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2631
02634 2634화
그렇게 정민수와 김혁권이 남자들을 하나씩 싸움 불능 상태로 만들어 갔다.
그 모습에 망설임도 없었고, 주저함도 없었다.
정말 그들이 지금껏 사람을 치료해 온 이들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한 명씩 차근히, 일어설 수 없는 모습으로 바꿔 갔다.
그런데 진정 무서운 건 태수의 눈빛이었다.
주변의 소란 따윈 눈길도 주지 않았다.
정민수와 김혁권을 걱정하는 기미도 없었다.
태수는 두 눈에 오로지 한 사람, 마우영 이사만 담았다.
아무런 감정이 없는 눈빛이다.
최소한의 분노조차 없는 차가움이 차라리 섬뜩하기까지 했다.
두 사람이 열어 준 길을 따라 걸어간 태수는 곧 마우영 이사 앞에 멈춰 섰다.
탁.
태수의 접근에 마우영 이사는 당황하다 대뜸 버럭 소리쳤다.
“이, 이런 건방진 의사 새끼가! 내가 누군지 몰라?”
“…….”
“놀아 주는 건 여기까지야. 더 나대면 그땐…….”
“몰라 새꺄.”
휙!
몸을 낮춘 태수가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왔다.
마우영 이사의 두 눈이 믿을 수 없단 듯 크게 떠졌다.
“그, 그…….”
뭔가 다급하게 내뱉으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 말은 결국 끝까지 들을 수 없었다. 접근한 태수의 주먹이 마우영 이사 배 속 깊숙이 침투한 탓이었다.
퍼억!
“커어억.”
마우영 이사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지고, 입은 떡 벌어졌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순간적인 충격 후에는 진한 아픔이 동반되는 법이다.
“끄으으, 크으으!”
몸을 새우처럼 웅크린 마우영 이사는 속이 뒤틀릴 듯한 괴로움에 옴짝달싹못했다.
태수는 그런 그를 벌레 보듯 무심히 내려다봤다.
겨우 이 정도에?
아직 멀었다.
스윽.
태수가 손날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목표는 어깨.
내리치면?
부러진다.
쇄골은 의외로 약한 뼈였다.
회복까진 3개월.
그 정도는 되어야 한다.
정형외과 의사?
지금은 주변에 널렸다.
그걸 알기에 태수는 들어 올린 손날을 매섭게 아래로 내렸다.
맹렬한 기세로 허공을 가른 손날은 마우영 이사의 왼쪽 쇄골을 부숴 버렸다.
빠각!
“끄, 으아악!”
순간적으로 몰려오는 아픔에 마우영 이사는 어깨까지 붙들고 데굴데굴 굴렀다.
그런데도 내려다보는 태수의 시선은 차갑기만 했다.
같이 아픔을 느끼면서.
똑같은 사람이면서.
타인의 아픔은 물론 생명까지 멸시한 그를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그 결심은 곧 행동으로 표현됐다.
스윽.
태수가 오른발을 들어 올렸다.
이번 목표는 마우영 이사의 왼발이다. 무릎 쪽을 부러뜨리면 회복에 애로사항이 많고, 기간도 길게 잡아야 한다.
태수는 그것까지 노렸다. 이미 상대를 사람으로 보고 있지 않기에 어떤 죄책감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들어 올린 발을 힘차게 내려찍으려던 순간이었다.
“최 팀장.”
엄수찬 차관의 목소리다.
태수는?
“…….”
발을 든 채 고개 돌려 바라만 봤다.
태수의 감정 없는 눈빛을 처음 마주한 엄수찬 차관은 자신도 모르게 한 발 뒤로 물러섰다.
턱!
“음.”
“그만하란 말씀은 아니길 바랍니다.”
“최 팀장, 의사는 사람을 해하지 않는다며.”
“네. 사람은요. 하지만 짐승은 짐승으로 다룹니다.”
태수의 말.
진심이었다.
눈빛부터 목소리까지 흔들림이 없었다.
이렇게까지 화가 난 건 한국에 들어와 처음이었다.
오죽하면 이쪽을 향한 태수의 모든 지인들이 입을 떡 벌리고 있을 정도였다.
“최, 최 팀장님이…….”
“최 팀장에게 저런 모습이…….”
믿지 못하겠단 표정들이었다.
그중 충선대학병원에서 온 선배 박진구는 괜스레 자기 목을 훑었다.
