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242
00243 243화
절레절레.
고개를 가볍게 털며 다시 정신을 가다듬은 신창용이 수술 부위를 바라봤다.
다시 손을 움직이려던 신창용은 조금 놀랐다.
수술의 진척이 반을 넘어서고 있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났나?’
속으로 중얼거리며 수술실 벽에 걸린 전자시계로 시선을 돌렸다.
수술 진행 시간을 확인한 순간 신창용의 눈이 조금 커졌다.
아직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벌써 수술 진척도는 60퍼센트 이상 진행됐다.
다른 수술에 비하면 어이가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생각을 이어가던 신창용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떠올랐다.
앞으로도 이렇게 수술을 진행할 수 있다.
그 생각만으로도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모양이었다.
반면 태수는 신창용에게 물었다.
“잠깐 쉬었다가 갈까요?”
“어?”
생각이 끊어져 살짝 놀란 신창용이 태수와 시선을 마주했다.
태수는 눈짓으로 아래를 가리켰다.
그 시선을 따라 내려가 본 신창용은 쓴 미소를 지었다.
손을 너무 오래 멈추고 있었던 모양이다.
신창용은 개의치 않고 태수에게 말했다.
“이 정도면 진행 속도는 꽤 빠른 편이지?”
“그럴 겁니다.”
“참 오해라는 게 무서워.”
갑작스러운 신창용의 말에 태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나와 이렇게 손발이 잘 맞는 사람들이 왜 이제야 수술실에 들어왔을까. 그 오해라는 게 참 사람을 잡아. 그렇지?”
“…….”
태수는 뭐라 할 말이 없어서 대답하지 않았다.
너무도 조용한 태수의 모습에 신창용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데 나 혼자 떠드니까 민망하네.”
“일단 수술부터 계속 진행하시죠.”
“그래야지. 믹스터 주시고요. 아, 땀부터 부탁드릴게요.”
어딘지 모르게 능구렁이 같은 목소리에 보조하던 간호사는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잠깐의 대화로 숨통을 튼 후 다시 수술이 이어졌다.
낭선종의 모양은 대체적으로 동그란 편이었다.
그래서 수술의 전체적인 형태도 간을 움푹 파는 식으로 진행됐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가자 이제 거의 끝부분에 다다랐다.
지금까지 절제한 간의 상태는 매우 양호했다.
다른 수술에 비해서 진행도 빠르고, 합병증에 대한 걱정도 많이 덜어낼 수 있을 정도였다.
다른 의사라면 조금은 신명이 날 순간이다.
하지만 신창용은 달랐다.
끝까지 묘한 긴장감을 유지했다.
의사로서 방심하지 않고 끝까지 집중하는 건 그리 쉽지 않았다.
태수도 그 점에 있어선 신창용을 조금은 인정했다.
평소 어떤 마음을 품으며 살아가는 지는 큰 관심사가 아니다.
그러나 수술실에서 보여준 모습만큼은 묘할 정도로 직설적이고 솔직했다.
태수 또한 집중력을 흩트리지 않았다.
아무리 회복력이 좋은 간이라도 환자를 위험에 빠뜨리고 싶진 않았다.
잠깐 생각하는 사이에도 수술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몇 번의 가위질만이 남았을 때였다.
신창용이 멧젠바움으로 낭선종 아래 조직을 자른 순간이다.
푸슉.
잘린 조직 사이로 갑자기 피가 번져 나오기 시작했다.
솟구치진 않았지만 출혈량이 상당했다.
허나 그 부분을 절제해도 출혈이 생기는 게 오히려 이상한 상황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 때문일까?
“어, 어?”
신창용은 순간 당황했는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변했다.
동시에 마취의가 소리쳤다.
“혈압떨어집니다! Arteriopressor(승압제)투여하고 혈액 추가합니다!”
마취의가 순간 부산해졌다.
약을 투입하고 준비하고 있던 혈액을 다른 IV에 연결하는 손길이 신속했다.
허나 피는 쉽게 멈추지 않았다.
신창용이 얼른 손을 움직였다.
“거즈! 썩션으로 여기부터 빨아들여!”
말은 그랬지만 신창용의 눈빛은 여전히 거칠게 떨리고 있었다.
태수가 썩션으로 피를 빨아들이는 사이 신창용은 거즈로 남은 피들을 걷어냈다.
