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917
01920 1920화
서영우는 태수의 호기에 이끌려 가지 않고 냉정하게 물었다.
“최 팀장, 다시 물을게. 난 어떻게든 버틸 수 있고, 정 안 되면 수술을 멈추게 할 수도 있어. 그런데도 5시간 안에 가능하겠어?”
“네.”
“좋아. 팀장이 그렇게 나오면 나도 힘 좀 내 봐야지.”
서영우는 가볍게 팔을 돌리며 근육을 풀었다.
경험상, 지금부터 엄청난 속도로 진행될 걸 알기에 미리미리 준비했다.
그건 서영우뿐만이 아니었다.
노지연 간호사는 물론이고 김혁권과 김수진 간호사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태수와 여러 번 수술한 경험이 있었다.
정규 수술 외에 산과 들, 도로 한복판에서 수술한 적도 많았다.
그런 경험이 있기에 대비하는 법도 알았다.
그사이 태수는 환부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전격성 간염.
사실 전격성 간염의 치료 방법 중 가장 확실한 건 간이식이었다.
하지만 조선영은 간이식 수여자 명단에 올리지도 못했다.
그 시간을 기다릴 정도로 심장과 폐, 신장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런 상황이었으니 그 원인이 되는 간은 당연히 더욱 문제가 심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급성으로 진행되어 수술이 가능했다.
만성적으로 서서히 간 기능을 상실했다면 어떤 답도 나오지 않았을 일이다.
급성으로 발병해서 간이 부분적으로 기능을 상실해 가는 중이었다. 기능을 잃어 가는 부분만 제거하면 호전될 가능성이 높았다.
태수가 노리고 있는 건 바로 그 점이었다.
이 고비만 넘어가면 된다.
환부를 바라보던 태수는 가슴을 크게 부풀렸다가 가라앉혔다.
그리고 몸을 움직여 마취 중인 조선영의 귓가에 가까이 다가갔다.
“지금 옆 수술실에서 따님도 함께 수술받고 있습니다.”
“…….”
어떤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당연한 것이기에 태수는 자신의 말을 차분하게 이어 갔다.
“약속드립니다. 저희가 가진 모든 걸 쏟아 내겠습니다. 그 과정이 조금 힘겹게 느껴지실 수도 있습니다.”
“…….”
“대신 이 고통이 마지막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눈을 떴을 때 따님의 고운 얼굴을 다시 볼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따님과 함께 장도 보러 가고, 쇼핑도 하러 가게 해 드리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이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시고 한 번만, 딱 한 번만 견뎌 주십시오.”
기나긴 혼잣말을 마친 태수는 조선영의 얼굴을 바라봤다.
어떤 대답도, 또 어떤 표정도 나타나지 않았다.
마취한 그 상태 그대로 눈을 감은 채 인공호흡기 속에서 고른 숨을 내쉬고 있었다.
하지만 태수는 자신의 말이 전달됐을 거라 믿었다.
그리고 스스로 환자에게 한 약속이었다.
이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어떤 조건도 없고, 변명의 여지도 없다.
그냥 지켜야 하는 약속이다.
조선영의 얼굴을 한 번 더 바라본 후 태수는 집도의 자리로 돌아왔다.
서영우를 시작으로 송민규, 김혁권을 포함한 모든 의료진들의 눈빛이 가라앉다 못해 비장하게 변했다.
태수가 한 약속은 곧 자신들의 약속이다.
그럼 그 약속을 지킨다.
그 외에는 어떤 생각도 없었다.
태수는 비장한 모습의 모두를 크게 둘러본 후 말했다.
“수술 재개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수술실 가득 씩씩한 목소리가 울렸다.
그렇게 인사가 끝난 순간 모두의 손이 동시에 움직였다.
전쟁보다 더 치열한 수술이 시작되었다.
탁탁.
태수의 손에서 수술 도구들이 수시로 바뀌었다.
이 순간만큼은 김혁권의 감각에 의지하지 않고 직접 오더했다.
“메젠바움, 에디슨, 티슈 포셉, 러시안 포셉, 메젠바움 베이비, 모스키토, 뱁콕…….”
“보비, 썩션, 후크 주시고요. 알렌코커, 엘리스……. 썩션 다시. 거즈! 센리트렉터, 빨리…….”
태수의 움직임에 맞게 송민규도 수술 도구를 수시로 바꿨다.
태수는 손놀림에 거침이 없었다.
집중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상태라 가느다란 혈관 하나까지도 선명하게 보였다.
머릿속으로 지금 수술하는 부위뿐만 아니라 앞으로 진행될 부분까지도 계산했다.
