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94
00195 195화
태수에게 탈장증세야 큰 문제없이 진행할 수 있는 수술이다. 다만 응급이라고 하는 걸 보니 환자의 고통이 상당한 모양이었다.
그것도 그렇지만 위치도 썩 좋지는 않았다.
이 정도야 태수가 커버할 수 있지만 문제는 마취의가 없다는 점이다.
태수는 우선 정민수에게 전화했다.
“송 선생 수술 들어가니까, 과장님 보조해.”
“치프가 수술하시면 제가 들어가야죠.”
“너까지 수술실 들어오면 공백이 커져.”
“알겠습니다.”
바로 수긍하는 정민수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태수는 통화를 종료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태수는 바로 간호사실 내선전화기를 이용해 마취과에 전화했다.
“마취과입니다.”
“외과 치프입니다.”
“아, 최 선생님. 진짜 선생님들 안 계세요.”
“레지던트는 있을 거 아닙니까.”
태수의 말에 마취과 간호사가 살짝 당황했다.
“저희 치프는 수술중이고요, 4년차 선생님들도 어시스던트로 수술실 들어갔어요. 지금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고요. 나머지는 그건 제가 어떻게 말씀드릴 수가 없는데요.”
“서영우 선생님께 제가 부탁드렸다고 말씀드리고 레지던트라도 보내달라고 하십시오.”
서영우는 가끔 태수와 수술을 진행하는 마취과 전문의다.
태수에게 호의를 보이는 의사들 중에 하나이기도 했다.
허나 통화 중인 마취과 간호사는 우물쭈물했다.
“그래도 그게요…….”
“수술실 열었습니다. 마취과 안 들어와도 어떻게든 진행할 겁니다.”
“선생님!”
“우리도 급합니다. 그러니까 좀 부탁드립니다.”
태수는 통보하듯이 말을 마무리 짓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함은선 간호사가 슬쩍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태수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잘 될 겁니다.”
“믿어요.”
“그럼 갑니다.”
태수도 지체할 시간이 없기에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수술복을 걸치고 개수대에 도착하니 김수진 간호사 걱정스러운 얼굴로 빠르게 다가와 물었다.
“마취과 의사도 없이 수술하신다고요?”
“김 간호사님 계시니까 문제없을 거 같은데요.”
“전 제가 불안해서 그래요.”
“안심하세요. 누구라도 들어올 거니까.”
태수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손을 씻기 시작했다.
드르륵!
태수가 손을 씻는 사이 뒤로 환자를 실은 스크레쳐카가 지나갔다.
앞에서 스크레쳐카를 끌고 가던 송민규가 태수를 발견하고 얼른 말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나도 곧 들어가지.”
태수는 태연했지만 송민규의 얼굴에는 옅은 불안감이 지워지지 않았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김수진 간호사가 세팅을 모두 끝낸 상태였다.
아직 마취되지 않은 환자가 조금은 불안한 얼굴로 태수를 힐끔거렸다.
태수가 먼저 다가가 비슷한 나이대의 성찬용 환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격통이 잠시 가라앉은 사이인지 신음소리는 흘러나오지 않았다.
“안녕하십니까. 외과 치프 최태수입니다.”
“저기…….”
“왜 그러시죠?”
“치프면 레지던트 아닌가요?”
성찬용의 불안함을 눈치챈 태수는 마스크 사이로 보이는 눈으로 미소를 보였다.
“걱정되십니까?”
“죄송한데, 솔직히 그러네요.”
“이런 이야기가 불안함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탈장 수술은 많이 집도해 봤습니다.”
태수의 말에 성찬용은 못 믿겠다는 표정이다.
“진짜요?”
“아니면 과장님이 저에게 수술을 맡기셨을 리가 없죠. 그리고 간단한 수술은 레지던트들도 자주합니다.”
“그럼 제가 선생님을 믿어도 되나요?”
“개운하게 일어나게 해 드릴 테니까 한숨 주무신다고 생각하세요.”
겸손하면서도 자신감을 보였다.
태수 나름대로 환자들을 대하는 방법이었다.
물론 결과도 나름 좋았다.
성찬용의 얼굴에도 그런 믿음이 떠오를 때였다.
드륵.
“마취과에서 왔습니다.”
그 말에 돌아보자 마스크를 낀 의사가 다가오고 있었다.
마스크 때문에 이목구비가 확실하지 않았다.
