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254
00257 257화
“수술은 할 수 있겠지만, 솔직히 그리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위험해서요?”
“위험하죠. 그리고 수술 시간도 오래 잡아야 하고, 수술 중간중간에 어떤 부작용이 튀어 나올지는 장담하지 못하니까요.”
태수의 대답을 들으며 김수진 간호사는 뭔가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듯 눈이 좌우로 왔다 갔다 했다.
그러더니 이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알려주셔서 고마워요.”
“혹시 주변에 누가 크론병 진단을 받았습니까?”
아무 의미 없이 물은 질문인데 김수진 간호사는 움찔했다.
“아, 아니에요. 얼마 전에 TV에서 어떤 연예인이 그런 병이 있다고 해서 물어본 거예요.”
“그렇군요. 그보다 누가 그런 병에 걸렸으면 장을 전문으로 하는 서울 종합병원에 빨리 가
보라고 조언할 거 같습니다.”
태수의 대답에 김수진 간호사는 애써 새치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선생님은 정말 수술하기 싫으신가 보다.”
“상황이 어쩔 수 없다면 모를까, 피하고 싶긴 하네요.”
“그렇군요. 어쨌든 이야기 고마워요.”
“이 정도 상담해 드렸으면 돌아오는 게 있어야 하는데요.”
“뭐, 나중에 밥 한 번 사드릴게요. 그럼 됐죠?”
“얼마든지요. 그럼.”
태수는 가볍게 고개를 숙인 후 돌아섰다.
김수진 간호사와는 이런저런 이유로 밖에서 가끔 식사를 했다.
수술실에서 열정적으로 보조해 주는 간호사에 대한 일종의 보답이다.
서로 끈끈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그게 남녀 사이는 아니다.
그건 서로가 인정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렇게 약속을 잡은 태수가 개수대에서 손을 씻었다.
‘크론병?’
그냥 연예인이 그런 병에 걸려서 물어본다고 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었다.
이제야 직감이 갔다.
분명히 김수진 간호사의 지인이다.
하지만 본인이 아니라고 말하기에 태수는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았다.
며칠이 지난 후였다.
하석준 과장의 호출로 태수가 과장실에 들어섰다.
“찾으셨습니까?”
“일단 앉지.”
권하는 하석준 과장의 표정이 그리 달갑지 않았다. 이유 모를 일이라 자리한 태수가 먼저 물었다.
“혹시 무슨 일이 있습니까?”
“일이라면 일이지.”
“무슨 말씀이신지요?”
태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하석준 과장이 물었다.
“혹시 김수진 간호사가 크론병에 대해서 묻지 않았나?”
“얼마 전에 수술 끝나고 나왔을 때 그런 이야기를 하긴 했습니다만.”
“역시 치프한테도 물었던 모양이네.”
“그럼 과장님한테도요?”
태수의 물음에 하석준 과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뿐이 아니라 전문의들에게 모두 물어본 모양이야. 모두 고개를 저었는데 유일하게 치프만 경험이 있다고 했다더라고.”
“어쩐지 좀 이상하다고 느끼긴 했습니다만. 누가 그 병에 걸렸는데 그랬답니까?”
“김 간호사 아버지.”
하석준 과장의 대답에 태수가 멈칫했다.
“그럼 신장결석 같은 합병증도…….”
“그래. 심각한 모양이야.”
“저런.”
태수의 얼굴에 진심 어린 안타까움이 드러났다.
하석준 과장은 그런 태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문제는 그게 아니야.”
“그러면요?”
“오늘 저녁 즈음에 우리 병원으로 트랜스퍼(이송)되어 올 거야.”
“제가 서울에 있는 장 전문 종합병원으로 가라고 추천했는데요.”
태수가 말하자 하석준 과장이 쓴 미소를 지었다.
“그쪽에서 이쪽으로 이송되는 거야. 입원은 한 달 전에 했는데 그쪽 의료진도 수술 성공률을 그리 높게 보지 않았다고 하네.”
“그럼 설마…….”
태수가 얼떨떨한 얼굴로 자신을 가리켰다.
하석준 과장은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치프가 수술해 줬으면 하더군. 다행히 모든 전문의들이 난색을 표하며 거부했기에 나중에라도 할 말은 없어. 아참, 박수철 선생이 적극 자네가 수술하라고 밀어주던데.”
“그래요?”
“덕분에 나를 포함해 모든 전문의들이 동의했어.”
박수철.
그가 왜 그랬는지 알만했다.
잠시 고민하던 태수가 고개를 저었다.
