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3190
03194 3194화
그걸 본 김혁권과 박성민이 두 손을 굳게 맞잡았다.
턱.
“박씨 선생, 그간 고생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을요. 우리 김씨 아저씨의 지대한 노력 덕분입니다.”
“그것도 문제아 둘 다 떼어 버린 거 같은데, 이럴 때야말로 축배를 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크으! 역시 김씨 아저씨는 항상 옳으십니다. 옳죠. 존경합니다. 항상 존경하고 또 존경해 왔습니다.”
“저야말로. 오늘 참 의미 깊은 밤이 되겠습니다.”
오랜만에 속이 후련한 얼굴로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같은 시각.
벌컥.
진료실 문이 열리고 태수와 김은영이 들어왔다.
“앉아.”
“응.”
스윽.
김은영이 소파에 조심히 앉았다.
그사이 태수는 소독 도구를 들고 다가왔다.
“뭐 해? 안 벗어?”
“어, 응?”
“가운 벗으라고. 그래야 소독을 하지.”
“아, 그렇지.”
스윽.
김은영은 조심스럽게 가운 한쪽 어깨를 내렸다.
별다른 행동도 아니었다.
그런데 태수는 괜히 느낌이 이상했다.
태수는 얼른 고개를 저었다.
절레절레.
“아, 아니야. 아니라고…….”
“어?”
“아니야. 조금 쓰릴 거야.”
태수는 소독약으로 신중하게 상처 부위를 소독했다.
“쓰읍.”
김은영이 앓는 소리를 내자 태수가 멈칫하며 물었다.
“많이 쓰려?”
“아니. 괜찮아.”
김은영은 태수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답했다.
괜히 어색했다.
진료실이 이상하게 더운 느낌이었다.
태수는 의식하지 않으려 다른 질문을 건넸다.
“……왜 그랬어?”
“슬기 씨 다칠까 봐.”
“넌 내가 좀 요령껏 피하라고……. 아니다, 됐다. 그 상황에 어떻게 피해.”
“……미안.”
김은영의 소심한 사과에 태수는 괜히 툴툴거렸다.
“그러게 미안할 걸 왜……. 에이씨, 옷도 다 버렸네.”
“옷이야 뭐…….”
“……미안하다.”
뜬금없는 태수의 사과에 김은영이 멈칫했다.
“아니야. 왜 미안해 해. 내가…….”
“그거 말고.”
“…….”
순간 무슨 의미인지 눈치챈 김은영의 입이 꽉 다물어졌다.
태수는 상처에 밴드를 덧대며 이어서 말했다.
“내 과거 이야기 들었지?”
“응.”
“그래도 좋아?”
“……..응”
김은영의 대답에 태수 얼굴이 복잡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왜?”
“넌 최태수니깐.”
김은영의 대답에 태수가 고개를 푹 숙이며 순간 침묵했다.
뭐라 말하기 애매한 상황이기도 했다.
짧지않은 동안 말문을 닫았던 태수가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
“아니라고 부정도 해 봤고, 피해도 봤는데…… 아닌 게 아니더라.”
“……나도.”
“미안한데…….”
“응? 아…….”
김은영이 의아하게 바라보다 얼른 시선을 피했다.
태수가 마주하고 있던 탓이다.
하지만 태수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이어서 말했다.
“시간을 조금만 더 줄래?”
“무슨…… 시간?”
“내가 평생 꼭 이루고 싶은 버킷리스트 1순위가 있는데…… 거의 다 온 거 같아. 그런데 아직 조금 남았어.”
“……그게 뭔데?”
김은영이 조용히 묻자 태수도 나지막이 답했다.
“비밀.”
“…….”
“내겐 목숨만큼 소중해.”
“그렇게 중요한…… 거야?”
스윽.
김은영이 시선을 마주하며 물었다.
태수는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마주하며 답했다.
“인턴 때부터 꿈꿔 온 일이야.”
“아무리 물어봐도 말 안해 줄거지?”
