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2498
02501 2501화
그렇게 복도에서 한숨 돌린 후였다.
태수가 삐걱거리는 몸을 움직이며 팀원들을 독려했다.
“끄으응, 이제 일어나시죠.”
“그래, 일어나자. 일어나. 흐읍!”
덜덜덜.
억지로 몸을 일으키지만 팔다리가 후들거리는 모습은 여전했다.
다들 그렇게 노력하는 반면 유병태는 누워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난 못 가. 안 되겠어.”
“넌 왜 또 반항이야. 요즘 진만이 없어서 귀가 조용한데, 왜 니가 난리냐고.”
박성민이 투덜거렸지만 유병태는 여전히 복도와 한 몸을 유지하고 있었다.
“진짜 너무 힘들어서요. 그냥 여기서 조금만 자면 안 될까요?”
“이 자식이. 니가 숙자 씨야? 이런 데서 자면 입 돌아가는 건…… 니 사정이다만, 여기 애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 거야.”
“지들이 VWD 수술 해 보라고 하세요.”
“어쭈, 너 진짜 안 일어나? 태수야, 저거……. 너 어디 가?”
박성민이 멀어져 가는 태수를 불러 세웠다.
슬쩍 고개만 돌려 퀭한 얼굴 그대로 태수가 물었다.
“저요?”
“그래, 너. 바로 너. 너너너, 너 어디 가냐고.”
“보호자들하고 병원장 만나러 가는데, 함께 하실래요?”
태수가 묻는 순간이었다.
멈칫한 박성민은 얼른 몸을 숙여 유병태의 팔을 어깨에 걸치며 투덜거렸다.
“야야, 여기서 이러면 다들 욕한다니까. 얼른 일어나자. 우리 병태, 아이고, 잘한다. 우쭈쭈.”
역시나 외면하는 박성민의 움직임이었다.
태수는 별 기대하지 않았기에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 찰나의 순간 시선에 닿는 팀원들이 황급히 고개를 돌리기 바빴다.
“크으음! 여, 여기 복도가 깔끔하네.”
“샤워실이 어디라고 했더라.”
“우리 뭐 좀 먹어야 할 텐데.”
다들 딴소리만 늘어놓자 태수가 옅게 미소 지었다.
“안 가실 거 아니까 모르는 척 안 하셔도 됩니다.”
“그럼 빨리 가요. 사람 불안하게 하지 말고. 가뜩이나 힘들어 죽겠는데 눈치까지 보게 합니까? 빨리 가요, 가.”
휙휙.
김혁권이 손까지 휘저으며 태수를 밀어냈다.
이젠 섭섭하지도 않았다.
“다녀올 테니까 씻고 천천히 나오세요.”
돌아선 태수는 팔자려니 생각하며 터덜터덜 움직였다.
다행히 이동 거리는 멀지 않았다.
드르륵.
수술장 문을 열고 나오자 그 앞에 보호자들과 베르테 병원장, 닥터 크리니코가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태수는 의사들은 뒤로하고 보호자들과 마주했다.
노인부터 청년까지 연령층이 다양했다.
모두 엘라와 가장 가까운 가족들이었다.
태수는 그중 백발 머리에 일흔이 넘은 노인을 바라봤다.
걱정 가득한 표정과 다르게 눈매가 날카로운 노인이었다.
그가 바로 엘라의 아버지, 카슈였다.
태수는 그동안 여러 차례 만났기에 다가온 카슈에게 먼저 고개 숙여 인사했다.
“이렇게 다시 뵙습니다.”
“닥터 최, 저기…… 저기…….”
카슈의 목소리 끝이 계속 떨렸다.
현역 때 엄청 깐깐하고 철두철미하게 병원 재무를 관리했다고 들었다. 아직도 날카로운 눈매가 충분히 젊었을 때를 짐작하게 했다.
그런데 수술한 상대가 자신의 딸이었다.
그 딸이 중년에 가까운 세월을 살아왔다고 해도 아버지의 눈엔 여전히 작고 여린 소녀인 모양이었다.
그 주변을 둘러싼 형제자매와 남편, 자식들의 얼굴에도 걱정과 불안함이 강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보호자의 심정은 세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똑같았다.
태수도 더 지체하지 않고 가장 어른인 카슈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선 엘라의 수술은 무사히 마무리됐습니다.”
“하아아……. 고, 고맙습니다.”
덥석.
태수의 손을 쥔 카슈의 손길이 가늘게 떨려 왔다.
그뿐만이 아니라 다른 식구들의 두 눈이 충혈되기 시작했다.
태수는 그런 그들을 보며 다음 말도 차분하게 이어 갔다.
“이직 끝이 아닙니다. 우선 깨어나는 게 중요하고, 그다음은 3일 정도 초기 트러블을 잡아야 합니다. 또 앞으로 중요한 건…….”
