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2640
02643 2643화
귀를 쫑긋거린 태수가 힐끔 쳐다봤다.
조봉구는 지금까지 엠부백을 쉬지 않아서 그런지 서서히 얼굴에 땀이 맺히고 있었다.
수술 시간이 길지 않아 지칠 땐 아니겠지만 이젠 팔근육이 당겨올 터였다.
그런 그를 향한 태수의 시선이 짠했다.
“힘들지?”
“네? 아, 아닙니다.”
“얼굴에 검댕이 잔뜩 묻히고 땀이 줄줄 흐르는데 아니라고 하면 믿겨?”
“그…….”
쑥쑥.
조봉구는 민망한지 엠부백을 좀 더 강하게 짰다.
태수는 그런 그에게 말했다.
“여기 우리끼리만 있으니까 앓는 소리 정도는 해도 돼.”
“진짜 괜찮습니다. 그보다 어렵습니까?”
조봉구가 슬쩍 환자의 상태를 물었다. 그도 보고 있지만 전문 분야가 달라 추측하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태수는 쓰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야구……. 에휴, 자식.”
한숨 소리에 뭔지 모를 아련함이 담겨 있었다.
뭔가 사정이 있나?
생각은 들었지만 깊게 물어보기엔 여러 상황이 좋지 않았다.
태수는 조봉구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다른 생각은 나중에.”
“집중하겠습니다.”
“그래.”
대화를 마무리 지은 태수가 정민수를 바라봤다. 때마침 시선을 마주한 정민수가 먼저 말했다.
“일단 구멍 뚫린 뼈에 항생제를 잔뜩 뿌려 놨으니까 몇 시간은 버틸 수 있을 거야.”
“너무 깔끔하게 뚫렸던데.”
“구조물이 넘어지는 걸 막다가 쇠막대에 그대로 뚫렸나 봐. 순식간이라 부러지지 않고 뚫린 거고.”
“재수도 참…….”
“어머니 쪽으로 넘어지려는 걸 밀어내고 대신 막았대.”
정민수가 이제야 사정을 자세히 말했다. 응급수술이기에 이렇게 앞뒤가 바뀌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움찔한 태수의 눈썹이 크게 꿈틀거렸다.
“어머니 대신?”
“나도 그 소리 듣고 다시 보이더라. 중3이면 아직 어리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어리니까 예측하지 못할 돌발 변수가 생기는 거겠지.”
“내 말이. 어머니가 나 붙잡고 오열하는데……. 젠장. 이거 나중에 말하려고 했는데.”
정민수는 사적인 감정을 대입시키지 않으려던 의도가 깨지자 머쓱해했다.
그러나 태수는 오히려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잘했어. 이럴 땐 그런 대박 자극이라도 있어야 머리가 팽팽 굴러갈 테니까.”
“그래서 방법은 딱 떠올랐어?”
“음…… 민수야, 나 10분만.”
태수가 나지막이 부탁하자 정민수는 긴장감을 애써 지운 미소를 보이며 대답했다.
“그 10분이 의미 있길 바란다.”
“당연히.”
“오케이. 자, 그럼 두 분 저한테 집중해 주시고요. 근육 들어갑니다, 인터네셔널 포셉, 메젠바움 베이비.”
휙! 척.
바로 두 손에 수술 도구를 받아 쥔 정민수가 눈빛을 빛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민수의 손길이 더 거칠어졌다.
추강익 간호사가 바로 그걸 알렸다.
“너무 하이 텐션입니다.”
“……후크로 여기. 빨리!”
“아니, 정 선생님…….”
그가 다시 말하려 할 때였다.
척.
반대편에서 후크가 다가와 정민수가 원하는 만큼 당겨 줬다. 그 상대는 당연히 김혁권의 손길이었다.
김혁권은 추강익 간호사에게 간단히 조언했다.
“상식을 버려.”
“…….”
“누구나 지금까지 상대를 지켜보면서 나름대로 정의를 내리기 마련이겠지. 그런데 그게 통하지 않는 상대도 있단 소리야.”
“알겠습니다.”
“벅찰 거야. 각오 단단히 하고.”
김혁권의 충고가 살벌했다.
그런데 상대가 누군가.
NGO에서 오지와 격전지를 돌아다닌 경험 높은 간호사였다.
그리고 그 결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정민수가 속도에 미쳐 움직이자 추강익 간호사가 살짝 헤맸다.
“여기…… 아니, 잠시. 이렇게……. 벌써? 좋습니다. 나도 한다면 합니다!”
처음부터 의욕을 스스로 지폈던 추강익 간호사였기에 악을 써가며 정민수의 손길에 반응하려 노력했다.
반대편에서 보조하던 김혁권이 눈썹을 크게 들썩이며 중얼거렸다.
“오랜만이네요. 속도에만 치중하는 모습이.”
지금의 정민수 수술 모습은 태수와 김혁권만 알고 있었다.
