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2842
02846 2846화
그렇게 주변이 한창 소란스러웠다.
그러나 그들의 웅성거림은 이 많은 사람들 중 단 두 사람에겐 닿지 않았다.
그건 태수와 에반겔로스였다.
소란이 계속되어서 그런지 잠시 마이크를 내린 상태였다.
“…….”
“…….”
그런 두 사람은 서로를 강렬하게 마주하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걸 표현하거나 알릴 수 없는 관계였다.
의사, 그리고 정치인.
전혀 이질적인 환경에서 살아가는 두 사람이다.
그러나 눈빛만큼은 뜨거웠다.
특히 태수는 그때 사경을 헤매던 그가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난 이 순간에 감사했다.
저 당당한 모습과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보는 것만으로 고마웠다.
반대로 에반겔로스는 나중에 스미스를 통해 이름을 알게 된 태수에게 고마움을 넘어선 경외를 보내고 있었다.
자신에게 두 번째 생을 선물해 준 태수는, 누가 뭐래도 자신에게 있어서 의술의 신이었다.
두 사람 모두 지금 당장 서로에게 다가가고 싶어 했다.
악수를 나누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다.
하지만 그 거리를 좁힐 순 없었다. 지금 이렇게 단상과 객석의 거리가 가장 적절하다는 걸 두 사람은 알고 있었다.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는 사이였다.
장내의 소란은 조금씩 가라앉아 갔다.
너무도 뜻밖의 인물의 등장이라 놀라워했다. 하지만 질답이 끝난 게 아닌 터라 한 명씩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장내는 다시 고요함이 찾아왔다.
그제야 에반겔로스가 내렸던 마이크를 다시 들었다.
그런 그는 태수에게 한 번 더 같은 질문을 건넸다.
-정말 그리스에서 도움을 청한다면 오시겠단 말입니까?
-병에 국경이 없는데 의사가 국경을 따질 순 없는 거 아닙니까?
-음.
-그런데 출발하기 전에 준비는 조금 필요합니다. 제가 전적이 있어 요주의 대상이 된 상태라서 말입니다.
태수는 르완다로 날아갔던 그 일을 어둡지 않게 언급했다.
하지만 그렇게 가볍게 생각할 문제도 아니었다.
그로 인해 엄수찬 장관이 난감함을 경험했고, 정민수는 한국에 들어오지 못할 지경까지 갔었다.
희망병원은 사립 병원이지만, 엄수찬 장관을 통해 다양한 지원을 받기에 독단적인 행동이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도 절대 부정적인 의미는 담겨 있지 않았다.
다만, 국제적인 이해관계를 무시할 수 없단 속뜻은 분명하게 담고 있었다.
그런데 에반겔로스는 잔잔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다시 마이크를 굳게 고쳐 쥔 그는 분명한 목소리로 물어 왔다.
-닥터 최의 수술팀 전원이 미국 의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맞습니다.
-그거면 충분합니다.
-네?
-약속드립니다. 그리스에서 도움을 청하게 되면, 닥터 최와 팀원들의 활동에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
태수가 침묵하고 있자 에반겔로스가 덧붙여 말했다.
-그리고 국빈으로 대우할 것이며, 필요한 모든 걸 지원하겠습니다.
-…….
-그리스는 분명 현 시점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응하는 보답까지 못할 정도는 아닙니다. 그것도 어렵다면 제 주머니라도 열겠습니다.
그의 다부진 약속, 아니 선언에 가까운 발언이 장내를 진하게 울렸다.
그 말은 가볍게 수긍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뭐야, 그리스란 나라와 일개 병원이 교류, 아니 수교는 아니고, 뭐라고 해야 하나?”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런 경우가 있었는지가 더 중요한 거 아니야?”
“꼭 그렇게 해석할 건 아니지. 이건 닥터 최에 대한 신뢰를 더 크게 해석해야 하지 않나?”
“그런데 에반겔로스가 닥터 최를 왜 신뢰하는 거지?”
여기저기서 소리들이 들려왔다.
그때였다.
지잉-
마이크의 하울링 소리가 스피커에서 옅게 들려왔다. 그 소리는 소곤거리던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했다.
그런 고요함을 만든 건 태수가 아니었다.
의외로 백성현 병원장이었다.
그는 조용해진 장내를 크게 둘러본 후 마이크에 대고 입을 열었다.
