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272
00275 275화
속이 그대로 드러난 심장은 승모판막이 완전히 닫히지 않아 빨간 피가 가늘게 흐르고 있었다.
상당히 안 좋은 징후였다.
일반적인 경우, 수술 시 심장은 정지된 상태였다. 당연히 승모판막은 자연히 닫혀 있어야 했다.
그런데 심장에 고여 있던 피가 흐른다는 건 승모판막 협착증이 다른 증상으로 변했다는 이야기다.
“Mitral regurgitation(승모판막 폐쇄 부전증).”
태수가 중얼거리자 박성민이 멈칫한 얼굴로 바라봤다.
“내…… 내가 잘못 본 거 아니지?”
“저도 그렇게 보입니다.”
“이럴 수가 있어? 분명히 Mitral stenosis(승모판막 협착증)이었는데, 폐쇄부전증으로까지…….”
박성민은 여전히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이다.
두 사람 모두 암담했다.
일단 수술을 시작한 이상 끝을 봐야했다.
그런데 거대한 벽을 만난 기분이다.
이렇게 되면 승모판막의 일부를 절제하는 게 아니라 Prosthetic valve(인공판막)로 교체해야 했다.
쉽지 않은 수술이다.
태수조차도 닥쳐온 이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눈앞에 부인하기 힘든 뚜렷한 증거가 있다.
또한 이미 벌어진 상황을 피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푸우.”
태수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터져 나왔다. 아주 잠깐이나마 좋았던 기분이 확 날아가 버렸다.
이렇게 병세가 급변한 이상 수술 성공 확률은 또다시 낮아질 게 뻔했다.
30퍼센트.
아니 그 이하였다.
그러나 태수가 곧장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은 수술 성공률을 머릿속에서 계산할 때가 아니다.
우선 걱정해야 할 건 이 수술을 계속 진행시킬 수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태수는 바로 자신을 보조하는 송 간호사에게 물었다.
“송 간호사님. Tissue valve(조직판막, 돼지나 소 등의 생체 조직으로 만든 판막) 있습니까?”
“아, 아니요.”
“그럼 Mechanical valve(기계판막)는요?”
“그건 있어요.”
대답하는 송 간호사 얼굴에도 긴장감이 가득했다.
그녀의 입장에서 정확한 상황이야 모르더라도 흘러가는 수술실 분위기가 너무 심상치 않았던 탓이다.
태수는 그런 송 간호사를 뒤로하고 박성민에게 차분하게 물었다.
“선배님. Prosthetic valve replacement(인공판막치환술) 가능하십니까?”
“……아니.”
아주 낮게 깔린 박성민의 목소리에 자괴감이 떠올랐다.
지금 이 순간 가장 힘든 건 박성민 그였다.
이미 심장을 열어둔 상황이다.
지금 수술하지 못하고 닫는다면 다시 열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다른 장기도 물론 문제지만 심장만큼은 정말 다음을 기약할 수 없단 이야기다.
그건?
환자의 죽음을 의미했다.
그걸 알기에 태수의 얼굴이 심각하게 변했다.
“선배님.”
“이건 말이다. 네가 진짜 나한테 뭐라고 해도 안 돼. 진짜 안 된다고.”
“…….”
“제길! 정말 미치겠네.”
박성민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돌발 상황을 만나자 이마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누구를 향한 욕설이 아니라 자신에게 화가 났다.
그동안 미친 듯이 노력한 게 모두 수포로 돌아간 건 좋다.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는데 당장 수술을 이어가지 못하는 게 너무도 속이 상했다.
태수 또한 막막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태수도 심장과 관련한 여러 가지 수술을 해 봤지만 인공판막으로 교체한 경험은 전혀 없었다.
외국이라지만 카슈미르의 자그마한 마을들은 너무도 시설이 열악했다.
“젠장!”
태수도 입도 거칠어져 갔다.
심장의 문제.
이대로 수술을 중지한다면 거의 100퍼센트 사망이다.
태수도 그건 경험으로 알고 있다.
지금까지 심장 수술은 NGO 텐트에서 제임스와 함께 수술한 경험이 전부였다.
물론 머릿속에 카프레네의 지식들은 가득하다.
흉부외과 분야에선 세계 최고 권위자였던 카프레네였다. 그 명성에 걸맞게 임상사례는 정말 머릿속에서 홍수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지식이 있다고 바로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지식에 맞는 수련을 거듭하고 또 거듭해야만 비로소 수술을 제대로 집도할 수 있다.
물론 그동안 수백 번이 넘는 집도 수술의 경험은 있다.
많이 고생하겠지만 판막치환술을 진행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다른 문제가 있다.
태수가 지금 심장을 집도하게 된다면 제한된 시간 내에 절대로 나머지 부위에 대한 수술을 완료할 수 없었다.
