기 전에 다시 한 번 병상과 이름을 확인했기에 바로 이름을 불렀다.
“김덕환 환자분, 김덕환 환자분.”
“으음. 왜?”
대뜸 반말부터 들려왔다.
허나 환갑에 가까운 나이였기에 태수는 미소를 잃지 않고 말했다.
“일어나셔야죠.”
“귀찮아.”
“조금 있으면 회진 시간입니다.”
“나 빼고 돌라 그래.”
잠에 취한 목소리가 너무도 퉁명스러웠다.
돌봐야 할 환자가 많은 데 처음부터 난관이다.
잠이 부족한 상태라 태수도 그리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도 참았다.
전에 들었던 임택진 환자 말이 괜히 울컥한 태수를 붙잡은 탓이다.
‘좋은 의사?’
기준은 모른다.
확실한 건 화내는 의사가 아니란 점이다.
“회진 돌고 주무시면 되잖아요.”
“싫다니까.”
“저희들 사정도 좀 봐주세요.”
태수가 슬쩍 보채자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던 환자가 슬쩍 얼굴만 내밀며 물었다.
“니들은 언제 우리 사정 봐줬어?”
“낫게 해드리려는 거 아닙니까. 자자, 일어나세요.”
태수도 더 이끌려 다닐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기에 아예 이불을 걷어버렸다.
훌렁!
찬바람이 갑자기 들어가자 환자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거 참.”
“특별히 불편한 곳은 없으시죠?”
“죽겠어.”
“말 잘 들으시면 일찍 퇴원하실 수 있습니다. 자, 그럼 이따가 뵙겠습니다.”
고개까지 꾸벅 숙이는 태수 모습에 환자는 입술만 삐쭉거릴 뿐이었다.
그래도 다시 잠든다는 소리는 하지 않으니 다행이었다.
태수는 빙긋 미소를 보이고는 다른 환자들에게도 다가갔다.
환자들을 모두 깨우고 컨디션 확인을 마치자 회진 시간이다.
다시 모인 레지던트들과 인턴들이 병동 간호사실 앞에서 대기하자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그 안에는 이추명 과장을 비롯해 강현필 교수등 흉부외과 써전들이 내렸다.
태수를 비롯해 대기하고 있던 이들과 간호사들까지 일제히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좋은 아침. 자, 가 볼까?”
이추명 과장이 앞서자 모두 그 뒤를 따랐다.
본격적인 회진의 시작이었다.
허나 그 시간은 노력에 비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추명 과장은 환자 상태를 듣고 인사말을 건네는 게 전부였다.
그렇게 회진을 무사히 마친 7시 30분.
그 다음 순서는 오늘 수술에 대한 브리핑을 하는 시간이었다.
회진을 돈 모두가 그대로 흉부외과 의국실로 향했다. 의국실에 각자 자리를 잡고 앉자 이추명 과장이 입을 열었다.
“오늘 수술 일정이 어떻게 되지?”
“오전에 두 건, 오후에 세 건입니다. 오전 수술은…….”
자리가 자리인 만큼 박성민 치프가 아닌 조교수가 직접 브리핑을 진행해갔다.
누가 수술을 하며 어떤 수술을 하는 지가 브리핑의 주요 내용이었다.
브리핑을 듣던 태수가 잠시 생각했다.
정말 카프레네의 모든 지식이 자신에게 들어왔을까?
임택진 환자에게 몇 가지 실험을 해본 결과는 놀라울 정도였다.
그러나 카프레네는 흉부외과의사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흉부외과 써전.
수술에 대한 부분에 특히나 이름을 많이 올린 사람이기도 했다.
수술?
순간 태수의 눈빛이 낮게 가라앉았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확신하기 위한 마지막 테스트가 떠올랐다.
태수가 잠시 생각하는 사이 오늘 수술에 대한 브리핑이 모두 끝이 났다.
“자, 그럼 수고하십시다.”
이추명 과장이 격려를 마치고 먼저 의국실을 나섰다.
