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311
00314 314화
그뿐이 아니라 동석한 다른 의사들도 저명한 외국 의학 잡지에 몇 번이고 소개가 된 의사들이었다.
그야말로 외과 분야에선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거물들의 모임이다.
간신히 안정시킨 마음이 다시 들썩이는 걸 주체 못할 지경이다.
반면 태수와 정민수가 들어올 줄 알았던 제임스와 NGO 의료진 표정은 약간 실망감이 떠올랐다.
“누구시지?”
“누구시기는. 제임스 박사님을 찾아온 의사겠지.”
“힘든 수술 직후잖아. 브레드, 가서 양해 좀 구해.”
“네네, 갑니다.”
브레드 김은 약간 귀찮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하석준 과장 앞에 다가섰다.
“누구십니까?”
당연히 들려올 줄 알았던 영어가 아니라 한국어가 들려와 순간 하석준 과장은 크게 당황했다.
“익스큐……. 아, 아니. 저는 그러니까…….”
“네. 그러니까 누구시냐고요.”
브레드 김이 또박또박 한국말로 다시 물어오자 하석준 과장이 얼떨떨한 얼굴로 인사했다.
“여기 외과장을 맡고 있는 하석준이라고 합니다.”
“전 브레드 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먼저 만날 사람이 있어서 이야기는 나중에 했으면 좋겠습니다만.”
“그거 때문에 왔습니다. 최 선생하고 정 선생이 그러니까…….”
하석준 과장이 상황을 대략적으로 설명하자 브레드 김이 놀란 얼굴로 변했다.
“기절했어요? 하긴 그럴 만도 하지. 잠시만요.”
브레드 김은 하석준 과장을 그 자리에 세워두고 돌아섰다.
“닥터 제임스, 그게…….”
그리고 상석에 자리해 있던 제임스에게 다가가 상황을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들은 제임스가 부드러운 미소로 고개를 끄덕인 후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제임스가 성큼성큼 하석준 과장의 앞으로 다가왔다.
조금씩 가까워지는 제임스 모습에 하석준 과장은 몸 둘 바를 몰랐다.
어떻게 해야 할까.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하지?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이 동시에 몰아쳤다.
점점 더 제임스가 가까이 다가서자 하석준 과장은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이럴 때가 아니다.
하석준 과장은 부리나케 제임스에게 깊게 고개 숙이며 영어로 자신을 소개했다.
“안, 안녕하십니까. 여기 외과를 맡고 있는 석준 하입니다.”
약간 발음이 부정확하고 언어구사력이 떨어졌지만 제임스가 알아듣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어차피 기나긴 의료봉사를 하면서 말도 안되는 엉터리 영어에 익숙해진 탓도 있었다.
제임스는 천천히 손을 내밀며 입을 열었다.
“제임스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제임스 박사님. 이거 너무 급작스럽게 들어와서 실례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하석준 과장은 바로 제임스의 손을 두 손으로 공손하게 맞잡았다.
상대가 급이 다른 인물이기에 극존중의 예의다.
그야말로 외과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그런 제임스를 대면해서 그런지 하석준 과장은 평소답지 않게 잔뜩 긴장했다.
제임스는 그런 하석준 과장에게 푸근한 미소로 말했다.
“반갑습니다. 이렇게 서서 이야기할 게 아니라, 좀 앉으시죠.”
“아닙니다. 제가 어찌…….”
“그 친구들을 이끌어주시는 분인데요. 그럼 저에게도 소중한 분입니다.”
제임스의 목소리가 너무도 부드러웠다.
두 사람의 대화는 의외로 유연하게 이어졌다.
제임스가 하석준 과장의 영어 실력을 대번에 파악하고 최대한 알아듣기 쉬운 단어로 대화를 이어가는 게 주효했다.
제임스의 안내로 하석준 과장이 움직였다.
동시에 다른 의료진은 조금씩 몸을 옮겨 하석준 과장의 자리를 만들어줬다.
하석준 과장이 난처한 얼굴로 자리에 앉자 제임스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아주 멋진 과장님이라고요.”
뜻하지 않은 칭찬에 하석준 과장은 등골이 찌르르 울리는 감격을 느꼈다.
‘이 자식들.’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는 하나만으로도 기분이 달라졌다.
“아닙니다. 제가 오히려 두 사람에게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두 친구가 혈기가 넘치는 건 잘 압니다. 혹시 사고를 많이 치진 않았습니까?”
제임스의 질문이 의미심장했다.
하지만 하석준 과장은 그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했더라도 태수와 정민수는 하석준 과장에겐 최고의 인재들이었다.
