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2203
02206 2206화
태수는 손끝을 환자의 경동맥에 가볍게 얹었다.
톡, 톡.
가벼운 데다 느리다.
다양한 맥박의 움직임 중에 가장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태수가 빠르게 둘러봤지만 아직 자동 혈압계도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태수는 홍진만을 탓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혼자 환자를 돌본 것만으로도 칭찬해도 모자랐다.
그래도 해야 할 일이 많기에 빠르게 입을 열었다.
“청진기.”
“여기 있습니다.”
“자동 혈압계 연결해서 바로 바이탈 확인해.”
“네!”
청진기를 건넨 홍진만은 배낭 속으로 손을 넣었다.
그의 움직임이 번잡해지는 사이 태수도 청진기를 귀에 걸었다.
손에 쥔 청진판을 나뭇가지가 관통한 부위 옆에 조심히 가져갔다. 조금의 흔들림도 없도록 각별히 신경 쓴 움직임이었다.
곧 크게 확장된 심장 소리가 들려왔다.
꿈척, 꿈척.
심장 소리가 너무도 이상했다.
마치 마음껏 뛰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두 가지 경우를 추측해 볼 수 있었다.
“심장을 빗겨 갔거나, 심장 근육을 쓸고 지나갔거나.”
태수가 중얼거린 후였다.
자동 혈압계를 설치하던 홍진만이 멈칫하며 물었다.
“다른 겁니까?”
“천운으로 심장에 상처 없이 움직임만 제한하는 경우, 그게 아니면 심장에 직접적인 상처를 입은 경우.”
“만약 심장에 직접적인 상처를 입었으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홍진만의 눈빛이 거칠게 흔들렸다.
그는 엄연히 외과 의사다.
심장과 관련한 흉부외과적 질환도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깊이가 얕았다.
태수도 알기에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 자리에서 응급수술까지 해야지. 아니면 날이 개서 헬기로 다른 팀원들까지 날아오길 기다리든지.”
“언제 갤지도 모르잖습니까.”
“그래. 그게 문제야. 그보다 아직 심장에 직접 상처가 났는지 확신이 없다는 게 더 문제고.”
태수가 덧붙여 말하자 홍진만이 미간을 잔뜩 좁혔다.
“그럼 가장 좋은 건 역시 심장이 아닌 폐만 다친 거겠네요.”
“물론. 그게 베스트지만 지금으로선 가장 확률이 낮아.”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쪽 상황도 좋진 않아. 그러니까 응급처치와 응급수술을 할 수 있는 환경부터 만들어야 해.”
“비박할 거밖에 안 가져왔잖습니까.”
홍진만의 목소리가 투박해지자 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걸로 어떻게 그런 환경을 만든다고요.”
“만들지 않으면?”
“……죽으란 소리밖에 안 됩니다.”
홍진만이 대답하자 태수가 쓴 얼굴로 말했다.
“그러니까 만들어 내야지.”
“어떻게요?”
“무조건.”
무책임한 대답일지 몰라도 현재로선 가장 적절한 답이었다.
그 상황을 알기에 홍진만의 목소리가 축 가라앉았다.
“푸우! 환장하겠다.”
“그래. 나도 미쳐 버리겠다.”
“네? 아니, 죄송합니다.”
“네가 죄송할 일은 아니지. 차라리 하늘을 원망하는 게 속 편할 상황이니까.”
태수의 목소리가 묵직했다.
그만큼 태수도 이 모든 상황들이 아찔하게 다가왔다.
지금까지 현장에 출동한 케이스를 모두 떠올려 봐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만큼 악조건이었다.
“푸, 푸, 푸.”
막막한 마음이 반복적으로 숨을 내뱉게 했다.
그러던 태수가 시선을 돌리다 멈칫했다.
“이 환자, 흉부 상처가 전부가 아니었어?”
“네. 복부도 문제입니다. 그쪽 문제도 상당히 심각하고요.”
“얼핏 봐도 심각한 정도가 아닌데. 파악한 건?”
태수의 손이 환자 복부로 향했다.
밝은 계통의 옷이 분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동안 내린 비에 핏물이 번지고 또 씻겨 내려가는 과정이 반복되어 분홍빛이 된 모양이었다.
그런데 방수포로 빗물을 차단하자 다시 빨간 출혈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출혈 자체는 피부가 찢어진 상처에서 나온 거였다.
더 큰 문제는 배가 부풀고 또 출렁이는 느낌이 든다는 거였다.
태수가 직접 손을 대 봤다.
꿀렁.
예상과 같았다.
그걸 느낀 사이 홍진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간과 위, 대소장의 부분 파열까진 확인했습니다.”
“뭐?”
“그게 혈복강을 일으키고 있는 중입니다.”