“응.”
간단한 태수 대답에 김은영이 싱긋 웃었다.
“알았어. 시간이 해결해줄테니 기다리지 뭐.”
“그런 마인드 아주 좋아.”
그제야 태수가 환하게 웃었다.
쾅, 쾅, 쾅!
갑자기 들려오는 노크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거의 동시에 문이 열리며 주미성과 윤사라가 동시에 뛰어 들어왔다.
“이게 무슨 일이에요!”
“어머, 괜찮으세요!”
걱정하는 조카들의 모습에 태수와 김은영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괘, 괜찮아.”
“응, 그래. 조, 조금 다친 거야.”
두 사람의 대답 소리가 뭔가 딱딱했다.
특히 태수는 좀 더 긴장했다.
이 순간 들어온 게 범상치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태수가 쓴 미소를 지으려 할 때였다.
주미성과 윤사라도 진료실 분위기를 바로 간파한 듯했다.
그러더니 괜히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사라야, 너 할 일 있다고 하지 않았어?”
“맞아. 언니도 비서실 비우면 안 된다면서.”
“그, 그렇지. 우린 돌아갈까?”
“그럴까?”
죽이 척척 맞는 소리에 태수가 인상을 찌푸리며 손짓했다.
“까불지 말고, 왔으면 앉아.”
태수의 권유에 돌아오는 건 어색한 권유였다.
“오호호! 삼촌, 아니에요.”
“눈치 없이 들어온 저희는 이만……. 하던 말 계속하시고요. 집에서 봬요.”
탁.
진료실 문이 닫히자 태수가 멍하니 바라봤다.
“하, 저 녀석들…….”
잠시 후.
태수와 김은영은 진료실 밖으로 나왔다.
그 앞을 지나가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쏟아졌다.
복도는 만인의 공간이다.
그 의미 그대로 환자부터 시작해 보호자와 의료진들, 문병객들까지 다양한 이들이 뒤섞여 있었다.
다들 가는 걸음까지 멈췄다.
그래서 그런지 복도엔 일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
“…….”
그렇게 수많은 시선에 태수와 김은영도 동시에 멈칫했다.
병원 소문은 빛보다 빠르다.
그 난리를 피웠는데 소문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둘이 진료실에서 나오는 모습은 오해하기 딱 좋았다.
살짝 당황한 태수가 얼른 김은영에게 말했다.
“김 선생, 그, 그래. 그 환자 경과는 안에서 말한 대로…….”
태수는 있지도 않은 환자 얘기를 갑자기 꺼냈다.
김은영도 눈치 챘는지 장단 맞춰 대답했다.
“그, 그럴게요. 팀장님 오더대로 진행하고…….”
누가 봐도 어색한 대화가 이어졌다.
그런데 그때였다.
멈췄던 사람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크, 크흠.”
뚜벅뚜벅.
헛기침을 하는 이들이 상당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서…… 가자.”
“그래요. 가, 가야죠.”
환자와 보호자의 대화도 이상하게 어색했다.
태수는 그런 그들의 부자연스러움을 금방 눈치 챘다.
“뭐지?”
김은영과 함께 있어서 피하는 걸까?
그건 아닐 터였다.
희망병원만큼 의료진과 환자들이 친근하게 지내는 병원이란 찾아보기 힘들었다.
웬만한 사정은 서로가 알고 있을 정도였다.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그건 확실했다.
그때 김은영이 태수에게 말했다.
“팀장님, 저 그만 가 볼게요.”
“그, 그럽시다.”
“어?”
“아니, 그렇게 해. 가운하고 옷부터 좀 갈아입고.”
“그럴게, 아니, 그럴게요. 그럼.”
종종.
김은영은 인사하자마자 잰걸음으로 멀어져 갔다.
그런 김은영의 오른팔 상박에 지워지지 않은 핏자국이 보였다.
저 상처의 잔재를 보니 또 가슴속에서 불이 끓었다.
