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885
01888 1888화
“그래. 긴 얘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그래서 여기 일정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
“회복의 정도를 봐야겠지만 길어도 일주일이면 안정될 겁니다. 그보다 지하수 개발도 진행하신다고요.”
“아까 봤으면서 묻기는. 100미터건 200미터건 파헤쳐서 꼭 안정된 식수를 공급하게 할 거야.”
“그게 돈이 상당히 많이 든다는데요.”
태수가 조심스레 묻자 석정현 회장이 크게 웃었다.
“하하. 돈? 그런데 그게 뭐 대수냐. 그 돈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안정적으로 살아간다면 말이야.”
“제가 장담하는데 이번 일은 무조건 수첩에 적어 놓아야 합니다.”
“음, 그래도 되나?”
“네. 꼭 적어 놓으셔야 할 일입니다. 저도 어딘가에 적어 놓겠습니다. 잊어버리지 않고 꼭 기억해 두고 있겠습니다.”
태수의 말.
진심이었다.
그걸 너무도 잘 아는 석정현 회장이 나이답지 않게 천진난만한 미소를 보였다.
잠시 후, 태수와 석정현 회장과의 정 깊은 대화가 끝났다.
그리고 석정현 회장이 옴부르 부족을 찾아간다며 남은 의사 중 한 명을 대동해 길을 떠났다.
태수도 이젠 원기를 보충해야 할 때였다.
그런 생각으로 숙소 텐트로 향하던 중이었다. 사이먼 기자가 식탁 대용으로 사용하는 테이블에 노트북을 펼쳐 놓고 있었다.
의아한 태수가 다가가 물었다.
“영상 빼 놓을 게 있어?”
“아니. 전송 중이야.”
“전송이라니? 어디로, 어떻게?”
태수가 놀라 바라보자 사이먼 기자가 한쪽을 가리켰다. 각 부족을 찾아 수많은 트럭들이 떠난 곳이었다.
거기에 몇 대의 트럭이 서 있었다.
그중 한 트럭 상부에 특이한 모양의 안테나가 보였다.
“저게 뭐야?”
“위성통신이 가능한 송수신기.”
“저런 게 있었어?”
“그럼. 오지에서는 상당히 많이 사용하는 거라고. 전송 속도는 정말 때려죽이고 싶은데,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사이먼 기자는 노트북의 전송 상태를 확인하며 진저리를 쳤다.
그럴 정도로 거북이 기어가듯이 느린 모양이다.
태수는 그런 거엔 별 관심이 없었다.
“좀 자야지. 피곤하지도 않아?”
“이거 먼저 보내고. 난 이게 주업이라고.”
사이먼 기자가 진지하게 말했으나 태수는 농담으로 화답했다.
“맨날 운전석에 앉아 있어서 운전기사가 주업인 줄 알았지.”
“아르바이트 공고를 잘못 봤어. 이렇게까지 돌아다닐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좌우간 일단 쉬라고.”
“그래. 수고해.”
태수는 가볍게 손을 흔들고 멀어졌다.
그리고 숙소 텐트에 들어가기 직전에 사이먼 기자를 한 번 더 쳐다봤다. 노트북을 노려보며 빨리 전송되길 재촉하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
하지만 태수는 그런 그가 전혀 우스워 보이지 않았다.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
왕복 거리 수백 킬로미터를 매일 오갔다. 그러는 와중에도 메모리가 다 될 때까지 사진과 영상을 촬영했다.
카나마에서도 느꼈지만 정말 천성이 기자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물론 개인적인 욕심이 없다면 거짓말일 터였다.
그러나 그가 보여 준 호의만큼은 진심이란 걸 태수를 비롯한 모든 의료진이 알고 있었다.
이 일이 모두 끝나면 진하게 술 한잔해야 할 것 같았다.
태수는 옅게 미소 지으며 숙소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지원 의료단이 도착한 후로 모든 게 순탄하게 흘러갔다.
기존 의료진들도 기운을 차리고 여러 부족들을 방문해 회복 과정을 눈으로 지켜봤다.
지하수도 세 곳 모두 개발되어 식수 부족을 완전히 해결했다.
기술자 말로는 지형적으로 땅이 물을 빨리 흡수하면 땅속 깊은 곳에 무조건 지하수층이 있다고 했다.
지금껏 한 번도 개발하지 않았으니 그 매장량은 어마어마할 거라고 확신하기도 했다.
그런 소식을 지제이를 통해 부족들에게 알렸다.
부족장들은 회의를 통해서 그곳을 중립 지역으로 선포하고, 누구도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마시리 부족과의 오해도 풀리고, 그동안의 오해에 대한 배상도 약속했다고 전해 들었다.
