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316
00319 319화
제임스야 원래 털털한 성격답게 미소로 석정현 이사장을 대했다.
석정현 이사장은 어려서부터 의학보단 경영에 재능을 보여 그 옛날에 남들보다 먼저 MBA유학까지 다녀온 인재였다.
덕분에 석정현 이사장 입장에선 세계 유명 병원은 알아도 의사들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모른다.
물론 낮에 석재봉 과장과 전화로 몇 마디 얻어 듣기는 했다.
-아버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의사 중에 한 분입니다. 저희 의사들에게는 존경의 대상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건 의사의 입장이다.
경영자인 석정현 이사장에게는 자기 병원 의사가 아닌 이상 제임스에게 예의는 갖추되 단지 그뿐이다.
어쩌면 그 생각이 제임스를 서슴없이 대할 수 있는지도 몰랐다.
석정현 이사장은 인사를 마친 후 상석에 자리하며 제임스를 기다란 소파로 안내했다.
“자, 앉으시죠.”
“아, 그게.”
한민웅 병원장이 당황했지만 제임스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감사합니다.”
가식 없는 미소까지 지어 보이자 한민웅 병원장은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석정현 이사장은 그 모습에 살짝 눈빛을 반짝였다.
눈치를 보니 제임스는 기분 나빠하는 표정이 아니다.
일부러 권해 봤는데 너무도 자연스럽게 앉은 모습이 오히려 인상적이었다.
‘유명의사라던데 성격 좋네.’
오너다운 생각이다.
그러는 사이 제임스가 먼저 석정현 이사장에게 말했다.
“한국에 오기 전부터 항상 궁금했습니다. 닥터 최에게 그런 기회를 준 분이 누구신지 말입니다.”
“그저 이런 촌에서 어깨 좀 펴보려고 하는 늙은이지요.”
“전혀 그렇게 안 보입니다.”
“과찬이십니다.”
서로 부드러운 대화를 이어가고 있지만 분위기가 어딘지 모르게 나사가 풀린 듯 생뚱맞았다.
그렇게 몇 마디 더 안부를 물은 후였다.
제임스는 길게 이야기를 끌 성격이 아니기에 지체하지 않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때 닥터 최의 외국행을 말리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까?”
“당시에 이런저런 문제가 좀 있었습니다.”
“그러셨군요. 그래도 장기간 월급까지 챙겨 주셨던 건 조금 의외였습니다.”
“제가 한 번 들인 사람은 함부로 내치지 않는 주의라서요. 그리고 그의 가능성을 믿어 보고 싶었습니다.”
석정현 이사장의 말이 어떤 뜻인지 제임스는 바로 이해한 모양이었다.
“그러셨군요.”
“지금도 조금은 문제가 되다 보니 머리가 아프긴 하지요.”
“솔직하시네요.”
“여기까지 찾아오셨다면 이미 어느 정도 듣고 오셨을 텐데, 지금 포장해 봐야 제 꼴만 우스워질 거 같습니다.”
석정현 이사장의 진솔한 대답에 제임스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도 솔직하게 말씀드리지요.”
“무슨 말씀입니까?”
“지금 닥터 최와 닥터 정이 병원과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건 어설프게나마 들었습니다. 정확하게는 모르지만요.”
“그러시군요.”
석정현 이사장이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제임스가 뒷말을 이었다.
“언제, 어느 때고 좋습니다. 두 사람이 이사장님 입장에서 걸림돌이 된다면 언제든지 버려주십시오. 그래야 제가 주어다가 쓰지요.”
제임스의 말에 석정현 이사장의 눈빛이 순간 돌변했다.
아무리 제임스에 대해 정확하게 모른다고 해도 저런 말을 할 때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터였다.
솔직히 궁금했다.
“도대체 닥터 최가 어떤 일을 했기에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요.”
“앞서 진솔하게 말씀해 주셨으니 저도 그래야겠죠? 그러니까…….”
제임스는 카슈미르와 네팔에서 있었던 몇 가지 주요한 사건만 간추려 이야기했다.
의술에 대해 까막눈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석정현 이사장이지만 그 일들이 결코 누구나 할 수 없다는 건 직감적으로 알았다.
가만히 듣고 있던 한민웅 병원장은 석정현 이사장과 반응이 확연히 달랐다.
“그럴 수가…….”
“대단한 건가?”
