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2572
02575 2575화
그런 그들의 이해와 양해에 태수가 고개를 꾸벅 숙이고 크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가끔 내려오니까 그때 또 뵙겠습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유 선생, 가자.”
인사를 마친 태수가 사람들이 터놓은 길을 따라 인파를 벗어났다. 유병태도 재빨리 그 뒤를 쫓았다.
그렇게 태수가 카페를 벗어날 무렵이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오늘도 무사한 하루 보내세요!”
“최태수, 아자! 유 선생님도 파이팅!”
“응급의료대…… 아니, 화이트엔젤 파이팅!”
사람들의 응원이 활기차고 우렁차게 들려왔다.
번쩍!
태수는 주먹을 하늘 높이 들어 보이며 그 응원에 힘차게 화답했다.
그렇게 태수와 유병태는 원내 카페를 벗어났다.
타다닥.
태수가 잰걸음으로 바쁘게 걸어가자 유병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팀장, 천천히 가.”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야?”
속도를 줄인 태수가 묻자 그제야 나란히 선 유병태가 말했다.
“일은 있는데 이렇게까지 서두르진 않아도 돼.”
“대체 무슨 일인데?”
“가 보면 알 거야. 그보다 아직도 들려오네.”
유병태가 뒤를 힐끔거렸다. 실제로 카페와 거리가 상당히 멀어졌는데도 잔잔하게 응원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태수는 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감사하지.”
“감사? 난 무슨 인기 대박 교수님의 강의 시간인 줄 알았어.”
“뭘 그 정도까지.”
“그 많은 사람들이 너랑 똑같은 표정으로 날 쳐다보더라. ‘무슨 일이야? 급한 일이야?’ 이런 눈빛이었다고.”
유병태의 오버스러운 표현에 태수의 쓴 미소가 부드럽게 바뀌었다.
“너무 멀리 가지 말고.”
“진짜 그랬다니까. 신기한 건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사인 못 받았다고 서운해 하시는 분이 한 명도 없었단 거야.”
“내 사인이 그 정도 값어치는 아니니까.”
“자식이. 알면서 꼭 내 입으로 말하게 한다니까. 그러니까…….”
유병태가 답답함을 풀어서 말하려 하자 태수가 슬쩍 막았다.
“그냥 감사함만 간직하자.”
“그래. 진짜 감사하긴 하더라. 그리고 또 뭐랄까, 자부심이 생긴달까?”
“…….”
“최소한 저분들에겐 우리가 신뢰를 받고 있는 거잖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배려가 이상하게 가슴 찡하더라.”
“그러니까 우리가 더 잘해야지.”
태수의 대답은 간단하지만 의미가 깊었다.
유병태도 같은 생각인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당연히 더 잘해야지. 더 열심히 뛰어다니고.”
“그래야지. 그래서 어디로 뛰어야 되는 건데? 목적지는 말해 줘야지.”
“소회의실.”
“어?”
“슬슬 다들 도착하셨을 거야. 어서 가자.”
척, 척.
유병태가 보폭을 크게 해 조금 앞질러 갔다.
태수는 소회의실로 호출한 것에 대해 의아함을 품고 함께 걸어갔다.
잠시 후.
소회의실 문이 열리고 유병태와 태수가 차례로 들어왔다.
앞서 내부에 발을 디딘 유병태가 커다란 목소리로 저 멀리 있는 박성민에게 보고했다.
“팀장님, 탈주범 잡아 왔습니다!”
“그래, 뭐 하고 있더냐?”
“역시 정보대로 카페에서 수다 떨고 있었습니다.”
유병태의 반전 가득한 설명에 태수가 어이없는 얼굴로 변했다.
“정보? 아니, 그보다 그분들이 신뢰해 줘서 감사하다며.”
“그분들에게만 감사하다고. 넌 뭔데?”
“야! 와, 이 자식.”
태수가 황당한 얼굴로 유병태를 째려봤다.
그때 회의 탁자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박성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수야, 그러다 눈 찢어져서 안과 실려 간다.”
“선배, 잠시만요. 병태랑 진지한 몸의 대화부터 좀 나누고요.”
“그만해. 적당히 하라고.”
박성민의 중재에 태수도 유병태를 향한 따가운 시선을 풀었다.
그래도 한마디는 했다.
“너도 민수도, 도끼까지 죄다 똑같은 놈들.”
“만만치 않으시고요. 아이고, 난 앉아 볼까나.”
유병태가 건들거리며 멀어져 갔다.
태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박성민에게 다가가 투덜거렸다.
“하여간 저 녀석 머릿속도 가끔은 궁금합니다.”
“연구를 하든, 실험을 하든 그건 니들이 상의해서 하고. 좌우간 카페에서의 팬 사인회는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냐?”
“어떻게……. 그러고 보니까 유 선생도 알고 찾아온 거 같던데요. 어떻게 된 겁니까?”
