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2228
02231 2231화
느닷없이 의료 텐트 밖에서 홍진만의 괴성이 들려왔다.
“으아아아! 힙합은 죽지 않는다. 힙합 만세!”
그 소리에 다들 어이없는 표정으로 변했다.
그 순간 수술대 위에 누운 태수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푸훗, 하하하! 아악!”
“팀장님, 웃지 마요. 출혈이 더 심해지잖아요!”
“하하하, 으윽. 하하.”
“웃지 말라고요. 저게 뭐가 웃기다고 웃어요!”
김수진 간호사가 당혹감과 짜증을 동시에 토해 냈다.
그래도 태수는 고통 속에서도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역시 홍진만다운 외침이었다.
이렇게 가끔씩 튀어나오는 저 엉뚱한 행동이 태수의 웃음보를 자극했다.
곧 홍진만이 다시 의료 텐트 안으로 돌아왔다.
아직 비가 많이 내리는지 흠뻑 젖은 모습이었다. 태수를 향해 곧장 다가오는 홍진만의 눈빛이 비장했다.
그제야 태수는 수술대에 누운 몸을 편안하게 이완시켰다.
그때 사이먼 기자가 재빨리 홍진만에게 다가갔다.
“당신 진짜…….”
“…….”
스윽.
홍진만은 앞을 가로막은 사이먼 기자를 옆으로 밀어내며 계속 다가왔다.
사이먼 기자는 인상을 찡그렸지만 그 길을 막진 않았다.
차분히 기다리고 있던 태수 옆에 홍진만이 도착했다.
태수는 어떤 말도,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홍진만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김수진 간호사를 향해 말했다.
“저 수건 좀 부탁합니다. 그리고 수술 장갑하고 리도카인 준비해 주세요.”
“……알았어요.”
김수진 간호사는 홍진만의 묵직한 목소리에 더 뭐라고 하지 않았다.
잠깐 준비하는 동안 홍진만은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모습으로 태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다시는 이런 모습 보여 드리지 않을 겁니다.”
“…….”
“말로만 떠든다고 하셔도 좋습니다. 그래도 전 약속했고, 지키는 모습을 보여 드릴 겁니다.”
“…….”
태수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때 김수진 간호사가 옆으로 다가왔다. 수건을 내미는 그녀의 분위기가 너무도 차가웠다.
“여기, 수건이요.”
“감사합니다.”
홍진만은 개의치 않고 수건을 받아 들어 거칠게 물기를 닦아 냈다.
그런 홍진만을 보며 김수진 간호사가 짧고 차갑게 말했다.
“준비 다 됐어요.”
“후! 나중에 혼나겠습니다. 지금은 수술부터.”
“……알았어요.”
“그럼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수술 장갑부터 주세요.”
“여기.”
탁.
수건을 내려놓고 수술 장갑을 착용하는 홍진만의 눈빛엔 어떤 흔들림도 없었다.
이후 홍진만은 태수의 환부 주변에 리도카인을 투여했다.
그제야 찡그린 태수의 얼굴이 편안하게 변했다.
“나도 참 고생이 많다. 홍 선생, 예쁘게 잘 꿰매.”
태수가 약하게 경고했다.
그런데 그때 홍진만의 어두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처가 깊고 고름도 생각보다 많습니다. 이 정도 상처를 도대체 어떻게 참으신 겁니까?”
“모르핀.”
“투여하시는 걸 못 봤습니다. 음, 썩션.”
홍진만이 수술 도구를 말하자 김수진 간호사가 바로 내밀었다.
콰륵콰륵.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태수는 그들이 오가는 모습뿐만 아니라 피고름이 썩션의 관을 타고 이동하는 것도 빠짐없이 지켜봤다.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았다.
이런 경험이 처음이 아니라 그런지 태수의 표정엔 동요가 없었다.
거기에 국소마취를 한 상황이라 고통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태수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걸 공개할 거면 진작 아프다고 했겠지.”
“그럼 왜 말씀 안 하셨습니까?”
“말하고 말고 할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무슨 말씀인진 아는데 솔직히 너무하셨습니다. 이만큼 걷어 냈는데도 아직도 고름이 나옵니다.”
콰륵콰륵.
홍진만은 대화하는 내내 썩션을 계속 가동하고 있었다.
태수의 시선은 어느새 반대쪽으로 돌아간 상태였다.
“항생제도 투여해서 그 정도야.”
“후우.”
“한숨 쉬지 말고 잘 걷어 내. 괜히 두 번 눕게 하지 말고.”
태수는 민망함에 괜스레 투덜거렸다.
그때 홍진만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 번 누우셔야 합니다.”
“다들 그 정도 꿰매도 일하고 그래. 자식이, 누구한테 협박이야.”
