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2372
02375 2375화
장례식장에서 이현철에게 직접 휴대폰 번호를 건네준 기억도 명확하게 떠올랐다.
그리고 그때 태수가 이현철에게 말했다.
-아버지는 영웅이야. 영웅의 아들이 이렇게 울면 안 되지.
그런데 아버지가 영웅이 아니라니?
또 정희연이 병원에 있는 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순식간에 그 모든 생각이 스쳐 지나간 태수의 마음이 급해졌다.
그냥 넘어갈 일이 절대 아니었다.
그 이유로 태수는 다급하게 정희연을 불렀다.
“정희연 씨, 맞죠? 이성문 대원 부인 맞으시죠?”
“…….”
“그 아이, 아니 이현철, 현철이가 저한테 전화한 거 맞죠?”
“…….”
“희연 씨, 무슨 일입니까? 무슨 일이냐고요.”
태수가 다급하게 찾았다.
그때 정희연의 꽉 메인 목소리가 가늘게 들려왔다.
“죄, 죄송해요……. 그럼 이만.”
뚝.
전화가 끊어졌다.
태수는 개의치 않고 다시 재발신을 눌렀다.
뚜루루.
하지만 전화는 받지 않았다.
“좀 받아요.”
재촉하고 또 재촉했다.
하지만 전화는 결국 연결되지 않았다.
-전화를 받지 않아…….
“젠장.”
딱.
전화를 끊은 태수가 다시 통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전화가 꺼져 있어…….
아예 휴대폰을 끈 모양이다.
태수의 가슴이 꽉 막혀 왔다.
이렇게 정희연이 아프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그리고 이현철의 원망 어린 목소리가 심장에 박혀 있었다.
아이의 절규가 괜히 나오진 않았을 터, 정희연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했다.
찾아야 한다.
무조건 찾아야 한다.
태수는 다시 휴대폰을 들어 통화 상대를 달리했다.
그 상대는 홍정규 대원이었다.
뚜루루.
“어이고, 이거 얼마 전에 심각하게 사고 치신…….”
“잡소리는 나중에. 이성문 대원 댁이 어딥니까?”
“…….”
태수가 다급하게 묻자 홍정규 대원의 대답이 순간 들려오지 않았다.
답답해진 태수는 거칠게 몰아붙였다.
“어디 사는지 몰라요?”
“……아, 젠장. 이성문이…… 그 새끼 이름을 왜 갑자기 들먹거리는데!”
짜증 가득한 그의 대답이 가늘게 떨려 나왔다.
형제보다 끈끈한 동료.
그것도 이젠 이 세상에 없는 동료를 언급한 태수를 원망하는 목소리가 가득했다.
그런데 태수의 목소리가 더욱 컸다.
“일단 집 주소부터 부르라고!”
“도대체 왜?”
“희연 씨가 아프대. 입원했는데 병원 이름도 몰라. 그러니까 일단 주소부터 부르라고!”
쾅!
태수가 격하게 책상을 내려치며 다그쳤다.
그제야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걸 직감했는지 홍정규 대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 이사 갔단 소리는 들었는데…….”
“어디로 갔는지도 몰라? 지역이라도 알 거 아니냐고!”
“……경기도 광주, 자세한 주소는 몰라.”
“젠장. 자랑이다!”
태수의 신경질적인 말투에도 홍정규 대원은 별다른 반발없이 그저 침묵했다.
“…….”
“일단 끊어요. 나중에 다시 전화합시다.”
태수는 간신히 존대하며 전화를 끊었다.
경기도 광주.
다행히도 병원이 많지 않다.
벌떡.
자리를 털고 일어난 태수가 뭐라 소리치려 할 때였다.
상황실이 너무도 부산했다.
각자 휴대폰을 들고 어디론가 다급하게 전화 중이었다.
“네. 응급의료대입니다. 혹시 입원 환자 중에 정희연 씨라고…….”
“응급의료대 도성민입니다. 정희연 씨란 분을 찾고 있는데요…….”
“거기 혹시 정희연 씨라고…….”
사방에서 정희연의 이름이 언급됐다.
일사불란하고 신속 정확한 모습이었다.
태수만 기억하는 게 아니다.
그날 출동한 모두가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일보다 더 다급하게 상대를 재촉했다.
태수는 그 모습을 본 순간 가슴이 턱 막히고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다.
