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3241
Chapter 009화.
“잡고 있잖아요.”
“이쪽으로 틀어요. 어서.”
“환장하겠네. 도대체 여기고 저기고 이 닥터들은 중간이 없어.”
김혁권은 한껏 짜증을 토해냈다.
그러면서도 정민수가 원하는 대로 순순히 따랐다.
물론 정민수가 갑자기 천재가 되어 모든 병을 다루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처치의 경계가 정확해졌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환자들은 외상환자였다.
찢어지고 긁힌 상처들이었다.
그런 외상환자들이 제일 많았다.
주로 곪은 상처를 짜내고, 파내고, 또 봉합하는 과정으로 진행됐다.
그건 의과와 상관없이 의사들이 가장 기본적으로 할 수 있는 응급처치들이었다.
덕분에 태수는 남은 모든 환자들을 돌봐야 했다.
그에 대해선 어떤 불만도 없었다.
오히려 반겼다.
“혼자가 아닌 게 어디야.”
그간 응급 순으로 처치를 진행했다.
그러나 지금은 혼자가 아니었다.
당장 그럴 걱정이 없어졌으니 환자를 좀 더 자세히 살필 수 있어 좋았다.
그렇게 태수와 정민수는 각자 환자들을 돌봤다.
다행히 당장 수술이 필요한 환자는 더 이상 발견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밤이 찾아왔다.
무슨 일이든 시작이 있으면 끝이있는 법이었다.
사람들이 가득하던 의료 텐트 주변은 어느새 한가해졌다.
그런 의료 텐트 앞에는 군용트럭이서 있었다.
부르릉.
시동이 걸린 걸 보아하니 곧 출발 할 듯 했다.
군용트럭 적재함에는 어느새 몇몇 사람들이 누워 있었다.
여기서 치료가 어려운 환자들, 또는 증상이 애매해서 NGO로 이송하는 이들이었다.
그런 그들을 태수가 한 번 더 꼼꼼하게 살폈다.
환자의 증상과 주의사항을 군인들에게 말하는 것도 있지 않았다.
“이 환자는…….
“네, 네.”
슥슥.
군인들은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집중하며 필기했다.
그런 시간은 길지 않았다.
곧 마지막 확인을 마친 태수가 트럭에서 내렸다.
탁.
내려서자 샘 분대장이 다가왔다.
“확인 끝나셨습니까?”
“네. 마지막까지 이송을 부탁드리네요.”
“그러려고 다시 돌아온 겁니다. 걱정 마십시오. 제가 NGO에 확실히 인계하겠습니다.”
샘 분대장이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태수는 당연히 그를 믿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지체할 생각 없습니다. 바로 떠날겁니다.”
“그럼 복귀 날 뵙겠네요. 그때까지 건강하시길.”
스윽.
태수가 악수를 청했다.
바로 맞잡은 샘 분대장이 진한 미소를 흘렸다.
“닥터 최도 무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출발하겠습니다.”
샘 분대장은 거수경례를 하고 군용 트럭 조수석에 올라탔다.
군용트럭은 바로 출발했다.
부웅.
태수는 군용트럭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 배웅했다.
배웅을 마친 후.
태수는 의료 텐트를 바라봤다.
“…….”
가만히 뭔가 생각했다.
곧 뭔가 결심을 굳혔는지 몸을 움직였다.
태수가 나타난 장소는 바슈의 집이었다.
“흑흑흑.”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한 목소리가 아니라 여러 목소리가 섞여 있었다.
태수는 무거운 표정으로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옆에 칸도르 촌장이 불안한 얼굴로 바라보다 결국 먼저 물었다.
“정말 들어갈, 생각입니까?”
“무슨 일이 일어나도 통역만 부탁드립니다.”
“안에 혼자가, 아닙니다.”
“그런 거 같네요. 그럼 부탁합니다.”
말이 끝남과 동시였다.
똑똑.
태수는 지체 없이 문을 두드렸다.
“…….”
흐느끼는 소리들이 일부 잦아들었다.
그리고.
끼익.
문이 열렸다.
바슈의 시신을 옮긴 사람들 중 한명이었다.
친인척 관계였던 모양이다.
그는 놀란 얼굴로 몸을 돌려 소리쳤다.
“@!%#%#$.”