하나라도 늦어지면 이 수술은 실패로 끝나고 김수진의 아버지는 죽음의 골짜기로 들어선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순간이다.
‘어쩌지?’
태수는 솔직히 막막했다.
지금 흉부외과와 외과가 같이 수술하는 건 최대한 환자에게 부담을 줄여주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돌발변수에 완전히 발목을 잡힌 기분이다.
태수가 생각하는 사이 박성민의 목소리에 초조함이 더해졌다.
“미치겠네.”
이번 수술, 동성종합병원 의료진 전체가 주목하는 수술이다.
다들 수술의 성공 여부에 온 신경이 집중된 상태다. 게다가 태수가 집도하는 수술이라 더더욱 그러했다.
질시와 무시.
수많은 눈과 귀가 수술실로 향하고 있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건 수술실 밖의 문제에 불과했다.
태수는 최대한 냉정하게 판단했다.
자신의 집도 성공 여부는 관심 밖이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환자의 생명이다.
그 마음으로 박성민에게 한마디 했다.
“혹시 모르니까 흉부외과장님에게 상황을 말씀드리시죠.”
“그래. 그게 좋겠다. 여기 흉부외과장님 전화 좀 연결해 주세요.”
박성민이 요청하자 전담 보조 간호사가 빠르게 수술실 한쪽에 위치한 전화기로 달려갔다.
수화기를 든 그녀가 몇 번의 조작 후에 수술실이 울리도록 크게 말했다.
“연결 됐어요!”
그 말이 끝난 직후다.
-무슨 일이 생겼다고?
인사를 생략한 흉부외과장의 굵은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수술실 전역에 들려왔다.
박성민이 바로 상황을 말했다.
“승모판막 협착증이 승모판막 폐쇄 부전증으로…….”
박성민이 그간의 이야기를 빠르게 전달했다.
흉부외과장의 대답이 바로 들려왔다.
-잠깐만 기다려.
그리고 통화는 끝이었다.
흉부외과장이 다른 전문의들에게 물어보려는 모양이다.
태수의 시선은 어느새 전자시계로 향해 있었다.
05:08:10
박성민이 들어오고 대략 40분이 지났다.
그동안 수술은 진척이 거의 없다고 봐도 좋았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아꼈던 시간이 송두리째 날아간 시점이다.
조금이나마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예기치 못한 상황에 태수 얼굴이 초조함으로 심각해질 때쯤이다.
따르릉.
수술실 전화기가 울자 간호사가 바로 전화를 받아 스피커로 연결했다.
-들리나?
흉부외과장의 목소리에 박성민이 바로 대답했다.
“들립니다.”
-……어떻게 안 되겠어?
힘들게 내뱉는 흉부외과장의 말에 박성민은 물론 태수 표정도 확 굳어졌다.
그동안 침묵하고 있던 태수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아무도 들어오지 않겠답니까?”
-다들 자신 없는 모양이야. 수술 전부터 위험성에 대해서 다들 알고 있었으니까.
그 소리에 태수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어갔다.
혹시나 했던 추측이었는데 결과는 역시나 였다.
더는 기대하고 싶지 않았다.
기대할 이유가 없다.
흉부외과장에게 실망한 건 아니다.
전에도 언급했지만 그의 전문 분야는 중격동과 폐다.
심장 수술에 대해선…….
말투 하나하나에 흉부외과장은 이번 수술에 참가하지 못하는 데 미안함을 보였다.
그러나 다른 흉부외과의 심장 전문의들은 다르다.
물론 힘든 수술이라는 건 알고 있다.
실패를 각오한 수술을 거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태수를 정말 지치게 하는 건 누구도 찾아와서 직접 상황을 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애써 시선을 돌려 책임을 피하고 있다.
그런 생각이 태수로 하여금 실망하게 했다.
아니, 전부터 이런 경우가 몇 번 있었다.
‘개새끼들.’
이젠 실망하는 것도 지쳤다.
아예 무관심으로 돌변한 태수의 감정이 목소리 톤조차도 일정하게 변화시켰다.
“알겠습니다.”
-알겠다니. 해 볼 수 있다는 거야?
흉부외과장이 놀라 묻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지만 태수는 나지막이 대답했다.
“이쪽에서 알아서 하겠습니다. 나중에 뵙겠습니다.”
태수가 눈짓하자 간호사는 얼떨떨한 얼굴로 수화기를 내려놨다.
탈칵.
그 소리를 듣는 순간 태수가 간호사에게 재차 말했다.
“제 휴대폰에 김기훈 과장님 전화번호가 있습니다. 연결해 주십시오.”
“김 과장님? 외과잖아.”
박성민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태수가 화가 가라앉지 않았던 탓인지 싸늘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현 수술 상황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심장 맡아줄 전문의분을 모실 겁니다.”
