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987
01990 1990화
더더욱 놀라운 건 맨 앞에 박진구가 서 있다는 거였다. 그는 날카로운 눈매로 태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얘들아, 손님 왔다.”
“모시겠습니다!”
우르르.
엘리베이터가 비좁을 정도로 몰려든 외과 레지던트들이 병상을 밀기 시작했다.
병상이 스쳐 지나가는 사이 박진구가 말했다.
“소주 한잔 사라.”
드르륵.
병상이 빠르게 밀려가자 박진구의 모습도 멀어졌다.
수술장 입구까지는?
역시 고속도로였다.
세 사람을 태운 병상은 거침없이 수술장 입구로 향했다.
거기에 외과 레지던트들은 인원도 많고 힘도 좋아 이동 속도가 훨씬 빨랐다.
그렇게 달려간 수술장 입구에도 레지던트가 대기 중이었다.
병상이 가까워지자 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
역시 무사통과.
수술장 내부 복도는 아예 아무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수술실 입구.
그 앞에 추인성이 서 있었다.
텅!
그가 발로 수술실 문을 열어 젖혔다.
거기서 끝이 아닌지 병상보다 한 발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상황까지 모두 확인한 태수는 직감했다.
이 수술에 쏠린 시선들이 그만큼 많았다.
부담을 주기 위한 관심이 아닌 응원의 시선들이었다.
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다?
그건 이미 안다.
“자, 가자.”
태수가 눈빛을 번뜩였다.
이제 다시 죽음과의 한판 승부가 시작됐다.
아니 사랑이 시작됐다.
더도 덜도 아닌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
죽음.
늘 가까이 있지만 밀어내야 할 존재기도 했다.
잠깐 시간이 지난 후였다.
수술실 안은 모두가 빠져나가고 응급의료대 의료진들만 가득했다.
태수와 이선정 간호사는 아직 나가지 않았다. 환자의 바이탈이 조금이라도 안정되는 걸 서서 지켜보는 중이었다.
장시간 심정지에 이어서 먼 거리를 이동했다.
다행히 이동 거리에 비해 이동시간은 엄청 나게 짧았다. 시간이 짧은 만큼 환자의 바이탈 변화도 심하지 않았다.
이젠 자신의 포지션에 선 서영우의 목소리에도 힘이 서렸다.
“칼륨, 마그네슘, 전해질 하나 더 추가하고…….”
“칼륨 여기요. 마그네슘부터 순차적으로 드릴게요.”
노지연 간호사의 반응 속도는 역시 빨랐다.
약이 하나씩 투여되는 사이 수술 가운에 마스크, 헤어 캡까지 완전히 수술 준비를 마친 정민수가 다가왔다.
“준비는 모두 끝났어.”
“수혈팩은?”
“저기.”
그가 턱짓한 방향으로 시선을 돌린 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의료 카트 하나에 수혈팩이 높게 쌓여 있었다.
아무리 동결침전제제가 준비되어 있다고 해도 혈우병 증세가 있는 환자였다.
출혈에 대한 우려를 지울 순 없었다.
그렇게 쌓여 있는 수혈팩 옆에는 인공심폐기가 준비 중이었다.
인공심폐기사, 다시 말해 체외순환사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최종 점검 중이었다.
곧 그가 태수를 향해 엄지를 내밀었다.
그리고 서영우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아직 불안한 상태인데, 이 정도면 예측 범위야. 수술에 들어가도 되겠어.”
“바로 수술 들어가도 됩니까?”
“마취는 했고, 근이완제는 퍼지는 중. 걱정 마. 수술실에 들어온 이상 내 눈 앞에서 심장 멈출 일은 없어.”
서영우가 자신감을 내보였다.
그건 결코 자만이 아니었다.
여기는 서영우의 안방이라 할 수 있는 수술실이다.
그의 실력이라면 아까와 같은 상황이 발생해도 훨씬 유연하게 해결될 수 있었다.
도성민과 유병태도 준비 완료였다.
모두 야전을 경험한 의사다.
응급 상황에 지금 이들보다 강한 수술팀은 없었다.
그렇기에 태수는 약간이나마 안도할 수 있었다.
그때였다.
드르륵.
수술실 문이 열리더니 앞서 출발한 의료진들이 수술 채비를 갖추고 들어왔다.