“나 살아 있지?”
“선배, 진짜…… 태수가 많이 봐줬네요.”
“그러게.”
조태성의 더듬거린 말에 박진구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과 달리 태수를 걱정하는 아이들 모습도 보였다.
“삼촌.”
“그만하세요.”
두 손을 맞잡고 발을 동동 굴렸다.
상대에 대한 걱정이 아니었다.
태수를 걱정하는 거였다.
저렇게 차가워질 정도로 태수의 마음이 아프고 슬프단 걸 아이들은 알고 있었다.
그런 태수를 마주하고 있는 엄수찬 차관은 다시 한 번 그를 달랬다.
“그쯤 하면 됐어.”
“됐다고요? 사람이 떨어져 죽었는데요? 그 시체를 보면서 침 뱉은 놈인데, 이 정도로 끝내라고요?”
“최 팀장이 말했잖아, 짐승이라고. 그런데 왜 사람 취급해.”
“…….”
태수가 말하지 않자 엄수찬 차관이 다시 입을 열었다.
“여기서 이 쓰레기 더 때린다고 죽은 사람이 살아난다면 내가 권해. 하지만 아니잖아.”
“흐우우…….”
태수가 억지로 숨을 길게 내뱉자 엄수찬 차관이 그랜드 타워 현관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차피 저 자식은 구조활동 방해한 죄로 맞아도 싸. 뒷정리는 내가 할게.”
“차관님.”
“올라가.”
“…….”
침묵하는 태수에게 엄수찬 차관이 심하게 다그쳤다.
“올라가라고. 누군가 또 떨어져야 움직일 건가?”
“…….”
“그러니까 올라가라고. 여기서 이럴 시간에 한 걸음이라도 더 나아가야 할 거 아닌가.”
엄수찬 차관은 침착하게 말했다.
그리고 태수의 눈을 절대 피하지 않고 끝까지 마주했다.
마치 상처 입은 야생동물을 달래듯이 아주 조심스럽고 차분하게 설득했다.
그의 진정 어린 설득은 아쉽게도 태수에게 와 닿지 않았다.
꽉!
태수는 그대로 발을 내리찍어 마우영 이사의 종아리를 짓눌렀다.
“크윽, 아악!”
좀 전과 달랐다.
한 번에 부러뜨리지 않고 서서히 고통을 가하고 있었다.
그의 비명 소리를 들으며 태수는 엄수찬 차관에게 말했다.
“올라갑니다. 이거부터 처리하고요.”
“최 팀장.”
“절 말리기 힘드실 겁니다.”
태수는 엄수찬 차관의 설득을 끝내 밀어냈다.
그때 뒤에서 낮고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태수, 이게 뭐 하는 짓이야.”
그 상대는?
이정민 교수였다.
태수를 향한 이정민 교수의 눈빛이 살벌했다. 예전 왕성한 열정으로 가득한 그 호랑이 기백이 강하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가 호랑이라면?
태수는 사자였다.
“교수님, 죄송합니다.”
“항상 들먹이던 그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어쩌고.”
“…….”
“최 팀장이 후배들에게 했던 말, 행동, 신념, 이날까지 존중했어. 그런데 자네가 그걸 스스로 어기면 뭐가 되나.”
이정민 교수의 매서운 한 소리에 태수가 가만히 침묵했다.
“…….”
“그쯤 하면 됐어. 이성 챙기고 더 큰 걸 봐. 눈앞만 보는 건 최 팀장답지 않아.”
이정민 교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물론 태수의 눈빛은 아직도 차가웠다.
그때 정민수와 김혁권이 다가왔다.
주변은 남자들의 신음 소리만 가득했다.
“크으윽.”
“으윽.”
그 소리는 안 들리는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신음 소리 중 가장 큰 건 마우영 이사의 소리였다.
“까으으으…….”
복부 충격에 이은 쇄골 골절, 거기에 짓눌리는 종아리의 통증까지.
삼중고가 쏟아내는 통증에 눈이 뒤집히기 일보 직전이었다.
까무러칠 수도 없는 건 태수가 그 통증까지 조절하고 있어서였다.
의사가 마음 돌려 먹으면 최악의 살인자가 된단 말이 헛소리가 아니었다.
태수가 내보이는 무심한 눈빛은 그만큼 살벌했다.
오죽했으면 두 사람 중 김혁권이 나서서 태수를 만류할까.
“더 하면 제대로 서지도 못하겠습니다.”