그렇게 보호자들에게 이후의 과정을 설명했다.
그 와중에도 꼭 당부를 곁들였다.
환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고, 미소와 희망을 주라는 거였다.
그렇게 보호자들과의 만남이 순탄하게 끝난 후였다.
보호자들은 병실로 돌아갔다. 중환자실에서 며칠 경과를 봐야 하는 터라 당장 면회를 할 수 없어서였다.
저 멀리 떠나가는 보호자들을 향한 태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정말 정신력으로 버티는 중이었다.
그때였다.
스윽.
좌우에 베르테 병원장과 닥터 크리니코가 다가섰다.
둘 중 베르테 병원장이 먼저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괜찮고 싶은데…… 그렇지 못하네요.”
“그러실 겁니다. 지켜보는 것도 힘든데 오죽하셨겠습니까.”
“지금 어떤 대화를 나누기에는…….”
태수가 말꼬리를 흐리자 베르테 병원장이 바로 알아들었다.
“제가 그렇게까지 양심이 없진 않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얼굴 보는 걸로 만족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몸 상태가 이래도 수술이 끝나니까 기분은 좋습니다.”
“그래도 우선 좀 쉬셔야죠. 그러고 보니 아무도 안 나오셨습니다.”
“지금 씻고 있을 겁니다. 당장 움직이긴 조금 힘들 거 같고요.”
“뒷일은 걱정 마십시오. 내과장부터 각오를 다지고 중환자실로 갔으니까요.”
베르테 병원장이 자신감을 보였다.
태수도 지금 더 이상 움직이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밖에 미니버스 준비해 놓겠습니다.”
“병원장님이 최고십니다.”
“무슨 말씀을요. 아니, 제가 여기 서 있는 게 더 부담되실 테니까 먼저 움직이겠습니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베르테 병원장은 정중하게 인사하고 돌아섰다. 그리고 휴대폰을 들어 누군가와 통화하며 멀어져 갔다.
이제 남은 건 닥터 크리니코가 유일했다.
시선을 마주한 태수가 멈칫했다.
며칠 전 밖에서 따로 만난 일이 있었다.
그때 좋은 대화를 많이 나눠 친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닥터 크리니코의 눈빛은 과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부담을 느낀 태수가 먼저 나지막이 불렀다.
“닥터 크리니코?”
“왜죠? 그동안 왜 절 속인 겁니까?”
“속이다니요? 제가요?”
태수가 화들짝 놀라 바라보자 닥터 크리니코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말했다.
“왜 닥터 최가 그렇게 뛰어난 실력을 가진 의사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닥터 최뿐입니까? 모두가 마찬가지였습니다.”
“네? 아…….”
“그렇게 반응하실 일이 아닙니다. NGO 데이터베이스에 기록된 닥터 최에 대한 평가가 너무 야박합니다. 그 잘못된 정보를 당장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는 점점 흥분하더니 목소리가 어느새 복도를 울릴 정도로 커졌다.
태수는 그런 닥터 크리니코부터 진정시켰다.
“좀 진정하세요.”
“지금 진정할 때입니까? 잘못된 건 잘못됐다고 말해야죠.”
“저 그렇게 뛰어난 의사 아닙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그건 겸손이 너무 지나친 말씀입니다.”
닥터 크리니코의 흥분한 말투에도 태수는 지나칠 정도로 무덤덤했다.
“설령 닥터 크리니코 말씀처럼 제가 저평가된 의사라 해도 상관없습니다.”
“왜요? 도대체 왜 상관이 없다고 하십니까?”
닥터 크리니코는 자신의 일인 듯이 격하게 반응했다. 그런 그에게 태수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답했다.
“의사들에게 알아 달라고 수술하는 건 아니잖습니까. 누군가 알아주길 바란다면 그건 환자이고 싶습니다.”
“…….”
“이번 케이스는 수술만 끝난 겁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았으니까 칭찬을 듣더라고 그 후에 듣고 싶습니다.”
“닥터 최, 도대체 당신은…….”
닥터 크리니코의 표정 자체가 감정적으로 변해 갔다.
더 이상 자기감정에 도취되기 직전 태수가 슬쩍 넉살을 얹었다.
“기왕이면 부자 환자들이 알아주면 좋겠습니다. 아니면 어디 한자리 하시는 분들도 좋고요.”
“…….”
“하하, 하아…….”
멋쩍음에 웃던 태수의 목소리에 힘이 점점 빠졌다.
닥터 크리니코가 너무 빤히 바라본 탓이었다.
머쓱해하는 태수를 향해 닥터 크리니코가 빙긋 미소 지으며 말했다.
“멋지시네요.”