쾅.
태수는 책상으로 주먹을 내리찍었다.
일부러 아픔을 느끼며 울컥한 마음을 억지로 가라앉혔다.
그때였다.
정민수가 거칠게 휴대폰을 떼며 태수를 찾았다.
“찾았어. 행복종합병원, 광주 터미널 근처야!”
“…….”
태수가 답하지 않자 모두가 소리쳤다.
“뭐 해? 빨리 안 가?”
“빨리 뛰어!”
모두 눈에 불을 켜고 잡아먹을 듯이 재촉했다.
그 다그침에 태수는 살짝 맺힌 눈물이 쏙 들어갔다.
이럴 때가 아니다.
탁.
“다녀오겠습니다!”
태수는 거칠게 차 키만 챙겨 들고 상황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2시간 후.
태수는 경기도 광주 소재의 행복종합병원에 도착했다.
오는 길에 정희연이 입원한 병실호수까지 문자로 전달받았다.
하지만 태수는 다짜고짜 찾아가지 않았다.
여기까지 오는 사이 마음의 안정을 많이 찾은 탓이다.
어떤 이유로 입원했는지부터 알아보는 게 순서다.
그 마음으로 태수는 1층 접수처로 향했다.
접수처 직원은 태수를 미소 띤 얼굴로 바라보다 뭔가 이상한지 표정이 복잡하게 변해 갔다.
태수는 대한민국, 특히 의료계에선 모르는 이가 없었다.
상대의 반응에 태수는 차분하게 응급의료대 신분증을 꺼내며 말했다.
“저 응급의료대 최태수입니다. 아까 저희 팀원이 한 번 전화드렸는데, 아실지 모르겠습니다.”
“아…… 전화 왔었단 소식은 들었어요. 정희연 환자분 찾으신다고…….”
“맞습니다. 실례지만 담당 선생님을 좀 뵐 수 있을까요?”
“그건 어렵지 않은데, 무슨 일이신지…….”
“예전에 제가 진료한 분이라서요. 혹시 같은 이유인지 좀 알고 싶어서 왔습니다.”
태수는 일부러 거짓말을 했다.
이성문에 대한 말을 꺼내 봐야 상대는 모를 터였다. 그러니 지금 태수의 입장에서 가장 합당해 보이는 핑계를 대야 했다.
다행히 접수처 직원은 별다른 의심 없이 구내전화를 들었다.
그리고 상대와 몇 마디를 나눈 후 태수에게 말했다.
“3층 외과로 가시면 안내해 드릴 거예요.”
“감사합니다. 그럼.”
태수는 정중하게 인사하고 돌아섰다.
그 순간 태수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사라졌다.
외과.
자신도 속한 의과였지만 그곳에 입원했단 사실이 아찔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속단하지 않았다.
담당 의사를 만나 대화를 해 봐야 알 일이다.
태수는 한달음에 외과로 올라갔다.
그리고 간호사의 안내를 받아 한 진료실로 향했다.
‘김봉규’란 진료실 주인의 이름부터 차분하게 머릿속에 담고 안으로 들어갔다.
탁.
뒤에서 진료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태수는 평범한 진료실 속 진료 책상에서 일어나는 30대 중반 정도의 의사를 마주했다.
태수보다 약간 어려 보였다.
다른 건 몰라도 피곤해 보이는 외과 전문의 특징을 그에게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태수는 다가가 인사부터 했다.
“갑작스러운 면담 요청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태수입니다.”
“아닙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김봉규입니다.”
상대 의사도 정중하게 고개 숙였다.
태수는 분명 의학계에서 말이 많은 인물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응급의료대 팀장이란 직위는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게 전부였다.
약간 딱딱한 표정은 태수의 눈에도 보였다.
태수는 개의치 않고 예의를 갖춰 그에게 말했다.
“바쁘신데 제가 억지로 시간을 빼앗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말씀을요. 일단 앉으……. 이쪽으로 오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그는 자신의 의자를 권했다.
자그마한 진료실이라 응접 소파가 없던 탓이다.
그 속엔 태수가 어떤 인물인지 파악하고자 하는 의도도 느껴졌다.
하지만 태수는 지금 그런 건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앞에 위치한 환자들이 앉는 진료 의자에 자연스럽게 다가가며 말했다.
“제 자리가 여기 있네요.”
“아니…….”
