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216
00217 217화
1분 정도 지켜본 후 서영우가 엄지를 추켜세웠다.
“좋아. 제대로 돌아왔어.”
그 말에 태수를 비롯한 정민수, 그리고 수술실 간호사들까지도 일제히 기다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우.”
심장이 멈춘 지 꼬박 3분 만에 되돌아온 상황이다.
조금만 지체했어도 대뇌에 혈액이 돌지 않아 사망선고가 내려졌을지도 몰랐다.
정말 가까스로 살렸다.
살짝 진이 빠진 태수는 정민수를 바라보며 눈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혹시나 해서 질러본 거지.”
“내가 네 덕분에 아직도 의사하나 봐.”
“너 없었으면 나도 이 자리에 없었어.”
정민수 또한 태수를 향해 환한 눈웃음을 보였다.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한 기쁨도 잠시였다.
아직 진행해야 할 수술이 한도 끝도 없이 많이 남았다.
김기훈 과장이 언제 수술실에 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인데 마냥 기다릴 수도 없다.
진행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수술하는 게 옳다.
“민수야. 계속 간다.”
“고!”
태수와 정민수는 힘차게 서로를 격려한 뒤 다시 정신없이 수술 도구를 잡아갔다.
***
태수와 정민수가 한창 수술에 집중하고 있을 때였다.
수술대기실.
커다란 벽걸이 TV에 2번 수술실 상황이 생중계 되고 있었다.
그리고 소파 상석에 자리한 한 인물이 있다.
수술복까지 갖춰 입은 그는 김기훈 과장이었다.
김기훈 과장은 말 그대로 넋을 놓고 TV에 빨려 들어간 모습이다.
태수의 수술 실력이 놀랍도록 세련되어서?
물론 놀라웠다.
레지던트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노련한 손놀림이다.
그러나 단지 그뿐만은 아니었다.
태수와 정민수의 표정과 행동들 때문이었다.
두 사람의 모습이 너무도 순수했다.
의학적인 견해나 커리어를 쌓으려는 수술이 아니다.
말 그대로 환자를 위한 그리고 환자만을 생각하는 그런 수술이다.
그 순수함은 김기훈 과장의 시선을 온통 붙들어 맸다.
이젠 잊고 지냈던 초년 시절의 열정이 화면 속의 두 사람을 통해 다시 솟구쳤다.
“그래. 니들이 의사다.”
가슴이 벅차오른 김기훈 과장의 입술이 파르르 떨려왔다.
***
수술은 장기전으로 흘러갔다.
어느새 수술을 시작한 지 한 시간이 흐를 무렵이다.
폐의 기흉과 혈흉을 제거하고 손상된 조직까지 모두 제거한 태수는 바로 서영우를 바라봤다.
환자의 호흡수가 궁금해진 탓이다.
조금씩 올라가고 있는지 있지만 충분한 횟수는 아니다.
서영우도 같은 생각인지 산소 밸브를 조금 더 열었다.
기도에 삽관한 마취법이라 숨을 잘 쉬고 있는지는 온전히 ECG에 나타난 수치로만 확인할 수 있다.
분명한 건 호흡의 양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심장이 멈췄던 아찔한 상황이 언제 일어났었냐는 듯이 김민성의 심장과 폐도 이 상황을 이겨내려 노력하고 있다.
그걸 간파한 서영우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그 또한 여태까지 절망적인 수술이라 생각했는데 이젠 희망을 본 모양이다.
“어떻게든 바이탈 잡고 있을 테니까, 해 봐.”
“아직 안심하기 이릅니다.”
“나도 알아. 그러니까 바이탈 잡고 있는다잖아.”
“알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그런 능동적인 서영우 모습은 집도하는 태수로선 환영할 일이었다.
마취과 의사가 환자 전신관리를 잘해 주는 만큼 집도의가 수술을 이어가기에 좋았다.
쉬는 시간도 없었다.
응급실에서 잠깐 체력을 회복했다지만 그것도 수술실에서는 터무니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저녁식사도 제대로 못한 상태에다가 집중도가 도를 넘어서서 이젠 진이 빠지기 시작했다.
멈췄던 땀이 한 번 더 비 오듯이 흐르고 있고, 정신력도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른다.
지금은 더더욱 체력 관리를 위해 시간을 효율적으로 써야 했다.
하지만 그건 태수의 입장이었다.
아이는 언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다.
살아날 확률을 조금이라도 더 올리려면 환부를 완전히 덮을 때까지 절대로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
그건 정민수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두 사람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김민성에게서 손을 뗀 적이 없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드르륵.
수술실 문이 열렸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보자 김기훈 과장과 다른 의사 한 명이 차례로 들어왔다.
이름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한길병원 외과전문의라는 건 기억했다.