그렇게 순탄하게 부가라마의 일정이 모두 마무리되었다.
어느덧 떠날 시간이 되었다.
모두 타고 온 트럭들에 나눠 타고 부가라마를 떠나기 시작했다.
일부러 맨 마지막으로 출발한 태수는 사이드미러를 통해 멀어지는 학교를 지켜봤다.
그런 태수를 바라보며 사이먼 기자가 물었다.
“지겹지도 않아?”
“나쁜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니까.”
“좋은 일은 또 얼마나 된다고.”
“그래도 지금 머릿속에 남아 있는 건 좋은 추억뿐이잖아.”
“더럽고 고생한 게 더 많이 떠오르는데.”
사이먼 기자가 삐딱하게 말해도 태수는 입가에 미소를 잃지 않았다.
“5년 뒤에, 10년 뒤에…… 아니, 평생 힘든 기억만 남아 있진 않을걸?”
“그거야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미화되니까.”
“그리고 힘든 기억만 남아 있으면 또 어때. 앞으로 힘든 일이 있으면 그때도 이겨 냈다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
“편하게 사네.”
“여유롭게 살자고. 힘든 때가 있었으니까 지금 이렇게 웃는 거잖아. 자자, 거리 벌어진다. 어서 가자.”
텅텅!
태수가 대시보드를 내려치며 찡긋 미소 짓자 사이먼 기자도 빙긋 웃으며 가속페달을 힘차게 밟았다.
그러나 차는 이내 급정거를 해야했다.
끽.
갑자기 몸이 앞으로 쏠리자 태수가 정면을 바라보고 그대로 굳었다.
비포장도로 정면에는 수많은 원주민 부족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얼핏 봐도 거의 모든 원주민 부족들이 몰려온 걸 알아챘다.
사이먼 기자도 당황한 듯 목소리가 높아졌다.
“닥터 최, 뭐 흘리고 왔어?”
“아냐.”
“그럼 뭔가 잘못했어?”
“몰라. 일단 내려서 이야기해보자고. 저기 지제이도 보이니 통역은 될거야.”
태수는 말과 동시에 차에서 내렸다.
솔직히 당황스러운 상황이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태수였기에 그리 당황하진 않았다.
뚜벅뚜벅.
태수가 천천히 걸으며 생각했다.
무슨 일이지?
아직 사태 파악이 전혀 안됐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태수의 미소가 짙어졌다.
길에 있는 원주민 부족 모두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기다리는 모습을 본 탓이다.
마침내 태수가 지제이 앞에 서서 말문을 열었다.
“무슨 일입니까?”
“그게……”
지제이가 말꼬리를 흐렸다.
답답해진 태수가 막 다음 말을 꺼내려는 순간 원주민 부족 한명이 바로 앞에 섰다.
그리고 미소진 표정으로 태수 얼굴에 색칠을 시작했다.
스윽.
왼쪽 뺨에 빨간 물감이 그려졌다.
‘아하.’
그제야 태수가 눈치챘다.
호의다.
그것도 큰 호의다.
사실 원주민 부족들이 여기까지 오려면 꽤나 먼 길을 와야 했다.
그런데 왔다.
단지 자신에게 호의를 보이기 위해 온 길이다
태수도 안다.
저들이 여기 오려면 밤을 꼬박 새워 걸어와야 했다.
그런데도 피곤한 얼굴이 아니다.
오히려 정말 즐거운 표정이다.
순간 태수가 활짝 웃었다.
사람 사이에 느껴지는 진심에 가슴 한구석이 시원해진 기분이다.
잠시후.
태수 얼굴이 가관으로 변했다.
거의 원주민 전사 아니 그이상의 얼굴이다.
원래 피부색은 오간 데 없이 사라지고 무늬로 인해 험악한 얼굴로 변했다.
그래도 웃었다.
그려주는 손길마다 고마움이 물씬 풍겼다.
이거면 충분하다.
태수가 행복한 미소를 지을때 한 원주민 처녀가 수줍은 듯 다가와 손에 든 물건을 내밀었다..
“이건.”
태수가 순간 깜짝 놀랐다.
원주민 처녀가 내민건 돌 속에 박힌 다이아몬드 원석이었다.
표정이 변한 태수가 지제이를 바라봤다.
“이건 과분해요.”
“받으세요. 두 개 있으면 하나 더 드렸을 겁니다.”
지제이가 강하게 말했다.
입장이 어정쩡해진 태수가 망설이자 원주민 처녀가 결심한 듯 태수 손을 끌어다가 다이아몬드 원석을 쥐어줬다.
