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2812
02815 2815화
태수도 곧 걸음을 옮겨 흉부 집도의 자리에 섰다.
척.
반대편에 박성민과 정민수가 나란히 서 있었다. 김혁권은 옆에, 송현미, 이선정 간호사는 어시스던트들을 보조하는 자리를 잡고 있다.
마취의에 서영우, 그 옆엔 항상 든든한 노지연 간호사가.
그리고 발치엔 양정한을 대신해 이성혁이 수액과 혈액 담당으로 서 있었다.
태수의 시선은 우선 황진호에게로 향했다.
“흐우, 흐우.”
호흡기로 가려진 입에서 숨소리가 미미하게 들려왔다.
‘조금이야.’
태수는 속으로 격려했다.
그리고 분명 모두가 힘이 되어 줄 걸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 기세로 모두를 둘러본 태수가 문득 한마디 했다.
“이렇게 선 게 오랜만인 거 같습니다.”
“아마도.”
“정신없었지.”
다들 한 마디씩 화답했다.
실제로 정규 수술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동안 응급의료대 확장과 그랜드 타워 화재 참사 등으로 각자 시간을 보냈던 탓이다.
지난 시간을 회상하자고 꺼낸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태수는 바로 덧붙여 말했다.
“왜 우리는 환자 수술의 난이도가 점점 올라갈까요?”
“그건 세계 8대 미스테이크 중에 하나지.”
박성민이 바로 받아치자 김혁권도 자연스럽게 딴죽을 걸었다.
“그놈의 스테이크 타령은.”
“또, 또 김 간호사가 내 앞에 있는 이유에 대해서 누가 설명 좀 해 봐.”
“나도 궁금하지만 수술 끝나고 따집시다.”
“그럽시다.”
분위기가 분위기인 만큼 알아서 자중했다.
그래서 태수도 다음 말을 꺼내기 편했다.
“진호는 웃음이 예쁜 아이입니다. 그리고 마음씨는 더 예쁜 아이죠.”
“그럼, 그럼.”
“맞아요.”
다들 화답한 순간이었다.
태수가 돌연 부드럽던 눈빛을 굳히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 웃음, 절대 놓치지 맙시다.”
“아자!”
“정규 수술 시작합니다. 오늘 한 번…….”
“살려 봅시다!”
모두 힘차게 외쳤다.
보통 ‘죽어 보자.’라며 각오를 다진다.
하지만 이들은 달랐다.
흔히 흘려 할 수 있는 말이라 해도 ‘죽음’이란 단어는 멀리했다.
왜?
자신들은 살리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죽음’을 언급하는 건 스스로에 대한 배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살리잔 각오만큼이나 유연하던 분위기가 다부지게 돌변했다.
모두의 시선이 환부로 향했다.
정민수와 박성민은 처음 눈에 담는 순간이기도 했다.
반면, 응급수술에 참여했던 태수는 해야 할 일의 순서를 어느 정도 머릿속에 그려 놓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선행되어야 할 일을 말하며 옆으로 손을 내밀었다.
“Right Sided Heart Failure(우심실부전)부터 해결하겠습니다. 모스키토 클램프, 뱁콕.”
“여기.”
탁.
김혁권이 반사적으로 건네줬다.
그 수술 도구를 가볍게 쥔 태수는 살짝 눈썹을 들썩였다.
자신의 수술 도구가 아닌 탓이다. 태수 전용 수술 도구는 깨끗하게 세척과 건조를 마친 채 집에 고이 모셔져 있었다.
휴가가 시작되면서 유일하게 챙긴 물건, 아니 친구였다.
워낙 변수가 많은 삶이라 언제 어디서 수술할지 몰라 챙겼다. 그런데 오늘은 변수에 변수가 더해져 미처 가져오지 못했다.
삭삭.
수술 도구를 가볍게 놀려 본 태수가 마스크 속으로 쓴 미소를 지었다.
‘역시.’
약간 감각이 달랐다.
큰 차이는 아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 그리고 안정감에도 차이가 있었다.
그게 아쉽지만 수술을 멈추고 집에 다녀올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공용 수술 도구가 나쁜 건 아니었다.
석정현 회장과 황석찬 회장이 외과 계열에 힘을 실어 주기에 수술 도구 품질은 최상급이었다.
자신의 수술 도구와의 차이는 그저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런 생각을 뒤로한 태수가 손을 막 움직이려던 찰나였다.
앞에서 박성민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이게 뭐야!”
“…….”
순간 흐름이 끊긴 태수가 슬쩍 시선을 들어 바라봤다.
박성민의 가려지지 않은 두 눈이 찢어질 듯이 크게 떠져 놀라움을 강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태수는 무슨 일인지 몰라 여전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동시에 박성민이 시선을 마주하며 한 소리 했다.