홍진만이 꿋꿋하게 대답했다.
듣는 태수는 황당할 따름이었다.
흉부의 문제도 이 환경에선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런데 복부의 복합적인 문제까지 겹쳤다.
그것도 전부 파악된 게 아니라 일부만 확인했다고 홍진만이 직접 말했다.
만약 그 외에 더 문제가 있다면?
응급수술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무조건 빨리 갖춰야 했다.
“젠장.”
태수의 마음이 급해졌다.
그리고 손은 더 빨리 움직였다.
흉부를 살피던 청진판이 순식간에 복부로 이동했다.
태수는 횡격막을 기준으로 청진판을 시계 방향으로 움직여 복부 전역을 짚었다.
꿀렁, 꿀렁.
청진판이 닿는 부위마다 복부 내부에서 파도가 쳤다.
혈복강이 엄청나단 증거다.
문제가 그것뿐이면 차라리 건강하다고 판단될지도 모른다.
그만큼 좋지 않은 상황에 태수의 얼굴은 훨씬 심각하게 굳어졌다.
홍진만이 그 분위기를 직감하고 물었다.
“혹시 제가 파악하지 못한 문제가 많습니까?”
“홍 선생, 위, 간, 대소장 부분 파열이라고 했나?”
“맞습니다.”
“거기에 비장 부분 파열, 우측 신장 열상까지 추가해.”
태수의 말에 홍진만의 눈이 크게 떠졌다.
“비장도 터졌고, 우측 신장은 찢어졌단 말씀입니까?”
“그래. 출혈을 일으킬 수 있는 모든 장기가 손상됐어.”
“그런 몸으로 지금까지 버틴 거라고요? 그게 가능합니까?”
“직접 보고 있잖아.”
“…….”
“교통사고로 따지면 시속 80킬로미터 이상으로 달리는 자동차와 정면충돌한 정도야.”
“…….”
홍진만은 뭐라 대답하지 못했다.
할 수가 없었다.
태수가 언급한 예시가 너무도 강하게 와 닿은 탓이었다.
반면 태수는 그사이에도 환자의 외적인 상처들을 살펴봤다.
상처는 사고 당시의 상황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그걸로 추측해 본 태수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 날씨에 암벽등반을 해?”
“그건, 그건 아니지 않습니까?”
“증상을 봤을 때 대략 10미터 높이에서 굴러떨어진 환자야. 그럼 왜 떨어졌을까? 단순히 발을 헛디뎌서?”
“그건…….”
홍진만이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태수의 추측이 옳다는 쪽으로 힘이 실린 탓이었다.
태수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추측을 확신하려던 순간 환자의 오른쪽 바닥에 내용물이 널브러진 등산 가방을 발견했다.
그 속에 보이는 건 휴대용 버너와 텐트를 바닥에 고정해 주는 핀, 그 외에 개인 용품 등이었다.
텐트 핀?
휙휙!
태수가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방수포에 덮인 상태라 시야가 제한됐다.
태수는 바로 방수포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방수포 안으로 어깨까지만 들이민 태수가 홍진만에게 말했다.
“이 사람이 왜 그 높이에서 떨어졌는지 이유를 찾았어.”
“왭니까?”
“이동하는 중이었던 모양이야. 밖에 접힌 텐트가 널브러져 있더라고. 여기도 증거가 있잖아.”
태수는 등산 가방을 가리켰다.
바닥에 흩뿌려진 용품들만 봐도 정착한 상황이 아니었다.
거기에 등산 가방의 왼쪽 어깨끈만 풀어져 있는 모습이 두 눈에 보였다.
태수가 그 풀어진 끈을 들며 말을 이었다.
“이게 풀어지면서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은 모양이야. 배낭이 무거워서 아차 한 순간에 대처도 못하고 떨어진 거지.”
“아니, 이 날씨에 왜 가파른 경사면으로 이동을 합니까? 그게 이상하잖아요.”
“급하게 내려오는 길이었을 거야.”
“왜요? 뭐가 급하다고.”
홍진만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따졌다.
자신을 향한 불만 표출이 아니기에 태수는 따가운 시선을 대충 받아넘겼다.
그러던 태수의 머릿속이 번쩍했다.
연관 없는 세 사람의 모든 상처가 이제야 합쳐졌다.
“그랬어!”
“네?”
“일단 넌 환자. 아니지, 이 사람 이름 뭐야? 이 사람도 인식표 있잖아.”
태수가 거칠게 묻자 홍진만이 얼떨떨한 얼굴로 대답했다.
“황지혁입니다.”
“그래. 일단 넌 황지혁 씨한테만 집중해. 언제 발작이 올지 모르는 상태니까 계속 예의 주시하고 있어.”