“아니 그래도.”
“@#$%^%$xx”
원주민 처녀가 말하자 지제이가 바로 통역했다.
“다시 꼭 오시랍니다.”
“…….”
태수가 말문을 닫았다.
쉽게 약속할 맹세가 아니다.
잠시 고민하던 태수가 고개를 쳐들었다.
“언젠가 꼭 오겠다고 말해주세요.”
“감사합니다.”
희색이 된 지제이가 모두에게 소리쳤다.
“다시 오신답니다.”
“우와아.”
원주민 사이에서 커다란 함성이 들렸다.
어느새 뒤에 온 의료진들도 뭉클한 얼굴이다.
다들 어느새 얼굴에 기이한 문양을 한 후였다.
태수는 짐작했다.
저들은 자신이 할 수 있을 최대한의 호의를 베풀었다.
이 하나면 충분했다.
그동안 고생한 기억이 한순간에 거짓말처럼 씻겨나갔다.
모든 의료진들 얼굴에도 그 기분이 고스란히 보였다.
좋은 날이었다.
시간이 흘러 키갈리에 도착한 트럭들은 숙박 단지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서 또 한 번 석정현 회장의 커다란 배포를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었다.
서강재로부터 엄청난 소식을 전해들은 태수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몇 개의 호텔을 통째로 빌렸다고?”
“규모가 좀 작은 것들이지만.”
“기존 투숙객들은?”
“여기 남아 있던 지원팀이 일일이 양해를 구하고 더 좋은 호텔로 옮겨 줬을 거야. 그렇게 한다고 들었으니까.”
서강재의 말에 태수는 침묵했다.
보통사람들과 생각 자체가 다른 석정현 회장의 마음은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언제나 그 이상을 보여 줬다.
좋긴 좋았다.
호텔을 통째로 빌린 덕분에 누구의 눈치도 안 보고 쉴 수 있어 좋았다.
지금 태수와 서강재도 호텔 로비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지나는 사람들은 모두 의료진들뿐이었다.
부가라마에서 인사를 했고, 또 충분히 대화했기에 다들 자기 갈 길에 집중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초원이 가득한 곳에 있다가 도시에 오니 어색하면서도 편한 점이 많았다.
무엇보다 시원한 에어컨의 존재가 너무도 소중하게 느껴졌다.
태수가 환하게 웃으며 두 팔을 벌렸다.
“아, 좋다.”
“나도 좋다. 솔직히 너무 더웠어.”
“난 거기서 석 달이나 있었다고. 그것도 우기부터 말이야.”
“진짜 대단한 거야. 때로는 그 무모함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니까.”
서강재가 한숨부터 내쉬었다.
태수는 괜한 말이 부담스러워 슬쩍 말을 돌렸다.
“그나저나 여기 호텔 직원들 진짜 친절하지 않냐?”
“그건 나도 좀 놀랐어. 역시 통째로 빌리니까 직원들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잘해 주는 거라고. 르완다도 자본의 논리가 적용되어 가는 거지.”
“안타까운 걸 떠나서 편하면 됐지.”
그런 소소한 대화를 하며 느긋하게 에어컨의 시원함을 즐길 때였다.
부우웅.
밖에서 들려오는 차 소리에 태수와 서강재가 동시에 고개를 돌려 봤다.
르완다에서 보기힘든 고급승용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서강재가 먼저 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회장님인가?”
“이 호텔에 머무신다고 했지? 이따가 저녁에 술 한잔 사 달라고 해야겠다.”
“넌 그분들이 어렵지도 않나 봐.”
서강재가 질렸단 표정을 지었으나 태수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어려우니까 다가가야지. 안 그래?”
“옳은 소리기는 한데 그게 마음처럼 쉽진 않다고. 그런데 저 사람들 뭐냐? 왜 빼입은 사람들이 내리는 건데?”
서강재는 놀랐는지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그건 태수도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운전기사로 임시 고용된 현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슈트 차림의 남자들이 내려 다가오고 있었다.
놀란 건 태수와 서강재뿐만이 아니었다. 지나가던 다른 의료진들도 멈춰 서서 무슨 일인지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띵.
엘리베이터 소리가 들려 태수와 서강재는 한 번 더 똑같이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안에서 석정현 회장이 슈트 차림으로 나왔다.
시기적절한 그 모습에 다들 의구심만 커져 갔다.
다들 지켜보는 사이 석정현 회장이 슈트 차림의 남자들과 가볍게 인사와 악수를 나누고는 같이 떠나갔다.
부웅.
의혹만 가득 남긴 채 고급승용차는 호텔을 떠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