“도끼하고 까불이가 제대로 해 놨다며!”
“…….”
“이게 제대로야? 이게 최선이었어? 이게 뭐냐고. 이건 딱 출혈만 억지로 막은 수준이잖아. 이게 어떻게 제대로 된 응급수술이냐고!”
높아진 그의 목소리가 낮아질 줄을 몰랐다. 그만큼 당혹감과 어이없음을 강도 높게 표현하고 있었다.
그러나 태수의 표정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놀라는 박성민을 이해 못하겠단 눈빛으로 물었다.
“당연한 거 아닙니까?”
“뭔 소리야? 당연하다니, 이게 당근인 상황이야? 그게 무슨 말밥이 다 떨어져서 여물 주는 소리냔 말이다.”
“…….”
“왜 말이 없어? 혹시 니들끼리 ‘칭찬합시다.’ 뭐 이런 캠페인 같은 걸 하고 있어? 아니면 이게 어떻게 칭찬할 수준의 응급처치냐고.”
박성민은 배신감까지 드는지 길길이 날뛰었다.
그때 태수가 조용히 그에게 물었다.
“선배, 응급수술의 정의가 뭡니까?”
“그게 뭔 소리야? 너 지금 사서삼경 떼고 맹자, 노자 공부하는 유생한테 ‘하늘 천, 딴지’ 거냐?”
“땅 지…….”
“몰라서 씨부릴까!”
박성민이 빽 소리쳤다.
그런 박성민의 높은 목소리에 김혁권이 인상을 쓰며 한마디 했다.
“조용조용 말합시다. 이상한 데 힘 빼지 말고요.”
“아저씨, 무지하게 익스큐즈미 한데, 지금은 제가 태수한테 진지한 엔써를 들어야 할 타이밍이거든요?”
“발음 많이 좋아졌네요.”
김혁권의 칭찬에 박성민은 순간 눈꼬리가 부드러워졌다.
“그거야 뭐, 며칠 영어 쓸 일이 많아……. 아니, 내기 지금 칭찬 듣자는 게 아니잖습니까.”
휙!
박성민은 다시 태수를 노려봤다.
그만큼 자신이 보고 있는 얼렁뚱땅 수술의 모습을 설명하라고 눈빛으로 재촉했다.
태수는 여전히 무덤덤한 눈빛으로 답했다.
“응급수술이니까요.”
“그래. 응급수술이었다고. 그런데…….”
“응급한 부분들을 당장 응급하지 않게 만드는 게 목적이잖습니까.”
“누가 모르냐고. 그러니까 응급한 부분들이 응급하지……. 잠깐만.”
응급수술의 정의에 대해 곱씹던 박성민이 멈칫했다. 그 순간을 노린 태수가 바로 틈을 비집고 들어가 말했다.
“네. 지금 딱 떠오른 생각이 정답일 겁니다.”
“진짜 출혈만 막아 놓은 정도라고?”
질문하는 박성민의 표정엔 왜 그렇게 칭찬했는지 모르겠단 의구심이 가득했다.
그래서 태수가 답했다.
“이 수술실에 들어온 게 고작 1시간 남짓이었습니다. 개흉만 해도 10분은 넘게 걸렸을 겁니다.”
“그것도 빠른 거지. 중증 골형성부전증 환자라 옮기는 것부터 조심해야 하고, 조금만 힘을 더 주면 갈비뼈가 부러져 심장이나 폐를 찌를지도 모르니까.”
“그러니까요. 그럼 넉넉하게 15분 잡고요. 나머지 45분 동안 뭘 얼마나 어떻게 하겠습니까.”
태수가 풀어서 말하자 박성민이 눈을 굴리며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야 그렇긴 하지. 그러고 보니까 흐른 시간에 비해서 응급수술이 너무 빨리 끝나긴 했네.”
“수술이란 표현을 쓰는 게 조금 과할 정도로요.”
“그럼?”
박성민이 눈빛을 빛내자 태수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 그대로 출혈만 잡은 겁니다. 그것도 Aortic Arch(대동맥궁)하고 Pulmonary Trunk(폐동맥)를요. 겨우 45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에요.”
“…….”
“선배, 냉정하게 판단해서 쉽겠습니까?”
“……이 자식들. 갑자기 사랑스럽네.”
박성민은 이제 완전히 이해했는지 날카롭던 기세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태수는 그런 그에게 나지막이 물었다.
“이제 시작해도 됩니까?”
“크흐흠! 뭐 하냐? 아직도 시작 안 하면 어쩌자는 건데?”
“…….”
“나, 나도 오랜만에 수술실에 들어오는 거거든? 너무 그러지 말자. 사람이 살다 보면 오해도 하고 풀기도 하면서 사는 거지.”
