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276
00279 279화
태수가 그렇게 움직이는 사이였다.
한결 부담이 줄어든 백성현 교수는 문득 태수를 바라봤다.
태수의 인턴 때가 생각난 모양이다.
그때와 달라진 게 없다.
아니, 오히려 너무도 훌륭하게 성장했다.
백성현 교수의 얼굴에 자그마한 미소가 떠올랐다.
자다 말고 먼 공주까지 한달음에 달려온 보람.
그걸 지금 찾았다.
그리고 또 하나를 찾고 싶었다.
그건 바로 기계판막을 성공적으로 설치하는 일이다.
백성현 교수의 손길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그 상황은 어시스던트 쪽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정민수는 흉부외과 치프를 밀어내고 박성민 옆에 꼭 달라붙어 있었다.
그리고 태수와 똑같이 박성민을 보조했다.
박성민은 솔직히 놀랐다.
정민수가 박성민과 이렇게 직접적으로 수술한 건 처음이다.
배건형 환자 때는 멀찍이서 우회혈관을 박리해 준 것만 멀리서 확인했을 뿐이다.
그런데 직접 꼭 달라붙어 수술을 해 보니 외과 전문의들이 부러워졌다.
완벽하다는 표현이 떠오를 정도로 능동적으로 보조해 주고 있던 탓이다.
가슴이 울컥했다.
‘이런 발칙한 새끼들. 내 금쪽같은 후배들이 이렇게나 잘하는데.’
괜스레 태수와 정민수를 경계하는 전문의들에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그건 자신의 감정일 뿐, 수술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정민수에게 도움을 받은 박성민도 다시 힘을 냈다.
어시스던트로서 백성현 교수를 보조하고, 손이 모자란 부분을 적극적으로 참여해 수술 속도를 올렸다.
반면 정민수에게 밀려난 흉부외과 치프는 어이가 없었다.
2년차가 4년차를 밀어낸다.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화가 났다.
하지만 화를 낼 수 없다.
주변에 자신이 소속된 의과 전문의가 있어서도 아니고, 반대편에 교수가 수술하고 있어서도 아니었다.
정민수의 실력이 놀라웠다.
게다가 태수는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그래서 화를 낼 수 없었다.
‘개새끼들.’
부러움이 짜증으로 번져 갔다.
이런 엄청난 수술이 이어지는 중인데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자신의 실력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그러나 흉부외과 치프는 절망만 하지 않았다.
그 또한 김수진 간호사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 고마움으로 전문의들이 주는 따가운 눈치를 무시하고 이 자리에 섰다.
그래서 쉴 수가 없었다.
거즈를 가져온다든지, 부족한 수술 도구를 챙긴다든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어떻게든 수술이 빠르게 진행될 수 있게 힘을 보탰다.
그도 의사였다.
비록 밖에 나가면 멱살을 잡을지 몰라도 이 순간만은 환자를 살려야 할 의사였다.
***
치열하게 진행되는 수술과 다르게 참관실 분위기는 고요했다.
하석준 과장의 두 눈은 미미하게 떨려오고 있었다.
한 마디로 놀라움의 연속이다.
외과 치프와 2년차 레지던트가 심장 수술을 원활하게 보조하고 있다.
아무리 인턴 때 흉부외과를 거쳤다고 해도 이미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래서 더욱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 모습을 애써 냉정하게 바라보던 하석준 과장은 직감했다.
그동안 태수에게 받았던 어시스던트가 전부가 아니었단 사실이다.
괴물.
스스로 속으로 인정한 태수의 별명이 너무도 꼭 들어맞았다.
어쩌면 정민수도 예비 괴물의 반열에 올려야 할지도 몰랐다.
그리고 저렇게 온 힘을 다하는 수술을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건 하석준 과장의 생각뿐이 아니다.
같이 지켜보는 흉부외과장도, 외과의 전문의들도 마찬가지다.
가슴이 뜨겁다.
타오르다 못해 그 열기가 꽉꽉 응축 되는 느낌이다.
저런 수술을 하고 싶다.
바로 자신의 한계에 도전할 수 있는 수술이다.
너무도 커다란 위험을 안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미친 듯이 공부하고 다양한 사례를 접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해 보고 싶다.
이건 전문의로서의 커리어를 위한 마음이 아니다.
의사 초년 시절.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소리 높여 낭독했던 그 순간, 그 마음이었다.
꽈악.
전문의들 누구 하나 할 거 없이 빈손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이 순간만큼은 태수를 그렇게 싫어하는 박수철조차도 같은 마음이었다.
