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3054
03058 3058화
그런 태수의 모습을 이번엔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특히 박성민은 얼굴까지 벌게져 가며 따졌다.
“야, 너 지금 이게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 줄 알아?”
“소고기가 불판에 오래 있으면 질겨지는 문제가 있죠.”
“확 저걸 진짜……. 저 새끼들이 결국 너하고 기준이를 잡아먹으려고 하고 있잖아. 넌 눈치가 없냐, 아니면 귀가 이상한 거냐?”
박성민이 버럭버럭 소리쳤다.
그런 그를 마주한 태수의 눈빛은 여전히 냉담했다.
“화가 훅 끓어올랐는데, 이젠 괜찮습니다.”
“네 심정이 괜찮아도, 네 신변이 안 괜찮다니까?”
“멀쩡한데요?”
“지금이야 문제가 없는데, 앞으로는 문제가 생길 예정이라고! 아이고, 답답해. 김씨 아저씨, 저, 저거 좀 어떻게 해 봐요, 좀!”
턱, 턱!
박성민은 가슴까지 치며 괜히 김혁권에게 짜증을 쏟아냈다.
보통 반발하거나 퉁명하게 받아칠 대화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김혁권이 태수를 바라보며 묵직하게 물었다.
“뭔가 수가 있다는 거요?”
“글쎄요.”
“없단 건 아닌 거 같은데……. 잘 생각해서 대답해요. 한 번만 삐딱하게 대답하면 난 바로 올라갑니다.”
그의 진지한 경고를 들은 태수가 더 황당해했다.
“그게 송 간호사님 옆에서 할 소립니까? 그리고 사고 치고 한국 뜬다고 해결될 일이냐고요.”
“……그때 거기서 캡틴이 한 말, 기억합니까?”
“흠, 10년은 훨씬 더 지난 일입니다.”
이들이 말하는 시간과 장소는 한 곳밖에 없었다.
태수는 슬쩍 손까지 저어 흘려 넘기려 했지만 김혁권은 진지하게 따졌다.
“캡틴은 10년 지나면 은혜고 뭐고 다 잊고 사시나 보네.”
“……그건 아니죠.”
“그럼 나만 은혜도 모르고 싸가지도 없게 살라는 말씀이신지?”
“왜 얘기가 거기로 갑니까.”
태수는 이쯤 하길 원했지만 지금 김혁권에겐 통하지 않았다.
“나 잡혀갔을 때…….”
“혁권 씨!”
태수가 소리쳐 막으려 했다.
그래도 김혁권은 꿋꿋하게 말했다.
“캡틴이 그 새끼들한테 그랬잖아. 니들 다 죽이고, 본인도 의사 때려치운다고. 너희들이 맘대로 한다면 나도 한다고 말입니다!”
“그……. 흐음.”
“내가 지금 딱 그 심정이거든요. 인간 같지도 않은 새끼들 다 작살내 버리고, 한국 뜬다고. 그러니까 더 할 말 없으면 말리지 마요.”
“……푸우.”
태수는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 슬쩍 오버랩되자 숨을 길게 내쉬었다.
끝까지 감추고 또 숨겼던 기억이라 더욱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김혁권은 상관없어 보였다.
할 말 다 했으니 태수를 바라보며 어떤 말이 나올지 기다리고 있었다.
그 외에 다른 이들은?
“…….”
“…….”
모두 침묵했다.
김혁권이 이렇게까지 격하게 감정을 내보이는 건 다들 처음 봤다.
또 짧게 오간 대화였지만 분명히 엄청난 일이 있었단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송현미 간호사는 대충 무슨 일인지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사실 처음부터 극단적인 김혁권을 말리지 않은 건 그녀뿐이었다.
이 순간에도 송현미 간호사는 김혁권의 편이었다.
옆에 나란히 서서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그런데 이 와중에 신기한 건 이기준의 태도였다.
“…….”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하는 행동이라고는 맥주를 잔에 따라 입으로 가져가는 것뿐이었다.
이대로 모든 걸 포기한 느낌까지 들었다.
그런데 이기준의 성격상 절대 그럴 일이 없었다.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듯했다.
그런 이상한 기류를 정민수가 가장 빨리 눈치챘다.
누구보다 날뛰었을 정민수가 현재 조용한 건 그런 속사정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김혁권은 그걸 간파할 수 없을 정도로 시야가 좁아졌다.