봉합에 흥미를 느끼고 연구하기 전 정민수의 모습이었다.
속도에만 몰두했던 그 시절 정민수의 퉁퉁한 살을 홀쭉하게 변화시켰다.
그렇게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내며 움직이는 정민수의 손길은 그야말로 필사적 아니 그 이상의 스피드를 보였다.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단점은 있지만 막무가내 식으로 진행하는 건 아니었다.
“추 간호사, 이쪽. 김 간호사는…… 여기!”
“바쁘네. 갑니다!”
“여기 잡았으니까 저기 가요.”
추강익 간호사는 바짝 긴장한 채 반응한 반면, 김혁권은 아직 여유가 있었다. 그런 김혁권을 바쁘게 할 인물은 한 사람밖에 없었다.
스윽.
김혁권은 잠깐의 순간 태수를 힐끔거렸다.
한편, 태수는 김혁권의 시선을 느끼지 못했다.
그 정도로 모든 신경을 환자 생각에 쏟아 붓고 있었다.
태수가 수술대에서 손을 놓고 고민하는 이 상황도 너무도 오랜만이었다.
혈관과 신경.
지금 가장 문제가 되는 두 가지였다.
얇고 가느다란 혈관과 신경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지금까지 경우와 다른 건 절단 위기란 시간적인 압박이었다.
시간의 여유만 있다면 조금 더뎌도 진행할 수 있는 문제가 분명했다.
하지만 없는 시간을 만들어 낼 순 없는 노릇이다.
그 문제가 태수를 고민하게 했다.
‘이걸 이렇게 연결……. 아니야. 그럼 이런 식으로…….’
생각이 거듭될수록 태수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갔다.
얼마 전 김선미를 응급처치할 때와 같은 상황이다.
머릿속에 팔을 홀로그램처럼 만들어 놓고 가상의 수술을 진행 중이었다.
그럼에도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 건 태수도 혈관과 신경의 분포 사항을 모두 알 수 없어서였다.
한 사람의 혈관을 모두 길게 늘어놓으면 지구 두 바퀴 반을 돌 수 있다.
신경은 추산이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게 많았다.
그걸 태수가 다 안다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도 이런 상상이 가능한 건 주요 혈관과 신경의 위치는 어느 정도 기억하고 있어서였다.
‘이건…… 안 돼. 이것도 어렵고…….’
너무 머리를 굴려서일까?
서서히 코가 시큰해져 왔다.
코피?
그쯤 흐르는 거야 아무래도 좋았다.
한 아이의 장래가 걸린 문제였다.
또 그 아이의 어머니 가슴에 평생 한으로 남을 일이었다.
미래를 생각하면 머리 좀 아프고 코피 좀 흘리는 건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막막했다.
여러 가정을 쉼 없이 상상해 봤지만 역시 시간이 문제였다.
그러던 중이었다.
방금 김혁권이 추강익 간호사에게 했던 말이 툭 떠올랐다.
-상식을 버려.
그 말은 흩어지지 않고 계속 태수의 귓가를 맴돌았다.
언제부터 상식에 준해서 살았을까.
생각해 보니 그런 적이 별로 없던 것 같다. 쓰게 미소 짓던 순간 갑자기 태수의 눈빛이 날카롭게 돌변했다.
“가능할지도 몰라!”
태수는 자신도 모르게 따갑게 소리쳤다.
그걸 들은 모두가 멈칫하며 태수를 바라봤다.
잠깐 사이 얼굴에 땀이 흥건해진 정민수가 신뢰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
“그래서 방법이 뭔데?”
“말로……. 아니야. 김 간호사님, 준비 좀!”
태수의 말이 끝남과 동시였다.
스윽.
새로운 수술 장갑을 내민 김혁권이 덤덤하게 말했다.
“사소한 말씀은 넣어 둡시다.”
“그럽시다.”
쑥!
태수는 찡긋거리며 새로운 수술 장갑을 착용했다.
곧 준비를 마친 태수는 바로 수술 도구를 요청했다.
“불독부터. 민수야, 각 주요 혈관들 차단하고 정리해 줘. 그리고 김 간호사님, 준비해 온 인공혈관 있죠?”
“있긴 합니다. 얼마 없지만요.”
“아마 전부 써야 할 겁니다. 부족하지 않으려나 모르겠네요.”
태수의 말에 김혁권도 이번엔 감을 잡지 못해 의아하게 바라봤다.
“뭘 하시려고.”
“저 녀석 부려 먹으려고요.”
“그건 알아서 하시고……. 여기.”
김혁권은 펼쳐 둔 구급상자에서 포장지에 담긴 인공혈관을 꺼내 내밀었다.
태수는 그걸 받아 환부 위에 덧대 길이를 재고 잘랐다.
그 과정이 몇 번 반복되자 길이가 제멋대로인 인공혈관들이 수술포 위에 나란히 놓였다.
아직 누구도 그 이유를 짐작하지 못했다.