허나 피는 쉽사리 멈추지 않았고 출혈점도 정확하게 보이지 않았다.
“여기……. 아닌데, 그럼 이쪽인가?”
신창용의 손길이 다급했다.
당황한데다가 마음만 앞섰는지 손길이 정확하지 않았다.
반면 썩션으로 피를 빨아들이던 태수는 피의 색깔부터 확인했다.
검붉은 색.
그럼 정맥이다.
간을 통과하는 두꺼운 정맥관은 간정맥이 유일하다.
그렇지만 지금 신창용이 자른 부분은 간정맥이 지나는 길이 아니었다.
허나 출혈은 심하다.
일단 출혈점을 찾아 지혈하는 게 우선이다.
당황한 신창용과 달리 태수는 침착하게 옆에 있는 간호사에게 말했다.
“디버(견인기).”
“네?”
“빨리.”
태수가 나지막이 재촉하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간호사는 허둥거리며 썩션과 디버를 내밀었다.
우선 태수는 썩션으로 피부터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거기서 끝내지 않고 장을 젖힐 때 주로 사용하는 디버로 거의 잘려진 낭선종을 옆으로 젖혔다.
출혈은 더욱 심해졌다.
태수의 행동에 신창용이 버럭 소리쳤다.
“뭐하는 짓이야!”
“낭선종부터 마저 제거해야겠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젖히면 피가 더 나오잖아.”
신창용의 반론이 들렸으나 지금은 전문의와 치프 관계가 아니다.
환자 생명이 더 중요했다.
어떤 고난이 기다리더라도 태수의 마음은 늘 하나였다.
난 의사다!
환자의 생명을 지키는 외과의사다.
그 신념으로 태수는 침착하게 의료진들에게 오더를 내렸다.
“혈액 더 추가해 주시고요. 저, 메이요 주시고 여기 디버 좀 잡아 주세요.”
“여기 메이요요.”
간호사는 메이요를 건네주며 디버를 이어 받았다.
마취의는 혈액을 하나 더 추가하는 등 손길이 바빴다.
의료진들도 알고 있다.
신창용은 비록 전문의라고 해도 이런 케이스 수술 경험이 부족해 지금 냉정하지 못한 상황이다.
그렇기에 어시스던트하는 태수의 오더에 집중했다.
태수는 한 손으로 피를 흡입하며 정확하게 낭선종의 남은 조직을 제거할 타이밍을 노렸다.
다행히 출혈보다 썩션으로 흡입되는 피의 양이 훨씬 많았다.
그렇기에 환부에 차오는 피는 빠르게 사라져 갔다.
태수가 잠깐 타이밍을 보고 있던 중이다.
곧 잘라야 할 곳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한 번의 가위질로는 매끈하게 잘라낼 수 없는 넓이다.
하지만 태수는 거침없이 메이요를 놀렸다.
서걱!
메이요의 날카로운 날에 간에 붙어 있던 낭선종이 떨어져 나갔다.
물론 지금 잘라낸 단면은 앞서 시간을 들였던 것과는 달랐다. 변성 부위가 모두 제거된 건 아니었다.
태수는 개의치 않고 상황부터 살폈다.
정맥은 뒤쪽으로 흐르는데 이렇게 피가 많이 나온다면?
간문맥이다.
보통 사람과 위치가 조금 다르긴 하지만 이정도 출혈을 일으킬 정도라면 간문맥이 확실했다.
다행인 건 간문맥을 완전히 잘라낸 게 아니었다.
반이 좀 넘게 잘리긴 했지만 봉합하는 데 커다란 문제는 없다.
실수?
아니다.
이 환자의 간문맥 위치가 보통 사람들과 달랐다.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다.
똑같은 사람들인데도 미세하게 장기의 위치나 혈관 위치가 다르다.
그런데다가 이 환자의 간문맥 위치는 몇 센티미터나 차이가 났다.
보통의 경우라면 절대 잘려나가지 않았을 간문맥이지만, 환자 장기의 생김새가 그러하기에 발생한 일일 뿐이다.
수술 중에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도 그런 이유가 컸다.
셀 수도 없는 집도를 거친 태수는 그런 미묘한 차이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허나 상대적으로 경험이 너무도 적은 신창용이기에 당황하는 것도 이해가 됐다.
