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2897
02901 2901화
수술대에선 손이 보이지 않게, 수술대 밖에선 발이 보이지 않게 움직이는 중이다.
그런 그녀였지만 마취 전문 보조 간호사는 아니었다.
눈치와 경험만으로 지금까지 문제없이 보조하고 있지만, 그 이상의 전문적인 지식까진 무리였다.
그건 서영우도 알고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 이초롱 간호사가 아니라 강익현 마취의에게 물었다.
“강 선생, 수혈팩은 얼마나 더 들여올 수 있습니까?”
“글쎄요.”
“글쎄라니요. 그게 무슨 뜻입니까?”
“응급실에 보관 중인 건 거기 있는 게 끝입니다. 관리과에서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그 소리에 서영우가 펄쩍 뛰었다.
“무슨 소리입니까? 응급실에서 보유한 수혈팩이 이게 다라고요? 그건 너무 적은 거…….”
“적을 수밖에 없는 거 아닙니까. 현실적으로 저희가 수술을 많이 하는 것도 아니고, 응급 환자가 여기서 이렇게 수술받을 일은 더더욱 드물고요.”
“그건 나중에 따지고. 그럼 펜타스판은 있습니까?”
“있긴 있을 건데, 얼마나 있을진 잘 모릅니다. 사용 횟수가 드물어서요.”
그의 대답이 두루뭉술했다.
서영우는 말문이 막혔다. 그러나 그에게 짜증 낼 문제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대부분의 지방 병원들 실상이 이러했다.
특히나 동성의료원 시절은 창피할 정도로 엉망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뭐라고 할 순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혈액이 너무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일단 가늠해 본 서영우가 태수를 찾았다.
“최 팀장!”
“잠시만……. 네, 말씀하세요!”
태수가 응하자 서영우는 현 상황부터 물었다.
“간은 얼마나 진행됐어?”
“이제 반 정도요.”
“아직도?”
“괴사 부위에 Falciform Ligament(낫인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치겠네.”
서영우이 애써 짜증을 억눌렀다.
그게 이상하단 걸 직감한 태수가 재빨리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혈액이 별로 없어. 이런 페이스면 10분 정도?”
“……여기서 멈출 순 없습니다.”
태수의 목소리가 단호했다.
그건 서영우도 공감하는 부분이었다.
“누가 멈추자고 했어? 멈추면 죽도 밥도 안 되는 상황인 걸 모르겠냐고.”
“…….”
“일단 출혈을 최대한 늦춰 줘. 여기 병원에 추가 요청하게.”
서영우가 부탁하는 사이였다.
태수는 환부를 살피며 가늠부터 했다.
간, 그리고 장.
마지막으로 도성민이 홀로 고독하게 싸우고 있는 흉부까지.
수술 전체를 둘러보며 가늠한 태수가 결정을 내리고 모두에게 오더했다.
“현재 출혈 부위부터 1차적으로 정리해.”
“이걸 지금……. 알았어. 이 선생, 지혈부터!”
“네!”
두 사람의 손길이 바로 바뀌었다.
그사이 태수는 옆에서 흉부를 홀로 전담 중인 도성민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쪽은 어때?”
“묻지 마.”
“…….”
“어? 아, 환부가 좁아서 좀 어려운 정도야. 지금은 출혈이 많지 않은 상황이고.”
말하는 도성민의 얼굴에 땀이 가득했다.
그 자체로도 얼마나 예민하게 흉부를 관리하는지 알 수 있었다.
조금 전에 부정맥이 온 환자다.
그런데 이런 대형 출혈 속에서 똑같은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 건 도성민의 세심한 관리 능력 탓이었다.
태수는 가운데 선 김혁권에게 부탁했다.
“도 선생 땀부터 닦아 주세요.”
“그럽시다. 얼굴 좀 이리……. 아니, 그냥 가만히 있어요. 내가 알아서 할게.”
시선을 마주하려던 김혁권이 슬쩍 말을 돌렸다.
잠깐이지만 여유가 있어 건네는 양념 같은 농담이었다.
도성민도 박성민처럼 자극적이지 않은 농담이라 그냥 쓰게 웃어넘겼다.
그러면서 수술 속도가 전체적으로 느려졌다.
한 번 더 수술대 상황을 넓게 확인한 태수가 서영우를 찾았다.
“서 선생님!”
“오케이. 잠깐만 그대로 대기. 잠깐이면 돼……. 강 선생님.”
