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84
00185 185화
태수는 빠르게 머릿속으로 생각한 후 오연택을 바라봤다.
위급한 상황에서도 인공호흡기를 빼려 하는 건 뭔가 할 말이 있다는 의미였다.
거기까지 판단한 태수가 흔쾌히 허락했다.
“좋습니다. 떼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이상이 생기면 다시 착용하시는 겁니다.”
끄덕.
미미한 고갯짓을 확인한 후에야 태수는 인공호흡기를 슬쩍 들어올렸다.
기도삽관은 하지 않았기에 말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었다.
“기절한 지…… 얼마나…… 됐습니까?”
“대략 10분 정도입니다.”
“다들…… 놀라게 해 드렸…… 네요.”
“저희는 괜찮습니다만 부인과 따님께서 많이 놀라셨던 모양입니다.”
태수가 조곤조곤 대답해 주자 오연택은 힘겨운 미소를 보였다.
“호들갑 많이…… 떨었을 텐데…….”
“잠깐 밖에서 진정하시라고 했습니다.”
“그래요…… 그렇군요.”
오연택의 목소리에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동시에 태수는 고민했다.
환자는 지금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숨긴다고 될 일이 아니다.
아니, 숨긴다면 오히려 할 말도 못하고 눈을 감을지도 모를 상황이다.
또 한 번 어려운 말을 꺼내야 한다.
태수는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 듯 차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실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눈을 힘겹게 돌려 태수와 시선을 마주친 오연택이 맥 빠진 얼굴로 물어왔다.
“힘든가보죠?”
“네.”
“그렇군요.”
오연택의 얼굴에 뭔지 모를 허탈감이 가득했다.
하지만 절망하거나 절규하진 않았다.
오히려 태수는 그 점이 의아하게 느껴졌다.
그때 오연택이 병원 천장을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어젯밤에 꿈을…… 꿨습니다. 눈부시게 하얀…… 길을 걷고 있는 제 모습을요.”
“…….”
“3년 전에 간이식 받는 날…… 수술대에서 문득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부터는…… 덤으로 사는 거라고. 그리고 이젠…… 그 끝이 온 거 같네요.”
오연택의 말에 태수는 가슴이 먹먹했다.
스스로 죽음을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피하고 싶고 도망치고 싶지 않았을까?
태수라도 그럴진대 오연택은 외려 덤덤한 표정이었다.
잠시 이야기하는 시간이 길어졌지만 태수는 얼른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고는 오연택에게 말했다.
“보호자분들께서 곧 들어오실 겁니다. 그럼 하고 싶은 말씀을 다 하세요.”
“그 전에 선생님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얼마든지요.”
“얼마나 더 살…… 수 있습니까?”
오연택의 물음에 태수는 잠시 생각하고는 대답했다.
“언제라고 장담 드리긴 힘듭니다. 당장 1분 후가 될 수도 있고, 한 시간 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저, 딱 두 시간만…… 정말 두 시간만 더…… 살 수 있습니까?”
“이유를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서울에 사는 아들놈…… 얼굴이 보고 싶어서요. 연락 안 한 지가 한 10년은…… 된 거 같은데, 지금은 보고 싶네요.”
오연택의 말에 태수가 멈칫했다.
10년.
강산이 변할 시간이다.
그동안 한 번도 보지 않았다면 둘 사이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이 분명했다.
이제와 아들 얼굴이 보고 싶다는 아버지의 마음.
솔직히 미혼인데다 자식이 없는 태수의 마음으로는 상상하기조차 힘들었다.
그저 눈을 감기 전에 마지막으로 보고 싶을 거라는 막연한 추측뿐이었다.
그때 오연택이 한마디 덧붙였다.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꼭 얼굴 보고 해야…… 하는 말이요.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오연택의 목소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정중했다.
한 번도 태수를 비롯해 의료진에게 언성을 높이지 않았다.
이미 죽음을 직감한 사람이라도 쉽지 않은 모습이다.
그걸 알기에 태수의 마음이 동했다.
“장담은 못합니다.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라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상하게 처음…… 뵙는 선생님 말씀인데도 믿음이 가네요.”
“아직 부족한 게 많은 레지던트일 뿐입니다.”
“그래도 감사하죠…… 저 휴대폰 좀…….”
몸을 움직이기 힘든지 오연택은 태수에게 부탁했다.
발치에 있는 점퍼에서 휴대폰을 꺼내 든 태수는 아예 ‘아들’이라 적힌 주소록을 찾아 통화를 연결시켜줬다.