“지금 다른 병원 의사를…… 아니다. 내가 그런 말 할 자격이나 있겠어.”
“선배님께는 제가 더 죄송합니다.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서 난처하게 해 드렸으니까요.”
“개소리하고 있네. 인마. 심장이 이렇게 급변한 걸 네가 어떻게 알아.”
박성민이 버럭 소리쳤지만 태수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의심해 봤어야 합니다.”
“지랄! 그딴 헛소리 지껄일 거면 아가리 닥쳐.”
“선배님.”
“아, 시끄럽다고. 거기 제 휴대폰 좀 가져다주세요!”
박성민은 태수에게 손을 저어 보이고는 아예 뒤로 돌아섰다.
욕설 속에 담긴 배려가 느껴졌다.
태수는 그 모습에 가슴이 찡하니 울렸다.
그때 반대편에 서 있던 정민수의 자그마한 목소리가 태수 귀에 닿았다.
“선배는 선배야. 그렇지?”
“…….”
“우리도 가끔은 누군가에게 살짝 기대도 괜찮지 않냐? 여기가 카슈미르도 아닌데 말이야.”
정민수의 말에 태수는 멈칫했다.
책임감.
태수가 치프가 된 후로 알게 모르게 어깨를 무겁게 하는 말이다.
이번 수술도 그 책임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스스로 더 안달복달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태수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였다.
통화가 연결된 걸까?
박성민의 목소리가 수술실을 크게 울렸다.
“교수님. 접니다!”
-어, 박 선생이 이 늦은 시간에 어쩐 일이야?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태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그건 태수뿐이 아니라 정민수도 마찬가지였다.
너무도 익숙하다 못해 그리운 목소리.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백성현 교수였다.
부교수인 그가 정교수가 되었다는 건 박성민을 통해 들었다.
그러나 한국에 들어온 뒤로도 연락한 적이 없었기에 태수와 민수는 더더욱 감정이 복잡해졌다.
태수와 정민수의 눈빛이 크게 흔들리는 사이 박성민은 차분히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그런 상황입니다.”
-그동안 승모판막협착증에 대해서 그렇게 물어보더니, 이번에는 승모판막폐쇄부전증이라.
“지금 아주 막막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렇게 전화로 알려 준다고 될 문제는 아닌데…….
백성현 교수가 일부러 말꼬리를 흘렸다.
가장 좋은 방법을 생각하는 모양이다.
누구도 그 생각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이내 백성현 교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내가 내려가지.
“네? 직접 공주까지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건 알아. 그냥 기다리라는 것도 아니야. 박 선생은 계속 통화할 수 있도록 해 놓고 있어. 이동하면서 기본적인 건 알려 줄 테니까.
“그래도 교수님. 운전하시면서 그게 가능합니까?”
-택시 부르면 돼. 그리고 거기 최 선생하고 정 선생 있나?
백성현 교수가 부르는 목소리가 크게 들려오자 태수와 정민수가 멈칫하더니 크게 대답했다.
“교수님. 저 최태수입니다.”
“저기…… 죄송합니다. 교수님.”
두 사람의 대답을 들었는지 백성현 교수는 푸근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해후는 나중에 풀고. 내가 갈 때까지 심장 외에 모든 부분을 수술해 놓을 수 있나?
“모든 부분을…….”
-8시간에 맞추려면 그렇게 해야 해.
백성현 교수는 이미 박성민에게 수도 없이 들어 이번 수술 리미트 시간도 알고 있던 모양이다.
태수와 정민수의 시선이 마주쳤다.
‘할 수 있을까?’
서로 눈빛으로 물었다.
하지만 그건 잠시뿐이었다.
끄덕.
태수와 정민수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며 똑같이 대답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럼 평가는 가서 하도록 하지. 날 만족시켜 줄 거라 믿어. 그럼 박 선생, 잠시 후에 다시 전화하지.
백성현 교수의 말을 마지막으로 통화가 끝났다.
태수와 정민수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박성민에게 향했다.
박성민은 익살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한 고비 넘었어. 이젠 일단 환자부터 살리고 보자고.”
그 한마디.
그리고 백성현 교수의 온다는 말.
수술실이 다시 열기로 불타올랐다.
급변한 상황에 맞게 수술실도 부산해졌다.
우선 박성민의 목에 두르는 넥 밴드가 걸렸다.
그 양쪽에는 기다랗게 이어폰이 연결되어 있었다.
휴대폰과 원격 통화가 가능한 블루투스였다.
“네. 교수님. 제 말 잘 들리시죠? ……네. 준비됐습니다.”
백성현 교수에게서 무슨 말이 들려오고 있는 걸까?
박성민이 태수에게 오케이 사인을 보낸 후 심장을 다시 살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