미묘한 공기가 흐른 지 1분이나 지났을까?
가다리던 김혁권이 지쳤는지 차갑게 한마디 했다.
“그간 즐거웠수다.”
휙!
그가 돌아섬과 동시에 태수가 묵직하게 불렀다.
“김 간호사, 얼마 안 남았습니다.”
우뚝!
멈춰 선 김혁권이 힐끔 쳐다보며 싸늘하게 말했다.
“이 순간을 모면하려는 말이 아니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제가 그럴 성격입니까?”
“…….”
“곧입니다. 확실합니다.”
태수가 재차 말했다.
그런 확신 어린 소리를 듣고야 김혁권이 몸에 가득 채운 긴장감을 조금씩 풀었다.
그 모습을 눈으로 직접 확인한 태수는 다른 이들에게 말했다.
“좀 앉으세요. 앉으시라고요.”
“…….”
“나보다 후배인 의사들, 모두 앉는다. 실시.”
결국 태수의 입에서 강렬한 오더가 떨어졌다.
반사적으로 움찔거린 의사들은 저항하려 했지만, 끝내 버티지 못하고 하나둘씩 자리에 앉았다.
간호사들도 분위기를 보고 일단 뒤따라 앉았다.
하지만 여전히 별실 분위기는 차가웠다.
그 차가움이 조금 더 이어진 후였다.
빠라밤.
휴대폰 소리에 태수는 바로 꺼내 들어 전화를 받았다.
“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영문 모를 소리였다.
그사이 휴대폰을 내린 태수가 도성민에게 말했다.
“도끼야, 그 리모컨으로 사람 팰 생각 말고, TV나 틀어.”
“……TV는 왜?”
“틀어 보면 알아.”
“알았어.”
도성민은 당장 내리찍을 기세로 흉흉하게 쥐고 있던 리모컨을 놀려 TV를 켰다.
팟.
뉴스가 끝났을 시간이다.
그런데 화면 가득 뉴스 스튜디오가 비춰지고 있었다.
그 밑에 굵직한 자막이 보였다.
-속보, 엡시디 차관 수술을 위해 미국에서 급파된 의료진들의 공동성명 발표.
공동성명?
다들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조금 전 연성대학병원 소식을 전해 준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갑작스러운 소식이 또 있어 많이 놀라셨을 겁니다. 저희도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상당히 당황스럽습니다……. 아, 성명 발표 준비가 끝났답니다. 현장 연결하겠습니다.
당혹감을 억누른 차분한 그의 목소리가 끝났다.
그리고 화면이 바뀌었다.
그 장소를 본 의료진들 대부분이 깜짝 놀랐다.
“저기 응급의료대 프레스룸 아니야?”
“우리가 많이 썼던 거지.”
“아무튼 그게 그거잖아요……. 황경석, 저기 맞지?”
가장 최근까지 응급의료대원이었던 황경석에게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황경석은 목이 떨어져라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맞습니다. 확실합니다!”
“갑자기 저기가 왜 나와?”
“브레드 팀장도 관련이 있는 일인 거야?”
모두는 의구심이 가득했지만 정보가 적어 갸우뚱거렸다.
그때 단상으로 가운을 걸친 2명의 의사가 자리를 잡고 섰다.
그 둘을 본 모두가 깜짝 놀랐다.
“진짜 빵 아저씨잖아!”
“닥터 조나단은 또 왜 저기 있어?”
브레드 김과 닥터 조나단이란 조합이 어색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저 자리에 함께 서 있단 건 너무도 놀라운 일이었다.
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 숙여 한국식으로 인사했다.
그 후 브레드 김이 마이크에 더 가까이 다가와 입을 열었다.
-응급의료대 총괄팀장 김봉석입니다.
김봉석, 브레드 김의 한국 이름이다.
다들 편의상 입에 익은 ‘브레드’란 이름으로 부르고 있을 뿐이다.
한국 응급의료대의 총괄팀장에 오르던 그 날부터 그는 한국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는 귀화를 마친 완전한 한국인이었다.
응급의료대가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이라 국적문제로 민감할 수 있는 문제를 사전에 예방 조치한 거였다.
물론 브레드 김이 김봉석이 된다고 실력이 변하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NGO 활동은 국적 변화와 전혀 관계없었다.
그런 브레드 김의 소개에 박성민이 나지막이 한마디 했다.
