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2505
02508 2508화
그 정도로 눈썰미가 있는 인물인데 더 말할 이유가 없었다.
곧장 기대 어린 얼굴로 받은 가죽을 펼쳤다.
그와 동시에 두 사람의 눈도 둥그렇게 떠졌다. 청진기와 포셉 종류, 그리고 진료에 사용되는 의료 도구들이 들어 있었다.
손에 꼭 맞아야 할 도구는 아니라지만 그래도 때깔부터가 특별했다.
“우와.”
이런 의료 도구를 소유할 수 있단 것만으로 감격한 표정들이었다.
레테의 행보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김혁권 앞에 다가선 그가 빤히 바라봤다.
그러자 김혁권이 황당한 표정으로 먼저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네놈은 의사냐, 간호사냐?”
“간호삽니다만.”
“그런데 왜 닥터 최 수술 도구에 네가 사용한 흔적이 있어?”
그가 콕 집어 물었다.
그러나 김혁권은 보통내기가 아닌지라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반문했다.
“그게 내가 사용한 흔적인지 어떻게 아십니까?”
“네 주둥이는 거짓말을 해도 손은 거짓말을 못해.”
“…….”
“어중이떠중이보다 네놈 수술 실력이 더 좋을 거 같던데.”
“간호사입니다. 간호사로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도 간호사로 만족하고 살렵니다.”
김혁권이 강조해 말한 순간이었다.
스윽.
가죽 뭉치를 내민 레테가 한쪽 입꼬리를 들며 말했다.
“제임스도 그렇게 말할 거라고 하더니만, 좌우간 네놈에게 필요한 것만 넣었어.”
“뭐, 잘 쓰겠습니다.”
“고맙단 인사 정도는 해라.”
“고맙습니다.”
김혁권이 심드렁하게 인사했다.
레테는 화를 내는 게 아니라 그럴 줄 알았단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더니 이선정 간호사, 최소현 간호사, 노지연 간호사에게도 가죽 뭉치를 하나씩 건넸다.
간호사들은 공통적인 수술 도구를 받았고, 그건 주로 리트렉터 계열의 보조용 수술 도구들이었다.
예상치 못한 선물에 눈빛부터 달라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머머! 이거…… 너무 좋다.”
“오늘 안고 잘래요.”
“수술 언제 하시나.”
간호사들도 수술에 대한 열망이 솟구치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한바탕 난리가 난 후였다.
태수는 수술 도구 정리를 마치고 레테에게 다가갔다.
“이걸 어떻게…….”
“제임스에게 빚진 거 갚은 거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
“물건에 하자 없으면 빨리 가. 난 이제 쉬어야겠으니까.”
레테가 손짓까지 하며 재촉했다.
그러나 태수는 나서지 않고 고민하다 차분한 얼굴로 권했다.
“제가 재주가 없어서 다른 건 몰라도 진찰은 좀 합니다. 그러니까…….”
“나한테 문제가 있었으면 여기 찾아오는 놈들이 지금까지 놔뒀을까?”
“그건…… 아니겠죠.”
“깊게 생각할 거 없어. 고마운 마음이 든다면 제임스에게 하면 돼. 아, 대금은 스미스가 지불하기로 했고, 미세스 카프레네도 함께 부탁한 거니까 알아서 고맙다고 하고.”
그 소리에 태수가 멈칫했다.
“그분들이요?”
“그럼 네가 뭐 대단한 놈이라고 내가 손을 대 주나?”
“…….”
태수는 입을 다물었다.
그의 실력을 직접 체험했기에 부정할 수가 없었다.
세계 정상급 의사들이 주 고객일 터였다.
레테의 성정으로 보면 유명하단 이유로 수술 도구를 만들어 주지도 않을 것 같았다.
그런 귀한 물건임이 틀림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레테가 덧붙여 말했다.
“대충 어떤 사이인 줄은 아니까 가타부타 말할 거 없고. 좌우간 그녀가 챙겨 주란 의사는 자네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야.”
“…….”
“난 할 말 끝났으니까 다 챙겼으면 알아서 돌아가.”
레테는 그렇게 말하고는 작업실 안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탁.
태수는 그 모습을 그냥 지켜만 봐야 했다.
잡을 수도 없었고, 잡아도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대신 자신의 손에 쥐어진 가죽 뭉치를 다시 내려다봤다.
새롭게 변화한 자신의 맞춤 수술 도구들이었다.