태수가 그제야 눈치채고 묻자 박성민이 어이없이 바라보며 대답했다.
“참 너도 어지간하다. 좌우간 강명찬이 커피 마시러 갔다가 봤다던데. 플랜카드만 안 걸었지, 팬 사인회였다고.”
“명찬이 이 자식이. 까마득한 선배한테.”
태수가 목소리를 깔았다.
강명찬은 충선대 출신 후배로 흉부외과 레지던트 1년 차였다.
다른 대학 후배들과 한 달에 한 번 정도 모임을 만들어 술자리를 갖기도 했다. 그렇게 정이 많이 들어 귀여운 후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그런 태수의 표정을 읽었는지 박성민이 넌지시 한마디 더 했다.
“괜히 생사람 잡지 말고. 주옥같은 내용이 많아 귀동냥으로 좀 더 들을까 했는데, 호출이 와서 아쉬웠다더라.”
“……오해할 뻔했습니다.”
“오해할 짓을 한 건 아니고?”
“선배도 참.”
“그나저나 너 언제부터 의학 상담도 했냐?”
박성민이 뚱한 얼굴로 묻자 태수가 쓰게 미소 지으며 답했다.
“어떻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그런데 소회의실은 또 왜요?”
“왜 불렀겠어.”
박성민의 목소리가 딱 끊어졌다.
표정도 어느새 진지하고 차분하게 변했다.
그러고 보니 지금 소회의실엔 대부분의 팀원들이 모여 있었다.
또 무슨 일일까?
김선미가 퇴원한 기쁨은 이 순간 머릿속에서 지웠다. 만약 누군가 아픔을 겪고 있다면 이젠 그 상대에게 집중해야 했다.
김선미의 수술을 경험하며 한 가지는 절실하게 배웠다.
불가능은 없다.
그 가능성이 낮고 희박할지라도 환자를 포함한 모두가 일치단결하면 얼마든지 결과가 희망적으로 뒤바꿀 수 있다.
그렇게 태수의 눈빛이 점점 강렬해져 갈 무렵이었다.
끼익.
소회의실 문이 열리자 태수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향했다. 그리고 들어오는 이들을 본 태수의 표정은 더욱 굳어졌다.
백성현 흉부외과장, 박남일 외과장, 하석준 팀장.
‘저분들이 또……?’
태수의 눈빛이 복잡해졌다.
역시 보통 환자가 아니다.
도대체 얼마나 안 좋은 걸까?
이젠 궁금해지기까지 했다.
그런 태수에게 백성현 흉부외과장이 나지막이 물어 왔다.
“소식은 들었나?”
“아니요. 호출받고 지금 막 도착했습니다.”
“그래? 아직 모르고 있었다니.”
백성현 흉부외과장의 목소리엔 차분함만이 가득했다.
궁금함을 생각으로만 그칠 때가 아니란 판단과 함께 태수가 정중하게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아, 그게…….”
백성현 흉부외과장이 입을 열려던 찰나였다.
끼익.
또 한 번 소회의실 문이 열리더니 정민수가 문을 활짝 열어 놓고 말했다.
“병원장님 도착하셨습니다.”
그 소리와 함께 석재봉 병원장이 바쁜 걸음으로 들어왔다.
그는 들어서자마자 서둘러 입을 열었다.
“모두 모인 거 같으니까 바로 시작하지.”
“모두 착석해 주십시오.”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박성민이 크게 소리를 냈다.
이렇게 되니 태수와 백성현 흉부외과장도 자리를 잡아야 했다. 가만히 보던 백성현 흉부외과장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곧 알게 될 거야.”
휙.
백성현 흉부외과장이 먼저 과장들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 빈자리를 정민수가 채우며 물었다.
“왜 그러고 서 있어?”
“아니, 앉아야지. 그런데…….”
“야야, 지금 물을 때냐? 일단 앉자.”
정민수도 태수를 재촉했다.
그의 손에 이끌려 걸음을 옮기던 태수가 뭔가를 발견했다. 방금 자리한 과장들은 물론 팀원들까지 전부 노트를 펼치고 있는 모습이었다.
또다시 이 인원들이 모였는데 서두르기까지 하고 있다.
표정 자체부터 굳어진 태수는 정민수와 빠르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렇게 모두 자리한 순간이었다.
이 회의를 주관하게 된 석재봉 병원장은 숨 쉴 틈도 주지 않았다.
곧장 펜을 노트 위에 올리며 물었다.
“다들 전달받았을 거고, 우선 디데이부터 잡자고.”
“네.”
“그래서 언제가 좋을 거 같나?”
“음.”
석재봉 병원장이 진지하게 물었고, 모두 같은 고민거리를 공유했다.
반면 태수에겐 뜬금없는 소리였다.
“아니, 도대체…….”