“제가 왜 그렇게 말씀드리는지 진짜 모르십니까?”
“…….”
태수가 순간 입을 다물었다.
그와 동시에 이쪽 대화를 주시하고 있던 여성현이 바로 물어 왔다.
“홍 선생, 무슨 일이야?”
“복강 내 장기들이 모두 부어 있습니다.”
“뭐, 뭐라고?”
“아마 수풀을 파고들 때였을 거라 추정됩니다. 더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고요.”
홍진만의 말에 다들 눈을 크게 떴다.
태수가 상처를 입었단 놀람이 이제야 가셨는데 더 큰 문제를 말하니 충격이 두배로 다가왔다.
타다닥!
여성현은 참지 못하겠는지 바로 달려와 태수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다그쳤다.
“도대체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별거 아닙니다.”
“그렇게 별게 아니라서 지금도 얼굴이 허옇게 떠 있어?”
“그냥 이건 피를 많이 흘려서 그런 겁니다.”
“야, 내가 마취의야. 정확하게 마취통증전문의. 그런데 그것도 구분 못할 바보로 보여?”
여성현의 목소리에 짜증을 넘어선 분노가 담겨 있었다.
태수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옅게 미소 지었다.
“그건 너무 멀리 가신 말씀이네요.”
“마! 내가 선배라며. 넌 선배 대접을 이따위로 하냐? 아니면 네 후배들이 더 많다고 폼 잡는 거야?”
“선배.”
“똑바로 말하지 않을 거면 선배라고도 부르지 마!”
여성현이 버럭 화를 냈다.
태수는 그런 여성현의 모습을 군병원에서 이후로 처음 봤다.
말투와 표현이 거칠었지, 그 속엔 따뜻함이 있었다. 그런데 정말 화가 났는지 목소리도 눈빛도 차가웠다.
태수는 그런 여성현에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괜한 걱정을…….”
“그딴 소리 집어치우고! 어떻게 다쳤는지 말해. 아니면 진짜 내가 널 진찰하는 수가 있어.”
“……음.”
“그래. 진찰하라면 해야지. 제대로 해 줄게.”
여성현은 빈말이 아닌지 청진기까지 꺼내 들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느새 후배들도 곁에 다가왔다. 그 옆에 간호사들이 늘어서 있었다.
유일하게 정새롬 간호사만 보이지 않았다.
왜 그녀가 보이지 않는지도 태수는 바로 짐작했다.
자신을 둘러선 모두가 또 한 번 걱정 가득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이번에는 출혈을 봤을 때처럼 수선을 떨진 않았다.
그런데 걱정의 눈빛은 더욱 진했다.
사이먼 기자도 또다시 무거워진 분위기에 뭔가 심각하단 걸 눈치챘다. 하지만 알아듣지 못해 그냥 지켜만 보고 있었다.
태수는 이쯤 되면 대충 넘어갈 수 없단 걸 알고 있었다.
이들의 걱정을 덜어 주기 위해서라도 말해야 했다.
“내장이 놀란 건 맞습니다. 하지만 심한 정도는 아니고 좀 쉬면됩니다.”
“그러니까 왜 그랬냐고!”
“선배도 참. 흠, 돌풍에 말렸을 당시에 브레이크를 잡았는데 너무 세게 잡아서 갑자기 멈췄습니다. 그때 몸이 놀란 겁니다.”
“…….”
“그게 답니다.”
태수가 믿어 달라고 어필했다.
다들 수긍하려는 분위기로 변해 갔다.
그런데 그때 조현정 간호사가 빠르게 말했다.
“다가 아니에요. 분명히 빠진 내용이 있어요.”
“아니, 조 간호사님.”
“팀장님, 저 응급실 간호사 출신이에요. 선생님이 의사 면허증 따기 전부터 응급실에서 살았다고요.”
“경력이 그렇게 되시죠.”
“이젠 저도 상처를 보면 어느 정도 유추는 가능해요. 그러니까 숨긴 거 빨리 말해요.”
조현정 간호사의 확신에 찬 눈빛은 매서웠다.
다들 다시 태수를 바라봤다.
진실을 말해 달란 그 눈빛에 태수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빼놓은 내용을 추가했다.
“수풀에 빨려 들어갔을 때…….”
“어디 부딪쳤어?”
“아니요. 로프가 나무에 딱 걸리는 바람에 몸이 순간 크게 흔들렸다가 떨어졌습니다. 그 때문에 몸이 놀랐고요.”
“…….”
“이번엔 진짜 답니다. 더 없습니다.”
태수가 강조했지만 다들 아직 의심의 눈초리를 지우지 못했다.
그때 태수가 단호하게 말했다.
“진짜니까 믿으셔도 됩니다.”