그 내용을 칸도르 촌장이 통역해줬다.
“의사가 찾아왔다, 라고 합니다.”
“들어가도 될까요?”
“문을 열어 놓은 건 들어오란 뜻이긴 합니다.”
“그럼 들어가야죠. 후읍.”
태수는 각오를 강하게 다지고 들어갔다.
문턱을 넘은 태수 앞에 바슈 어머니가 부축을 받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모습이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태수는 바슈 어머니가 어느 정도 다가오자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척.
“진심으로 용서를 빌러 찾아왔습니다.”
태수는 아예 눈까지 감아버렸다.
어떤 봉변도 각오했다.
그런데 뭔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걸 칸도르 촌장이 놀랍단 목소리로 통역해줬다.
“그녀가 묻습니다. 왜 용서 해줘야 하냐고요.”
“네. 용서 못하시겠죠. 분이 풀릴 때까지 마음대로 하십시오.”
“왜, 이러냐고 묻습니다.”
“내일도 여기 분들 치료하고 싶어서요. 아픈 가슴을 더 느끼고 싶지 않습니다. 꼴도 보기 싫으시겠지만 한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태수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그때 보호자의 목소리와 더불어 칸도르 촌장 통역소리가 이어서 들려왔다.
“확신할 수 있냐고, 묻습니다.”
“아니요. 확신 못합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고, 합니다.”
“무조건 살린다는 약속은 거짓이니까 드리지 않는단 겁니다. 하지만 제가 가진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단 말은 진심입니다.”
태수는 마음 그대로를 말로 표현했다.
그리고 기다렸다.
“…….”
“…….”
침묵이 가득했지만 태수는 미동도 없이 그렇게 기다렸다.
조금 시간이 지난 후였다.
칸도르 촌장이 태수에게 말했다.
“바슈 어머니,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럼 기다려야죠.”
“전해달란 말이 있었고, 메신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말씀이 있으셨다고요?”
스윽.
태수가 처음으로 눈을 떴다.
그런 태수의 앞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한쪽 팔에 압박 붕대를 칭칭 두른 수염이 풍성한 환자였다. 그는 바슈와 전혀 이목구비가 비슷한 구석이 없었다.
아니,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가 먼저 무거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ㅆ%#$$”
“바슈 어머니가 전해달랍니다.”
“@#%#$”
“난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수염 풍성한 환자와 칸도르 촌장의 말이 번갈아 들려왔다.
태수는.
“…….”
조용히 경청했다.
바로 그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
“이 마을을 떠날 때까지 절대 앞에 나타나지 않을 겁니다.”
“@#%#@$#.”
“하지만 당신이 돌아가는 그날, 건강해진 마을 사람들을 본다면 고마워할 겁니다, 라고 했답니다.”
마지막 말을 들은 태수가 눈을 크게 떴다.
“네?”
“어머니의 마음, 그런 겁니다. 용서해도 용서 할 수 없는, 마음입니다.”
“…….”
“당신들에게, 고마운 마음, 모두가 똑같습니다.”
“…….”
칸도르 촌장이 통역해준 후였다.
턱.
수염 풍성한 환자가 태수를 한 손으로 일으키려 했다.
한 손으로는 어려운 일이다.
태수는 그의 묵직한 표정에 어쩔 수 없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내 바르게 선 후였다.
수염 풍성한 환자는 한 손으로 태수를 강하게 안았다.
“@^%#$”
“바슈 어머니가, 전해달란 인사입니다. 어머니는, 다 알고 있습니다.”
칸도르 촌장이 잔잔한 목소리로 통역해줬다.
그제야 태수는 무거운 마음을 조금이나마 내려놓을 수 있었다.
꽈악.
양손으로 수염 풍성한 환자를 강하게 안으며 답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후후.”
툭, 툭.
수염 풍성한 환자는 잔잔한 웃음과 더불어 태수의 등을 다독여줬다.
태수는 다시 의료 텐트 쪽으로 돌아왔다.
조금 가벼워진 마음 만큼 자그맣게 미소 지를 여유가 생겼다.
의료 텐트 옆에 똑같은 텐트가 하나 더 있었다.
보금자리 겸 창고였다.
스륵.
천을 옆으로 밀며 안으로 들어갔다.
김혁권이 높이 쌓인 상자 앞에서 재고를 파악하고 있었다.
