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80
00181 181화
우선 왜 오진을 내리게 됐는지부터 확인해야 할 일이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 태수는 병실로 향했다.
태수는 곧 오진 받은 환자가 입원한 병실에 도착했다.
6인실이라 북적거리는 느낌이다.
태수가 만나러 온 환자는 오른쪽 3번째 병상을 배정받았다.
그렇기에 태수는 병실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그때 태수를 발견한 보호자 중 한 사람이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 왔다.
“어머, 선생님. 오셨어요?”
“한 바퀴 돌아보는 길입니다.”
“고생하셔서 어쩌나. 하루 종일 바쁘셨을 텐데. 이쪽으로 와서 과일 좀 드세요.”
환한 얼굴로 권하는 모습이지만 태수는 양해를 구했다.
“다음에요.”
“과일 한 조각인데 뭘 그러세요.”
“오늘은 좀 봐 주십시오.”
태수는 넉살 좋게 인사를 하며 슬쩍 지나쳤다.
다른 환자와 보호자들도 반겼지만 태수는 한결같이 사양하며 병실 안쪽으로 깊이 들어갔다.
환자와 보호자들의 숲을 헤치고 나서야 만나고자 하는 환자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최영숙. 38세 여자 환자였다.
혼자 있는 모습에 더욱 잘 됐다고 생각하며 태수는 그녀 옆에 섰다.
진통주사를 맞고 있는 중인지 고통스러운 표정은 아니었다.
몸이 편한 탓인지 이어폰을 꼽고 휴대폰으로 영화를 시청 중이었다.
그러다가 옆에 아른거리는 하얀 가운을 봤는지 최영숙이 슬쩍 쳐다봤다.
태수를 보자 얼른 이어폰을 귀에서 땐 최영숙은 의아한 시선으로 물었다.
“처음 뵙는 선생님이시네요?”
“오늘 입원하셨다고 해서 인사 왔습니다. 치프인 최태수입니다.”
“입원했다고 찾아오시는 의사분은 또 처음이네요.”
“잠깐 머물렀다가 가시더라도 있는 동안 불편함은 없으셔야죠. 말이 나온 김에, 뭐 불편한 점은 없습니까?”
태수의 물음에 최영숙은 옅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그럼 잠깐 좀 볼까요?”
“조금 전에 다른 선생님들이 왔다가 가셨는데요?”
“제 밑에 있는 의사들이지만 믿을 수가 있어야죠.”
태수가 일부러 레지던트들을 낮게 평가했다.
그러자 외려 최영숙이 두둔했다.
“얼마나 꼼꼼하신데요. 제가 다른 병원에도 입원해 봤는데 여기 외과 같이 꼼꼼하게 봐 주시는 의사들은 없었어요.”
“그런가요?”
“그럼요. 조금 전에 치프라고 하셨나요? 어쨌든 선생님도 이렇게 찾아오셨잖아요.”
최영숙의 부드러운 대답이 태수를 절로 미소 짓게 했다.
“감사합니다. 칭찬받으니까 더 자세히 봐 드리고 싶네요.”
“진짜 괜찮은데요.”
“잠시면 됩니다.”
태수는 양해를 구함과 동시에 IV부터 살폈다.
포도당과 진통제였다.
통상적으로 처방하는 주사약들이었기에 달리 살펴볼 건 없다.
이미 EMR을 통해 확인한 태수였지만 일부러 한 번 더 살폈다.
그건 다음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서였다.
대충 주사약 확인을 마친 태수가 최영숙 환자에게 말했다.
“아주 양호합니다.”
“꼼꼼하게 잘 봐 주셨다니까요.”
“그래도 제 눈으로 확인 절차는 필수입니다.”
“어떤 심정인지 대충 상상은 되네요. 저도 집에 애들이 있는데 지금 얼마나 난장판을 해 놨을까 걱정도 되고 한편으로는 나중에 치우자 하고 포기도 하고 그래요.”
푸념 아닌 푸념을 듣던 태수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
“나름대로 잘 지내고 있을 겁니다.”
“너무 나름대로라서 문제긴 하지만요. 아마 애 아빠가 맨날 햄버거나 피자만 먹이고 있을 거예요. 저도 애들 때문에 인스턴트식품 엄청 먹었거든요.”
“그건 병이 빨리 나아서 집에 돌아가면 확인이 되겠지요. 그러기 위해서 몇 가지만 더 여쭤 봐도 될까요?”
태수의 자연스러운 화제 전환에 최영숙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세요.”