그 주변에 있는 레지던트들의 가슴도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저게 우리 치프다.
저게 우리가 인정한 형이다.
존중하는 마음과 비례해 뛰어넘고 싶다는 열망도 커져 갔다.
의사라면 남의 발전을 부러워하는 마음보다 뛰어넘겠단 열정을 키우라고 태수에게 수도 없이 들었다.
이제야 알았다.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건 태수에게 누구보다 뜨거운 열정이 있기에 가능하다.
그 열정이 이제야 진정으로 레지던트들에게 전염되어 왔다.
인턴들은?
더더욱 할 말이 없었다.
파릇파릇한 청춘인 의사들인 만큼 정열도 가득하다.
그 정열에 기름이 끼얹어져 활활 타오르고 있을 뿐이었다.
외과의사.
그들은 진정 죽음과의 싸움에서 최전선을 지키는 의사들이다.
사회에서 어찌 평가하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수술실에서 가느다란 호흡으로 삶을 염원하는 환자의 편에 서서 피터지게 싸우는 사람들이다.
인턴들도 그 뜨거운 숙명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순간이다.
아직 서툴지만 외과의사란 자부심이 가슴 한구석에 각인처럼 박힌 시간이다.
***
수술은 단 한 번의 쉬는 시간도 없이 이어져 갔다.
다들 땀범벅이다.
가장 늦게 합류한 백성현 교수조차 얼굴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온 힘을 쏟고 있었다.
보조하는 간호사들은 땀을 닦아 주고 필요한 수술 도구를 건네는 등, 정말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간호사들 중 최선임인 송 간호사가 문득 시간을 확인했다.
00:58:12
두 눈이 크게 떠진 그녀는 반사적으로 수술실이 울릴 정도로 크게 말했다.
“58분 남았어요!”
그 말에 심장을 수술하던 네 명의 의사가 동시에 멈칫했다.
이제야 겨우 승모판막의 정리가 끝났다.
박성민이 몇 시간을 수술하며 주변을 정리해 놓았고, 그 이후에 네 명의 의사가 전력으로 달라붙어서 여기까지 왔다.
이제 남은 건 기계판막을 설치하고 인공심폐기를 제거하는 일이다.
인공심폐기 제거하는 일도 그리 녹록하지 않다.
최소 30분은 투자해야 할 일이다.
그렇다면 실질적으로 수술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은 25분 남짓뿐이다.
모두가 비슷하게 생각하는 눈빛들이었다.
그때 백성현 교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까지 다들 정말 잘해 주고 있어. 그런데 앞으로 20분 안에 Mechanical valve(기계판막) 설치를 끝내야 해. 할 수 있지?”
“네!”
태수와 정민수, 박성민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씩씩했다.
백성현 교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잠깐 떠올랐다가 바로 사라졌다.
냉정한 얼굴 그대로 백성현 교수가 이어서 말했다.
“지금까지도 그래 왔지만 남은 시간도 너희가 배운 모든 걸 다 쏟아 부어라. 나 또한 그렇게 할 거니까.”
“…….”
“그럼 지금부터 기계판막 설치에 들어간다. 봉합은 박 선생과 정 선생이. 최 선생은 계속 날 보조해 줘.”
백성현 교수의 말에 다들 분주해졌다.
“여기 기계판막 주세요.”
“니들홀더 한 대여섯 개에 봉합사 다 연결해 놓아요. 절대 수술 끝날 때까지 봉합사가 먼저 떨어지면 안 됩니다.”
정신없는 가운데 태수의 시선은 서영우에게 향했다.
서영우 또한 얼굴에 땀이 한 가득이다.
심하게 몸을 사용하진 않지만 긴장감과 부담감에 짓눌린 모습이다.
태수는 그런 서영우에게 물었다.
“현재 상황 어떻습니까?”
“내가 어떻게든 해 보겠다고 했지. 그러니까 이쪽은 쳐다보지도 마. 수술에만 신경 써.”
끄덕.
태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대답을 대신하고 다시 환부로 눈을 돌렸다.
그때 간호사들이 좌우에서 의사들이 요청한 기계판막과 수술 도구들을 동시다발적으로 내밀었다.
“여기요!”
“준비됐어요.”
그녀들 또한 남은 힘을 온통 쥐어짜고 있는 실정이다.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든 의사들은 무의식중에 시선을 마주쳤다.
‘마지막이다.’
‘이 고비만 넘으면 돼.’
서로서로 눈빛으로 위로를 마침과 동시였다.