“한 놈, 두시기, 석 삼…….”
숫자를 세는 방법이 독특했다.
태수는 순간 황당한 얼굴로 변했다.
‘한국 사람이야?’
태수가 어렸을 때 유행하던 이상한 셈법인데 그걸 김혁권이 알고 있단 사실이 놀라웠다.
그때 김혁권이 태수를 보며 물었다.
“아까 출발했는데, 왜 이제 들어옵니까?”
“내려갔다 왔습니다.”
“하여간 빨라, 그런데 날 보는 표정이 왜 씹다만 껌 같은 느낌일까요?”
김혁권이 묻자 태수가 의아한 점을 물었다.
“그 숫자 세는 법은 어디서 배우셨습니까?”
“한국 아저씨요.”
“네?”
“인도에 사업하러 온 아저씨들이 이렇게 말하던데요. 아재감성이라나 뭐라나. 입에 착착 붙긴 합디다.”
심드렁한 김혁권의 대답에 태수가 어색하게 미소 짓다 두리번거렸다.
“뭐, 그런 감이 있죠. 그런데 왜 혼자십니까?”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어디 갔는지 모르세요?”
“저기 언덕 끝에서 쭈그리하고 있는 생명체를 보긴 했습니다만, 에이 까먹었네. 어디까지 했더라.”
김혁권은 두루뭉술하게 대답하고 재고 파악을 이어갔다.
더 말하고 싶지 않단 느낌이었다.
그래서 태수도 방해하지 않고 다시 텐트 밖으로 나왔다.
언덕 끝으로 걸어가자 김혁권의 말대로 정민수가 보였다.
내려다보이는 명사하드가 한눈에 당 자리였다.
낮이라면 그렇겠지만 지금은 저녁무렵이다.
세상이 어둠에 물들고 있고 거리도 멀어 사람들의 움직임이 잘 보이지 않았다.
정민수는 큼지막한 바위에 무릎을 세우고 앉아 있었다.
김혁권이 말한 대로 ‘쭈글쭈글’했다.
아까전까지 독기 가득 채우고 환자 사이를 누비던 모습이 거짓말 같았다.
그 극단적인 변화는 마치 변신 시간이 끝난 슈퍼히어로처럼 보이기도 했다.
태수는 예상이라도 했는지 덤덤했다.
스윽.
옆에 자리한 태수가 하늘을 보며 흘리듯 말했다.
“별 더럽게 많네.”
“…….”
“미안하다. 아까 때려서.”
태수는 사과의 말을 툭 내던졌다.
일견 무심하고 건조한 느낌이었다.
원래 남자들끼리 사과하는 방법이 그랬다. 자존심 탓인지 구구절절 말 하기보다 핵심만 파고들었다.
그런데 정민수는 답을 하는 게 아니라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불렀다.
“태수야.”
“왜?”
“…….”
불러놓고 침묵이다.
의아한 태수가 고개 돌려 정민수를 바라봤다.
그는 세운 무릎을 양팔로 감싼 채 떨고 있었다.
그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태수의 표정이 걱정으로 굳어지려는 순간이었다.
정민수가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나……. 나 기억이 안나.”
“그게 무슨 소리야?”
“나도 모르겠어. 수술 텐트를 나간 후 부터 기억이 희미해.”
그 소리에 태수의 미간에 주름이 깊게 쨌다.
“희미한 기억은 뭔데?”
“정신없이 움직였다는 거 정도.”
“자식. 진짜 눈 돌아갔었네. 그때가 좀 더 멋있었는데 말이야.”
태수는 심각한 표정을 쓴 미소로 바꿨다.
그런데 정민수는 아니었다.
“넌 아무렇지도 않아?”
“뭐가?”
“사람이 죽었잖아. 그것도 우리 손에서, 우리 눈앞에서.”
파르르.
정민수는 몸의 떨림이 심해지자 스스로 더 꽉 끌어안았다. 그 만큼 그 순간이 잊히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저 가볍게 웃어넘길 상황이 아니다.
직감한 태수는 차분하게 가라앉힌 목소리로 말했다.
“마음이 좋을 리가 있냐.”
“그런데?”
“가슴 깊이 새겨놓고 앞을 보는 거야. 단지 그거야.”
태수가 묵직하게 대답했다.