서영우가 찾자 강익현 마취의가 이젠 알아서 나섰다.
“잠시만요. 바로 전화해 볼게요.”
스윽.
그가 잠깐 자리에서 벗어나 전화기로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벽에 걸린 전화기를 통해 어딘가로 전화하기 시작했다.
“저 강익현입니다. 여기 수술실에…….”
어느새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해 있었다.
곧 강익현이 수화기를 내렸다.
그런데 그가 쉽게 돌아서지 않았다.
“…….”
“…….”
다들 의아하게 바라보던 중이었다.
스윽.
천천히 돌아선 강익현 마취의가 굳어진 얼굴로 말했다.
“저…… 수혈팩 여분이 없답니다.”
그 소식에 모두의 표정이 황당하게 변했다.
태수가 입을 열려던 찰나였다.
그보다 먼저 서영우가 번개같이 나섰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하나도 없다고요?”
“아니요. 하나도 없는 건 아닌데, 2팩 정도 된답니다.”
“겨우 2팩이요? 도대체 왜, 왜요?”
서영우는 너무도 황당해 더듬어 물었다.
강익현 마취의는 그 시선을 마주하지 못한 채 답했다.
“기존에 잡힌 수술 스케줄에 사용될 혈액들이니까요. 여분으로 준비한 건 이쪽으로 우선 사용하게 해 준답니다.”
“아니, 지금 응급수술 중입니다. 이쪽이 먼저 아닙니까?”
“그럼 스케줄 잡혀 있는 환자들은 어쩝니까?”
“그…….”
서영우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이쪽 상황이 급하다고 무작정 다 가져오라고 소리칠 순 없는 노릇이었다.
태수는 물론 모두가 문제를 직감했다.
그걸 추강익 간호사가 꼬집어 입에 올렸다.
“이제 간하고 장을 수술하는데…… 신장하고 위는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
다들 순간 말이 없었다.
엄연히 양해를 구하고 응급수술을 진행 중이었다.
김천의료센터에선 도와주는 거지, 도와줘야 할 의무는 없었다.
강제적으로 요구할 수 없단 의미다.
남은 혈액을 지원해 준단 건 상당한 호의가 분명했다. 그거까지 곡해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문제는 이 응급수술이 끝까지 잘 마무리되려면 더 많은 혈액이 필요하단 점이었다.
그때였다.
번뜩!
태수가 눈빛을 빛내며 강익현 마취의에게 물었다.
“일단 들여올 건 들여올 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혹시 혈액원에 요청해 볼 수 없겠습니까?
“혈액원이요? 일단 남은 것부터 달라고 하고, 바로 전화해 볼게요. 잠시만요.”
돌아선 그가 다시 전화기를 들었다.
또 기다려야 할 상황이다.
“하.”
절로 숨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재촉할 수도 없어 씁쓸한 마음을 삼키는 게 최선이었다.
그 시간은 다행히 길지 않았다.
그런데 다시 돌아선 강익현 마취의 표정은 여전히 밝지 않았다.
“혈액원에 여분이 있긴 한데…….”
“그런데요?”
유병태가 얼른 끼어들어 물었다.
그러자 강익현 마취의가 눈을 크게 굴리며 답했다.
“그쪽 헬기가 사용 중이라 여기까지 차편, 혹은 기차 편으로 보내야 한답니다. 그 양은…….”
“일단 그거라도 받아야죠. 그리고 헬기야 저희 헬기를 보내면 되지 않습니까?”
“왕복인데요. 그럼 그쪽에서 출발하는 게 더 빠를 겁니다.”
“그…… 그러네요.”
서두르던 유병태의 목소리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강익현 마취의 말이 그만큼 옳았다.
그런데 그 양이 적은 건 상당히 문제였다.
시간을 그렇게 투자하긴 어려웠다.
다시 고요해질 무렵이었다.
태수가 미간을 좁히며 차분하게 물었다.
“구미에 혈액원 출장소가 있지 않습니까?”
“어제 모두 회수했답니다.”
“……그럼 구미 소재 종합병원에 알아볼 순 없을까요?”
태수는 답답함을 애써 누르며 재차 물었다.
또 강익현 마취의에게 전화를 부탁해야 할 입장인 탓이다.
그런데 이번엔 서영우가 나섰다.
“그럼 차라리 내가 전화할게. 강 선생에게 너무 그러지 말자고.”