“배가 아프고, 구토도 하셨다고요. 약간 열도 있다고 하셨고요.”
“네. 담당 선생님이 맹장염이라고 하시던데요. 수술만 하면 좋아질 거라고 하셨고요.”
“저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여쭙는 건, 좀 더 자세하게 파악해야 수술이 더 원활하게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태수는 그녀의 수술이 내일 오전으로 잡힌 걸 감안해 슬쩍 미끼를 던졌다.
태수의 제안에 최영숙 환자가 솔깃했다.
수술이 더욱 잘 될 수 있다면 얼마든지 대답해 줄 용의가 있다.
바로 화사해진 최영숙 환자가 외려 태수를 재촉했다.
“그래서 뭘 물어보고 싶으신데요?”
“혹시 말씀하지 않으신 증상 같은 게 있나 해서요.”
“배 아프고, 입맛도 없고, 토하기도 했고……. 음. 다 말한 거 같은데요.”
“변은 어떠십니까?”
태수의 물음에 최영숙이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제가 변비가 조금 있어서요. 아, 아까 한 번 화장실 가긴 했어요.”
“변비가 해결된 건 아주 좋은 일이죠.”
칭찬하는 태수를 보며 최영숙은 살짝 얼굴을 붉혔다.
“그렇긴 하죠. 그런데 피가 좀 섞여 나왔어요.”
“피가요?”
끄덕.
최영숙을 고갯짓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상대가 의사라도 그 부분에 있어서는 조금 부끄러운 모양이다.
반면 태수는 살짝 눈을 가늘게 떴다.
충수염으로 혈변을 보는 경우는 없다.
태수가 집도한 수술에서도 한 번도 없었고, 카프레네의 기억 속에도 없는 증상이다.
박수철 전문의가 놓쳤던 부분이기도 했다.
그 외에도 몇 가지를 더 물어봤지만 이렇다 할 특별한 증세는 없었다.
태수는 일단 거기까지만 이야기했다.
“내일 담당의사 선생님에게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수술하는 데 뭐가 달라지는 건가요?”
“그건 집도하실 선생님께서 판단하실 겁니다. 어쩌면 가스가 바로 나올 수도 있을지도 모르죠.”
“에이, 아무리 빨라도 몇 시간은 걸린다던데요.”
최영숙은 전혀 믿지 않았다.
물론 태수도 그에 대한 확신은 없다.
“사람에 따라 다른 거니까 누구도 모르죠.”
“그런가요? 그럼 선생님 말 믿고 편안하게 기다릴게요.”
“네. 잠이 우선입니다. 푹 쉬십시오.”
태수는 인사하고는 돌아섰다.
병실을 나선 태수의 머릿속에는 이미 확실한 병명이 떠오른 상태였다.
게실염.
장에 ‘게실’이라고 불리는 꽈리모양의 돌출된 염증이 생기는 질환이다.
서구화 된 식습관 즉, 고단백, 고지방, 저섬유질 음식을 많이 섭취하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병세기도 했다.
아이들 때문에 인스턴트식품을 많이 먹었다면 발병할 확률이 충분했다.
게실염의 전조 증세로 게실증이라는 게 있다.
복부 팽만, 복통이나 변비.
너무 흔한 증상들이라 대부분 자각하지 못하고 자연치유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게실염으로 발전하면 조금 이야기가 달라진다.
복통과 변비는 기본이고, 오한, 발열, 심한 경우에는 구토나 혈변을 보기도 한다.
대부분의 경우는 게실염이 생겼더라도 하루 쯤 속을 비워주며 자연치유를 유도한다.
하지만 수술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병이 얼마나 진행됐는지는 대장내시경이나 대장조영술로 확인하는 게 확실했다.
태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시 간호사실로 향했다.
CT 사진을 다시 확인했다.
2분…… 3분…….
“역시.”
태수는 CT에서 꽈리 모양의 게실을 찾았다.
충수와 가까운 위치다.
그렇기에 충수염과 비슷한 증상을 호소했음이 분명했다.
박수철 전문의의 잘못도 아니다.
너무도 증세가 비슷한데다가 충수에 집중하고 있었다면 찾지 못했을 위치였다.
흔히 발생하는 오진 중에 하나였다.
아무리 막장 인생이라도 일부러 오진을 낼 의사는 없다.
태수 또한 그걸 알기에 비난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저 잘못된 걸 바로 잡고 싶은 마음이다.
왜?
