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2879
02883 2883화
어느덧 양쪽 모두 본격적인 응급처치가 진행 중이었다.
“충전 완료!”
“샷! 아직, 다시 충전. 하나, 둘…….”
“박 팀장님, 응급 수술 키트 세팅됐어요!”
“메이요 먼저, 봉합사 끊고 직접 심장 압박으로 진행합니다!”
불안한 맥박을 안정시키기 위해 오가는 손길과 목소리가 따가웠다.
그런데 정작 태수는 가만히 서서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다.
부정맥의 원인?
크게 두 가지다.
체력 저하, 그리고 내부의 원인 모를 이상 발생.
태수는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열었다.
‘그럼 필요한 게?’
생각한 태수는 곧장 저쪽으로 물러선 레지던트들에게 소리쳤다.
“중심정맥관 세트 2개, 그리고 씨암. 빨리!”
“네!”
후다닥!
레지던트들이 재빨리 움직였다.
필요한 것들이 준비되는 시간이 조금은 필요했다.
그사이에도 양쪽은 각각의 방법으로 부정맥과 씨름 중이었다.
이번엔 태수도 함께였다.
“샷! 아직, 계속 충전!”
“빌어먹을. 심장아, 좀 돌아와라!”
“이쪽에도 소리쳐 줘요. 이 작은 심장이 뭐 이렇게 격하게 움직이는 거냐고!”
“봉연수 환자 리도카인 한 번 더 추가합니다. 소 선생, 아기한테 미량이라도 좋으니까 한 번 더 투여해!”
서영우의 목소리마저도 날카로워졌다.
그만큼 불안한 시간이 계속 이어졌다.
그때였다.
그르릉!
“팀장님!”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자 레지던트들이 씨암을 밀고 있고, 그들을 지나쳐 밧드(철제 그릇)를 쥔 간호사가 날렵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턱.
“팀장님, 여기…….”
그녀의 말이 끝날 무렵이었다.
벌컥!
ICU의 문이 부서질 듯 급격히 열리며 의료진들이 스트레쳐카를 밀며 들어왔다.
그중에 서강재와 김은영이 함께였다.
김은영이 먼저 서강재에게 서둘러 질문했다.
“서 선생, 이 환자 어디로 모셔?”
“빈 병상이 하나도 아닌데 뭘 물어. 가까운 데로 모셔!”
“그러지 말고. 뒤에 계속 들어올 거잖아. 그나마 시간이 있는 분들은 좀 멀리, 오늘 중으로 수술실 들어갈 분들은 가까이 모시는 게 정석이라고.”
김은영의 틈새 지적이 너무도 옳았기에 서강재가 멈칫했다.
“그럼…… 저쪽!”
“알았어. 자, 빨리 가요!”
드르륵!
스트레쳐카는 서강재가 가리킨 쪽으로 멀어져 갔다.
그런데 태수의 미간이 좁혀져 있었다.
김은영이 소리 한 번 지르지 않았단 점이 의아한 건 결코 아니었다.
그들이 나눈 대화의 일부가 태수를 자극했다.
환자가 몰려온다고?
코드 블랙이 진짜란 의미였다.
이미 벌어진 일이라면 그 원인을 당장 추적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이쪽이 문제였다.
지금 이쪽의 두 환자는 이미 부정맥이 발생한 상태였다. 앞으로 드나들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서 좋은 모습이 아니다.
봉연수와 아기에게도 좋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씨암 가동 소리와 레지던트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웅!
“팀장님, 씨암 가동시켰고, 납복도 준비됐습니다.”
“고생했고, 저쪽 도와. 이쪽은 신경 쓰지 말고 다른 분들에게 집중해.”
“네!”
타다닥!
레지던트들은 다가올 때보다 더 빨리 멀어져 갔다.
그때였다.
쾅!
“환자 어디로!”
“이 환자 강심제부터요!”
연이어 환자들이 밀어닥치기 시작했다.
그 소란 속에서 태수는 말없이 커튼을 잡았다.
그리고.
촤악!
커튼을 거칠게 움직여 외부의 시야를 차단했다.
우선순위를 봐도 이쪽이 먼저였다.
그 후 커튼 내부에선 쉴 새 없이 따가운 목소리가 오갔다.
“CPR 더 강하게. 아니, 비켜!”
“충전됐는데 교대를 하면 어쩌자고!”
“아기 심장, 심장 좀!”