“전혀요. 두 사람 모두 의사로서 어디 흠잡을 곳이 없습니다. 그리고 저희 동성종합병원 외과 수준을 많이 끌어올려 준 일등공신들이기도 하고요.”
“실력이야 저도 인정합니다. 그래도 이렇게 좋게 봐주신다니 감사합니다.”
“제가 더 감사합니다. 이 친구들이 외국에 나갔다가 온 건 알지만, 제임스 박사님과 인연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하석준 과장은 어정쩡하게 앉은 채로 대화했다.
제임스를 편하게 대하는 건 하석준 과장에게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반면 제임스는 하석준 과장이 불편해하지 않도록 푸근한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물론 그건 하석준 과장의 옷차림 덕도 있다.
가운 속에 비치는 수술복.
수술 중 참관실을 바라보며 얼핏 확인했다.
와이셔츠를 속에 잘 차려입고 있던 다른 의사와는 확연히 달랐다.
환자를 위해 언제라도 수술실에 달려 들어올 의사란 걸 그 모습 하나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그게 제임스로 하여금 하석준 과장을 좋게 보는 가장 큰 이유기도 했다.
하석준 과장 입장에선 제임스와의 대화에 벅찬 감격을 숨기지도 못했다.
순수함이 느껴지는 하석준 과장의 눈빛에 제임스도 진심을 담고 대화를 이어갔다.
제임스는 그런 성격이었다.
깊은 이야기보다는 평소 하석준 과장이 궁금했던 부분을 묻고 답하는 시간이었다.
“이번 수술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습니다만…….”
“이번 수술에선…….”
제임스의 설명.
간단하면서도 오랜 임상경험이 묻어나온 생생한 산지식이다.
하석준 과장은 하나라도 놓칠세라 온 신경을 곤두세운 시간이기도 했다.
그런 시간이 이어지던 중이었다.
띠리릭.
휴대폰이 울리자 하석준 과장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잠깐 실례합니다.”
“얼마든지요.”
제임스가 편하게 대하자 하석준 과장은 슬쩍 옆으로 몸을 돌려 휴대폰을 들었다.
“이쪽으로요? ……잠시만요.”
하석준 과장은 휴대폰을 멀찍이 떼어 놓고 가볍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 모습에 옆에서 중간중간 서로 이해하기 힘든 말들을 통역하던 브레드 김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병원장님이 이쪽으로 와도 괜찮겠냐고 물어보십니다. 어떻게 할까요?”
하석준 과장의 태도는 한결같이 조심스러웠다.
브레드 김도 자신이 선뜻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에 제임스에게 설명했다.
“……그렇답니다.”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그러지 말고 내가 그쪽으로 가는 게 옳은 거 같은데 말이야.”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브레드 김이 대답과 동시에 하석준 과장에게 한국어로 설명했다.
당연히 하석준 과장을 펄쩍 뛰었다.
“아닙니다. 그러실 거 없습니다.”
“여긴 수술대기실 아닙니까. 조금 있으면 또 수술해야 할 텐데 우리가 여기 있으면 안 되지요.”
“그거야 그렇지만…….”
“제임스 박사님은 한국에서 따지는 격식과 거리가 먼 분이라서요.”
브레드 김이 그렇게까지 말하니 하석준 과장은 더 할 말이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른 분도 같이 가시는 겁니까?”
“굳이 그런 자리에 우리까지 갈 건 없을 거 같습니다만. 사실 수술로 인해 조금 피곤도 합니다.”
“그럼 제가 병원 안내라도 좀 해 드리는 건 어떨까요.”
“좋습니다. 좀 피곤하긴 하지만 우리끼리 먼저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브레드 김이 승낙하자 하석준 과장의 표정이 밝아졌다.
하석준 과장은 지체 없이 김혁권을 호출했다.
“김혁권 씨. 여기 오신 의사분들 병원 안내 좀 부탁해도 될까요?”
“저 간병해야 하는데요.”
“간호사 한 분 보내드리지요.”
“정 그러시다면야…….”
김혁권이 마지못해 승낙한단 투였다.
물론 김혁권도 회포를 풀고 싶은 마음도 살짝 있었다.
하석준 과장 생각은 간단했다.
자신보다 안면이 더 있는 김혁권이 더욱 편하게 안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부탁합니다.”
“그럼 난 닥터 제임스랑 병원장실로 가겠습니다.”
“대화가 끝나면 바로 연락주시고요.”
“나도 그 정도 눈치는 있습니다. 그런데 이거…….”
김혁권은 일부러 말꼬리를 흐리며 엄지와 검지를 슬쩍 비볐다.
추가 수당에 대한 부분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중이다.
그 모습이 참으로 한결같았다.
하석준 과장은 빙그레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챙겨드립니다.”