오연택이 듣기 좋게 스피커폰으로 전환하고 얼굴 옆에 놓았다.
뚜루루.
새벽이라 그런지 바로 통화가 연결되지 않았다.
계속 이어지는 통화연결음에 태수의 가슴이 타들어가는 느낌이다.
‘좀 받아라, 새끼야.’
속으로 짜증까지 확 치밀었다.
그때였다.
“아…… 버지?”
아들의 목소리가 휴대폰을 타고 들려왔다.
오연택은 여전히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얼굴…… 좀 보자.”
“10년 만에 전화해서 하시는 말씀이 내려오라는 겁니까? 됐습니다.”
“지금 꼭 보고…… 싶구나.”
오연택이 여전히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자 아들의 음성이 조금 높아졌다.
“됐다니까요. 이 새벽에 공주까지 내려가란 말입니까?”
“이…….”
오연택이 뭐라고 하려 할 때였다.
탁.
하얀 손길이 오연택의 귀밑에 있는 휴대폰을 낚아챘다.
바라보니 딸의 손이었다.
오연택의 딸은 휴대폰에 대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 아빠 아파. 진짜 많이 아파.”
“너 지금 무슨 소리야! 아버지가 갑자기 왜 편찮으셔?”
“간이…… 아버지 간이…….”
“야 이 자식아! 아버지 간이 뭐? 무슨 소리냐니까!”
휴대폰을 타고 흘러나오는 아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하지만 딸은 더 이상 말하지 못했다.
결국 지켜보던 태수가 나섰다.
휴대폰을 받아든 태수는 차분한 목소리로 통화를 이어갔다.
“전화 중에 실례합니다. 저는 동성종합병원 외과 최태수입니다.”
“그, 그런데요.”
“아버지께서 3년 전에 이식받으신 간에 문제가 생겨서 지금 매우 위독한 상태입니다.”
태수가 천천히 설명하던 중이었다.
“간이식? 3년 전에? 야 이 개새끼야! 너 뭐하는 새낀데, 그딴 개소리를 지껄여!”
“소리 지를 시간에 출발하세요.”
“뭐?”
아들의 목소리가 격하게 떨려올 때였다.
“쿨럭, 쿨럭!”
오연택이 갑자기 기침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이젠 전화로 설득할 시간은 없다.
그만큼 태수의 마음이 급해졌다.
“당장 출발해. 평생 가슴 쥐어짜고 살기 싫으면.”
태수는 아들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통화를 종료해 버렸다.
던지듯 휴대폰을 오연택의 딸에게 건넨 태수가 주변에 있는 레지던트들에게 소리쳤다.
“안 선생! 과장님 호출하고 올라가서 송 선생하고 정 선생 깨워. 정 선생은 내려보내고 안 선생은 송 선생이랑 외과에서 킵 해. 그리고 성 선생! 코데인 가져와!”
“네!”
안성훈과 성진수가 동시에 소리치고는 각자의 길로 달려갔다.
두 사람도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걸 아는지 그 행동이 신속했다.
그때 박완용 과장이 빠르게 다가왔다.
“무슨 일이야?”
“응급수술실로 옮겨야겠습니다.”
태수의 말을 들으며 박완용 과장은 오연택을 주시했다.
기침 소리가 심상치 않다.
왜 그런지는 그도 알고 있기에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소리쳤다.
“오더리(남자간호사)!”
박완용 과장의 외침을 들은 남자간호사들이 부리나케 다가왔다.
“찾으셨…….”
“당장 응급수술실로.”
“네!”
남자간호사들은 대답과 동시에 오연택이 누운 병상의 고정 장치를 풀고 이동을 시작했다.
다른 간호사들도 눈치 빠르게 다가와 남자간호사들과 보조를 맞춰 ECG 등 의료기계들을 함께 옮겼다.
태수가 뒤따라가려는 찰나 박완용 과장이 물었다.
“어떻게 하려고.”
“아들 얼굴은 꼭 보셔야겠답니다.”
“상태가…….”
“심각한 거 압니다. 그런데 그냥 보낼 수는 없잖습니까.”
태수의 이글거리는 눈빛을 본 박완용 과장이 잠시 생각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난 안에 장시간 있을 수 없으니까 차라리 밖에서 보호자들을 맡도록 하지. 필요한 건 뭐든지 말해. 무조건 지원할 테니까.”
“괜찮으시겠습니까?”