“내가 지금 그 심장 쥐고 있거든! 미치고 팔짝 뛰고 싶은 것도 내가 먼저니까 순서 지켜!”
“소 선생! 탯줄에 중심정맥관 연결해도 돼?”
“바로하면 안 돼요! 과투여 될 수 있다고요. 용량 계산부터……. 진짜 머리 뽀개지겠어요!”
“어어? 더 심해진다. 잔소리 그만하고 집중해!”
너무도 많은 대화들이 순식간에 오갔다.
가만히 듣고 있어도 누구의 목소리인지 구분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젠 커튼 안쪽 상황만 문제가 아니었다.
커튼 밖의 빈 병상들도 하나둘씩 채워져 가고 있었다.
환자의 병세에 따라 해당 의과에서 찾아와 응급처치도 진행됐다.
“거기 잡아!”
“잡았습니다!”
“그대로 유지. 에이씨, 바늘은 왜 이따위야. 빨리 다른 거!”
또 한쪽에선 고성이 오갔다.
“무턱대고 환자를 받아 달라니요. 자리 없어요.”
“저기 있잖아요. 저기 자리 있네!”
“응급수술 중인 환자들은 어디서 회복하라고요. 일단 의과 병동으로 보내라니까요!”
“그냥 보통 환자면 나도 그러고 싶다고요. 미치겠네.”
“나도 미치겠습니다. 도대체 한두 명도 아니고, 어떻게 이렇게 몰려오는 겁니까. 진짜 환장하겠네!”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싶단 충동이 가득 느껴지는 절규였다.
한편, ICU 구석에서 제임스가 잠깐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오가는 소리들이 너무 따가웠는지 귀가 꿈틀거렸다.
그러다 곧 눈을 뜬 제임스는 너무도 달라진 ICU의 모습에 혼란을 느꼈다.
그것도 잠시였다.
“이런!”
얼른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시선이 마주친 레지던트에게 빈 병상을 가리켰다.
레지던트는 순간 환하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OK’를 내보였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말이 안 되면 손, 발짓이 최고였다.
그렇게 병상을 비운 제임스는 시간부터 확인했다.
1시간 남짓?
그 짧은 시간에 이렇게까지 ICU가 변화할 수 있단 부분에서 적잖이 놀랐다.
그런데 그 놀라움은 곧 짜증으로 바뀌었다.
‘이래서 닥터 최에게 안 눕는다고 했건만.’
구태여 자신을 눕히더니, 결국 이렇게 염치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
물론 누구도 제임스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들 정신이 없어 누워 있으면 환자라고 생각했지, 제임스가 쉬고 있단 사실 자체를 잊고 있었다.
그건 의료진들의 생각이었다.
제임스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닥터 최…….’
이런 사단을 일으킨 태수에게 무조건 한마디 해야겠다고 다짐까지 했다.
그런데 둘러봐도 태수는 보이지 않았다.
정말 혼자 나간 거라면 진짜 화가 날 것 같았다.
어느새 차가워진 눈빛으로 변한 제임스의 두 눈이 한 곳에 멈췄다.
거기만 유일하게 커튼이 쳐져 있었다.
분명 수술한 환자를 데려다 놓은 위치였다.
“…….”
제임스는 묵직하게 움직였다.
곧 커튼 앞에 도착했다.
귀를 열어 내부의 소리부터 들어 봤다.
삐빅, 삐빅!
ECG의 따가운 소리가 복합적으로 들려왔다. 그게 의아했지만 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 건 그 소리가 전부란 점이었다.
혹시 아무도 없는 건가?
그 생각과 동시에 제임스가 커튼을 거칠게 걷었다.
촤륵!
커튼이 옆으로 밀리며 내부의 모습이 보였다.
제임스는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섰다. 그의 날카롭던 눈빛이 어느새 가늘게 흔들렸다.
태수를 비롯한 모두가 땀에 찌든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지치다 못해 탈진한 느낌까지 들었다.
그때 시선을 땅으로 내린 박성민의 한국말이 들려왔다.
“어떤 십장생이 오래오래 길이길이 살아가시려고, 내 입에서 욕이 나오길 바라시는 건지 너무도 궁금해서 참을 수가……. 으에엑!”
“어째 저 입은 지치질 않아.”
김혁권이 툭 쏘아붙였지만 박성민은 대꾸하지 않았다. 재빨리 영어로 마주한 제임스의 안부부터 물었다.
“제임스 박사님, 좀 괜찮으십니까?”
그 소리를 듣고야 모두가 고개를 들었다.