“저요? 아니, 전화 정도야…….”
“우리도 염치가 있습니다. 아무튼 나중에 얘기하고, 실례 좀 합시다.”
빠르게 다가간 서영우가 바로 전화기를 들었다.
“여기 응급수술실인데, 구미 쪽 종합병원…….”
밖의 간호사실을 통하는 모양이었다.
서영우가 그 모든 번호를 외우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아무튼 또 기다려야 할 상황이다.
수술대에 선 모두의 표정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한창 속도가 붙어 신속하게 진행되어야 할 때였다. 그런데 이런 황당한 이유로 멈추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찌이익.
“빌어먹을 피.”
김혁권이 장이 마르지 않게 식염수를 쏘며 한마디 투덜거렸다.
태수는 빈손을 쥐락펴락했다.
응급수술이라 먼저 혈액을 사용하게 해 달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그걸 채워 줄 수 없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요청하는 건 빼앗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확보된 혈액은 누군가의 수술을 위해 준비된 거다.
그 환자가 수술받을 기회를 빼앗을 순 없다.
양해를 구하면?
생각은 그랬지만 바로 나서진 않았다.
서영우가 아직 전화 중이었고, 그 결과에 따라 움직여도 늦지 않았다.
기다림은 조금 더 이어졌다.
언제까지 손을 놓고 있을 수도 없다.
그래서 출혈을 최소화할 수 있는 부분만 다시 수술이 진행됐다.
주로 장이었다.
태수는 듬성듬성 잘린 장을 봉합사로 꼼꼼하게 문합하고 있었다.
출혈이 일어나지 않는 부위라 가능했다.
그렇게 눈과 손은 수술에 집중하고 있다. 그런데 귀는 태수도 모르게 자꾸만 서영우 쪽으로 향했다.
서영우의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들려왔다.
“……알죠. 아는데, 그래도 이쪽 상황이…….”
순탄하지 않은지 비슷한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태수만 듣는 게 아닌지 반대편에서 손을 움직이던 유병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애초에 이 환자를 대전 신속으로 보낼 걸 그랬나?”
“거기까지 이동하긴 너무 멀었어.”
도성민이 묵직하게 제동을 걸자 유병태가 쓴 목소리로 대꾸했다.
“내가 몰라서 하는 말은 아니잖아. 진짜 이대로 계속 지체되면 안 되는데…….”
“신장 상태 안 좋지?”
“당연하지. 십이지장 쪽도 서서히 수포가 올라오기 시작했어.”
유병태의 말이 끝나자 황경석이 슬쩍 보태서 말했다.
“맥박하고 혈압도 점점 불안해집니다.”
“차라리 우리 피 뽑을까?”
유병태가 극단적인 질문을 하자 모두 고개를 저었다.
“그냥 수혈만 해서 된다면 그러고 싶은데…… 그 이후에 수술은 누가 할 건데?”
“그야……. 에라이.”
유병태의 씁쓸한 짜증이 들려왔다.
그때였다.
스륵.
장 문합을 마친 태수가 수술 장갑을 벗어 버렸다.
그걸 본 모두가 눈살을 찌푸렸다.
“뭐지? 태수야, 너 왜 갑자기…….”
“언제까지 손가락만 빨고 있을 거야?”
“어쩌려고?”
“수술받을 분들 찾아가서 양해 구하려고.”
“시간이…….”
유병태는 차마 여유롭지 않단 말을 하지 못하고 삼켰다.
태수도 알고 있기에 격동하는 ECG를 바라보며 물었다.
“불나게 뛰어갔다가 오면 10분이면 되지 않을까?”
“……그럼 차라리 내가 갈게. 넌 너무 얼굴이 알려져서 붙잡힐 확률이 높아.”
유병태가 대신 나서려 하자 도성민도 적극적으로 말했다.
“차라리 내가 가는 게 좋지 않아?”
“부탁하러 가는 거라고. 협박하러 가는 게 아니라.”
“저 자식이.”
“그리고 흉부 관리하면서 어딜 간다고 그래.”
“그…….”
도성민은 그 부분에 있어서 할 말이 없는 모양이었다.
수술대 분위기는 더욱 안 좋아졌다.
이런 소모적인 대화가 다들 마음이 불편해진 탓이다.
이미 수술 장갑을 벗은 태수였기에 먼저 말했다.
“다들 자리 지키고 있어. 빨리 다녀올게.”
그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