“제가요? 저 진짜 욕심 많고 제멋대로인데요.”
“…….”
닥터 크리니코가 그저 빤히 바라봤다.
태수는 자신의 농담이 객쩍어 슬쩍 시선을 돌렸다.
“흐으음.”
괜한 헛기침을 흘릴 때였다.
닥터 크리니코의 차분해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겠습니다.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닥터 최가 그렇다면 그런 거죠.”
“아무래도 단단히 오해를 하신 거 같은 느낌이 드는데요.”
“전혀요. 전 제 눈으로 직접 본 걸 말씀드리는 거고, 또 제 눈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닥터 크리니코의 목소리가 너무 확고하자 태수는 괜히 걱정이 됐다.
“저기, 그러지 마시고…….”
“닥터 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짐작이 갑니다.”
“…….”
침묵하는 태수에게 닥터 크리니코가 미소를 보였다.
“원하시는 대로 조용히 있겠습니다. 하지만 오늘 제 눈으로 본 모습을 절대 잊진 않을 겁니다.”
“…….”
“전 확신합니다. 닥터 최의 진가는 제가 아니라도 언젠가 세계가 알아줄 거라고요.”
닥터 크리니코가 확신을 넘어서 단언했다.
태수는 옅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러면 좋죠.”
“제가 허튼소리 하는 거 같습니까?”
“그런 의미는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시고요.”
“이상하게 밤을 꼬박 새웠는데 피곤하지 않습니다. 지금 심정으로는 사무실보다 수술실로 들어가고 싶네요.”
닥터 크리니코는 그저 하는 말이 아닌지 두 눈이 활활 타올랐다.
태수는 그저 미소만 내보였다.
뭐라고 할 말이 없던 탓이다.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 닥터 크리니코가 아차 한 얼굴로 말했다.
“이거 쉬셔야 하는데 제가 너무 흥분해서 잡고 있었네요.”
“아닙니다. 밤새 지켜봐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무슨 말씀을요. 어서 가서 쉬……. 닥터 최 얼굴을 보니까 제가 얼른 사라져야 쉬시겠습니다. 먼저 갑니다.”
말을 마친 닥터 크리니코는 마치 쫓기듯이 멀어져 갔다.
태수가 조금이나마 더 빨리 쉬길 바라는 모습이었다.
작은 배려가 지금은 너무도 고마웠다.
그렇게 혼자가 되고야 태수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후우.”
덜덜덜.
어깨부터 손끝까지 다시 가늘게 떨려 왔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라 긴장했던 몸이 이제야 풀리는 모양이었다.
몸이 느끼는 피로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정말 복도 한복판에 쓰러져 기절할지도 몰랐다.
그때였다.
드르륵.
뒤에서 수술장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태수는 다시 바짝 긴장하고 돌아봤다. 뒤에 나온 사람들을 확인한 순간 그 긴장감은 다시 쭉 풀어졌다.
바로 팀원들이었다.
샤워를 마친 모습이라 한결 깔끔했다.
그런데 그 샤워가 오히려 근육의 긴장을 푸는 독이 됐는지 팔다리가 따로 놀고 있었다.
“아이고고.”
“으윽, 으으.”
앓는 소리는 기본이고 서로서로 의지하기도 했다.
어기적거리며 다가오는 그들에게 태수가 밝은 얼굴로 말했다.
“이제 가서 쓰러지죠.”
“뒷일은?”
“내과장이 중환자실로 갔다네요.”
“그래, 그렇게 수술해 놨는데 반나절 정도는 문제가 있어도 버텨 주겠지.”
박성민은 눈가가 가늘게 떨리는 모습으로 말했다.
태수는 볼이 떨리는 얼굴로 답했다.
“실력이 떨어지는 건 아니잖습니까. 엘라 같은 VWD 케이스가 익숙하지 않은 거죠.”
“아, 몰라. 지금은 나 쉬는 것만 중요해.”
박성민의 말에 다른 팀원들이 격하게 동감을 표했다.
“제발 그만 떠들고 좀 가자.”
“으으, 내 다리가 막 춤추고 있어.”
“나도 똑같아요.”
“저희도 그렇거든요?”
의사들에 이어 간호사들까지 아우성이었다.
태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미니버스 준비됐을 테니까 가시죠.”
“호텔로 가는 거야?”
“당연합니다.”
“얼른 가자고!”
방금 비난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환호했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참 개성적이었다.
은은한 미소를 띤 태수가 나지막이 말했다.
“가시죠.”
“우오!”
모두 격한 탄성을 토하며 몸을 움직였다.
100미터 달리기로 뛰어갈 눈빛들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후들후들 떨며 걷기에 급급했다.
“아으윽.”
“아으.”
아우성치는 근육으로 인해 터져 나오는 앓는 소리는 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