“팀장님은 이런 환자를 두고 어딜 가시겠다는 겁니까!”
홍진만이 정신을 차리고 특유의 반항기 가득한 목소리로 따졌다.
그러자 태수가 반문했다.
“그럼 같이 손 붙잡고 떠나갈 때만 기다리자는 거야?”
“무슨 말씀이십니까? 당장 뭐라도 해야죠!”
“그 뭐라도 하려고 이러는 거잖아.”
“네?”
“응급수술해야 하는데 여기서 할 수 있어?”
태수가 몰아붙이자 홍진만이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 아니, 안 된다는 말은 말이 안 되고…….”
“내 눈치 보면서 횡설수설하지 마. 안 되는 걸 억지로 된다고 말하는 게 더 안 좋은 거니까.”
“그럼 안 됩니다. 여기서 응급수술도, 응급처치도 못합니다.”
“그러니까 그걸 할 수 있게 해야 할 거 아니냐고.”
태수의 대답에 홍진만이 황당한 표정으로 변했다.
“어떻게요?”
“시간 없는데 자꾸 따져 물을래?”
“아닙니다!”
“네 쓸데없는 호기심은 나중에 충분히 충족하기로 하고. 일단 내가 부를 때까지 이 자리에서 절대 벗어나지 마.”
태수의 지시에 홍진만이 즉각 대답했다.
“네!”
“화장실 가고 싶으면 그냥 싸. 이 정도로 내리는 비면 씻겨 내려가니까.”
농담 같은 말이지만 태수의 눈빛이 너무도 진지했다.
정말 그렇게 하란 진심이 느껴졌다.
그 정도로 환자 상태가 좋지 않았다.
홍진만도 알기에 이의를 달지 않았다.
“무조건 여기서 버티고 해결하겠습니다.”
“잘 보고 있어.”
휙!
태수는 한 번 더 오더하고 방수포에서 나왔다.
그리고 초조한 얼굴로 두 손을 맞잡고 꼼지락거렸다.
툭.
발치에 뭐가 채여 내려다봤다.
이들이 지금껏 사용하던 텐트였다.
4인용으로 보였다.
환자가 황지혁 혼자라 해도 응급수술엔 부족한 크기였다. 그런 데다 다른 환자가 2명이나 더 있었다.
그것도 예고치 못하게 낙상한 황지혁을 야생 곰으로부터 보호한 사람들이었다.
누구도 그런 말을 해 준 적이 없었다.
그러나 태수는 모든 상황을 꿰뚫었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그들은 최근 며칠 사이 야생 곰이 주변을 어슬렁거려 위협을 느꼈을 터다. 그래서 날이 밝자마자 안전한 곳으로 이동을 선택했다.
그 과정에서 황지혁이 낙상 사고를 당했다.
야생 곰은 피 냄새에 이끌려 찾아와 황지혁을 노렸을 테고, 두 사람이 맞서 싸우다가 저렇게 엄청난 부상을 당한 것이다.
타인을 위해 야생 곰에 맞서려면 그만큼 돈독한 우정이 필요했다.
태수가 제임스를 위해 전쟁터 한복판인 타머로 향했던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 우정을 눈치챘다면 사람인이상 지켜 줘야 한다.
모든 일이 끝난 후 서로를 마주 볼 수 있어야 했다.
물론 어렵다.
이대로 놔두면 생존율은 제로다.
반대로 응급수술과 처치를 진행할 천막을 만들면 생존율이 급상승한다.
문제는 천막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걸 준비해 올 시간 자체가 없었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로 오늘 하루 비박을 예상하며 챙겨 온 방수포와 부직포가 전부였다.
출동 인원이 현저히 줄어 방수포와 부직포는 여유가 있었다.
그게 전부라는 게 문제였다.
태수는 주변을 둘러보면 둘러볼수록 아득함을 느꼈다.
이대로 시간만 흘려보낼 순 없었다.
3명의 환자 모두 중증 외상 환자에, 그중 황지혁은 당장 응급수술에 들어가야 할 초응급 환자였다.
그런데 악천후는 끝이 없이 휘몰아쳤다.
사람의 처지는 전혀 배려하지않는 참으로 무심한 자연이었다.
마음을 다 잡고 태수가 냉정한 시선으로 돌아봤다.
이 순간 흘러가는 1초가 너무도 안타까웠다.
다급한 시선 끝에 좀 전에 벗어던진 안전모가 보였다.
그야말로 애물단지에 불과했다,
그 주체인 헬기가 없는데 통신이 될 리 없었다.
휴대폰, 무전기.
기타 통신장비들 또한 이런 악천후에서는 무용지물이다.
결국 비바람을 피할 장소를 찾거나 만들거나 둘 중에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