어느새 태수는 봉합사로 반쯤 잘린 간문맥을 빠르게 봉합했다.
곧 출혈이 멈췄다.
모세혈관에서 흘러나오는 자잘한 출혈이 있지만 환부를 가릴 정도는 아니다.
돌발 사태가 진정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1분 남짓이다.
수술실은 다시 평온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그때까지도 놀라고 있던 신창용도 곧 정신을 차렸다.
아니, 속으로 경악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넋을 놓고 지켜봐야 했을 정도다.
돌발 상황으로 인한 놀라움보다 태수의 신속한 조치가 더더욱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신창용이 아직 놀라움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태수를 바라봤다.
허나 태수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신창용에게 먼저 말했다.
“이쪽 부분 조직이 덜 제거 됐습니다.”
“그, 그렇지.”
신창용은 대답을 하며 얼떨떨함을 애써 억눌렀다.
솔직히 묻고 싶은 게 많다.
하지만 수술 중이다.
돌발 사태에 잠깐 멈칫했다지만 일단 수술부터 마무리 지어야 순서다.
마음을 몇 번이나 가라앉힌 후에야 신창용은 가까스로 안정을 되찾고 마무리 작업을 시작했다.
태수는 그런 신창용과 다르게 끝까지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보조를 이어갔다.
***
수술이 끝난 후.
태수는 신창용의 방에 자리해 있었다.
막 수술을 마친 후라서 그런지 두 사람의 안색에 피곤함이 서려 있었다.
그러나 상석에 자리한 신창용은 테이블에 놓인 음료수와 간식도 마다하고, 쉬고 싶다는 몸의 항의도 무시한 채 태수를 바라봤다.
“도대체 치프는 뭐야?”
“무슨 뜻인지 이해가 잘 안 갑니다만.”
“아니야. 나중에 다시 묻도록 하지. 일단 좀 먹어.”
신창용이 권하자 태수는 그제야 옅은 미소를 보이며 인사했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태수는 지체 없이 손을 뻗어 음료수와 간식을 입으로 가져갔다.
두 시간 남짓한 짧은 수술이지만 진을 쏟은 건 그 어떤 수술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만큼 소비한 에너지가 많기에 얼른 속을 채워갔다.
한 손에 음료수를 들고 다른 손에는 간식을 든 모습이다.
마치 수술실에서 양손에 수술 도구를 든 것처럼 교대로 입으로 가져가는 모습이 해맑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태수를 바라보는 신창용의 가느다란 눈빛은 복잡하기만 했다.
수술이 끝났다고 낭선종 환자에 대한 모든 치료가 끝난 건 아니었다.
우선 ICU(중환자실, 집중치료실)에서 마취가 깨어나길 기다려야 했다.
거기가 끝이 아니다.
그 후에는 하루나 이틀 정도 경과를 지켜봐야 했다.
다행히 수술 후 복수가 찬다든지 하는 합병증은 일어나지 않았다.
차도가 좋아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긴 후였다.
태수가 신창용을 찾아갔다.
방문을 통해 들어오는 태수를 본 신창용이 먼저 물었다.
“무슨 일이지?”
“낭선종 환자 때문에 왔습니다.”
“왜? 상태가 안 좋아졌어?”
신창용의 눈빛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고는 하나 간문맥을 반쯤 잘랐던 게 계속 마음에 남아 있었던 듯 한 얼굴이다.
태수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건 아닙니다.”
“그럼 왜?”
“환자에게 수술실에서의 일을 설명하는 게 도리인 거 같습니다.”
태수가 말하자 신창용의 얼굴이 조금 가라앉았다.
태수는 대답이 들려올 때까지 그 자리에 서서 기다렸다.
신창용의 눈매에 작은 변화들이 보였다.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이 오가는 모양이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흐른 후였다.
그릉.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 신창용이 태수에게 말했다.
“가지.”
“어딜…… 말입니까?”
“따라와.”
신창용은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고 방을 나섰다.
반면 태수는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하지만 아직 대답을 듣지 못했기에 일단은 신창용의 뒤를 따랐다.
신창용이 태수를 이끌고 간 곳은 낭선종 환자가 입원한 병실이다.
뒤따르던 태수의 눈빛이 묘하게 변했다.
그러나 신창용은 걸어가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