그제야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기 시작했다.
태수가 빠르게 수술이 예정된 집도의들을 살폈다.
강현필 부교수는 SICU의 일 때문에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곱지 않았다.
다른 써전들에게도 소식이 퍼졌을 일이다.
그런 상황에 유명대 의과대학 동문 써전에게 부탁하는 건 그리 좋지 못했다.
그때 태수의 눈에 부교수 중 한 명인 백성현 부교수가 들어왔다.
타 대학 출신 써전이다.
같은 타 대학 출신이니 조금은 좋게 봐주지 않을까?
그럼 기대감으로 태수는 백성현 부교수 앞으로 다가섰다.
“부교수님 실례합니다.”
백성현 부교수는 눈매가 날카롭고 차가운 인상으로 태수를 마주했다.
“어, 최 선생. 왜?
“부교수님 수술실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어떤 수술인지는 아나?”
“AVF(Arteriovenous fistula, 혈액투석 동정맥루 재개통술.)라고 들었습니다.”
“참관 경험은?”
백성현 부교수 목소리는 매우 차분했지만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태수는 바로 입을 열었다.
“없습니다.”
“어느 정도 공부는 했나?”
“비디오로만 봤습니다. 실제로 보고 싶은 욕심에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간단한 수술이니까 가까이서 보는 게 좋겠지. 시간 맞춰 들어오도록.”
툭툭.
태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린 백성현 부교수가 스쳐지나갔다.
태수는 바로 몸을 돌려 깊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백성현 부교수는 들은 건지 안 들은 건지 모를 정도로 반응 없이 의국실을 밖으로 사라졌다.
“아자!”
태수가 주먹을 불끈 쥘 때였다.
슬쩍 박성민 치프가 옆으로 다가와 태수 옆에 섰다.
“오, 호기도 당당하게 수술실에 들어가겠다고 선포한 이 늠름한 인턴을 보라. 다른 놈들 뺑이 치는 건 안중에도 없는 것인가?”
“그게.”
“농담이고. 갑자기 웬 수술 참관?”
박성민 치프는 궁금해 할 뿐 건방지다고 생각하지 않은 눈빛이다.
그건 인턴이 누릴 수 있는 권리 중에 하나인 탓이다.
수술 집도의가 허락한다면 어느 수술이던지 참가할 수 있다.
그로 인해 해당 과에 대해서 더욱 깊이 이해하고, 진로를 선택할 때 도움이 된다.
그냥 무작정 잡무만 시킨다면 해당 과에 어떤 매력도 느끼지 못하기에 인턴에게만 부여된 권리였다.
태수를 제외한 이기준과 정민수는 이미 여러 번 수술 방에 들어갔다가 나왔다.
그 동안 SICU에 있던 태수만이 이제야 참가하게 됐을 뿐이다.
인턴이 레지던트보다 유일하게 나은 점이라면 이거 하나밖에 없었다.
태수는 넉살 좋게 말했다.
“흉부외과가 어떤 곳인지 제대로 느껴보려고 합니다.”
“오! 그건 참 옳은 생각, 훌륭한 생각이야. 써전들의 환상적인 손놀림을 보면 다들 눈이 튀어나오지.”
“그렇겠죠?”
“그럼그럼. 암 그럼. 무조건이야. 그건 내가 무조건 장담해. 나도 그 손놀림에 반해서 흉부외과에 지원했는데.”
박성민 치프가 짓궂은 미소를 내보였다.
“그럼 전 수술 준비하러 가보겠습니다.”
“잠깐잠깐, 가더라도 주의사항은 듣고 가야지?”
“압니다.”
“읊어.”
박성민 치프의 말에 태수가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첫째, 수술실에서 거치적거리지 말 것, 둘째, 지켜만 보지 말고 능동적으로 대처한다.”
“좋아. 마지막으로?”
“수술 끝나고 그 누구라도 치프님을 찾으면 안 된다.”