제임스가, 미세스 카프레네가, 또 스미스가 이곳에서 만남을 가졌던 일도 오늘을 위한 포석이라 짐작됐다.
어쩌면 그들만의 졸업 선물이 아니었을까?
여기서 끝이 아니라 이제부터 더 발전한 자신의 모습을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생각을 하자 태수는 속이 후끈해졌다.
휙!
시선을 돌린 태수가 모두에게 물었다.
“손이 근질거리지 않습니까?”
“죽을 거 같아. 이렇게 말하면 안 되는데 써 보고 싶어 미칠 거 같아.”
“그럼 오늘 바로 출발하죠.”
“한국?”
“아니요. 미국으로요.”
태수의 엉뚱한 말에 다들 갸우뚱거렸다.
“갑자기 웬 미국?”
“나온 김에 연 5회 수술 채우고 들어가자고요. 그럼 올해 내내 한국에서 꼼짝 않고 열심히 수술할 수 있으니까요.”
“……나중에 또 시간 쫓겨서 나오는 것보다 그게 좋긴 하지.”
“그리고 나온 김에, 여기 두 분도 좋은 일 하나 만들어서 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태수가 가리킨 두 사람은 공우혁과 김아름이었다.
무슨 뜻인지 직감한 모두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내과도 있어야 어딜 가도 편하긴 하지.”
“르완다에서 부족들 둘러볼 때도 솔직히 내과 일이 더 많았어.”
다들 동조하자 박성민이 진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얘들아, 뭐 하냐? 인사하고 가자.”
“네!”
“자자, 바르게 서고.”
박성민은 호들갑스럽게 말했지만 모두가 반발하지 않고 바로바로 따랐다.
그렇게 태수를 시작으로 모두가 길게 늘어섰다.
레테는 이미 내실로 들어간 후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듣고 있으리라.
그 생각으로 태수가 힘차게 구령을 붙였다.
“하나, 둘, 셋.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얼마나 커다란 목소리인지 가게 내부가 미미하게 흔들리는 느낌까지 들었다.
그때였다.
텅!
내실에서 쇠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레테의 화답이 분명했다.
인사가 통했단 사실에 다들 미소 지었다.
그리고 일제히 돌아서서 씩씩하게 밖으로 나갔다.
그로부터 보름 후.
인천국제공항 입국장 문이 열렸다.
그 틈으로 태수와 팀원들이 당당하게 걸어 나왔다.
이번 입국은 조용했다.
태수가 김성국 기자에게 부탁한 탓이다.
그래서 요란하지 않고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한국에 들어올 수 있었다.
드르륵.
선글라스를 착용한 태수가 캐리어를 끌고 앞서 걸어갔다.
그런 태수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또 달려 보자고.’
태수의 표정이 한결 씩씩해지고 또 자신감이 가득 차올랐다.
그건 뒤에서 따라오는 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귀국 후 첫 스케줄은?
당연히 휴식이 제일 먼저였다.
곧바로 다시 일에 임하는 건?
한마디로 미친 짓이다.
지친 심신을 풀어줄 일이 더 급했다.
모두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온 태수는 짐 정리도 뒤로한 채 우선 침대로 직행했다.
“아이고.”
앓는 소리가 절로 흘러나오는 건 그저 비행의 피로만은 아니었다.
보름 동안 5회 수술.
그것도 초청 수술이란 이유로 어느 하나 순탄한 수술이 없었다.
한 번 수술이 끝나면 초주검이 되어 나오기 일쑤였다.
그런 수술만 진행했으니 쉽게 소화할 수 있는 스케줄이 아니었다.
특히 마지막 수술을 끝내고 반나절도 되지 않아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돌아왔다.
그런 상황이니 몸이 정상적일 리가 없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 순간조차 사치였다.
머릿속은 이미 빙빙 돌고 있었다. 이럴 땐 자는 게 최선의 선택이자 진리였다.
어느새 저절로 눈이 감겼고, 태수는 거부하지 않고 그대로 잠들었다.
다음 날.
태수는 아침나절 주영수와 함께 카센터로 향했다. 누나와 매형, 그리고 수현이의 선물을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태수야.”
“누나.”
선물을 전하고 밀린 대화를 나누느라 오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른다. 그 후 빵빵하게 점심 식사를 마친 후 태수는 카센터를 나섰다.
그런 태수가 두 번째로 향한 장소는 바로 성호종합병원이었다.
태수가 병원장실에 들어서자 이제 낯이 익을대로 익은 한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오랜만이에요.”