그 뒤를 이어 간호사들도 추가로 들어왔다.
널찍한 수술실이지만 의료진이 10명 가까이 들어와 있는 상황이다.
조금은 비좁다는 느낌도 함께였다.
그사이 김기훈 과장이 수술가운을 입으며 태수와 정민수에게 말했다.
“준비하면서 진행사항은 확인했으니까 바로 이어가지.”
그렇게 말한 김기훈 과장이 다가왔다.
태수는 자연히 집도의 자리를 내어줄 계획이었다. 손끝이 가늘게 떨릴 정도로 집중력이 떨어졌고 지치기도 했다.
중요한 부위를 계속 수술해야 하기에는 체력적으로 문제가 있었다.
그걸 알기에 태수가 물러설 결심을 했다.
그런데.
김기훈 과장은 태수의 자리가 아니라 그 옆자리에 섰다.
“과장님.”
“손을 댔으면 마무리를 지어야지. 나하고 박 선생은 Liver(간)하고 Intestine(장)을 맡을 테니까, 최 선생하고 정 선생이 Spleen(비장)을 맡아.”
“…….”
“이미 시간이 많이 지체됐어. 빨리 끝내야 이 아이가 다시 햇빛을 볼 거 아닌가. 그럼 집도의, 시작해도 되나?”
김기훈 과장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태수에게 의견을 물었다.
이렇게 나오는데 마다할 태수는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손상이 적은 비장을 처치하는 건 지친 태수와 정민수로도 충분히 가능했다.
“그럼 시작해 주십시오. 제2집도의님.”
“하하. 하여간 당돌한 친구야. 자, 그럼 박 선생. 시작하지.”
김기훈 과장과 전문의는 오랫동안 호흡을 맞췄는지 손상된 간부터 순탄하게 진행해 갔다.
부드러우면서도 깔끔한 손놀림이다.
수술실에서만 오랫동안 집도해 온 그런 솜씨다.
작은 아이의 몸이었다.
그 속에 성인의 손이 여덟 개가 움직이는 상황이다.
툭. 툭.
어쩔 수 없이 부딪치거나 손의 위치가 겹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모두 너무도 태연했다.
그게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네 사람의 양손은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몸을 비틀며 좋은 자리를 양보하기도 하고, 할당 부분의 처치를 조금 미루더라도 손길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도 했다.
같은 수술대에서 수술하는 의사들만이 느낄 수 있는 배려와 존중이기도 했다.
하모니다.
여러 의사가 모여 아직 채 피지도 못한 어린 생명을 살리려는 완벽한 하모니였다.
설령 완벽하지 않더라도 정말 아름다운 모습이다.
김기훈 과장이 투입되고 두 시간 후.
총 세 시간이 넘는 수술이 끝이 났다.
상처에 비해서 너무도 빨리 진행된 수술이라 생각될 정도였다.
태수도 그 점에 있어서는 부정하지 못했다.
한 번에 아이의 모든 부분을 수술할 수는 없었다.
작은 체구로 그 힘든 수술들을 모두 견뎌내라는 건 너무도 가혹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장과 폐를 중점적으로 수술하고, 간과 장, 비장은 일부만 처치했다.
아이가 깨어나 경과를 지켜보고 2차 수술로 들어가야 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라 골절된 갈비뼈와 손뼈도 제대로 붙어야 하기에 수술대에 또 오를지도 몰랐다.
하지만 확실한 건 당장 생명의 위험은 없단 점이었다.
환부를 덮고 단단한 와이어 봉합사로 봉합했다.
그리고 마무리를 마친 태수가 수술실에 있는 모든 의료진을 천천히 둘러봤다.
또 마지막까지 견뎌준 김민성에게도 함께 인사했다.
“수술 종료. 수고하셨습니다.”
꾸벅.
태수는 깊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정민수가 대표로 똑같이 고개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고생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어느새 김기훈 과장과 전문의, 서영우와 간호사들까지.
일제히 고개를 숙여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했다.
그리고 난 직후였다.
“흐윽.”
어디선가 들려오는 울음 삼키는 소리에 태수가 슬쩍 옆을 바라봤다.
김수진 간호사가 허리를 굽힌 채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그녀뿐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수술을 진행한 다른 간호사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한 의사들의 모습.
그리고 스스로 죽음과 싸운 아이.
그 모든 과정이 여자 특유의 모성 본능을 자극한 모양이었다.
처음에는 흐느끼던 울음 소리가 어느 순간 크게 퍼져 나갔다.
“엉엉엉. 수고하셨어요.”
“엄마! 보고 싶어. 흑흑!”
아예 넋 놓고 우는 모습까지 보이니 태수를 비롯한 의사들은 눈만 멀뚱멀뚱 뜬 채로 슬쩍 시선을 피했다.