병원은 환자를 고치는 곳이란 신념 때문이다.
다음 날.
오전에 중요한 일정들을 마친 후였다.
외래가 있는 전문의들은 진료실로 향했고, 없는 전문의들은 자기 방으로 향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태수는 먼저 송민규에게 말했다.
“최영숙 환자 수술실로 올리지 마.”
“네? 이제 올라가야 되는데요.”
“양해 구하고 늦추고 있어. 아마 다른 곳으로 가야 할지도 모르니까. 먼저 간다.”
태수가 바로 몸을 움직이자 송민규가 얼떨떨한 얼굴로 눈을 끔뻑거렸다.
태수는 빠르게 걸음을 옮겨 박수철 전문의 방에 도착했다.
잠시 후 수술이라 외래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똑똑.
노크하자 안에서 박수철 전문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끼익.
“실례합니다.”
“벌써 수술 준비가 끝났나? 너무 이른데?”
의아한 얼굴로 손목시계를 확인하는 30대 후반의 의사.
전문의 4년차로 두툼한 안경을 낀 모습이 학구파를 연상하게 했다.
태수는 조용히 문을 닫고 들어가 박수철 전문의에게 말했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무슨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지금 수술 들어가야 하는데 말이야.”
“그 수술 때문에 이렇게 찾아뵙게 됐습니다.”
태수의 말에 박수철 전문의는 더욱 모르겠다는 얼굴로 변했다.
그래도 저렇게 이야기한다면 이유가 있을 터.
박수철 전문의가 우선 소파를 가리켰다.
“일단 앉아서 듣지. 아, 일단 환자 올리지 말라고…….”
“제가 대기시켜 놓았습니다.”
“그래?”
“죄송합니다. 첫 수술 스케줄이라 어쩔 수 없이 먼저 조치했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일이겠지?”
질문하는 것과 다르게 목소리가 살짝 날카로워져 있었다.
집도의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환자를 대기시켰단 건 충분히 기분 나쁜 일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태수도 이런 눈초리는 예상했기에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다.
곧 태수와 박수철 전문의가 소파에 자리했다.
상석에서 태수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쳐다보는 박수철 전문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제 수술 환자를 대기시키고 날 찾아온 이유부터 들어볼까?”
“우선 준비해 온 것부터 보여 드리겠습니다.”
태수는 들고 온 서류철을 펼쳐서 공손하게 내밀었다.
태수를 힐끔거리며 받아든 박수철 전문의가 서류를 살피기 시작했다.
PACS 영상 일부를 캡처하고 게실염의 위치까지 표시해 놓은 자료였다.
그리고 카프레네 저서에서 발췌한 임상사례까지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를 정도로 박수철 전문의는 아둔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무심코 살피던 그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져 갔다.
탁.
불쾌한 얼굴로 서류철을 덮은 박수철 전문의가 태수를 노려봤다.
그러나 바로 따지고 들진 않았다.
눈앞에 명백한 증거가 있다.
엄연히 자신이 잘못한 부분을 아는데 언성을 높이기도 애매한 입장이다.
“흠.”
박수철 전문의는 얼굴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침음성을 흘렸다.
복잡한 생각이 머릿속을 오가는 모양이다.
반면 태수는 정면으로 시선을 향한 채 꼿꼿한 자세로 앉아 있을 뿐이다.
서류철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박수철 전문의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내가 틀렸다고 지적질 하러 왔나?”
“아니요.”
“그럼?”
박수철 전문의의 목소리가 좀 더 날카로워졌지만 태수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선생님께서 난처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왔습니다.”
“난처해?”
“건방지다는 건 알고 있지만 선생님 커리어에 흠집이 나는 건 원하지 않습니다.”
태수의 대답에 오히려 박수철 전문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그러니까 지금 치프가 내 걱정해주고 있다는 거 같은데.”
“…….”
“건방진 걸 알면서도 이렇게 찾아왔다는 건 내가 불쾌해할 것도 알고 있다는 이야기지?”
“……네.”
태수의 대답에 박수철 전문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거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나오는 말은 전혀 달랐다.
“내가 화를 낸다면 정말 비참해지는 거 아나?”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럼 나가.”
휙!
박수철 전문의가 거칠게 방문을 가리켰다.
태수는 군말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철 전문의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제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가라고 했어.”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태수는 그대로 몸을 움직여 박수철 전문의 방을 나섰다.
욕이라도 한 바가지 먹을 줄 알았는데 그건 예상과 달랐다.
그건 태수도 조금은 의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