박성민은 홀로 열을 냈던 시간이 무안했는지 괜히 쓰게 말했다.
바라보고 있던 태수는 그제야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진짜 집중하겠습니다.”
“방해 안 할, 아니지, 나도 집중할게.”
박성민은 어물쩍 넘어갔다. 하지만 확실히 수술실에 대한 감을 다시 되찾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래서 태수는 더 말하지 않았다.
잠깐 흐트러진 마음부터 제대로 다시 다잡는 걸 우선으로 했다.
다시 빠르게 수술할 분위기가 잡혀 갔다.
그런데 그때였다.
박성민 옆에 선 정민수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엇, 젠장!”
그 소리와 동시였다.
깔끔했던 흉부가 갑자기 피로 물들기 시작했다.
출혈이 시작되는 장소는?
대동맥궁이었다.
그 모습에 태수가 인상을 찌푸리며 따갑게 소리쳤다.
“넌 또 왜 그러냐!”
“먼저 잡아 놓으려고 그랬어!”
“우심실부전부터 해결한다고 했잖아!”
“심장 확보하다가 그런 거라고. 이거……. 빌어먹을. 출혈이 너무 빨리 늘어나는데. 썩션!”
정민수가 거칠게 외쳤다.
옆에선 이선정 간호사가 기다렸단 듯이 끝이 기다란 썩션을 내밀었다.
“여기요. 어째 급해 보이시더라!”
“나중에 혼날게요. 지금은 혼날 시간도 없습니다!”
자책한 정민수가 얼른 썩션을 출혈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콰륵. 콰륵.
그런데 끈적끈적한 피가 순탄하게 빨려 들어올 리 없었다.
“식염…….”
“붓습니다!”
촤악!
어느새 이성혁이 복부 쪽에서 손을 길게 뻗어 식염수를 부었다.
피가 순식간에 묽어지며 흡입이 수월해졌다.
화이트엔젤 레지던트 최고참의 반사 신경이 어떤지를 이보다 더 확실히 보여 줄 방법이 없을 정도였다.
정민수도 당혹감을 지우고 격하게 칭찬했다.
“이 선생, 오프 때 내가 쏜다. 무조건 쏜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태수가 따갑게 소리쳤다.
“지금 니네 둘이 쏘고 자시고 할 때냐! Petechia(출혈점)가 어디야?”
“잠깐만……. 이거 이상……. 진짜 이상해.”
“뭐가 또!”
“좀 있어 봐!”
정민수가 빽 소리쳤다.
그 순간이었다.
후두둑!
송현미 간호사가 거즈를 떨어뜨렸다.
“여기 거즈요!”
“타이밍 좋습니다. 선배, 민수 좀 보조해 주십시오!”
태수는 거즈들을 움직여 대동맥궁 주변에 벽을 만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 전에 박성민의 두 손은 움직이고 있었다.
“이미 하고 있거든? 저도 썩션 하나 주세요. 이 자식은 왜 일을 만들고 난리야!”
“닥터 박, 썩션은 내가 잡을 테니까 원인부터 찾아요!”
“역시 널스 김! 썩션 이쪽으로. 시야 가리지 마시고……. 에이씨. 정민수 진짜!”
박성민의 목소리가 따가웠다.
평온하게 시작될 수술이 응급으로 돌변했으니 짜증이 날 만도 했다.
그런데 썩션을 놀리는 정민수의 표정이 상당히 굳어져 있었다. 단순히 응급 상황으로 만든 자신을 자책하는 느낌이 아니었다.
“음?”
태수가 거즈를 움직이며 그 표정을 봤는지 빠르게 물었다.
“정 선생, 왜?”
“선생은 쥐뿔. 응급을 만드는 녀석한텐 진상이라고 불러!”
“선배.”
“알았어. 샤따 마우스 한다고. 난 또 왜 마우스가, 아니 주둥이가 자꾸 영어질이야.”
콩글리시에 가까운 표현이었지만 계속 영어가 반사적으로 나오는 게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그런 박성민의 투정엔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태수의 양손은 신속하게 거즈로 벽을 만들고, 또 묽어진 피를 흠뻑 먹은 거즈를 빼며 걷어내기 바빴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틈틈이 사뭇 진지한 정민수를 힐끔거렸다.
다른 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각자 손을 움직이면서 정민수의 입이 열리길 기다렸다. 그저 자신의 실수를 무마시키고자 아무 말이나 던질 성격이 아니다.
수술과 관련해 특정 부분은 태수보다 더 철저하기에 의아함만 가득했다.
그때 서영우의 따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출혈을 잡고 있다는 거야, 방치하고 있다는 거야! 이 소리 안 들려?”
그 소리가 끝난 직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