“잠시만요.”
양해를 구한 태수가 마취과 의사에게 다가갔다.
전문의가 모두 수술실에 들어가 있는 상황이라면?
레지던트 4년차가 최고 짬밥이다.
즉 태수와 동급 아니면 아래라는 확신이 섰다.
태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지?”
“3년차 신종원입니다.”
“3년차?”
태수의 눈살을 살짝 찌푸려지자 신종원이 빠르게 변명했다.
“서영우 선생님께서 저밖에 믿을 의사가 없다고 보내셨습니다.”
“호흡기마취 할 줄 알지?”
“몇 번 어시스던트한 경험은 있습니다.”
“음.”
태수는 그 말에 순간 눈을 감았다.
아무리 아무나 보내라고 했다지만 직접 경험도 없는 3년차를 보낸 건 암담했다.
혹시 서영우 전문의가 자신을 싫어하나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수술을 취소할 수도 없었다.
“끙.”
신음 소리와 함께 성찬용 환자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지기 시작했다. 잠시 멈췄던 통증이 다시 시작되려는 모양이다.
태수는 탈장을 간단하지만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 할 수술이다.
지체하다가는 장폐색이나 복막염 등 여러 가지 합병증을 유발하고, 사망까지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태수의 머릿속에는 마취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들이 들어있다.
카슈미르에서 직접 마취와 집도까지 했던 경험이 너무도 많은 탓이다.
그 때문에 수술에 사용되는 마취약의 종류, 발현작용, 수치 변화 시 대응책까지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마취과 전문의와 같이 세세하게는 모르지만 수술을 진행할 정도는 됐다.
순간 태수는 쓴 미소를 지었다.
외과 레지던트 가리키는 것도 정신없는데, 마취과 의사까지 키워야 할 판이다.
그래도 아쉬운 소리보다는 수술이 우선이다.
태수는 신종원에게 물었다.
“본 건 있다고?”
“네! 복습도 많이 했습니다.”
“그대로만 해.”
“네?”
“그대로 하라고.”
태수는 그 말을 끝으로 눈짓했다.
환자 머리 맡.
마취과 의사의 자리다.
멈칫한 신종원이었지만 그도 욕심이 있는 모양이었다.
눈빛을 반짝인 신종원이 얼른 자리로 향했다.
빠르게 ECG 모니터로 환자의 혈압, 맥박, 산소포화도 등을 확인한 신종원이 김수진 간호사에게 요청했다.
“에테르(흡입마취제 일종)와 아트로핀 준비해 주세요.”
태수는 눈 하나 끔뻑이지 않고 지켜봤다.
이내 준비된 호흡기와 마취약을 받아 든 신종원이 환자에게 말했다.
“이제 마취 시작……. 저 환자분, 혹시 마취 부작용 같은 거 있습니까?”
절레절레.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신종원이 호흡기를 환자에게 착용시키고 기화된 마취제를 서서히 투입시켰다. 그리고 모니터를 주시하며 아트로핀을 조금씩 투여했다.
에테르는 호흡 마취의 기본이라고 할 정도로 많이 사용되고 안전한 축에 속했다.
기관지 자극이 강하기에 아트로핀과 혼용해 사용한다.
처음 마취를 하면서도 그 점을 잊지 않은 건 칭찬해 줄 일이다. 게다가 마취 부작용에 대해서 물어본 것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태수가 생각할 때였다.
신종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취 됐습니다.”
“신 선생.”
“네? 네. 말씀하십시오.”
신종원의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했다.
이미 태수는 외과를 넘어 전 의과에 야누스 치프라고 소문이 자자했다.
특히나 환자에 있어서는 더더욱 철두철미하다는 걸 송민규를 통해서도 들었다.
물론 태수가 다른 의과 레지던트에게는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었다.
자신의 권한 밖인 탓이다.
그래도 소문에 의한 공포심이야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태수는 개의치 않고 신종원에게 말했다.
“다음에는 환자에게 물어보기보다는 간단한 테스트라도 하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죄송합니다.”
“나무라는 건 아니니까 긴장하지 말고. 호흡 떨어진다.”
태수의 말에 모니터를 바라보던 신종원이 얼른 산소 밸브를 열었다.
“너무 많아.”
“아차!”
신종원이 부랴부랴 행동하자 태수가 침착하게 말했다.
“천천히 해도 돼.”
“죄송합니다.”
