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2881
02885 2885화
태수도 같은 심정이지만 그래도 피하겠단 마음은 지워 버리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설명부터 해야겠죠.”
“흐음.”
“다들 나가세요. 제가 조용히 말씀드릴게요.”
태수가 배려해 권했지만 모두의 눈빛이 순식간에 날카로워졌다.
그때 결혼 후 한층 더 조용해진 김아름이 처음으로 먼저 나섰다.
“팀장님, 그건 아닌 거 같아요.”
“김 선생.”
“아직 끝난 건 아니잖아요. 여기서 우리가 피하면 이미 끝났다고 결론짓는 거라고요. 그건 싫어요.”
말을 마친 김아름의 눈빛이 강렬했다.
자신도 언젠가 엄마가 될 것이기에, 그리고 이런 문제가 없다고 장담할 수 없어서 정면으로 부딪치길 원했다.
다른 팀원들 또한 기혼 여부와 관계없이 꿈쩍하지 않았다.
그게 그들에겐 책임감이었다.
태수도 알기에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태수는 다시 봉연수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의식이 점점 또렷해지는지 봉연수의 불안감이 더욱 강해져 가고 있었다. 고개도 못 돌릴 상황에서도 쉬지 않고 눈동자가 움직였다.
“아기…… 내 아기…….”
“연수 씨.”
“티, 팀장님…… 희망이…… 어디 있어요? 내 아기…… 아기 어디…… 있어요?”
어렵사리 말을 내뱉는 사이 눈에 눈물이 고여 갔다.
불안감이 점점 현실이 되어 가는지 머릿속이 헝클어진 느낌까지 들었다.
삑삑삑!
ECG의 수치 등락이 너무 커졌다.
이대로는 위험했다.
태수는 불안 증세가 문제를 일으키기 전에 빠르게 말했다.
“희망이는 지금 제 뒤에 있습니다.”
“아기……. 윽, 으윽!”
봉연수는 믿지 못하고 억지로 고개를 돌리려 했다. 지금 그 작은 움직임이 후에 어떤 문제점을 만들어 낼지 모른다.
그래서 태수가 얼른 안정시키려 말했다.
“분명히 제 뒤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움직이지 마세요. 가만히, 그냥 가만히 계세요.”
“안 돼요……. 보여 주세……. 흐윽!”
진짜 고집불통이었다.
거기다 의지까지 강했다.
왜 그렇게 집착하는지 모르지 않는다. 그런데 그녀를 도와주기에는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였다.
덜그럭.
뭔가 소리가 들리더니 송현미 간호사가 태수 앞을 빠르게 지나쳤다.
“실례할게요.”
그런 그녀의 손엔 손거울이 들려 있었다.
의료 카트 속 상비 물품이었다. 가끔이지만 환부가 보이지 않아 거울에 비추어 봐야 할 때도 있던 탓이다.
그 어쩌다 한 번의 경우가 지금이 된 모양이다.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송현미 간호사는 손거울을 들고 봉연수에게 가까이 다가가 각도를 조절하며 물었다.
“여기 거울이에요. 여기에 비쳐서 보여 드릴게요……. 어때요, 보여요?”
“아니…… 아직……. 어? 아…….”
인큐베이터 속 아기가 비쳐 보였는지 봉연수가 낮은 탄성을 자아냈다.
삐빅, 삐빅.
ECG의 출렁임이 서서히 진정되어 갔다.
놀란 반응을 보이지 않는 걸 보면 아기도 수술을 받을 거란 걸 기억하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봉연수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지어져 갔다.
반면, 태수와 의료진들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송현미 간호사의 임기응변은 더없이 뛰어났다. 문제는 그 시간을 길게 할애할 수 없단 점이었다.
현재 아이의 상태가 어떤지를 이젠 설명해야 한다. 그런데 저렇게 안도하는 봉연수에게 그 말을 누구도 쉽게 꺼내기 어려웠다.
몇 번 고민하던 태수가 결국 나서려 했다.
그때였다.
턱.
박성민이 태수의 손을 잡았다.
“…….”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빛이 대신 의미를 전달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지켜보자고, 조금만 더 기뻐할 시간을 주자고.
하지만 태수는 고개를 저었다.
이대로 해피엔딩이고 싶은 그 마음은 태수도 다르지 않았다. 그 바람과 달리 현실은 냉정하고 냉혹했다.