혈관들을 차단한 정민수는 그걸 보더니 눈을 가늘게 뜨며 의심을 품었다.
“저 자식 그냥 막 자르는 거 아니야?”
“설마요.”
“가끔 저러다가 길이가 짧아서 고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래도 뭐…….”
추강익 간호사는 직접 본 게 아니라 말을 아꼈다.
그사이 태수의 가위질이 끝났다.
탁.
태수는 마지막으로 자른 2개의 인공혈관을 들고 정민수에게 말했다.
“봉합 좀 하자.”
“그냥? 그대로?”
“잔말 말고.”
“일단 알았어. 니들홀더, 디바키.”
정민수가 더 생각하지 않고 수술 도구를 요청했다.
추강익 간호사도 준비한 걸 바로 건넸지만 여전히 알지 못하겠단 눈빛밖에 없었다.
태수는 개의치 않고 수술포의 남는 자리에 가장 긴 인공혈관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뒤에서부터 다른 인공혈관들을 하나씩 덧붙이며 말했다.
“이대로 연결해.”
“음, 오차 범위는?”
얼마나 정확하게 봉합하느냐에 따라 수술 속도가 달라진다. 그걸 의미한 질문에 태수가 짧고 굵게 답했다.
“야구를 계속…… 아니, 신경과 혈관을 살려서 나가려면 한가하진 않겠지.”
“어렵게도 말한다. 후! 더럽게 힘들겠네.”
“해야만 하고.”
“당연한 말씀! 준비 끝.”
“바로 시작해.”
태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서웠다.
정민수가 쥔 니들홀더와 디바키가 수술포 위의 인공혈관들을 잽싸게 연결하기 시작했다.
휙, 휙!
그 속도는 평소보다 훨씬 빨랐다.
직접 환부에 혈관을 연결할 땐 제약이 의외로 많았다.
근육을 피해야 하고, 복부나 흉부는 호흡 흐름에 봉합 속도를 맞춰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몸 밖에서 봉합하는 건 아무것도 신경 쓸 게 없으니 자연히 빨라졌다.
그저 신속하기만 한 게 아니라 꼼꼼함까지 더해진 손길이었다.
“하나 연결, 다음……. 좋아. 다음…….”
정민수는 쭉쭉 연결해가며 아래쪽으로 내려왔다.
그 모습은 과장을 조금 더해 재봉틀로 바느질하는 듯 봉합 패턴이 일정하고 속도마저 남다르게 빨랐다.
곧 기다란 인공혈관에 샛가지가 주렁주렁 달렸다. 마치 알갱이가 모두 떨어진 포도 줄기 같았다.
태수는 그만큼 어지럽게 봉합된 혈관을 환부로 가져갔다. 그리고 몇 번 조절 끝에 어느 정도 위치를 잡자 진하게 미소 지었다.
그걸 본 순간 정민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 설마……?”
“바로 그거지.”
“와…… 미친놈.”
“이 자식이.”
태수가 쏘아붙일 듯 바라봤다.
그때 김혁권도 어찌 된 일인지 파악하고 정민수 편을 들었다.
“나도 이번엔 미쳤다고 봅니다.”
“김 간호사…….”
“하지만 제대로 미쳐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요.”
김혁권의 내뱉는 뒷말이 의미심장했다.
태수가 선택한 방법은 정말 상식과 거리가 멀었다.
AVF(Arteriovenous Fistula, 혈액투석 동정맥루 재개통술)을 응용한 방법이었다.
AVF는 혈액 투석시 원활한 혈액 공급을 위해 손목의 동맥과 정맥에 직접적인 통로를 만들어 주는 수술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혈액 투석 환자들은 이 수술을 받고 있다.
즉, 안정성은 증명된 수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수는 단서를 달았다.
“제 정신 상태에 대해선 나중에 토의하고요. 임시로 연결하는 겁니다. 길어야 하루, 그 안에 제자리로 돌려야 후유증이 없을 겁니다.”
“하루면 아주 널널하지.”
“이 수술을 이해할 수 있는 의사여야 해.”
태수의 조건이 점점 까다로워졌지만 정민수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네. 본 수술 땐 엉망이 된 길을 모두 제자리로 돌려야 하니까.”
“그리고 위험성이 아예 없지도 않아. 자칫 정맥혈이 동맥혈로 역류할 수도 있어.”
“네가 보기에 역류가 일어난다면 얼마나 지난 후가 될 거 같아?”
“반나절 정도.”
“그 안에 내보내면 되겠지……. 그런데 신경은?”
정민수의 물음에 태수가 진지하게 답했다.
“네가 혈관에 집중해. 난 신경을 어떻게든 살려 볼 테니까.”
“그 ‘어떻게든’이란 말이 지금은 왜 든든하냐.”
“그래야 손이 움직일 테니까. 그리고 시간 없어.”
“좋아. 빨리 시작하자!”
정민수가 버럭 소리쳐 의욕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