“저기 과장님. 저도 하고 싶지 않은 수술입니다만…….”
“그럼 김수진 간호사에게 치프가 말하는 건 어때?”
하석준 과장의 물음에 태수가 순간 입을 다물었다.
그동안 봐 온 정이 얼마인가.
까다롭고 난해한 수술이라고 못하겠다고 밀어내는 건 너무도 미안한 일이었다.
태수는 순간 이마에 진땀이 삐질 나오는 걸 느꼈다.
“후우.”
가볍게 땀을 닦는 태수의 모습에 하석준 과장이 묘한 얼굴로 바라봤다.
“치프가 이렇게 긴장하는 건 처음인 거 같은데 말이야.”
“저 아직 레지던트입니다. 배워야 할 게 산더미인 레지던트 말입니다.”
“그걸 누가 믿어. 아니, 날 그런 말로 설득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
태수는 할 말이 없었다.
그런 태수를 바라보며 하석준 과장이 대화를 이어갔다.
“자세한 EMR기록은 오후 늦게나 우리 병원으로 넘어올 거 같아. 그리고 김수진 간호사가 나한테 직접 부탁한 일이야.”
“그렇군요.”
“일단 가서 대화를 좀 나눠 봐. 거부를 하던 승낙을 하던 보호자와 직접 이야기를 해야지.”
“그렇게 하겠습니다.”
태수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하석준 과장이 말했다.
“지금 근무 중이라니까……. 아니야, 둘이 잠깐 나갔다가 와. 내가 수술실에 이야기해 놓을 테니까.”
“과장님.”
“치프와도 인연이 깊은 간호사지만 나한테도 마찬가지야. 기왕이면 딱딱한 병원 말고 시원한 거라도 마시면서 이야기하는 게 좋을 거 같아.”
“알겠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
태수는 거부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심각한 이야기로 진행될 터였기에 구설수가 난무한 병원에서 둘이 따로 대화하는 건 현명하지 않았다.
그 길로 태수는 옷을 갈아입고 병원 현관으로 향했다.
현관에는 이미 김수진 간호사가 기다리는 중이었다.
수술실에서는 사나운 B사감과 같이 날카로운 이미지였지만 사복을 입었을 때는 커리어 우먼 분위기가 풍겼다.
가끔 같이 외출해서 식사할 때 봤던 모습이기에 태수는 한달음에 달려갔다.
김수진 간호사의 어두운 표정을 본 태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답답하신 거 같은데 시원한 걸로 속부터 식히러 가시죠.”
“어디 아시는 데 있나요?”
“따라오시면 됩니다.”
태수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김수진 간호사와 함께 몸을 움직였다.
잠시 후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빙수 가게였다.
고운 얼음가루를 사용해 부드러운 식감과 시원함을 동시에 충족시켜 주는 가게기도 했다.
열대 과일이 가득 들어간 빙수를 앞에 둔 태수가 김수진 간호사에게 권했다.
“우선 드시죠.”
“저기…….”
“일단 드시고 말씀하시죠. 그게 맞는 거 같습니다.”
태수가 재차 권하자 김수진 간호사는 멈칫하더니 이내 수저를 들었다.
천천히 먹기 시작했지만 두 사람 모두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는 모를 정도로 각자 생각이 많았다.
과일 빙수가 반쯤 줄어들었을 때다.
김수진 간호사는 한결 어두운 표정이 날아간 얼굴이었다.
푹. 푹.
과일 빙수를 수저로 휘저으며 김수진 간호사가 천천히 대화를 시작했다.
“과장님께 이야기 들으셨죠?”
“네. 솔직히 많이 놀랐습니다.”
“부담되진 않으신가요?”
“부담 주시려고 지목하신 거 아닙니까?”
태수가 슬쩍 농담을 던지며 분위기를 억지로 띄워봤다.
그러나 김수진 간호사는 쓴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아버지 병을 알게 된 건 그렇게 오래 되지 않았어요. 그리고 서울의 여러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봤는데 다들 확신을 못하더라고요.”
“그랬군요. 그런데 그전에는 어떤 증상이 있었습니까?”
“항문 질환이 계속 있으셨나 봐요. 그거 때문에 설사를 하고 복통도 느끼신 거 같고요.”
“자연히 식욕 감퇴에 미열을 느끼셨겠습니다.”
태수가 유추해서 말하자 김수진 간호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셨나 봐요. 몇 번 동네 항문외과에 가서 진찰을 받으셨는데, 약을 먹으면 호전 되니까 그렇게 버티셨던 거 같고요.”