“난 봉석이 형보다 빵 아저씨란 호칭이 더 좋아.”
“…….”
다들 같은 마음이지만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서 입을 다물었다.
그때 브레드 김이 이어서 말했다.
-옆에 있는 닥터 조나단을 대신해 나선 이유는 한국어로 전달하기 위함입니다. 닥터 조나단이 영어로 말한 후 제가 그걸 동시통역하겠습니다.
나름대로 배려?
물론 그런 의도도 있지만, 다들 더 큰 그림을 그렸다.
한국 기자들이 절대적으로 많으니 의사소통의 원활함을 위한 통역이었다.
그럼 브레드 김만 나서면 되는 거 아닌가?
그래도 되지만, 명목상 닥터 조나단이 전면에 나서는 게 옳았다.
또 하나, 닥터 조나단이 영어로 말하는 건 지금 방송이 미국까지 전달되고 있음을 의미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닥터 조나단이 먼저 말하고 브레드 김이 이어서 통역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시작부터 폭탄 투하였다.
-연성대학병원의 1차 조사 발표에 몹시도 불쾌한 심정을 전합니다. 자신들이 실수를 감추려고 타인을 음해하는 행위란 결코 용납할 수 없습니다.
브레드 김이 통역해 줌과 동시였다.
TV 아래에 굵직한 자막이 떠올랐다.
-닥터 조나단, 연성대학병원 진상조사위원회 발표에 정면으로 반박.
그 글씨까지 보고야 별채에서 시청 중인 모두의 표정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하지만 아직 불쾌함이 말끔히 씻겨 내려갈 정도는 아니었다.
그건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닥터 조나단은 마치 등을 긁어 주듯 가려운 곳을 박박 긁어 버렸다.
-첫째, 연성대학병원은 마지막까지 환자의 병명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그 증거로 그들이 미국 국무부의 요청으로 전송한 EMR 원본을 이 자리에서 공개합니다.
그 말이 끝난 순간 단상 뒤쪽의 하얀 벽에 선명한 빔 프로젝터 화면이 생겨났다.
EMR의 일부를 확대해 편집한 모습이었다.
빨간색으로 밑줄을 그어 영어로 된 병명 옆에 한국식으로 번역해 놓았다.
다시 말해, 모두가 알아볼 수 있는 내용이었다.
휙!
닥터 조나단이 그걸 손끝으로 가리키며 이어서 말했다.
-저기 감기와 췌장염이라고 똑똑히 쓰여 있는 걸 봐 주시기 바랍니다.
찰칵찰칵!
기자들의 셔터 소리가 미친 듯이 터져 나왔다.
이미 자막도 수시로 바뀌고 있었다.
-닥터 조나단, 엡시디 차관의 EMR 원본 공개.
-미국 국무부의 전폭적 지원으로 사실관계를 명확히 조사 중.
-공개된 EMR과 이추명 부원장의 말은 확실히 달라.
그 후로 증상들을 하나씩 짚은 후, 닥터 조나단이 냉정한 눈빛으로 말했다.
-위 사항을 조합한 결과, 연성대학병원은 엡시디 차관의 병세에 대해 명백한 오진을 내렸고, 필요 이상의 과한 처치로 상태를 악화시켰음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브레드 김의 통역으로 같은 내용이 한 번 더 들려온 후였다.
이번에도 자막이 가장 먼저 바뀌었다.
-닥터 조나단, 연성대학병원의 오진을 공표.
-충격적인 발언들이 연이어 들려와.
-한국의료계의 거목, 연성대학병원의 치부가 낱낱이 드러나.
그 자막까지 본 별채 속 레지던트들과 인턴들은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야호!”
“그럼, 당연히 이게 맞지!”
“으아아! 내 속, 내 속이 뚫리고 있어!”
분노로 일그러져 가던 얼굴이 어느새 다시 펴지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즐거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반면, 태수는 차갑게 미소 지었다.
그런 태수의 앞에 그림자 2개가 불쑥 생겨났다.
고개를 들어 보니 박성민과 김혁권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태수야, 뭐야? 너 이거…… 알고 있었어?”
“알고 있는 정도가 아니던데요. 이거 혹시 캡틴도 연관 있어요? 툭 까놓고 말합시다.”
“야, 너 왜 말 안 해? 왜 대답이 없냐고!”
성격 급한 박성민이 달려들려는 순간 김혁권이 온몸으로 막아서며 투덜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