태수가 조심히 물으려 할 때 하석준 팀장이 손을 들며 말했다.
“아무래도 결정이 났다면 빨리 진행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그런 의미로 이번 주말은 어떨까 싶습니다.”
“주말이라. 외과장 생각은?”
석재봉 병원장의 질문에 박남일 외과장이 노트를 빠르게 뒤적인 후 답했다.
“약간의 스케줄 조정이 필요하지만 무리한 일정은 아닙니다.”
“흉부외과장은?”
“전 문제없습니다.”
백성현 흉부외과장까지 답하자 석재봉 병원장이 태수에게 물었다.
“그럼 최 팀장 쪽은 어떤가?”
“저…….”
태수가 말하려는 순간 이번엔 박성민이 나섰다.
“저희도 화이트엔젤입니다. 하석준 팀장님과 상의해서 일정을 맞추겠습니다.”
“나도 알지만 응급의료대 상황실에 가 본 지 오래됐을 거 아니야. 그게 좀 걱정이 되는데.”
“그 부분은 며칠 전에 차관님하고 만나서 얘기 끝났습니다. 이번 일까지 끝난 다음에 출근하면 될 거 같습니다.”
“그래. 그럼 그건 박 팀장이 최 팀장하고 잘 의논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박성민의 답으로 대화가 끝났다.
그러나 태수는 아직도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뭔 말을 못하게 해.’
어떤 내용의 회의인지 아직도 몰랐다. 그런데도 회의는 정말 총알만큼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도무지 맥락을 잡지 못한 태수는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그렇게 몇 마디가 더 오간 후였다.
탁.
노트를 덮은 석재봉 병원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이대로 진행하는 걸로 하고, 다들 좀 바빠지겠지만 힘내자고. 그럼 난 선약이 있어서 먼저 일어나지.”
“같이 가시죠.”
“저도 가야 합니다.”
과장들이 뒤따라 일어났다.
그길로 석재봉 병원장과 과장들이 한 번에 움직였다. 재빠른 그들의 발걸음에 팀원들은 얼른 일어나 뒷모습에 대고 인사했다.
“수고하십시오!”
“그래. 다들 고생해.”
짧은 한마디를 마지막으로 소회의실 문이 닫혔다.
탁.
그제야 다들 긴장하던 마음을 놓았다.
“어후, 10분 만에 회의 끝나는 건 처음이네.”
“선약이 있으시다잖아.”
“그래도 꽤 걸릴 줄 알았는데, 확실히 몰아치면 어떻게든 맞춘다니까.”
간단하게 대화를 마친 유병태와 도성민은 의자에 몸을 깊게 기댔다.
다른 팀원들은 노트에 휘갈겨 쓴 내용을 다시 정리하긴 바쁜 분위기였다.
그런 분위기에 이젠 태수가 답답해졌다.
턱!
두 손을 짚으며 일어난 태수가 조금 커진 목소리로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요!”
“…….”
다들 멈칫하며 바라보자 태수의 입이 한 번 더 열렸다.
“저도 뭘 알아야 할 거 아닙니까.”
“아직도 몰라?”
옆에서 정민수의 물음이 들려온 순간 태수가 강하게 쏘아붙였다.
“그러니까 뭘!”
“우리 놀러 가는 거 일정 잡은 거잖아.”
“……어?”
“회장님이 어머니 수술과 치료에 고생했다고 포상 휴가 주셨다고.”
그제야 다들 모인 이유를 알아챈 태수가 한방 얻어맞은 얼굴로 변했다.
“진작 좀 얘기해 주든가.”
“너 진짜 아무것도 몰랐어? 원무과에서 어머니 퇴원 수속 끝났다고 보고 올라가자마자 얘기가 나왔다던데.”
“나 계속 카페에 있었어.”
태수가 멀뚱한 표정으로 말하자 정민수가 한심스런 시선으로 바라봤다.
“민성이랑 카페 갔단 건 대충 알고 있었는데…… 4시간이나 할 말이 있었어?”
“아니, 거기 계신 분들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까…….”
태수가 대충 말을 얼버무린 순간이었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김혁권이 나지막이 한마디 했다.
“그거네. 병원장님하고 과장님들까지 왔으니까 또 위중한 환자가 입원했다고 생각한 거. 맞죠?”
“흠흠.”
“거봐. 내 예상이 딱 맞다니까.”
“아니, 말도 안 해 주고, 다들 또 모여 있는데 긴장이 안 됩니까?”
태수가 울컥해 따져 물었다.
그와 동시에 소회의실에 자리한 모두가 파안대소했다.
“으하하하!”
“하하하!”
“호호호!”
너무 커다란 웃음소리에 태수만 더욱 민망해졌다.
“아, 그만 웃으세요!”
“하하하.”
“……말을 해 줘야 알지.”
태수가 투덜거렸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호탕하게 웃어 젖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