안 보는 게 상책이다.
스윽.
태수는 바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 태수의 눈앞에 홍진만이 서 있었다.
하필이면 홍진만의 모습이다.
그의 자유분방한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추측이 되지 않았다.
순간 태수는 한쪽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환장하겠네.’
진심 어린 속마음이었다.
절레절레.
고개까지 저었다.
그런 태수 앞으로 역시나 홍진만이 다가왔다.
척.
“팀장님, 저…….”
“홍, 헛소리할 거면 입 다물어라.”
태수가 나지막이 말했다.
이게 최소한의 대비책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런데 태수의 예상과 달리 홍진만의 목소리가 절도 있고 강렬하게 들려왔다.
“아닙니다! 오늘 저녁 식사 예정인 가든 예약 사항에 대해 보고 드리러 왔습니다!”
“……너 목소리가, 그 자세는 또 뭐야?”
“아닙니다. 존경하는 팀장님께 당연한 언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복도를 울렸다.
그뿐만 아니라 정말 차렷 자세를 빳빳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평소 건들거리는 모습은 아예 찾아볼 수 없었다.
그게 황당한 태수가 오히려 물었다.
“너, 뭐 잘못했냐?”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왜 이래?”
“아닙니다!”
홍진만은 시선도 전방 15도를 유지하며 빠릿빠릿하게 답했다.
군대도 이 정도면 이등병이 사단장과 대화하는 수준이었다.
태수는 그게 더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뭐가 아닌데?”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뭐가……. 환장하겠네.”
벅벅.
태수는 뒷머리까지 거칠게 긁었다.
그때였다.
타다닥!
안성훈과 황경석이 번개같이 다가왔다.
그들의 등장에 태수가 홍진만을 가리키며 물었다.
“마침 잘 왔다. 홍 선생 왜…….”
그런 태수의 질문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지금 막 도착한 후배들도 홍진만 옆에 똑같이 차렷 자세로 선 탓이다. 거기다 이해 못할 소리까지 했다.
“동기 관리 제대로 못해 죄송합니다!”
“저도 죄송합니다!”
똑같은 반응에 태수는 정말 머리가 아파 왔다.
“니들 단체로 뭘 잘못한 거야?”
“그……. 죄송합니다!”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반복했다.
그런데 지나는 사람들의 반응이 더 이상했다.
“와, 최 팀장님 성격 진짜 장난 아닌가 보다.”
“조용히 해. 괜한 소리 했다가 주먹 날아올라.”
“……야야, 이쪽 본다. 얼른 가자.”
사사삭.
얼른 발걸음을 재촉까지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시선을 마주할 때마다 발걸음 속도가 순식간에 빨라졌다.
환자들 반응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제야 뭔가 감을 잡은 태수가 조용히 물었다.
“혹시 아까 그 일 때문에 이러는 거냐?”
“아닙니다!”
“똑바로 말해.”
태수가 으름장을 놓자 후배들끼리 치열하게 눈치 싸움을 했다.
툭, 툭.
팔꿈치로 서로 건드리며 미뤘다.
결국 후배인 황경석이 태수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게…… 피치 못할 사정이란 건 잘 알고 있지만…… 그, 팀장님께서…….”
“황경석, 본론만 말하자.”
“네! 팀장님 심기 불편하지 않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황경석이 바짝 긴장해 대답했다.
그걸로 태수는 확신했다.
역시 아까 일 때문이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가볍게 주먹을 들어 봤다.
“흐음, 이거?”
“헙!”
주먹을 본 순간 후배들이 놀라며 딱딱하게 굳어졌다.
통나무처럼 보일 정도였다.
태수는 그런 반응이 어이가 없었다.
“자식들이 장난하나. 나랑 너희들이랑 조금 있으면 10년이다.”
“마, 맞습니다!”
“그런 녀석들이 이러면 어쩌자고?”
“죄송합니다!”
여전히 긴장 가득한 모습 그대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