박성민과 김혁권이 도움을 받아 수술 가운을 입고 다가왔다.
태수는 모두가 모이자 말했다.
“집도는 정민수, 어시스던트 박 선배. 최우선으로 인공심폐기부터 연결합니다. 도 선생하고 유 선생이 도와 드리고.”
“응.”
“최대한 빨리 돌아오겠습니다.”
태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정민수가 말했다.
“이 간호사님하고 1시간만 쉬었다가 들어와.”
“…….”
“왜, 우리 못 믿어?”
정민수가 태수를 강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태수는 옅게 미소 지었다.
그를 못 믿는다는 건 있을 수 없었다.
그 외에 다른 의료진도 마찬가지였다.
태수가 고민 후 절충안을 제시했다.
“30분.”
“1시……. 됐다. 최소한 숨이라도 고르고 들어와.”
“알았어.”
“그럼 빨리 나가. 더 시간 지체되기 전에.”
정민수는 태수를 밀어내고 당당히 집도의 자리에 섰다.
박성민은 염연히 선배였지만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며 반대쪽 어시스던트 자리에 섰다.
정민수 옆에 유병태가, 박성민 옆에 도성민이 섰다.
그리고 의사들 가운데에는 김혁권과 최소현 간호사가 자리를 잡았다.
수술 준비가 완전히 갖춰진 모습을 보고야 태수도 돌아설 수 있었다.
거칠게 이어 갔던 CPR의 여파를 조금이라도 쉬면서 지워야 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최소한 수술복을 갖춰 입을 시간이 필요했다.
정민수를 비롯한 모두가 생명을 놓치지 않을 터였다.
그걸 알기에 태수와 이선정 간호사는 잠깐이나마 수술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수술실을 나온 후, 복도에 선 순간 태수와 이선정 간호사의 시선이 마주쳤다.
언제 다시 만나 수술실에 들어가야 할지 결정한 두 사람의 입이 거의 동시에 열렸다.
“30분.”
“30분.”
역시 의견이 일치했다.
이어서 시간까지 확인한 두 사람은 좌우로 흩어졌다.
태수가 도착한 장소는 수술 대기실이었다.
우선 수술복으로 갈아입어야 했가 때문이다.
문을 열고 들어간 수술 대기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태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번 수술에 온 병원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상태다. 그런데 아무리 응급으로 수술에 들어갔다고 해도 이 자리에 아무도 없단 게 이상했다.
물론 그런 궁금증은 지금 중요하지 않았다.
태수는 이젠 익숙한 걸음으로 탈의실을 찾아갔다.
끼익.
탈의실 안으로 들어가자 표진호가 서 있었다.
태수를 발견하자마자 그는 얼른 몸을 굽혀 곱게 개어진 수술복을 건넸다.
“여기 있습니다.”
“고마워.”
태수는 상의를 재발리 벗으며 표진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는 사이였다.
표진호가 수술복 차림으로 서 있었다.
방금 전에 봤지만 CPR에 집중하느라 얼굴만 확인했다.
옷을 갈아입던 태수가 불현듯 떠오른 생각을 바로 물었다.
“혹시 2번 수술실, 표 선생이랑 연관 있나?”
“네. 수술 준비 중이었습니다.”
“뭐?”
“박진구 선생님 수술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박진구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소주 한잔 사라.
레지던트들을 이끌고 온 것에 대한 보답을 말하는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랬나?
생각하는 사이에도 수술복을 갈아입는 손은 멈추지 않았다.
질문도 짧게 이어 갔다.
“환자는?”
“박진구 선생님이 직접 양해를 구하셨습니다. 수술이 끝나면 곧장 들어갈 예정입니다.”
“양해해 주셨다니 감사하네.”
“엄청 짜증내셨습니다. 어젯밤부터 금식하셨으니까요.”
표진호가 슬쩍 눈치를 보며 너스레를 떨었다.
상황이 심각하단 걸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태수의 긴장을 풀어 주려는 노력이었다.
태수도 그 뜻을 알기에 옅게 미소 지었다.
수술복 바지까지 갈아입은 태수는 시간을 확인했다.
이제 들어온 지 2분도 지나지 않았다.
조금은 쉴 시간이 있었다.
수술실에는?
믿을 만한 의사이자 응급에 강한 정민수가 있기에 안심했다.