“그래. 태수야, 이제 그만해.”
정민수까지 태수를 만류했다.
누구보다 가깝고 또 친한 이들이기에 당연히 통할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예상을 깨고 태수의 표정은 여전히 싸늘했다.
“먼저 올라가십시오. 이거 마무리하고 뒤따라가죠.”
미동도 하지 않는 그 모습에 정민수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태수야, 너 너무 흥분했어.”
“안 하게 생겼어?”
“하게 생겼어. 인정 해. 그래도 그 정도면 됐다니까.”
“글쎄다.”
태수는 확답을 피했다.
그나마 정민수라 이렇게 말하는 거였다.
반대로 정민수도 태수를 만류하지 못할 상황이었다.
그때였다.
불쑥.
김혁권이 휴대폰을 태수에게 내밀었다.
“받아 보슈.”
“…….”
“받아 보래도, 좀!”
김혁권이 인상을 팍 쓰며 태수의 손에 휴대폰을 쥐여 줬다.
일단 태수는 휴대폰을 귀로 가져갔다.
“최태수입니다.”
자신을 밝히자 거친 기침 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쿨럭쿨럭! 아, 이거 방독면 제대로 보낸 거 맞아? 필터 쓰다 만 거 보낸 거 아니냐고!”
“……선배?”
태수의 눈빛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그런 걸 알 리 없는 박성민은 평소보다 더 격하게 꾸중했다.
“뭐, 이 자식아! 목 막혀 죽을 거 같은데 왜 도끼한테 전화해서 날 바꾸라고……. 쿨럭쿨럭!”
“상황이 안 좋습니까?”
“좋겠냐? 이 검은 연기가 무슨 짜장 분말 가루인 줄 알아? 한 모금 딱 마셔 봐. 아주 목이 메케하니 짜증나고 좋으니까.”
박성민의 과장이 괜한 것이 아닐 터였다.
가늘게 흔들리던 태수의 눈동자에서 차가움이 점점 사라지고 생기가 가득해져 갔다.
태수는 낮고 빠르게 물었다.
“지금 몇 층이고, 불은 어떻게 됐습니까?”
“난 옥상 죽돌이거든? 대충 들어 보니까 88층까지 올라온 거 같더라.”
“벌써 그렇게요?”
“이야, 너 소주 들고 올라오려면 멀었냐? 내가 같이 소주 마시자고 했지, 소주 뿌려서 내 넋을 위로해 달란 의미는 아니다.”
박성민의 목소리가 조금 더 탁해졌다.
이젠 여유가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태수의 마음도 덩달아 급해졌다.
“갑니다. 지금 갈 겁니다.”
“아직도 출발 전이세요? 이런 십장생, 너만 오래 살려고 선배를 버리냐? 이 매정한 새……. 쿨럭! 에이씨. 이젠 기침해도 가래가 끓네.”
“……곧 뵙죠.”
“몰라. 그리고 김씨 아저씨한테 괜히 전화하지 말라고 해. 왜 쓸데없이 전화해서 귀찮게 하냐고. 오래 전화할 상황이겠냐? 아니겠지? 그러니까 끊어.”
뚝!
이번에도 역시 통보와 동시에 전화가 끊어졌다.
그게 일상이라도 지금은 받아들여지는 것 자체가 달랐다.
휴대폰을 김혁권에게 돌려주는 태수의 얼굴엔 어느새 다급함이란 감정이 강하게 떠올라 있었다.
“가시죠.”
“가야 가는 거지.”
“그러네요……. 잠시.”
태수는 양해를 구하고 엄수찬 차관과 이정민 교수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러던 태수가 갑자기 깊게 고개 숙였다.
꾸벅.
“저 후회 안합니다.”
그 한마디를 남긴 태수는 재빨리 몸을 움직였다. 벗어 둔 안전모를 쓰고, 커다란 플라스틱 가방을 옆으로 멘 후 현관으로 내달렸다.
김혁권과 정민수가 그런 태수와 나란히 달렸다.
그렇게 세 사람이 현관 속으로 사라지자 꽁꽁 얼어붙은 분위기가 조금은 되살아났다.
그때 이정민 교수가 의료팀에게 손짓하며 마우영 이사 앞에 몸을 낮췄다.
“끄으으, 으으.”
어깨를 붙잡고 괴로워하는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세심히 살폈다.
어느새 조태성이 헐레벌떡 옆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