“권해 주시는 건 감사한데, 제가 지금 조금 마음이 급하네요. 죄송합니다.”
태수가 정중하지만 명확하게 의견을 밝혔다.
이런저런 대화로 시간을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
김봉규 외과전문의의 표정은 약간 복잡하게 변했다.
잠시 후.
두 사람이 자리에 앉아 서로를 마주했다.
그런데 김봉규 외과전문의의 시선이 복잡하게 변해 있었다.
“……그러니까 예전에 작고하신 구조대원의 부인이시라고요.”
“네. 건물 붕괴 사고 현장이었습니다.”
“저도 직접은 아니지만 소식으로 들은 기억이 납니다.”
“사실 제가 정희연 씨의 보호자도 아니고, 전에 진료한 환자도 아니라서 말씀하시기 어려우신 거 압니다. 하지만…… 이렇게 고개 숙여 부탁드립니다.”
태수는 앉은 채로 깊게 고개 숙였다.
정확한 관계를 따지면 태수와 정희연은 남이었다. 단지 응급의료대 팀장이란 이유로 타 병원 환자의 EMR을 무턱대고 요청할 순 없었다.
만약 그렇다고 해도 상대는 거부할 권리와 권한이 있었다.
태수는 그래서 이렇게 고개 숙여 부탁했다.
동시에 진료실엔 침묵만이 흘렀다.
태수는 흔들림 없이 고개 숙인 그 모습 그대로 부탁하고 있었다.
김봉규 외과전문의는 태수의 모습을 계속 지켜봤다.
의학계에 떠도는 태수에 대한 이미지는 사실 상당히 나빴다.
전부터 여러 사건의 중심이 되어 눈에 띈단 평가가 많았다. 특히 최근 ‘나영선 사건’으로 괜한 된서리를 맞은 의사들에 대한 불만이 상당했다.
일면식도 없지만 김봉규도 썩 좋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단지 응급의료대에 밉보여서 좋을 게 없기에 만남까지 거부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직접 마주하니 세간의 소문이 무색했다.
오히려 가십이라 생각한 기사들 속 태수의 모습이 더 정확하게 느껴졌다.
김봉규 외과전문의의 표정이 어느새 부드러워졌다.
그리고 그는 더 시간 끌지 않고 태수에게 권했다.
“제가 한참 후배인데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팀장님, 고개 드세요.”
“그래서 더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열람 권한도 없는 제가 선배란 이유로 억지 부탁을 드리는 거니까요.”
“……억지 아닙니다.”
김봉규 외과전문의의 말에 태수가 움찔했다.
“…….”
“제가 정희연 환자분의 문제로 응급의료대에 도움을 요청하는 거면 문제 될 게 없잖습니까.”
그의 대답에 태수가 번뜩 고개를 들어 바라봤다.
“김 선생님.”
“선생님이라니요. 부끄럽습니다.”
“…….”
“이거 괜히 덥네요. 흠흠! 일단 분명히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정희연 환자분의 일로 제가 도움을 청해 팀장님이 내려오신 거 맞잖습니까.”
김봉규 외과전문의가 확신을 더해 줬다.
태수의 마음을 이해해 주는 그 모습이 멋있었다.
그제야 태수는 무겁던 마음을 훌훌 털며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그랬던 거 같습니다.”
“그렇게 제가 모셨으니까 환자에 대해서 조언부터 구해야 할 텐데요.”
“……일단 EMR부터 좀 같이 확인하도록 하죠.”
“네. 여기요.”
스윽.
김봉규 외과전문의가 모니터까지 돌려 태수에게 잘 보이게 해 줬다.
이젠 자연스럽게 김봉규 외과전문의가 도움을 요청하는 식으로 상황이 전개됐다.
일부러 그러는 걸 모를 태수가 아니었다.
태수는 고마움이 가득한 눈빛을 보낸 후에야 모니터 속 EMR로 시선을 돌렸다.
입원 날짜는 이틀 전이었다.
그리고 이틀 사이 순차적으로 검사한 결과를 PACS로 확인할 수 있었다.
정희연의 병명은 ‘Gastric Polyp’, 즉 위용종이었다.
위선종이라고도 불리는 병이기도 했다.
거기에 엄청난 피로가 겹쳐 중증 과로 증상까지 보였다.
“…….”
태수는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고 EMR에만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