석정현 이사장이 묻자 한민웅 병원장이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한 정도가 아닙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아니, 사실이겠죠. 아마 응급 분야에서는 서울 종합병원 과장, 아니, 그 이상도 될 수 있습니다.”
한국어로 자그맣게 나눈 대화다.
아직도 놀라고 있던 한민웅 병원장이었지만 석정현 이사장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랬단 말이지.’
태수와 정민수가 이미 여러 건의 획기적인 수술을 성공시켜 충남권에서 동성종합병원의 인지도가 많이 상승했다.
그건 외과적인 수술이었다.
그런데 듣고 보니 정작 주특기는 따로 있었다.
그럼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은 무엇일까?
두 사람이 숨기는 건?
석정현 이사장은 복잡해진 머리를 조금이나마 정리하기 위해 제임스에게 다시 물었다.
“그럼 제임스 박사님이 보시기에 현재 두 사람의 실력은 어느 정도입니까?”
“오늘 새벽 수술로 어느 정도 설명이 될 거 같습니다. 두 사람이 수술을 한다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환자가 수술대에서 죽을 일은 없을 겁니다.”
“…….”
“그러니까 문제가 되면 버려 주십시오. 지금 당장에라도 좋습니다.”
제임스는 다시 한 번 정중하게 부탁했다.
진심이 느껴지는 눈빛까지.
석정현 이사장은 경영 총책임자답게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게 지금 그로서는 최선의 대처법이었다.
한편 김혁권과 음료수 한 잔 마시고 헤어진 태수는 의국으로 돌아왔다.
그사이 일과가 끝났는지 외과 레지던트들이 간호사실 앞에 모두 모여 있었다.
태수를 발견한 순간 그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홍진만이 태수의 턱밑까지 얼굴을 들이밀고 자신을 어필했다.
“치프, 치프.”
“왜?”
“저 보이시죠? 저 여기 있습니다. 치프가 레지던트들 중에 가장 좋아하고 아끼는 홍진만이가 여기 있습니다. 여기요.”
홍진만의 호들갑에 태수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내가 언제 널 가장 좋아하고 아꼈어?”
“아니, 그렇게 매정하게…….”
홍진만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듬직한 체격이 홍진만을 강하게 밀어냈다.
“너 아니래. 비켜.”
“아악!”
홍진만이 옆으로 튕겨져 나갔지만 막상 밀어낸 안성훈은 전혀 개의치 않고 태수만 바라봤다.
“치프. 전 치프를 처음 본 순간부터 진심으로 존경했습니다.”
“안 선생까지 왜 이래?”
“진심입니다. 제가 정말 존경할 만한 의사는 치프뿐입니다.”
평소에는 듬직하기만 하던 안성훈까지 난리였다.
태수는 황당할 뿐이었다.
그때였다.
스윽.
태수와 안성훈 사이에 송민규가 슬쩍 끼어들었다.
“치프.”
“왜?”
“치프.”
송민규는 긴말하지 않고 태수만 재차 불렀다.
하지만 그 눈빛은 너무도 간절했다.
그들뿐이 아니다.
ICU(중환자실) 담당 레지던트들을 제외한 모두가 아기 새처럼 태수만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모든 레지던트가 이리 나오는 건 분명한 이유가 있다.
몇몇 레지던트는 수술실에서 제임스와 NGO 의사들을 직접 만났다.
그때는 수술실이라 인사를 나눌 정신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태수가 만약에 그들을 따라간다면?
이건 일생일대의 기회다.
무조건 잘 보여야 한다.
아니, 바짓가랑이를 붙잡아서라도 어떻게든 쫓아가야 한다.
모두 그런 눈빛이었다.
왜 이렇게 모여들었는지 눈치챘지만 태수가 그냥 넘어갈 성격은 아니었다.
“세미나 참석할 준비는 끝내 놓고 떠드는 거지?”
“…….”
“20분 남았다. 참가하기 싫으면 계속 일하고.”
태수의 말이 끝난 직후였다.
“차, 차트!”
“아까 검사 결과 나온 거 어디 있어?”
“오늘 수술한 환자 케어 담당 누구야?”
날카로운 추궁에 레지던트들이 우왕좌왕하며 태수의 곁을 멀어져 갔다.
그제야 태수는 덤덤한 얼굴로 간호사들에게 물었다.
“정 선생하고 NGO 의사들 어디 있습니까?”