다들 다크서클이 한 가득이었다.
지금 커튼 밖에서 뛰어다니는 의료진들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그런 퀭한 얼굴로 비틀거리며 일어선 태수가 힘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좀 쉬셨습니까?”
“이런 분위기를……. 아니, 나중에 말하기로 하고. 어떻게 된 거야?”
제임스는 항의하려는 마음도 들지 않아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태수가 간략하게 설명했다.
“엄마랑 아기, 모두 부정맥이 와서……. 그렇게 해서 지금은 간신히 좀 나아졌습니다.”
“뭐? 1시간 사이에 부정맥이 그렇게 많이 일어났다고?”
제임스는 크게 놀랐다.
체력이 바닥인 환자들에게 연속적으로 부정맥이 일어난다? 그건 십중팔구는 마지막을 준비하게 한다.
특히 조산인 아기와 암 수술을 받은 임산부라면 백 중 구십구의 경우로 문제가 일어나는 게 의학계 정설이다.
그런데 그 나머지 하나의 경우를 보고 있었다.
불가능에 가까운 회복이다.
그런데 분명 두 환자 모두 ECG가 움직이고 있다.
즉, 살아 있다.
왜?
그건 파김치가 된 모두의 모습이 알려 주고 있었다.
누군가의 희망을 이뤄 주기 위해 그들은 기적을 만들어 가는지도 모른다.
“사람들 참.”
제임스가 자신도 모르게 따스한 정말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
한편, 태수는 제임스가 놀란 이유를 짐작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 완전히 안전한 건 아닙니다.”
“그래도 그 모든 부정맥을 방어했단 것 자체가……. 그래서 이렇게 지친 모양이야.”
“잠깐 쉬면 좋아집니다. 그보다 좀 봐주십시오.”
태수는 제임스가 커튼 안쪽으로 들어오길 원했다.
제임스는 지체 없이 그 속으로 들어갔다.
그와 동시였다.
촤르륵.
“아이고.”
“어이쿠.”
김혁권과 박성민이 양쪽에서 커튼을 힘껏 밀어 다시 시야를 차단했다. 그 간단한 일조차도 앓는 소리가 절로 흘러나왔다.
그리고 10분 후.
제임스가 다부진 눈빛으로 태수에게 말했다.
“중심정맥관 연결은 확실히 잘했어. 알부민을 선택한 것도 탁월했고.”
“거기다 셀린제약을 닦달해 확보해 둔 특수 영양제도 도움이 되는 거 같습니다.”
“그래. 그런데 닥터 최의 말대로 아직은 안심하기 이른 상황이긴 해.”
“그래서 자리를 뜰 수가 없습니다.”
태수는 물론 다른 팀원들도 비장한 눈빛을 내보이고 있었다.
피곤함에 탁 풀린 눈과 어울리지 않았지만 각오까지 흐리멍덩하지 않았다.
제임스는 여러 번 봤던 모습이라 오히려 친근한 미소를 내보였다.
“조금만 더 고생해. 이런 페이스라면 앞으로 반나절 후엔 안정권에 접어들 테니까.”
“그 전에 제발, 아주아주 제발 아무런 문제가 없길 바라고 또 소망하고 있습니다.”
박성민은 두 손까지 꼭 모으며 간절함을 내보였다.
그러자 제임스가 묵직하게 격려했다.
“꼭 그렇게 될 거야.”
“쌩유 베리망치!”
“……그래. 고맙다니 다행이야.”
박성민의 콩글리시가 엉망이었지만 제임스는 경험으로 끼워 맞춰 응했다.
이후 태수가 제임스를 ICU 앞까지 배웅한다고 나섰다.
그리고 아직 익숙하지 않을 제임스에게 행선지도 알려 줬다.
“병원장실로 가시면 될 겁니다.”
“신속대응센터로 가야지.”
“괜찮으시겠습니까?”
“날 재운 닥터 최가 너무 괘씸했지만, 덕분에 컨디션은 좀 올라왔어. 힘이 있으면 움직이는 게 우리 일이잖아.”
그의 부드러운 말에 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또 그렇죠.”
“그런데 이 환자들은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아직 개원한 게 아니라고 하지 않았나?”
“저도 모르겠……. 아, 저기 마침 물어볼 사람이 보이네요. 강재야!”
태수는 일부러 잘 들리라고 이름을 불렀다.
그 소리에 서강재가 두리번거리다 태수와 제임스를 발견하고 재빨리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