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275
00278 278화
태수는 그들이 놀라워하는 줄도 모르고 수술에만 집중했다.
“저 괴물.”
하석준 과장도 이제는 완전히 인정했다.
최태수.
그 녀석은 괴물이다.
그렇게 놀라운 부동심의 도움을 받으며 태수는 예상한 환부를 모두 도려냈다.
그 범위는 커도 너무도 컸다.
위장의 삼분의 일. 십이지장 삼분의 이, 대장의 삼분의 일. 소장의 반.
소화기 전체 반이 넘는 부위다.
김덕현이 무사히 깨어난다 해도 평생 동안 과거보다 반도 먹지 못할 지도 몰랐다.
그나마도 경증인 부위를 살려둬서 반이나 남았다.
만약 경미한 환부까지 모두 잘라냈다면 김덕현은 남아 있던 여생 동안 먹는 재미를 포기해야 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확실한 건 심한 환부는 모조리 제거했다는 점이다.
현재 태수가 할 수 있는 최선이기도 했다.
시간은?
태수의 시선이 곧바로 전자시계로 향했다.
02:33:54
두 시간이 훨씬 지난 시간이다.
애초에 예상한 시간은 훨씬 벗어났다.
그러나 다행히 백성현 교수가 도착하기 전이다.
정말 지쳤다.
아무리 냉정하게 수술을 진행했다고 해도 지금까지 달려온 수술시간은 너무도 길었다.
그러나 태수는 자신이 지쳤다는 느낌조차 잊었다.
아직 수술이 끝나지 않은 터였다.
반대편에 선 정민수 또한 한껏 지친 표정이지만 눈에 패기를 잃지 않았다.
‘든든한 새끼.’
언제 봐도 자랑스러운 친구이자 동료다.
그렇게 생각을 마친 후에야 태수는 서영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마취 상태는요?”
“괜찮아.”
“이쪽에 출혈이 많았습니다만.”
“그건 저쪽에 물어봐야지.”
서영우가 턱짓으로 체외순환사를 가리켰다.
태수가 그쪽을 바라봤다.
체외순환사의 주변에는 빈 수혈 팩이 여러 개 놓여 있었다.
“펌프 플로우(Pump flow, 체외순환기의 흐름을 나타내는 단위)는요?”
태수의 물음에 체외순환사는 한껏 지친 얼굴로 한 번 더 확인을 마치고 엄지를 들어 보였다.
“좋습니다.”
“조금만 더 수고해 주십시오.”
“아닙니다. 선생님 아니었으면 진짜 큰일 날 뻔했습니다.”
체외순환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태수에게 인사했다.
조금 전 그 일이 계속 마음에 걸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태수는 그에 대해서 더 말하지 않았다.
이미 지나간 일이다. 그 이후엔 체외순환사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그가 지금 흘리고 있는 땀이 증명해줬다.
그거면 됐다.
이렇게 장시간 수술할 때는 남을 질책하기보다 감싸주는 여유가 중요했다.
수술팀은 한 몸이다.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며 죽음과 싸우는 한 팀이다.
태수는 체외순환사에게서 가볍게 인사를 받은 후 박성민에게 시선을 돌렸다.
박성민은 여전히 블루투스로 백성현 교수와 통화 중인 모양이다.
“네, 그쪽은 해결했습니다……. 지금 정문 통과하고 계신다고요? 바로 얘기해 놓을 테니까 바로 들어오시면 됩니다. 네!”
힘차게 소리친 박성민이 고개를 좌우로 크게 흔들었다.
그 행동으로 이어폰을 귀에서 털려 나가자 이어서 소리쳤다.
“교수님 도착했어. 최 간호사님. 얼른 정문에…….”
“선배님 잠시만요.”
“어?”
박성민이 의아하게 바라보는 사이 태수는 이미 참관실을 향해 손짓했다.
척. 휙.
송민규를 지목한 태수가 밖을 향해 손끝을 까딱거렸다.
그 의미를 알아들은 건지 송민규는 재빨리 참관실을 벗어났다.
그 사이 박성민이 참관실을 바라보다 깜짝 놀라 고개를 숙였다.
“과장님. 외과장님하고 다른 분들도 계시네. 언, 언제 왔데.”
“한참 됐습니다.”
“그래? 왜 몰랐지?”
“그만큼 선배님이 멋지게 수술하고 계셨으니까요.”
태수의 말에 박성민은 배시시 미소 지었다.
“나 잘했어?”
“지금까지 뵀던 모습 중에 최고였습니다.”
“자식. 지가 더 환상적으로 수술해 놓고는. 자, 그보다 아직 수술 안 끝났어. 이제 교수님 맞을 준비하자.”
박성민 또한 희망을 봤는지 지친 얼굴과 달리 눈빛이 초롱초롱 했다.
백성현 교수가 도착할 때까지 잠깐 쉬어가야 할 시간이다.
태수는 그동안 수술한 곳에 미진한 부분이 없는지 한 번 더 확인했다.
‘이 정도면.’
최악의 상황은 모두 막았다.