“그런 몸으로 응급처치만 간단하게 하시고 저희를 내려오게 해 주셨단 겁니까? 그리고 지금까지 응급수술을 다 진행하시고요?”
스윽.
홍진만이 물으며 눈앞에 나타나자 태수가 인상을 구겼다.
“아무리 봉합만 하는 거라 해도 수술하다 손 놓는 건 누가 알려 준 거야?”
“다 끝났습니다.”
“뭐?”
태수가 놀라 고개를 들어 봤다.
옆구리에 두툼한 거즈가 덧대어져 있었다.
그 아래에 받침대가 받혀져 있는 모습도 보였다. 받침대로 옆구리를 들어 등까지 봉합이 진행된 모양이다.
리도카인의 마취 효과로 그런 움직임도 느끼지 못했다.
태수의 표정이 순간 머쓱하게 변했다.
“나중에 확인했는데 삐뚤빼뚤하면 죽는다.”
“그건 나중에 확인하시고요. 그 몸으로 너무 무리하셨습니다. 놀란 장기들이 진정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됐어. 이삼 일만 쉬면 돼.”
“고름만 한 주먹 이상 나왔습니다.”
홍진만이 말하자 태수가 슬쩍 시선을 돌렸다.
“항생제 먹었다니까. 그리고 혹시 몰라서 모르핀 주사할 때 항생제도 하나 추가로 투여했어.”
“그래서 이 정도에 그쳤겠죠. 좌우간 지금부터 팀장님은 첫째도 안정 둘째도 안정입니다.”
홍진만이 결정을 내려 버리자 태수가 반발했다.
“그 정도까진 아니야.”
“의사 하길 잘하신 거 같습니다.”
“갑자기 뭔 소리야?”
태수가 의아하게 바라봤지만 홍진만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했다.
“의사 말을 정말 안 들으시잖습니까. 병원에서 이렇게 난동 부리시면 바로 블랙리스트에 올라갑니다.”
“이 자식이.”
“앞으로 환자한테 의사 말 잘 들으란 말씀을 안 하실 거면 그냥 마음대로 하시고요.”
“이게 진짜.”
“좌우간 지금은 환자입니다. 의사하고 간호사가 하는 말을 잘 들어 주실 거라 믿습니다. 아, IV는 절대 건들지 마시고요.”
홍진만의 말과 동시였다.
심각한 분위기가 가득하던 중 갑자기 실소가 터져 나왔다.
“푸훗! 하하.”
“호호호.”
동성종합병원 출신들만 웃었다.
여성현은 갑자기 돌변한 분위기에 얼른 안성훈에게 물었다.
“안 선생, 갑자기 왜 웃는 거야?”
“지금도 동성종합병원에서 회자되고 있는 팀장님의 전설적인 환자 구박 사건 때문입니다.”
“환자 구박 사건은 또 뭐야?”
“그게 팀장님 레지던트 1년 차 때 일인데요.”
안성훈이 예전 일을 들추려 하자 태수가 경고했다.
“야, 안성훈.”
스윽.
여성현이 얼른 태수의 얼굴을 가리며 안성훈을 재촉했다.
“됐어. 최 팀장 신경 쓰지 말고 말해.”
“그러니까…….”
“뭐? 몰래 IV 열었다고 환자를 윽박지르고 구박해? 푸하하하!”
여성현의 웃음소리가 누구보다도 컸다.
그 소리에 태수가 울컥했다.
“그 환자 죽을 뻔했습니다!”
“그랬겠지. 그래도 레지던트 1년 차가 환자한테 소리치는 것도 그렇고, 환자도 찔리니까 조용히 넘어갔다며.”
“네. 뭐, 그랬죠.”
“그게 웃기다고. 지금도 저러는데 레지던트 때는 얼마나 어마어마했을까. 혹시 전문의 모가지 날려 버린 적은 없어?”
“…….”
태수는 크게 움찔했지만 끝까지 대답하지 않았다. 잘잘못을 떠나 굳이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김수진 간호사가 얼른 태수의 또 다른 일화에 대해 말했다.
“그러고 보니까 팀장님이 치프 하실 때 수술실 뒤집어진 적 있지 않아요? 그러니까…….”
“수술실만 그랬는 줄 아세요? 응급실에서는…….”
조현정 간호사까지 나섰다.
그런 일화들이 하나씩 더해지자 어둡던 의료 텐트 속 분위기가 점점 밝아졌다.
태수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의료진이란 아무도 없었다.
그저 통쾌함과 재미가 있었다.
“푸하하! 동성에서부터 아주 이벤트가 끊이질 않았네.”
“지금이야 웃죠. 그때 산부인과장님 잘리고…….”
“대단해. 의과장 목 날린 레지던트라. 확실히 난 친구라니까. 으하하하!”
여성현이 특히나 배꼽 잡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