“오케이! 아주 좋았어. 기왕 들어가는 수술실이라면 제대로 배우고 돌아오도록!”
“알겠습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씩씩하게 대답한 태수가 바로 몸을 움직였다.
수술이란 여려 의료인들이 만들어내는 하나의 하모니였다.
그런 이유로 준비할 것도 많았다.
정신없이 뛰어다녀서야 수술 준비가 끝이 났다.
그리고 나서야 태수는 이필영과 함께 환자 침대를 수술실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르릉.
복도를 울리는 이송침대 바퀴소리에도 환자 표정은 불안함으로 가득했다.
태수는 환자의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첫 O.P(수술, operation) 참관 환자라 신상은 머릿속에 훤했다.
41세 남자 환자로 당뇨 합병증으로 만성심부전 진단을 받았다.
혈액투석을 시작하기 전 AFV수술을 먼저 받는 케이스였다.
태수가 부드럽게 환자 이름을 불렀다.
“강인철 환자님.”
“네.”
“아무 이상 없을 겁니다.”
태수가 빙긋 미소를 지었지만 강인철 환자 표정은 좋아지지 않았다.
인턴인 태수의 말에 얼마나 위안을 얻겠는가.
강인철 환자는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태수는 씁쓸했지만 더 말하진 않았다.
곧 환자가 누운 침대가 3번 수술방에 도착했다.
침대를 수술방 가운데 세우고 고정시킨 것으로 태수의 할 일은 끝났다.
이젠 수술이 어떻게 진행되는 지 끝까지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
태수는 수술실 한쪽에 섰다.
그런데 태수는 뭔가 야릇한 느낌을 받았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했다.
몇 번 수술실에 들어와 본 경험으로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막연한 그리움?
태수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쫓아가진 않았다.
수술실에서는 긴장을 한 시도 놓을 수 없기에 신경이 분산되면 곤란했다.
태수가 지켜보는 사이 마취과 선생님이 도착했다.
단순히 환자를 마취시키는 것뿐이 아니라 수술 내내 환자 명줄을 잡고 있는 중요한 인물이었다.
꾸벅.
태수가 반사적으로 인사하자 마취과 선생님이 멈칫하더니 시선을 마주쳤다.
헤어캡과 마스크 사이로 보이는 눈모양이 여성이란 느낌이 강하게 드는 순간이었다.
예상이 맞았는지 하이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이게 누구야? 최태수 선생.”
상대가 먼저 아는 척 하자 태수가 외려 의아했다.
“맞습니다만.”
“뭐야. 이렇게 가리고 있으니까 못 알아보는 거야?”
마취과?
실습나간 적은 없지만 아는 다른 과에서 실습하면서 안면이 있는 의사는 한 명 있었다.
“혹시 표성미 선생님?”
“진짜 이제 알아보나봐? 그보다 흉부외과 인턴 생활은 어때?”
“좋죠.”
“좋기는, 내가 그쪽 사정 뻔히 아는데. 얼굴이 아주 팍 늙었네. 그러지 말고 우리 쪽은 어때요? 최 선생 정도 성실함이면 충분히 해낼 거 같은데.”
표 선생의 권유에 태수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만 좀 생각해 봐야 할 거 같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죠. 그럼 마취부터 시작 할까요? 내 실력 잘 보고.”
다소 도도한 표성미 선생의 말이었지만 매력이라면 매력이었다.
표성미 선생이 환자 머리 쪽에 섰다.
복잡한 기계들이 환자의 상태를 자세하게 숫자로 표기해주는 모습이다.
표성미 선생이 진중하게 살펴보더니 마스크 속에서 목소리를 냈다.
“마취 들어갑니다. 환자분 한 숨 주무신다고 생각하세요. 하나, 둘…….”
표 선생은 숫자를 세며 시선을 분산시켰다. 그리고 그 사이 정맥과 연결된 호스에 주사약을 투입했다.
표 선생에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취하듯 환자가 점점 마취상태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