크론병은 수술로 완치가 되지 않는 병이다 보니 외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부분이 한정적이었다.
그리고 수술 중간에 변화한 자신 덕분에 힘든 고비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부동심이라…….’
앞으로도 수술실에서 발휘될 수 있을까?
그런 걱정이 들 법도 했다.
하지만 태수는 걱정하지 않았다.
부동심을 통해 수술을 이어가는 사이 어느 정도 감각을 익혔다.
남은 건 다음 수술에서 찾아내기만 하면 된다.
태수가 그렇게 자신을 다독이는 사이였다.
그르릉.
수술실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헤어캡과 마스크로 얼굴이 가려져 있다.
드러난 건 단지 두 눈뿐이다.
그러나 태수와 정민수는 그 눈매를 알고 있다.
아니, 잊을 수가 없었다.
냉정한 듯하면서도 푸근한 그 눈빛.
어떻게 잊을까.
태수와 정민수는 그 의사를 향해 90도로 깊숙이 고개 숙였다.
“교수님.”
태수와 정민수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그리고 쉽게 고개를 들지도 못했다.
그동안 연락 한 번 못한 그 미안함이 지금 두 사람의 어깨를 너무도 강하게 짓눌렀다.
***
한편 참관실에서는 다들 의아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누군데 최 선생이 저렇게 고개를 숙이고 있어?”
그때 참관실 문이 열리더니 송민규가 들어왔다.
시선이 마주친 하석준 과장이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물었다.
“누구야?”
“그게……. 그러니까.”
“누구냐는데 왜 말을 더듬어?”
하석준 과장이 질책하자 송민규는 얼떨떨함을 얼른 속으로 숨기고 억지로 입을 열어 대답했다.
“연성대학병원 흉부외과 백성현 교수라고 했습니다.”
송민규의 대답에 참관실이 순간 소란스러워졌다.
“연…… 연성대학병원?”
“아, 저 세 사람. 거기 출신이지.”
외과 전문의들은 연성대학병원이라는 타이틀에 주시했다.
하지만 하석준 과장과 흉부외과장은 타이틀이 아닌 상대의 이름에 경악했다.
“백성현 교수?”
“얼마 전에 부작용을 최소로 하는 Norwood operation(노우드 수술, 선천성 심기형 소아심장 수술의 일종) 성공시켰다던 그 교수?”
“한국에서 최초로 성공한 케이스라고 학계에서도 소문이 자자한 분 아닙니까?”
“그 사람이 저 친구들이 불러서 이 먼 공주까지 내려왔다니.”
흉부외과장이 얼떨떨해하는 만큼 하석준 과장 또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거물의 방문이다.
그 한 가지 생각이 머리에 가득이다.
***
아직 놀라움이 가시지 않던 참관실과 달리 수술실 분위기는 차분했다.
그야말로 조용히 가라앉은 상태였다.
아직까지 고개를 들지 못하는 태수와 정민수 바라보던 백성현 교수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그동안 고생했다.”
그 한마디에 태수와 정민수는 가슴이 꽉 막힌 기분으로 변했다.
몇 년 동안 돌고 또 돌아서 이렇게 만난 백성현 교수의 푸근한 목소리가 왜 가슴을 이렇게 죄이는지 몰랐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태수와 정민수를 부드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백성현 교수가 일단 만남의 기쁨을 잠시 뒤로 했다.
“환자 상태는 어떤가?”
“지금까지…….”
박성민의 설명에 백성현 교수 안색이 급변했다.
“최악이군.”
“죄송합니다. 이런 수술에 오시라해서……”
“어렵다고 포기하면 하얀 가운 벗어야 해. 최소한 할 때까진 해야지. 그게 환자에 대한 최고의 예의지.”
“부탁드립니다.”
박성민의 대답을 듣고 이번엔 백성현 교수 시선이 태수에게 돌아왔다.
“수술부터 이어가야지. 최 선생. 내가 내어준 과제는?”
그 물음에 태수도 정신이 퍼뜩 들었다.
얼른 허리를 편 태수가 진지하게 대답했다.
“최선을 다해 수술했습니다.”
“믿어도 되나?”
“심장이 다시 뛰면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당당한 태수의 대답에 백성현 교수의 얼굴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떠올랐다.
“확인하려면 인공판막을 제대로 설치하라는 건가? 그래. 그럼 슬슬 움직여야겠군. 박 선생.”
“네. 교수님.”
“수술 진행해도 되나?”
백성현 교수가 물었다.
엄연히 남의 병원에 파견 온 상황이다.
이번 수술의 총 집도의에게 묻는 건 당연했다.
그 상대가 자신의 밑에 있던 까마득하게 어린 후배라도 양해를 구하는 게 옳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바로 대답할 줄 알았던 박성민은 태수를 바라봤다.
“어이, 제1집도의 선생. 시작해도 돼?”
“그럼요. 부탁드립니다. 교수님.”
태수가 말하자 돌아가는 상황을 대번에 파악한 백성현 교수의 눈이 조금 크게 떠졌다.
태수가 집도의?