온몸이 뻐근했다.
강도 높은 CPR을 30분 가까이 진행해 떨어진 체력을 회복해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면 언제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태수는 이런 상황일수록 차분해졌다.
“표 선생, 나 커피 한 잔만 진하게 부탁해도 될까?”
“시간 괜찮으십니까?”
“한숨 돌리고 들어가야 해. 언제 나올지 모르니까.”
태수의 목소리는 간단했지만 힘이 실렸다.
환자를 등한시하는 게 아니다. 수술에 모든 힘을 쏟기 위해 한 박자 쉬어 간단 의미였다.
같이 수술해 본 표진호는 바로 알아들었다.
“가시죠.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표진호가 돌아서자 태수는 그 뒤를 따랐다.
잠시 후.
태수는 수술 대기실 소파에 편안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손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커피 잔이 들려 있었고, 반대편에서 표진호가 지금까지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래서 정민수 선생님이 달려오셔서 누구 수술이냐고 물으셨습니다.”
“음.”
“제가 박진구 선생님 수술이라고 말씀드렸고, 바로 도성민 선배님이 전화하셨고요.”
표진호가 거기까지 말하자 태수가 가볍게 손을 들었다.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돼.”
“네?”
“충분히 침착함을 찾은 상태라고. 나 마음 좀 가라앉혀도 될까?”
태수가 차분하게 묻는 순간이었다.
벌떡!
표진호가 얼른 일어나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눈치가 없어서……. 먼저 나가 보겠습니다.”
“그래. 커피 고마워. 정신이 번쩍 들고, 아주 좋아.”
“아닙니다……. 꼭 성공하시길 바랍니다.”
표진호의 응원 소리가 수술 대기실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그리고 표진호는 그길로 수술 대기실을 나갔다.
탁.
문이 닫혔다.
혼자가 된 태수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후우우.”
그러고 나니 두근거리는 심장이 조금 안정되는 느낌이었다.
태수는 모든 잡념을 모조리 접었다.
초점 없는 시선으로 앞만 바라보며 진한 커피를 한 모금씩 마셨다.
그런 태수의 머릿속엔 수술 과정만이 가득했다.
동시에 마음을 차분하고 안정적으로 유지하려 모진 애를 썼다.
태수가 수술 대기실에서 차분하게 정신을 가다듬는 사이였다.
그와 반대로 부산스러운 장소도 있었다.
그건 바로 컨퍼런스실이었다.
평소에는 밝은 곳인데 지금은 약간 어두웠다.
아침에 컨퍼런스 할 때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는 곳이기도 했다.
그런데 많은 의사들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출입문을 통해 지금도 한 명씩 드문드문 들어왔다.
반대로 시간을 확인하고 컨퍼런스실 밖으로 나가는 의사도 보였다.
그들의 움직임이 부산스러웠다.
그 외에 착석한 의사들의 시선은 모두 정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들 중 단연 눈에 띄는 건 전경무 병원장이었다.
그를 중심으로 좌우에 대다수의 의과장과 교수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을 제외한 의사들은 각 의과별로 모여 있었다.
직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의사들이 시선을 둔 하얀 벽엔 수술 장면이 가득했다.
2번 수술실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막 수술을 시작했는지 화면 속 의사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참관하는 의사들은 그 모습을 좇느라 시선이 좌우로 계속 움직였다.
“…….”
“…….”
화면에 집중한 모두의 눈빛이 진지했다.
이번 수술은 단순하지 않았다.
여러 가지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다.
그런데 자리한 의사들은 물론 전경무 병원장의 눈빛에서도 그런 계산적인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저 다들 의사였다.
모든 직위와 허울을 벗어던진 눈빛들이었다.
그 증거는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화면을 응시하던 중 갑자기 모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전경무 병원장을 비롯한 의과장들과 교수들은 눈에 힘까지 들어갔다.
“음.”
“…….”
묵직한 탄성, 혹은 침묵이 흘렀다.
그건 노련한 의사들의 모습이었다.
아직 절제가 부족한 의사들은 기겁한 목소리를 흘렸다.
“저, 저거!”
“어후! 어떻게…….”
그 소리들은 결코 경박하지 않았다.
지금 화면에 보이는 수술실 모습은?
…….
할 말이 없었다.
그 장면을 보는 모두는 자신들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