“이사장님 지시사항 중에 말이야 환자를 가족처럼 대하라는 이야기가 있었거든. 아들 얼굴은 보고 가고 싶다는 데 그거 하나 못 들어주는 개새끼야 되지 말아야지.”
박완용 과장도 안타까움이 가득한지 거친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응급실 당직 과장인 박완용이 뒤를 봐 준다면 태수에게는 더욱 힘이 될 일이다.
“그럼 복강경하고…….”
이어지는 태수의 요구에 점점 박완용 과장 눈이 커져 갔다.
“그걸 다?”
“뭐든지 말씀하라고 하셨습니다.”
“젠장, 알았어. 내가 어떻게든 할 테니까 빨리 들어가 봐.”
“부탁드립니다.”
태수는 인사도 생략하고는 응급수술실로 뛰어갔다.
지금 상황에 인사 차리는 건 웃긴 일이다.
응급수술실은 응급실 한쪽에 준비되어 있었다.
주로 열상(짖어진 상처), 자상(찔린 상처) 등을 봉합할 때 사용되거나 말 그대로 숨넘어가는 환자를 응급수술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태수가 응급수술실로 빠르게 들어가자 조현정 간호사가 수술용 가운을 펼쳐 놓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선생님 여기요!”
“감사합니다.”
태수는 인사와 동시에 다가가 팔부터 넣었다.
조현정 간호사가 수술복을 당기고 고정시키는데 걸리는 시간은 단 10초.
그녀의 손놀림이 예전에 비해 얼마나 빨라졌는지 알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뒤를 이어 헤어캡과 마스크를 착용한 태수는 수술 장갑을 끼우며 오연택에게로 다가갔다.
“쿨럭쿨럭!”
오연택의 기침은 쉽게 그치지 않는지 괴로움으로 가득했다.
남자간호사들은 이미 응급수술실을 나갔다.
뒤따라 성진수가 후다닥 들어와 코데인(기침억제제)이 든 주사기를 건넸다.
“여기 코데인 가져왔습니다.”
“성 선생은 지금부터 보호자들과 같이 있어. 계속 아들과 통화하라고 하고. 출발한 후에 어떤 상황인지 대략적으로 설명해 주고. 얼마나 버틸지는 누구도 몰라.”
“갑니다!”
성진수가 부리나케 다시 응급수술실을 나갔다.
그 사이 수술복을 입은 조현정 간호사가 다가와 섰다.
“뭐부터 할까요?”
“씨암 가져오시고. 마취제, 모르핀 준비해 주세요.”
수술을 염려한 태수의 조치였다.
조현정 간호사가 빠르게 몸을 움직이는 사이 태수도 IV에 코데인을 바로 추가했다.
그리고 1분.
느릿느릿 지나가는 시간을 초조하게 기다리자 조금씩 기침이 멎어갔다.
태수는 그제야 오연택에게 물었다.
“어떠십니까?”
“목이…… 계속…… 간질간질한 게…… 속은 찢어지는…… 거 같이 아프…….”
오연택의 목소리가 계속 끊어졌다.
이젠 데메롤(비마약성진통제)도 소용없는 모양이다.
태수의 머릿속에 모르핀이 바로 떠올랐다.
준비시켜 놓은 약품이기도 했다.
일정량 이상 사용하게 되면 중독 증세를 보인다. 하지만 지금 오연택에게는 중독보다 당장 한 시간이 중요했다.
고개를 끄덕인 태수는 나지막이 말했다.
“조 간호사, 모르핀.”
“…….”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태수가 얼른 뒤돌아봤다.
그때 태수의 눈에 조현정 간호사 대신 빠르게 수술복을 입고 있는 정민수의 모습이 보였다.
숙련된 손놀림으로 수술복을 고정시키며 정민수가 말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태수는 정민수를 보자 왠지 든든함이 앞섰다.
수많은 난관을 함께 넘어온 친구이자 동료.
또 한 번 서로의 한계에 도전할 시간이다.
태수가 바라보는 사이 정민수는 모르핀을 주사에 담아 빠르게 다가왔다.
“바로 주사합니까?”
“그래.”
태수의 대답과 동시에 정민수는 모르핀을 IV에 추가했다.
그때 태수가 정민수의 등에 대고 조용히 말했다.
“딱 두 시간만 벌자.”
움찔.
정민수의 몸이 순간 멈췄다.
천천히 돌아본 정민수는 태수와 시선을 마주한 순간 고개를 끄덕였다.
더는 어떤 말도 필요 없는 사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