-방금 에반겔로스 님과 닥터 최의 대화를 통해 한 가지를 깨우치고 한 말씀 드리려 합니다.
“…….”
모두 조용히 바라만 보자 백성현 병원장이 말을 이었다.
-각 나라의 의료진들께 드리는 말씀입니다. 저희가 필요하다면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
장내는 여전히 고요했다.
백성현 병원장은 그 속에서 방금 내린 결심을 분명히 밝혔다.
-저희가 뛰어나단 의미가 아닙니다. 한 손이라도 거들 수 있다면, 혹은 저희 경험이 도움이 될 일이라면 신속히 의료팀을 파견하겠습니다.
백성현 병원장의 발언은 거기서 끝이었다.
‘찾아준다면 어디든 날아간다.’
사실 말만 놓고 보자면 오만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이 자리의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백성현 병원장의 발언 속엔 정중함이 분명히 담겨 있었다.
그걸 느꼈기에 아무도 어떤 말을 하지 않았다.
“…….”
“…….”
장내는 고요함이 계속됐다.
그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각국의 의료진들이 선뜻 도움을 청하겠단 발언을 할 순 없었다. 스스로를 낮추는 말을 공개적으로 할 순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부정적으로 생각할 것도 아니었다.
현재 한국의 응급 의료는 독보적인 행보를 이어 가고 있다.
그 중심엔 태수가 있었다.
연이은 참사에서 사상자 수를 최소한으로 줄였단 증거가 있다.
그런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태수는 응급 의료에 있어 누구라도 엄지를 추켜세울 위치에 올랐다.
거기에 VWD 수술팀의 화려한 경력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걸 부정하는 의사들은 없었다.
다만, 이 자리에선 자존심 때문에라도 발언을 삼가고 있을 따름이었다.
장내의 고요함이 계속됐다.
에반겔로스는 확답을 듣고 청중 속으로 다시 사라진 상태였다.
태수와 백성현 병원장이 시선을 마주쳤다.
더 이상 대화는 없을 거란 눈빛이 가볍게 오갔다.
그래서 백성현 병원장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청중들에게 말했다.
-아직 개원하지 않은 병원 소식으로 많은 분들을 복잡하게 한 거 같습니다.
“…….”
모두 조용히 바라만 보자 백성현 병원장이 이어서 말했다.
-그러나 지금껏 언급된 내용들은 분명 지켜질 겁니다. 이 말들을 행동으로 증명해 보일 그날, 더 당당한 모습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마치겠습니다.
툭.
마이크를 끈 백성현 병원장이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태수는 자연스럽게 그 옆으로 다가와 나란히 섰다.
그리고.
꽈악.
서로 손을 강하게 맞잡았다.
그 손을 높이 올린 후 천천히 내리며 동시에 정중하게 인사했다. 그리고 돌아선 두 사람이 무대 뒤로 이동했다.
짝, 짝짝.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뭔가 맥이 빠져 있었다.
분명 엄청난 소식들이 몰아친 마무리 발표였지만 개운한 느낌이 부족한 듯했다.
한편, 무대 뒤로 내려온 백성현 병원장이 태수에게 물었다.
“박수 소리가 맥 빠진 거 같은데, 뭔가 찝찝하진 않고?”
“전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부분이?”
“각자 생각이 많을 겁니다. 희망병원의 개원을 그저 한국에서 일어난 독특한 병원이라고 생각할 수만은 없을 테니까요.”
태수가 덤덤하게 말하자 백성현 병원장이 쓰게 말했다.
“그래도 난 좀 더 우렁찬 환호를 기대했는데……. 그건 역시 내 욕심인가?”
“네.”
“……역시 그런가?”
백성현 병원장이 어색한 얼굴로 재차 묻자 진지하던 태수가 빙긋 미소 지었다.
“그런데 저도 같은 욕심은 품었던 거 같습니다.”
“뭐?”
“저도 막 사람들이 환호하고 휘파람도 불어 주길 기대하지 않았다면 거짓말 아니겠습니까.”
“허, 참.”
“용두사미가 되지 않으려면 병원장님 말씀대로 지금이 문제가 아니라 희망병원이 어떤 행보를 할지 보여 주면 될 거 같습니다.”