“콜. 갑니다.”
결정이 나자마자 김혁권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제임스와 함께 수술대기실을 나섰다.
제임스가 떠났다고 하석준 과장이 기지개를 켤 상황은 아니었다.
남은 의사들 또한 쟁쟁한 탓이다.
“그럼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그러시죠.”
브레드 김이 선두에 서고 이작손과 오즈마 등, 다른 의사와 간호사들이 그 뒤를 따랐다.
하석준 입장에선 다소 긴장되는 병원 안내가 시작된 순간이었다.
그 사이 제임스는 김혁권의 안내를 받아 병원장실에 도착했다.
기별을 넣고 집무실로 들어가자 병원장이 말 그대로 버선발로 다가와 반갑게 환영했다.
“반갑습니다. 제임스 박사님. 동성종합병원장 민웅 한이라고 합니다.”
병원장이 영어로 정중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김혁권은 조금 놀랐다.
병원장이 누구 앞에서도 이런 태도를 보인 적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오늘은 예외였다.
최대한의 예의를 보인 병원장이 먼저 자기를 소개했다.
물론 제임스의 위치라면 그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김혁권이 생각하는 사이, 제임스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
“NGO에서 식량하고 의약품이나 축내고 있는 제임스입니다.”
“어떻게 누가 제임스 박사님을 그렇게 생각하겠습니까. 자리가 누추하지만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병원장은 제임스를 상석으로 안내했다.
존중의 의미다.
동성종합병원장이란 명함을 제임스 앞에서 내민다는 건 생각할 수 없는 일인 거 같았다.
하지만 제임스는 곧이곧대로 따르지 않았다.
상석이 아니라 좌측에 마련된 기다란 소파에 자리했다.
“전 이 자리로 하겠습니다.”
“그러지 마시고, 이쪽으로.”
“주인 권한을 침해하는 객은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법입니다.”
“제가 어찌.”
그렇게 말하며 병원장은 제임스의 반대편에 자리했다.
자연스럽게 상석이 비었지만 두 사람 모두 크게 개의치 않았다.
김혁권이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대화가 잘 통하시네. 닥터 제임스. 나 계속 여기 있어요?”
“그럴 필요 없는 거 같은데 말이야.”
“이거 용돈이나 버나 했더니.”
“여전하군. 내가 외과장에게 잘 이야기할 테니까 걱정 말고 밖에서 좀 쉬고 있도록 해.”
“그럼 감사하죠. 이따 봅시다.”
김혁권은 제임스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고 집무실을 나갔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예의 없어 보일지 몰라도 두 사람에게는 그게 오히려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김혁권이 나간 후에도 병원장 집무실 분위기는 부드러웠다.
소소한 이야기가 지나간 후에 한민웅 병원장이 제임스에게 말했다.
“죄송해서 어쩝니까. 이사장님이 서울에 일이 있으셔서 오후에나 내려오신다고 합니다.”
“혹시 지금 이사장님이 닥터 최가 외국에 나가 있는 동안 지원해 준 그분이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제가 나중에 병원장 자리에 올라서 늦게나마 들었습니다.”
“음. 꼭 만나 뵙고 싶었는데요. 아니, 아직 닥터 최와 닥터 정과도 이야기를 못 나눴으니 나중에 만날 기회를 마련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임스의 진심 어린 말에 한민웅 병원장은 조금 궁금해 했다.
“제임스 박사님이 저희 이사장님을 아십니까?”
“그 이유는 본인이 있는 데서 이야기하는 게 어떨까 합니다만.”
“그거야 물론 그러셔야죠.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앞섰습니다.”
한민웅 병원장이 살짝 저자세를 보이자 제임스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흠흠. 그보다 한국에는 언제 들어오신 겁니까?”
“오늘 낮에 들어왔습니다.”
제임스가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말하자 한민웅 병원장이 크게 놀랐다.
“한국에는 어쩐 일로…….”
“의뢰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원래 계획은 하루 정도 쉬었다가 두 사람을 보려고 내려오려 했는데 일이 조금 묘하게 꼬였네요. 좌우간 전 빨리 봐서 좋았습니다.”
“닥터 최와 닥터 정이…….”
한민웅 병원장은 이해를 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세계적인 존경을 받고 있는 제임스가 태수와 정민수를 위해 한달음에 달려왔다는 건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매우 미묘한 시기였다.
그렇기에 혹시 제임스가 그일까지 알고 있는지도 궁금했다.
제임스는 한민웅 병원장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인생 경험으로 알아챘다.
응급수술 때문에 조금 빨리 도착했을 뿐이다.
전부터 김혁권이 몇 번이나 전화해서 한국에 들어오라고 한 이유가 분명히 있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