그래서 말해야 한다.
복잡한 눈빛으로 박성민을 가만히 바라봤다.
“…….”
툭.
결국 박성민이 입술을 깨물며 손을 놓았다.
자유가 된 태수는 다시 병상에 다가섰다. 그리고 어렵게 미소 짓는 봉연수를 나지막이 불렀다.
“연수 씨, 잠시만요.”
“……네?”
“희망이 말입니다. 조금 문제가 있습니다.”
태수의 말이 밖으로 나온 순간이었다.
쿠궁.
희미한 그녀의 미소가 어느새 딱딱하게 변해 갔다.
“무슨…… 말씀……. 수술을 받았으니…… 아무래도…….”
“네, 그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정도 문제가 아닙니다.”
“…….”
“지금까지 대견할 정도로 잘 싸우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되길 바라지만…… 아기가 점점 힘들어합니다.”
말을 마친 태수의 눈빛이 무덤덤했다.
그러나.
꽈악.
손으로 허벅지를 쥐어짜고 있었다.
그런 아픔이 있어야 냉정하게 말할 수 있던 탓이다.
태수뿐만 아니라 모두가 각자 티를 내지 않도록 자신을 괴롭히고 있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봉연수도 혼란스러워했다.
태수는 기다리지 않고 차분하게 이어서 말했다.
“오늘 밤이 고비지 않을까 싶습니다.”
“…….”
“무사히 넘어갈 겁니다. 희망이가 열심히 싸우고 있고,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려고 모두 여기 있습니다.”
“그걸…… 왜…… 지금…… 말해 주…… 나요.”
메마른 목소리가 힘들게 흘러나왔다.
태수는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나지막이 답했다.
“알고 계셔야 하니까요.”
“아기에게…… 문제없다고…… 야, 약속…… 하셨어요.”
“……네, 했습니다. 지금도 그 약속 지키고 있습니다.”
“그럼…… 된 거 잖아요.”
봉연수는 가늘게 떨리는 눈빛으로 공허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눈물은 보이지 않았다.
너무도 커다란 충격은 오히려 눈물을 삼켜 버린다. 그건 이 상황을 부정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태수도 알지만, 다음 말을 하기 위해 아기의 상태를 알렸다.
가볍게 심호흡을 한 후에야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와 못 지키겠단 말이 아닙니다. 희망이 상태가 시시각각 변하고 있어서 저희가 어떤 행동을 해도 놀라지 마시란 겁니다.”
“…….”
“그리고 희망이를 일부러 여기 함께 있게 했습니다. 연수 씨가 지켜보고 응원해 줘야 하니까요.”
그건 태수의 말이 옳았다.
보통 병원에선 출산 후 산모와 아기를 떼어 놓는다. 그에 대한 이유를 말하자면 너무도 많은 게 사실이었다.
아기를 데려온 건 박성민의 판단이었고, 태수가 동의했다. 그래서 이 자리에 지금껏 함께 있을 수 있었다.
팀장들의 결정이 다른 병원과 다르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여기는 희망병원.
그거면 충분했다.
할 말은 더 많지만 지금은 의미가 없었다.
그렇게 짧게 상황을 설명했고, 이젠 봉연수가 대답할 차례였다.
모두 잠자코 기다렸다.
거울에 비친 아기만 하염없이 바라보는 봉연수에게 더 이상 어떤 말도, 또 격려와 조언도 하지 않았다.
그 시간이 1분 가까이 지나갈 때였다.
뚝, 뚝.
봉연수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방금 전까지 메말랐던 눈이 거짓말처럼 축축해져 있었다.
뭔가 심적으로 변화가 있단 의미다.
직감한 모두에게 봉연수의 꽉 막힌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겨 낼…… 거예요. 분명히…… 그 사람 아이니까…….”
“…….”
“그 사람은…… 항상 내가 하고 싶은 거…… 다 해 줬으니까…… 희망이도 분명히…… 분명히 그럴 거예요. 흐으읍.”
봉연수는 억지로 숨을 들이켜 들썩이는 자신을 억눌렀다. 그런 그녀의 시선이 희망이가 아닌 천장으로 향했다.
조금씩 달싹거리는 입술.