이미 머리가 한 수 앞서 있고, 손이 따라가면 되는 상황이라 태수의 진행 속도는 무시무시했다.
그런데 그런 태수의 속도를 송민규가 어느 정도 따라갔다.
김혁권이 틈틈이 돕긴 했지만, 태수의 상당한 스피드를 송민규 혼자 근접하게 해내고 있었다.
태수의 뒤만 쫓아왔다는 말이 허언이 아니라는 걸 또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모든 순간 깔끔하게 따라올 순 없었다.
조금이라도 송민규가 늦어지면 태수는 가차 없이 질책했다.
“뭐 하는 거야! 거기 똑바로 처치 안 해?”
“바로 진행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따라오지 말고 확실히 마무리 지으라고. 거기 출혈도 걷어 내고!”
“네!”
송민규는 수술에 들어온 인턴보다 더 긴장하고 있었다.
그런 긴장감이 스스로를 계속 일깨우며 태수의 속도에 반응하게 했다.
태수는 그런 송민규를 전에 없을 정도로 호되게 질책하며 수술을 이어 갔다.
그를 가르친단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수술을 원활하게 진행하고, 또 정해 놓은 시간 내에 마무리 짓는단 생각밖에 없었다.
수술실은 가르치고 배우는 장소가 아니다.
환자의 동의하에 대학병원에서 진행하는 참관 수술이나 실습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응급의료대는 수련 병원이 아니다.
순수하게 전문의로만 구성된 실전 위주의 의료팀이다.
서로 의견을 교환할 수는 있어도 가르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지금 하는 거친 말들은 모두 진심이었다.
견디다 못한 송민규가 두 손 들고 나가떨어져도 관심 없었다.
환자를 위해 스스로 약속한 걸 지키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다할 뿐이었다.
반면 송민규는 태수의 생각 이상으로 악착같이 따라붙었다.
절대 늘어지지 않았다.
마치 목에 칼끝이 닿은 것처럼 등골이 서늘한 긴장 상태를 유지한 채 미친 듯이 태수의 수술을 보조했다.
그리고 그건 송민규뿐만이 아니었다.
서영우와 노지연 간호사, 김수진 간호사도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노 간호사, 수혈팩부터!”
“여기 말씀하신 주사약들이요. 수혈팩 교체하러 갈게요.”
“교체한 후에 인슐린 하나, 승압제 하나!”
“바로 준비해 갈게요.”
노지연 간호사의 대답이 끝난 후였다.
서영우는 ECG에 집중하며 태수에게 소리쳐 말했다.
“최 팀장, 혈압이 너무 떨어졌어. 출혈을 잠깐만 줄여 줘. 가능해?”
“잠깐은 가능합니다. 5분 정도면 됩니까?”
“어느 정도는. 푸우. 마취 강도 다시 올렸고, 산소 흡입량도 올렸어.”
“지금 상태 유지하면서 계속 가겠습니다.”
태수의 대답이 끝나자 서영우는 더 말하지 않았다.
서로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라 굳이 대화를 끝까지 마무리할 이유가 없었다.
그사이 김혁권이 센리트렉터를 불쑥 내밀었다. 그리고 간과 위 사이를 좀 더 넓게 벌리며 말했다.
“여기 자꾸 닿습니다.”
“위장관출혈은 없습니까?”
“위가 홀쭉해요. 그렇다고 약간의 출혈도 없진 않겠지만.”
“그럼 좀 더 지켜보는 걸로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을 마친 태수가 간 아래쪽을 수술하려다 멈칫했다. 그리고 빠르게 무언가를 확인하고 송민규에게 말했다.
“송 선생, esophageal varix(식도정맥류)야.”
“문맥의 압력이 높으면…… 문맥압부터 줄이겠습니다.”
“방법은 알 거라 믿고 난 다음으로 넘어갈게.”
태수는 떠맡기듯이 말하고 다른 쪽으로 향했다.
그건 방치하는 게 아니라 송민규를 믿는단 의미와 같았다.
송민규 또한 외과적 지식이 충분했기에 바로 서영우에게 오더했다.
“서 선생님, octreotide(옥트레오타이드) 투여해 주십시오.”
“그건 좀 찾아야 돼. 준비되는 대로 투여하고 말해 줄게.”
서영우의 대답을 들은 송민규는 다른 건 뒤로하고 간문맥에만 집중했다.
그러던 그가 태수에게 빠르게 말했다.
“잘못 건드리면 터집니다. TIPS(문맥간정맥단락술)를 진행해야 합니다.”
“바로 전환해. TIPS로 전환합니다. 문맥에 좀 더 집중해 주세요.”