태수의 유려한 대답에 백성현 병원장이 작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가끔 최 팀장의 그 번드르르한 말솜씨가 어디서 나왔는지 궁금하단 말이야.”
“제 말솜씨의 스승님은……. 마침 저기 오시네요.”
태수의 눈짓대로 뒤를 돌아본 백성현 병원장이 깜짝 놀랐다.
석정현 회장과 황석찬 회장이 다가오고 있던 탓이다.
“아니, 회장님들께서……?”
“우선 가시죠.”
“그래. 가지.”
얼른 정신을 수습한 백성현 병원장과 태수가 함께 움직였다.
곧 네 사람이 마주했다.
도착과 동시에 석정현 회장이 자연스럽게 두 손을 내밀었다. 그 의미를 눈치챈 백성현 병원장과 태수가 각각 조심히 맞잡았다.
그런데.
꽈악!
석정현 회장은 으스러져라 힘을 주며 묵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어. 아주 잘했어.”
“더 큰 환호를 끌어내지 못해 조금 아쉽습니다.”
백성현 병원장이 쓰게 말했지만 석정현 회장은 고개를 저었다.
“이 자리에서 받는 환호가 무슨 의미가 있나.”
“…….”
“정말 중요한 건 자네들이 품은 마음가짐을 보여 주는 거야. 그걸 충분히 알렸으니 그걸로 된 거 아니가.”
석정현 회장의 목소리에 힘이 넘쳤다.
백성현 병원장과 태수를 격려하기 위한 느낌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석정현 회장은 뭔가 자극을 받는 듯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걸 옆에서 황석찬 회장이 알려 줬다.
“인터넷이란 매체가 무섭긴 무섭더라.”
“무섭다니요?”
“그 뺀질뺀질한 김 차장인가 하는 녀석이 낸 기사 말이다. 벌써 전국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어.”
그 소리에 태수와 백성현 병원장이 동시에 깜짝 놀랐다.
“이슈가 되다니요?”
“벌써 말입니까?”
질문에 대한 답은 지금도 손을 꽉 잡고 있는 석정현 회장에게서 들려왔다.
“내 이제 와 이런 말 하기 부끄럽지만, 국내에 희귀난치성 환자들이 그렇게 많은 줄을 몰랐어.”
“그거야…….”
“당연하다고 말할 문제가 아니야. 아무튼 희망병원의 개원을 서둘러야 할 거 같아.”
“그 정도입니까?”
태수가 눈을 크게 뜨고 묻자 석정현 회장이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국내는 물론이고 한인 커뮤니티가 형성된 나라에서 서두르란 요청이 쇄도하고 있어.”
“아…….”
“벌써 성호종합병원에 문의 전화가 걸려올 정도로 말이야. 허나.”
“…….”
석정현 회장이 의도적으로 말을 끊은 터라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곧 그의 목소리가 묵직하게 변해 들려왔다.
“알려져서 기쁜 건 한순간이요. 무거운 건 왜 곱절로 다가오는가.”
“그건…… 석가, 네놈이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그런 거겠지.”
황석찬 회장이 애써 퉁명하게 답을 말해 줬다.
그러자 태수와 백성현 병원장이 크게 움찔거렸다.
“회장님, 그건…….”
“그래도 그 말씀은…….”
얼른 만류했지만 황석찬 회장이 꿈쩍할 리가 없었다.
“내 없는 말을 지어내는 거냐?”
“……아닙니다.”
“언제까지 쉬쉬할 게야. 본인이 한을 털어 냈다는데, 주변에서 감싸고돌면 그게 이치적으로 옳으냐?”
“…….”
틀린 말이 아니라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자 석정현 회장이 나섰다.
“거, 장한 일 하고 내려온 사람들 면박을 주고 그러나.”
“꿍한 속 좀 풀어 놓으라고.”
“알아서들 하겠지. 아무튼 두 사람, 수고 많았어. 그보다 최 팀장.”
석정현 회장의 부름에 태수가 얼른 답했다.
“네, 회장님.”
“그 일을 지금까지 그렇게 꽁꽁 숨겨 두고 있었나?”
“그 일……. 아, 송 선생 다이어리 말씀이십니까?”
“그래. 음, 그래서 그 마음은 어떤지 들어 보고 싶은데 말이야.”
석정현 회장은 차분히 답을 권했다.
어느새 황석찬 회장과 백성현 병원장도 주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