한껏 지친 백성현 교수의 입에서 단호한 음성이 들려왔다.
“시작해.”
그 말과 동시였다.
태수와 정민수, 박성민은 남은 힘을 죄다 끌어모아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
00:53:23.
“기계판막 위치 잡았습니다.”
“오른쪽부터 봉합 들어갑니다.”
“심실 건드리지 마!”
“클램프 위치 바꿉니다.”
***
00:43:34
“오른쪽 봉합 완료! 왼쪽으로 선회하겠습니다.”
“이쪽은 최 선생과 내가 봉합할 테니까 두 사람은 인공심폐기 제거 시작해.”
“니들홀더! 왼쪽 기계판막 봉합 들어갑니다.”
“인공심폐기 제거 준비 시작합니다!”
***
00:27:19
“이제 심장 돌려야 합니다!”
“봉합 아직이야, 1분만 더!”
“정 선생! 이쪽으로 넘어와서 봉합 이어받아. 선배님, 정맥관부터 시작하시죠.”
“오케이! 빨리 넘어와!”
***
00:12:28
“심장 봉합 완료!”
“최 선생하고 정 선생은 복부 봉합하고, 박 선생은 정맥관 풀어!”
“복부 봉합 시작합니다.”
***
00:08:21
“정맥관 오케이!”
“동맥관도 됐어.”
“복부 봉합 조금만 더.”
“시간 없어! 기사님, 펌프 멈춰요. 교수님, 선배님. 지혈 도구 풀어주세요!”
***
00:04:42
“심장 돌립니다! 하나…… 둘…… 혈압 상승 중, 맥박 상승 중.”
“더뎌!”
“Cardiotonic(강심제), Hypertensor(승압제) 추가합니다. 칼륨 추가, 산소포화도 오케이!”
“조금만 더, 조금만!”
치열하고 초조한 시간이 지난 후였다.
서영우가 크게 외쳤다.
“혈압 안정, 맥박도 좋습니다!”
“그럼?”
“제대로 돌아왔습니다.”
서영우의 말이 끝난 직후였다.
“흐아아아.”
“허억허억!”
한숨을 쉬는 소리.
졸였던 숨을 이제야 몰아쉬는 소리 등.
각종 안도의 소리들로 수술실이 꽉 찼다.
백성현 교수를 시작으로 의사들은 모두 수술대를 잡았다.
탈진으로 인한 순간적인 어지럼증 때문이다.
“됐어, 됐다고.”
“후우.”
그렇게 다들 안도감을 내보였다.
간호사들은 모두 수술실에 주저앉은 상태였다.
모든 걸 하얗게 불태웠는지 멍한 시선들만 가득했다.
지금은 감격에 겨워 울 기운도 없었다.
주변을 둘러본 후에야 태수는 시간을 확인했다.
00:02:14
다행히 리미트 8시간을 넘기지 않았다.
해냈다.
성공했다.
기쁨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그런데 아직 그 기쁨을 만끽할 수는 없다.
김덕현이 깨어났을 때 정상적인 반응을 보여야 그때야 안심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래도.
“다들 수고 하셨습니다.”
태수는 수술실이 크게 울리도록 말한 후 90도 넘게 깊이 고개 숙였다.
그 모습에 다들 무언가 뭉클한 동질감을 느끼고는 똑같이 인사했다.
백성현 교수는 그런 제자들을 너무도 대견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야 진정 수술은 끝이 났다.
드디어 자리를 옮긴 후 백성현 교수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거 같았다.
하지만 엄연히 먼저 해야 할 일들이 남아 있었다.
수술실을 나선 태수가 박성민에게 부탁했다.
“선배님, 교수님과 잠깐 방에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그래. 다녀와.”
박성민의 대답을 들은 후 태수는 백성현 교수에게 다가갔다.
백성현 교수는 다가온 태수를 향해 고개만 끄덕였다.
백 마디 말보다 확실한 의사 표현이다.
태수는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몸을 돌렸다.
김수진 간호사와 그녀의 어머니에게 수술의 결과를 알려줄 때였다.
“가자.”
“또 한바탕 울음바다 되겠네.”
태수와 정민수의 얼굴에는 만족한 미소가 가득했다.
***
덜컹!
수술실 문이 열리고 김덕현이 누워 있는 스트레쳐카를 태수와 정민수가 밀며 나왔다.
밖의 상황을 확인한 태수는 깜짝 놀랐다.
“……!”
김수진 간호사와 그녀의 어머니가 하고 있을 초조한 모습은 예상했다.
그러나 그 주변에 너무도 많은 사람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