“네!”
태수의 말에 의료진들은 바로바로 반응했다.
그 뒤로도 마찬가지였다.
간의 부분 절제 및 병변 제거가 가장 큰 목적이었다.
하지만 다른 증상이나 병이 발견되면 빠르게 방법을 전환해 그 부분부터 해결하고 넘어갔다.
간의 기능이 많이 약해진 상태라 작은 출혈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에 미리미리 수술로 예방해야 했다.
그런 변수들이 터져 나옴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수술 속도는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후였다.
탁.
태수는 니들홀더에 연결된 봉합사를 끊었다.
그와 동시에 시간을 확인했다.
수술 시작 후 정확하게 14시간 30분이 지나 있었다.
태수가 약속한 5시간에서 30분이나 빨랐다.
하지만 수술이 완전히 끝난 건 아니었다.
“후욱, 후욱.”
태수와 송민규가 수술대를 두고 좌우에 서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손아귀가 저릿했고, 팔이 뻐근했다.
힘을 주는 처치들이 많아서 어깨와 가슴 근육이 부풀어 있었다.
헤어캡은 물론 수술 가운의 목과 등도 축축했다.
마스크도 눅눅해진 느낌이었다.
거친 숨을 얼마나 많이 내쉬었는지 입김이 쌓여 물기가 생긴 탓이다.
그런데도 눈빛은 지친 기색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강렬한 시선은 환부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곧 서영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불안정해. 조금만 시간을 더 줘.”
“…….”
“10분 안에 안정시켜 볼게. 김 간호사, 미안한데 IV 좀 맡아 줘요. 노 간호사는 이쪽으로.”
서영우의 말이 끝나자 김혁권이 태수의 뒤를 돌아 IV로 향했다.
반면 태수와 송민규는 그 모습 그대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수술에서 가장 위험한 건 수술 직후와 마취에서 깨어날 때였다.
마취에서 깨어나기 전까지는 합병증이나 심장의 돌발 상황을 걱정해야 했다.
그런 것들과 관계없는 수술 직후가 위험한 건 자신도 모르게 풀어지는 마음 탓이었다.
태수와 송민규는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았다.
거침없이 진행된 수술인 만큼 환자의 바이탈이 불안했다.
그 불안감이 안정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었다.
서영우의 목소리가 귓전을 끝없이 울릴뿐이다.
“노 간호사, 항생제하고 스테로이드 하나 더. 그리고 소변은 어때요?”
“나쁘지 않아요.”
“그럼 이뇨제 말고 승압제 하나 준비해 줘요.”
“바로 준비할게요.”
노지연 간호사의 대답이 끝나자 서영우는 바로 김혁권에게 물었다.
“혈액은 잘 들어가고 있습니까?”
“원활합니다.”
“그럼 수액 투여량을 조금 줄여 주시고, 혈액이 더 많이 들어갈 수 있게 해 주세요.”
서영우는 환자의 바이탈을 안정시키기 위해 하나하나 세세하게 신경 썼다.
어떤 과정을 거쳐 수술했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안일함으로 환자에게 문제가 생기지 않길 바랐고, 모두가 힘을 합쳐 노력한 수술 과정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도록 노력했다.
옆에서 여러 소리가 들려왔지만 태수와 송민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대신 환부를 유심히 관찰하며 아주 조그마한 문제라도 발견하려 노력했다.
그렇게 초조한 시간이 지난 후였다.
삑, 삑.
ECG 소리가 안정되었다.
그런데도 아직 아무도 긴장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1분여 정도 시간이 더 지난 후 서영우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후우. 김 간호사님, 팀장 옆으로 가셔도 됩니다. 다들 기다리느라 고생했어요.”
“이제 괜찮은 겁니까?”
“간신히. 완전히 안심할 정도까지는 아니야. 워낙 시작부터 몸이 좋지 않은 상태여서 중환자실에서 집중적으로 관리를 받아야 할 거 같아.”
“음, 역시 제가 무리했나 봅니다.”
태수의 말에 서영우는 바로 반박했다.
“그렇게 몰아붙이지 않았으면 지금 수술이 끝났겠어?”
“…….”
“우리는 환자에게 약속했고, 그걸 지킨 거야. 그리고 환자도 우리 약속에 호응해 줘서 큰 문제 없이 여기까지 온 거잖아.”
“그건 그렇죠.”
“자자, 20분 남았어. 최 팀장이 더 시간 끌면 마무리가 늦어져. 그럼 기껏 지킨 약속을 어긴 게 된다고.”
서영우가 슬쩍 넉살을 부리며 독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