그러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누구도 그 말이 무언지,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다만 말없이 속으로 읊조리는 건 똑같았다.
‘희망이 아빠, 희망이 좀 도와줘요.’
그러나.
희망이의 상태는 시간이 갈수록 안 좋아졌다.
삑삑삑!
ECG의 격한 소리.
그와 동시에 인큐베이터를 둘러싼 태수와 의료진들.
“아니야. 그거 아니라고.”
“침착하게. 차분하게 움직여.”
“쉿. 조용히!”
소리만 들려올 뿐, 뭘 하는지 철저하게 가렸다.
봉연수는?
눈을 감고 있었다.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과 입술을 억지로 진정시키며 아기가 힘을 내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그 속은?
이미 넝마가 되어 있었다.
그런 그녀였지만, 이렇게 또 한 번 자신을 눌렀다.
그건 태수와 의료진 모두의 노력을 직접 보고 있어서였다.
그들에게 가식은 없었다.
진정 내 아이의 일처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달리 말하면?
필사적이었다.
인큐베이터를 가린 건 자신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였다.
그래서 뭉그러지는 마음을 간신히 억누를 수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시간은 흘러갔다.
어느새 새벽녘이었다.
수술이 끝난 시간을 기준으로 24시간이 흘렀다. 수술 시작을 기준으로 잡으면 36시간 이상이 지난 시간이다.
태수와 팀원들도 이제 체력적인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사실 체력으로 지켜보고 있다고 말할 단계가 지난 상태였다.
정민수와 다른 팀원들이 한 번씩 들르기도 했다. 교대를 해 주겠다고 했지만 아무도 응하지 않았다.
누구도 억지로 이 자리에 있는 건 아니었다.
아기에게 오늘이 진정한 생일이 되길 바라는 심정으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노력들에도 아기의 상태는 점점 나빠졌다.
삑삑삑!
ECG의 수치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를 정도였다.
잠시 다녀간 제임스, 스미스, 황석찬 회장, 그리고 백성현 병원장 등 많은 의사들이 남몰래 고개를 저었다.
어깨를 가볍게 다독여 주는 게 전부였다.
아기의 바이탈은 그들조차 시선을 피할 정도로 엉망이었다.
이쯤 되니 철벽같은 마음에도 조금씩 금이 갔다. 박성민은 물론 김혁권과 송현미 등등 불안감이 점점 팀원들을 어둡게 물들여 갔다.
그건 태수도 마찬가지였다.
죽음.
그 단어가 머릿속에 떠오름과 동시였다.
번뜩!
태수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아니야.’
아기는 아직 살아 있다.
이렇게 모두가 볼 수 있도록 ECG에도 선명한 그래프가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봉연수도 믿음의 눈빛 그대로였다.
그럼 먼저 이상한 생각을 품는 건 말이 안 된다.
어느새 태수의 시선이 인큐베이터로 향했다.
그 속에서 힘들어하는 아기를 바라보며 멍해진 머릿속을 억지로 굴렸다.
뭐가 있을까.
아직 시도하지 않은 방법이 무언가 있을 터였다.
그게 뭔지만 찾으면 된다.
하지만 태수의 생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이었다.
삐비빅! 삐비빅!
ECG의 소리가 격하게 변했다.
벌써 수도 없이 반복된 그 소리.
그래서 그럴까?
모두의 반응이 약간 늦어졌다.
그 모습을 본 순간 태수의 눈빛이 사납게 빛났다.
이건 아니다.
그 마음으로 입을 열려는 순간 다른 곳에서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이래 놓고 희망병원? ……제가 잘못 찾아온 거 같습니다.”
이지적이고 차가운 목소리였다.
그리고 굉장히 귀에 익었다.
그 목소리는?
휙!
모두가 같은 생각인지 깜짝 놀라 돌아봤다.
커튼 사이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는 인물은 역시 이기준의 얼굴이었다. 그런 그는 수술복에 가운을 입고 있었다.
“…….”
“…….”
모두 멈칫할 때였다.
신경이 날카로워진 태수가 한마디 했다.
“뭐 합니까? 이 선생 처음 봅니까?”
“아, 아니…… 아니야. 이 사람들이 지금 뭐 하는 거야? 얼른 안 움직여!”
박성민이 묵직하게 재촉했다.
그 목소리가 끝나기 전에 이미 모두 움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