“아직 안에 계세요.”
“저도 들어가서 이야기 좀 하겠습니다. 레지던트들이 다시 돌아오면 바로 인턴들 데리고 세미나실로 가라고 해주세요.”
“여긴 걱정 마세요.”
“그럼.”
태수는 인사를 끝내고 바로 의사 휴게실 문을 열었다.
끼익.
“저 왔습니다!”
“왜 이제 와. 얼른 앉아.”
다시 등장한 태수를 모두가 반겼다.
태수도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들의 대화에 참가했다.
세미나?
태수에게는 다소 형식적인 세미나보다 이들과의 소탈한 이야기가 더욱 중요했다.
태수가 NGO 의사들과 한창 이야기 삼매경에 빠져 있을 때 이사장실의 대화도 마무리되어 갔다.
가볍게 사진 촬영까지 마무리 지어 제임스가 다녀갔다는 발자취도 남겼다.
석정현 이사장이 차분하게 말했다.
“세미나 시간이 가까워 오는군요. 좋은 말씀을 계속 나누고 싶지만 의사들이 노려볼까 무서워서 얼른 놓아드려야 할 거 같습니다.”
“저도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공주를 떠나시기 전에 식사 한번 대접할 기회를 주십시오. 그때 이런저런 조언도 좀 구하고 싶고요.”
석정현 이사장의 사람 좋은 미소를 본 제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는 음식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그 외에도 너무 감사한 점이 많네요.”
“우리 병원에 와주신 것만으로도 영광이니 그런 말씀 마시고요.”
“자, 그럼 세미나 때문에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저희 의사들에게도 제임스 박사님의 임상 경험이 충분히 전달되는 시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대화하며 자리에서 일어난 석정현 이사장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제임스가 따뜻한 손길로 맞잡고 병원장 집무실을 나갔다.
한민웅 병원장이 제임스를 세미나실로 안내하러 나간 사이였다.
석정현 이사장은 얼른 휴대폰을 꺼내 아들인 석재봉 과장에게 전화했다.
“석 과장.”
“네, 아버지.”
“지금 제임스 박사와 이야기 끝났다.”
“진짜 아쉽네요. 저도 한국에 있었으면 만사 제쳐 놓고 내려갔을 텐데요.”
석재봉 과장의 목소리에 진정성이 담긴 아쉬움이 가득했다.
석정현 이사장은 차분하게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그래, 이야기를 나누고 보니 네가 그런 마음을 가질 만한 의사였어. 그리고 말이다. 그러니까…….”
그 이야기를 모두 들은 순간이었다.
석재봉 과장의 매우 심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 그 말씀대로라면 최태수 선생하고 정민수 선생은 무조건 잡아야 합니다.”
“음.”
“제임스 박사가 인정한 실력이라면 무조건 우리 병원에 필요합니다. 아니, 한국에서도 그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의사는 찾기 드뭅니다.”
“그 정도인가?”
석정현 이사장은 아직도 제대로 감이 오지 않는 모양이다.
석재봉 과장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조건입니다. 어떻게든 딴 생각을 못 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실은 내가 예전부터 생각해 놓은 게 있는데 말이다.”
“뭡니까?”
“그러니까…….”
석정현 이사장이 길게 설명을 마친 후였다.
석재봉 과장의 목소리가 휴대폰을 크게 울렸다.
“역시 아버지십니다. 전 그 계획에 무조건 찬성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아마 두 사람도 절대 나간다는 말을 못 할 겁니다.”
“그럼 이대로 진행해도 될까?”
“제가 며칠 내로 한국으로 들어갑니다. 바로 내려갈 테니까 자세한 건 그때 좀 더 조율하도록 하고요. 일차적인 건 진행해도 될 거 같습니다.”
“그래. 그럼 얼굴 보고 또 이야기하자.”
통화를 마친 석정현 이사장은 조금은 놀란 표정으로 변해 있었다.
석재봉 과장이 이런 반응을 보인 건 처음이다.
늘 듬직한 아들이다.
그런데 오늘은 어딘지 모르게 들뜬 목소리였다.
그만큼태수과 정민수가 중요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석정현 이사장은 천천히 일어나 창가로 향했다.
병원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위치다.
높다란 건물.
그런데.
‘이렇게 큰 병원으로도 감당 못 할 의사들이 있다니.’
기가 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