***
한편 수술실 밖.
다리에 부목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술실 앞을 서성이는 30대 중반의 여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는 또래로 보이는 남자가 같이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김민성의 부모였다.
남편은 아내의 연락을 받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부주의에 대해 뭐라고 한마디 하려 했지만 아내의 얼굴을 본 순간 그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무사한 곳이 없다.
그리고 의료진에게 엄지발가락이 골절되었다는 소식과 그 다리로 애를 찾아 정신없이 돌아다녔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그뿐이 아니라 수술하는 내내 가슴을 얼마나 쥐어뜯었는지 옷이 다 늘어나고 핏물이 배어 있었다.
남편 또한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이미 만신창이였다.
머리를 얼마나 쥐어뜯고 또 쥐어뜯었는지, 갑갑한 가슴을 얼마나 쳤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렇게 빌고 또 빌며 아이의 수술이 잘되기를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릴 때였다.
-엉엉엉!
안에서 들려오는 커다란 울음소리.
진짜 수술이 진행되는 수술실은 안쪽에 위치해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 거리를 뚫고 지나올 정도로 들려오는 울음소리라면 얼마나 크단 말인가.
그보다 우는 이유가 뭘까?
혹시…….
순간 김민성 어머니의 동공이 탁 풀리더니 그대로 바닥에 무너져 내렸다.
“여보!”
얼른 남편이 부축하려 했지만 그 또한 힘이 없었다.
부부 모두 복도에 철퍼덕 주저앉은 채 얼이 빠진 얼굴로 수술실을 하염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그때였다.
그르릉.
수술실 문이 열리더니 김수진 간호사가 뛰어나왔다.
미처 수술가운도 벗지 못한 채 마스크만 벗은 모습이다.
수술가운에는 김민성의 피가 가득했고, 두 눈은 너무 울어 팅팅 부어 있었다.
김수진 간호사는 복도에 주저앉은 부부를 본 순간 혹시나 싶은 얼굴로 물었다.
“흑. 김민성 환…… 자 보호…… 자 되시나요?”
아직 격정이 가라앉지 않은지 살짝 목소리가 떨려나왔다. 하지만 듣는 입장에선 그보다 안 좋은 표정이 없었다.
아내는 대답하지 못하고 남편이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그…… 그렇습니다만. 우리 애는요? 우리 애 어떻게 됐습니까?”
남편이 빠르게 묻자 아내가 바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 수술실로 달려가려 했다.
“민성아, 민성아!”
동시에 김수진 간호사가 얼른 아내를 끌어안으며 억지로 차분하게 말했다.
“살았어요.”
“지…… 진짜요? 우리 민성이 괜찮은 거예요?”
“네. 선생님들이…… 선생님들이 이제 안심해도 된데요.”
그 말이 끝난 직후였다.
꽈아악!
아내는 김수진 간호사를 격하게 마주 끌어안으며 목을 놓아 울었다.
“엉엉. 감사합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 괜찮아요. 근데 전 이상하게 안 괜찮아요. 엉엉!”
김수진 간호사도 다시 울음보가 터져버렸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아무래도 좋았다.
아이가 살았다는 거 하나만으로도 지금 이 순간이 너무도 벅차고 감사할 뿐이었다.
뒤에선 김민성의 아버지가 그제야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감사합…… 니다. 정말 감사합…… 니다.”
오로지 그 말뿐이다.
정민수가 김민성이 누운 스트레쳐카를 끌고 ICU로 가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치프. 좀 쉬세요.”
“교대로 보자고.”
“아이고, 2년차 주제에 치프를 부려 먹으면 되겠습니까? 갑니다.”
정민수가 얼른 간호사들과 스트레쳐카를 밀었다.
떠나가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김기훈 과장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저 친구도 많이 지쳤을 텐데, 참 멋진 친구야.”
“과분할 정도입니다.”
“저 친구도 최 선생과 똑같이 생각하는 모양이던데.”
“성격이 늘 그러네요.”
태수의 인사에 김기훈 과장은 더욱 짙은 미소를 보였다.
“그나저나 이 병원은 수술 끝나면 어디 쉴 곳도 없나? 진이 다 빠져서 집에 갈 수나 있나 모르겠어.”
평소 길게 말을 늘어놓는 인물이 아니었다.
뭔가 할 말이 있다는 걸 직감한 태수가 입을 열었다.
“과장님 방으로 가시죠.”
“지겨운 얼굴 또 보라고?”
“수술 중이랍니다. 오늘만 여섯 번째 수술이라네요.”
“그럼 방주인도 없으니까 잠깐 신세 좀 지자고.”
김기훈 과장이 승낙하자 태수가 바로 안내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