“오랜만은요. 조금 전에 전화드렸잖습니까.”
태수가 미소 띤 얼굴로 답하자 박하나 비서가 새치름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두 달 만에 덜렁 전화 한 통 하신 거라고요.”
“섭섭해 하실 줄 알고 선물 하나 준비해 왔습니다.”
태수가 슬쩍 자그마한 종이봉투를 건넸다.
그 속을 힐끔 확인해 본 박하나 비서의 표정이 대번에 환하게 달라졌다.
“귀걸이네요?”
“메이드 인 밀라노입니다.”
“어머.”
박하나 비서의 표정이 금방 환하게 밝아지자 태수가 슬쩍 용건을 물었다.
“병원장님 계시죠?”
“그럼요! 팀장님께서 신신당부하신 대로 전화 왔었단 사실도 전해 드리지 않았어요.”
“그럼 깜짝 이벤트를 해 볼까요?”
태수가 짓궂은 표정으로 어느새 방긋 미소 짓는 박하나 비서를 지나쳐 집무실 문으로 다가갔다.
똑똑.
바로 노크를 하자 안에서 석재봉 병원장의 의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음, 박 비서가 어디 갔나……. 들어와요.”
굵은 음성의 허락이 들려온 순간 태수가 진하게 미소 지으며 집무실 문을 열었다.
끼익.
안으로 들어가자 집무실 책상 의자에 앉아 문쪽을 무심코 바라보던 석재봉 병원장의 눈이 크게 떠졌다.
“아니, 최 팀장.”
“그간 별고 없으셨습니까.”
태수는 깊게 고개 숙여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석재봉 병원장은 얼떨떨한 얼굴로 의자에서 일어나며 일단 마주 인사했다.
“어, 그래…… 무탈했어.”
“다행입니다.”
“다행이나 마나 이렇게 불시에 들이닥칠 줄은 몰랐는데. 어제 도착한 거 아니었어?”
책상을 돌아 나오는 석재봉 병원장의 얼굴엔 아직 놀람이 남아 있었다.
그사이 고개를 든 태수가 빙긋 웃으며 답했다.
“네, 어제 입국했습니다.”
“이번 주까지 쉰다고 하고 벌써 출근할 리는 없고, 좌우간 우선 손부터 한번 잡자고.”
석재봉 병원장이 손을 내밀며 다가오자 태수가 공손히 맞잡았다.
그때 열려 있는 문틈으로 박하나 비서가 음료를 준비해 들어왔다.
달칵.
자연스럽게 소파 테이블에 내려놓는 그녀를 보며 석재봉 병원장이 슬쩍 흘겨봤다.
“박하나 비서, 어째 우리끼리 할 말이 있는 거 같은데.”
“전 팀장님이 부탁한 대로 한 거예요.”
“그래도 이렇게 감쪽같이 속일 수가 있나. 다들 참 짓궂어.”
말만 그랬지, 석재봉 병원장은 아무런 감정없이 단지 유쾌한 장난으로 받아들인 표정이었다.
박하나 비서도 미소 띤 얼굴로 인사했다.
“그럼 대화 나누세요.”
“표정이 너무 밝은데, 좋은 일 있나?”
“호호.”
박하나 비서는 그저 웃음으로 얼버무리며 나갔다.
석재봉 병원장은 잡은 손 그대로 태수를 응접 소파로 이끌었다.
“앉아, 일단 앉자고.”
“네.”
“그런데 박 비서 얼굴이 너무 밝던데, 괜히 그럴 사람도 아니고.”
“소소한 선물 하나 안겨 드렸습니다.”
“역시. 모든 일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라니까.”
석재봉 병원장이 그제야 이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태수가 들고 온 종이봉투를 테이블 위에 올리며 말했다.
“이건 병원장님 생각나서 준비한 겁니다.”
“나? 뭘 나까지 챙기나.”
“당연히 챙겨야죠. 그런데 제가 안목이 없어서 어떠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최 팀장 안목이 어떤지 한번 볼까?”
스윽.
종이봉투 속에서 내용물을 꺼내 든 순간 석재봉 병원장의 눈썹이 살짝 들썩거렸다.
“어? 이건…….”
“베네치아에서만 주조하는 술이라는데, 술병이 독특해서 술장에 장식하기 좋지 않을까 싶어서요.”
“진짜 술병이 독특한 게 멋진데?”
석재봉 병원장은 정말 마음에 드는지 두 손으로 쥐고 이리저리 둘러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