“제가 그 항문외과 의사를 두둔하려는 건 아니지만 크론병을 진단 내리는 건 솔직히 어렵습니다.”
“알아요. 그쪽에는 아무런 원망도 안 해요. 오히려 제가…… 제가…….”
말꼬리를 흐리던 김수진 간호사는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수술실 간호사 경력이 꽤나 오래 됐다.
태수가 레지던트 1년차일 때도 김수진 간호사는 수술실에서 막내는 아니었다.
그 시간 동안 지켜본 수술이 너무도 많은데 막상 자기 아버지의 증상은 면밀하게 관찰하지 못한 모양이다.
그게 죄책감으로 발전했다는 게 태수에게도 느껴졌다.
태수는 그런 그녀를 차분하게 위로했다.
“원래 병은 가족일수록 알기가 어렵습니다.”
“그래도요.”
“저 1년차 때 우리 어머니 수술하신 거 아시죠. 명색이 의사인데 6개월 넘게 방치했습니다.”
“…….”
김수진 간호사는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수술에 자신도 참여했고, 직접 병문안도 갔기에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태수 또한 같은 상황을 겪어서 하는 위로라 그저 립서비스라고 생각하긴 어려웠다.
“그래도 제가 저를 용서하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저도 평생 갚아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자, 그런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고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죠. 저에게 수술 받기를 원하신다고요?”
태수의 말에 김수진 간호사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선생님은 해 보셨다고 했잖아요.”
“다뤄본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직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면서 무턱대고 집도를 승낙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 가능하다고 결정이 되면 수술해 줄 수 있는 건가요?”
질문을 건네는 김수진 간호사 눈빛이 너무도 진지했다.
오랫동안 태수를 봐 왔기에 보낼 수 있는 믿음이다.
안면도 없는 환자를 수술할 때 고민하지 않았는데 이제 와 고민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태수는 머릿속으로 정리한 후 명확하게 말했다.
“가능하다면 해야죠.”
“선생님 상황도 있는데 그렇게 말해 줘서 정말 고마워요.”
“그러게 말입니다. 이거 괜히 큰소리만 치는 거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태수가 멋쩍은 미소와 함께 슬쩍 분위기를 풀려 했다.
하지만 태수를 향한 김수진 간호사의 눈빛은 여전했다.
대단히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
이윽고 태수에게 설명을 들은 정민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왜 이렇게 주위에 아픈 사람들이 많냐.”
“많아?”
“그럼 적냐?”
정민수가 눈을 부릅뜨자 태수가 잔잔하게 말했다.
“대한민국 인구가 몇천만 명이야.”
“그걸 누가 모르냐?”
“그 수많은 사람 중에서 아픈 사람도 오죽 많겠냐? 그 사람들이 다 병원에 와.”
“하긴 아픈 사람들 보는 게 병원이지.”
정민수가 고개를 젓자 태수가 다시 말했다.
“많이 아프건 조그마한 상처건 그 사람들 올 때 무슨 생각으로 오겠냐?”
“…….”
정민수가 말없이 바라보자 태수가 어깨를 툭 쳤다.
“한 가지뿐이야. 멀쩡하게 건강하게 다시 돌아가는 거. 그걸 지켜주는 게 우리 아니겠냐?”
“그렇지. 그래서 우리가 의사 짓을 하고 있는 거지.”
“거기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잖아. 쓸데없는 병원 내에 다른 인연들, 그거 때문에 환자를 안 돌본다는 거 자체가 웃기지 않냐?”
“그게 현실적으로 힘들어서 그렇지.”
“알아. 이번 수술이 힘든 줄. 하지만 김수진 간호사 아버님 일인데 해 보고 싶다.”
“태수 이 자식. 그래서 내가 널 좋아하잖아.”
정민수가 슬쩍 어깨를 손으로 끌어안았다.
태수는 가만히 건물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성공하자.”
“최선을 다하고 기다린다. 아주 귀에 인이 박힌다.”
정민수도 피식 웃고 말았다.
웃음.
그건 태수의 수술에 동참한다는 의미였다.
다시 두 사람이 뭉쳐 수술실에 갈 시간이 임박했다.
***
외래가 끝난 시간.
태수는 응급실에서 대기 중이었다.
시간을 확인하니 조금 있으면 김수진 간호사의 아버지가 도착할 시간이다.
김수진 간호사는 이미 응급실 밖에서 서성거렸다.
태수 옆에는 박완용 과장이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