“이제 괜찮으니까. 잘 부탁하지.”
다행히 환자에게 문제가 될 상황은 아니었기에 태수는 덤덤한 시선으로 수술대로 향했다.
아직까지는 큰 문제없으니 진행하는 게 옳았다.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반대편에 선 어시스던트 송민규가 외치자 뒤를 따라 모두 후창했다.
태수는 드러난 환자의 복부를 확인했다.
왼쪽 배 부분이 일부 부어오르고 빨갛게 변한 모습이다.
“메스.”
태수의 말에 송민규가 빠르게 수술도구를 불렀다.
“발포어(고정형 리트렉터).”
“발포어 말고 디버로. 송 선생. 정신 똑바로 차려.”
태수가 따끔하게 정정해 주자 송민규가 아차 했다.
탈장은 무턱대로 개복하지 않았다.
먼저 장을 밀어 넣을 수 있으면 그렇게 진행하는 게 옳았다.
피부를 조금만 절개하는데 고정형 리트렉터까지는 필요도 없었다.
“죄송합니다.”
“수술부터 계속 진행한다.”
태수는 싸늘한 목소리로 응대했다.
송민규도 그런 태수의 성격을 이제는 알기에 별달리 말하지 않았다.
메스로 부어오른 피부만 절개했다.
송민규가 디버로 살을 잡아당기자 탈장된 부위가 드러났다.
그런데 상황이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았다.
탈장 된 후 방치한 시간이 길어서 그런지 뽀얀 살색이어야 할 탈장 부위가 검붉게 변색된 모습이다.
태수는 바로 송민규에게 물었다.
“이런 경우에는?”
“개복 후 문제가 되는 장의 일부를 제거한 후에 다시 봉합해야 합니다.”
“좋아. 발포어 주고. 신 선생. 마취 강도 올려.”
태수가 오더를 내리자 수술실이 한 번 더 분주해졌다.
메스로 넓게 피부를 가르고 고정형 발포어로 아물어지지 않게 고정시켰다.
마취 강도가 올라간 환자는 그런 고통을 느끼지 못한 상태였다.
태수는 환자의 상태를 잠시 바라보며 생각했다.
외국에서는 이런 탈장 수술 정도는 레지던트 1, 2년차도 할 수 있다.
그만큼 경험의 기회를 폭넓게 열어 준 탓이다.
유일한 3년차인 송민규였기에 태수는 좀 더 신경이 쓰였다.
그에게는 처치에 대한 경험보다는 수술에 대한 경험을 더욱 많이 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환자에게는 자신이 집도한다고 말한 상황이다.
환자에게 한 약속은 절대적이다.
그걸 무시하는 순간 의사로서 자질이 없다는 게 태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허나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태수가 보조하고 있는 김수진 간호사에게 말했다.
“뱁콕하고 포셉 주시고요. 송 선생은 엘리스하고 메젠바움 들어.”
“여기요.”
태수의 말에 김수진 간호사가 빠르게 수술 도구를 건넸다. 그런 반면 송민규는 자신 앞에 다가온 두 개의 수술 도구에 멈칫했다.
어시스던트가 메젠바움(가위의 일종)을 들 경우가 그렇게 많지 않은 탓이다.
특히나 이런 간단한 탈장 수술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러니 더더욱 의아함이 더해졌다.
그래도 일단 양손으로 수술 도구를 잡았다.
그때 태수가 말했다.
“내가 이쪽을 절개할 테니까, 송 선생은 그쪽을 맡아.”
“그 말씀은.”
“조금이라도 빨리 끝내야 환자에게 부담이 줄어.”
태수는 그렇게 말하고 수술을 진행했다.
반면 송민규의 손끝이 살짝 떨려왔다.
단순한 어시스던트가 아니라 제2집도의를 맡긴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어시스던트가 사라지게 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기우라는 걸 알려주듯이 태수의 손놀림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막말로 이잠바크에서는 혼자서도 수술을 한 경험이 있다.
이 정도 수술은 누구의 도움이 없어도 해낼 수 있었다.
그런 태수와는 다르게 송민규는 간단한 탈장수술이라도 혼자서 집도할 역량은 되지 않았다.
그래도 집도의가 하라면 해야 한다.
더구나 이런 좋은 기회를 아무 생각 없이 날려버릴 송민규도 아니었다.
엘리스와 메젠바움을 움직이는 손길에 약간의 흥분까지도 서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