이 수술을 진두지휘하고 있던 게 태수란 뜻이다.
백성현 교수의 얼굴에 순간 황당한 미소가 떠올랐다.
“최 선생이 총 집도의였어?”
“그렇게 됐습니다.”
“이런 날이 올 줄이야. 아니, 이런 날이 빨리 와서 기분이 좋다고 해야 하나? 좌우간 총 집도의 선생. 일단 수술부터 시작할게.”
백성현 교수가 심장 수술 집도의 자리로 향했다.
어느새 박성민은 이미 흉부외과 치프를 밀어내고 어시스던트 자리에 서 있었다.
꾸벅.
박성민이 잘 부탁한다는 의미로 고개를 숙이는 사이 백성현 교수는 환부부터 확인했다.
생각보다 더 깔끔하게 정리된 심장 모습에 백성현 교수의 눈이 또 한 번 크게 떠졌다.
“이거 오늘 놀라는 날인가?”
“네?”
“전화로 알려줬는데 이렇게까지 깔끔하게 정리해 놓다니. 박 선생도 예전 실력이 좀 나오는 거 같네.”
“부끄럽습니다.”
박성민이 당황감에 얼굴까지 붉혔다.
백성현 교수의 칭찬이 그만큼 기분 좋은 모양이었다.
백성현 교수의 투입으로 수술실에는 새로운 활기가 돌았다.
태수와 정민수는 심장 수술을 지켜만 보지 않았다. 중요한 부위는 모두 수술했다지만 자잘한 수술이 남았다.
크론병과 별개로 발견된 간의 종양도 제거해야 한다.
인공심폐기에 의존하고 있는 수술이다.
보통의 경우라면 두 군데를 동시에 수술할 때 환자에게 부담이 많이 가지만, 지금은 조금 달랐다.
그걸 알고 있기에 태수와 정민수는 간의 종양을 제거하고 또 혹시나 미진한 부분이 없는지 살펴봤다.
지금은 백성현 교수의 수술을 지켜볼 시간이 없었다.
남은 시간은?
02:23:11
태수의 시선이 다시 환부로 향했다.
부동심을 다시 끌어올려야 했다.
해 보려 시도했지만 무의식적으로 발휘된 일이라 그런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수술에 대한 압박감은 아직 상당하다.
몇 번의 노력 끝에 태수는 다시 차가울 정도로 냉정한 시선을 되찾았다.
할 수 있다.
이젠 확신도 들었다.
문득 김혁권의 이야기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한국에 돌아와서 잊은 그 무언가를 되찾으면 수술을 성공할 거 같다.
그 말이 이제야 이해가 됐다.
전에는 단순히 독려하려는 말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제3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시선이 옳았다.
‘고맙습니다.’
진심 어린 인사였다.
그리고 이런 부동심을 일깨워 준 김덕현에게도 같은 마음이다.
보답의 길은 하나.
수술 성공.
그 고지가 머지않았다.
태수는 그 마음으로 다시 수술한 환부를 되돌아봤다.
만에 하나, 혹시라도 합병증을 일으킬 수 있는 부분들을 수술하기 시작했다.
수술 후유증이 많기로 유명한 크론병이다.
아주 작은 실수 하나가 환자를 기나긴 고통으로 이끌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온 정성을 쏟았다.
그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차분하게 판단하고 수술한 만큼 다시 손을 대야 할 곳이 극히 적었던 탓이다.
“이 정도면 괜찮을 거 같아.”
“이쪽도.”
정민수도 같은 의견이다.
시선을 마주한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태수의 시선이 이젠 반사적으로 전자시계로 향했다.
02:01:33
이제 두 시간 남짓 남았다.
할 일이 끝났다고 두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태수와 정민수는 서로 눈빛으로 사인을 주고받고 동시에 심장 쪽으로 이동했다.
백성현 교수 옆에 선 태수가 상황부터 이야기했다.
“저희 쪽은 끝났습니다.”
“마침 잘 됐어. 이것 좀 잡아줘.”
백성현 교수는 두 번 묻지 않았다.
태수가 제1집도의로 수술을 조율하고 있다면 그만한 실력이 있을 거란 확신을 보였다.
그런 백성현 교수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클램프를 내밀었다.
얼른 받아든 태수는 시야에 거슬리지 않게 방향을 틀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태수의 시선이 수술 중인 심장으로 향했다.
기계 판막을 설치할 수 있게 승모판막을 넓게 절제하는 중이었다.
이 상황에서 필요한 건?
태수가 옆에 있는 간호사에게 말했다.
“모스키토 클램프. 마띠유(Mathieu, 니들홀더의 일종).”
도구를 받아든 태수는 모스키토 클램프를 백성현 교수에게 건네고 자신은 마띠유로 절제가 덜 된 승모판막을 잡았다.
얇은 봉합바늘도 단단히 붙잡을 수 있는 니들홀더였기에 조직을 잡고 있는데도 유용하게 쓰였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보조하던 클램프도 가느다란 포셉으로 바꿔 움직임의 부담을 줄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